〈 195화 〉 194. 손님 많은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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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잡동사니들과 정체불명의 짐승사료, 작은 짐승이나 요정들이 갇혀 비명지르고 있는 철창들 수십개.
그리고 묘한 냄새를 풍기는 각종 특이 식물들과 뭘 잡기 위한 용도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각종 사냥 도구들까지.
온갖 물건과 생물들로 굉장히 정신 사나운 밀렵꾼의 움막에 간만에 조준이 아닌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생존자 헬렌과 운반자 로이.
그들은 닉의 동료로, 금간 앙크를 얻기 위해 암시장에 들어온 세 개의 팀 중 한 팀이었다.
그들은 암시장 초입이었기 때문에 가게 문을 나서면 전혀 다른 장소로 날려 보내 진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도무지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밀렵꾼의 움막까지 오는 길에 봤던 먹거리 골목의 풍경이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온갖 생명체들의 단말마와 아무렇지 않게 그것들을 먹어치우는 이족들. 거기에 기기괴괴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뜯고 죽이고 파괴하는 장면들은 그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심어줬다.
“이거 아무리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 로이. 이게 고장 난거 아닌지 물어봐.”
“알겠어. 저기, 사장님? 이거 제대로 작동하는 거.. 맞죠? 반응이 없는데 말입니다.”
움막의 입구에서 가이드가 오기를 기다리던 헬렌과 로이는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가이드가 나타나지 않자 알을 닦고 있던 밀렵꾼에게 호출기가 고장 난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밀렵꾼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늦는가 보지. 낸들 알겠나. 워낙 신출귀몰한 녀석이니. 올 때 되면 오겠지.”
밀렵꾼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헬렌은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따지고 들 수는 없었기 때문에 괜히 로이를 닦달했다.
“로이. 우리 여기서 이럴 시간 없어. 빨리 앙크를 받고 암시장을 빠져나가야해. 4시간 지나면 아웃인 거 기억하고 있지?”
“잠깐만.. 저 길을 또 지나가야 한다고? 사람인지 뭔지 모를거 튀기는 장면.. 누나도 봤잖아.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곧 올 거야. 오겠지. 와야해.”
“아니. 우린 지금 여길 나가야만 해. 무서워도 어쩔 수 없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허송세월 낭비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불길해. 경종이 울리고 있다고.”
헬렌은 다시 한 번 로이의 옷소매를 당기며 재촉했다.
가이드는 나타나지 않고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에 혹여나 밀렵꾼이 자신들을 어찌해 보려고 시간을 끄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헬렌은 위기 감지를 발동시켰고 뭔가가 걸렸다.
“뭐? 경종? 불길하다고? 그거.. 설마 스킬효과 이야기야?”
“응. 위기감지가 자꾸 경종을 울려. 이상해. 뭔가 오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한테 오고 있는거.. 가이드가 아닐 지도.”
“그럼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당장 나가자!”
가이드가 오기 전까진 결코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던 로이가 헬렌의 말에 경악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헬렌의 클래스는 서바이버.
클래스 명 자체가 생존자인 헬렌은 다가올 위기나 함정, 재앙들을 빠르게 감지해낼 수 있었다. 거의 예지능력의 반열에 올랐을 정도로 정확히.
그런 헬렌이 위험을 감지했다.
뭔가 오고 있다. 대적할 수 없는 적이다. 도망가야 한다.
로이는 빠르게 헬렌을 안아 들었다.
참고로 헬렌은 조금 아픈 누나였다. 헬렌은 두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로이가 그녀를 데리고 다녀야했다.
그리고 로이의 클래스는 포터 맨, 일명 짐꾼이다. 걷지 못하는 헬렌을 데리고 다니기에 가장 좋은 클래스였다.
“그,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래. 살아서 또 오라고.”
로이가 밀렵꾼에게 인사하며 가게 밖으로 나선 순간...
시공간이 뒤틀리며 그들은 약쟁이들의 소굴로 빨려 들어갔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클래스로 각성한 남매는 급히 도주했다. 대적할 수 없는 위험이 다가오기 전에.
곧이어 가게의 문이 열리며 체셔와 조준이 밀렵꾼의 움막에 들어왔다.
간발의 차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두 사람은 조준의 손에 붙잡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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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호출기를 누른 범인을 잡기 위해 반쯤 뛰다시피 밀렵꾼의 움막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움막에는 호출기를 누른 범인들이 없었다.
늘 그렇듯 무뚝뚝하게 인사를 건네는 밀렵꾼만 있었을 뿐이다.
“오, 왔나? 방금까지 체셔 너를 기다리던... 음?”
그런데 밀렵꾼은 인사를 하다 말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체셔를 빤히 쳐다 봤다.
“너... 설마.”
영혼 조각을 되찾았단 사실을 바로 간파당했다. 들키고 자시고 할게 아니었다.
밀렵꾼은 체셔를 보자마자 그녀의 영혼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찾아낸 모양이군.”
조금 날카로운 말투로 묻는 밀렵꾼.
일순 공기가 얼어붙듯 차가워졌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운에 나는 순간 무릎을 꿇을 뻔했다.
“너의 도움인가?”
밀렵꾼이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러자 체셔가 얼른 내 앞을 가로막으며 밀렵꾼의 살기를 지워 버렸다.
“아저씨. 그만하지? 얘한테 왜 그래. 무슨 잘못이 있다고.”
으르렁거리며 기운을 일깨우는 체셔.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나는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흐음.. 힘을 얻더니 눈에 뵈는게 없어졌나? 이젠 뭐 나와도 붙어보겠다 이거야? 멍청한 악마들 몇 때려잡고 기고만장해진 모양이구나.”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 애초에 아저씨가 먼저 살기 드러냈잖아. 아저씨 뭐, 나한테 집착해?”
“뭐라고? 집착? 집착을 해? 이 자식이...”
밀렵꾼은 잠깐 나와 체셔를 노려보다가 곧 일깨우던 기운을 잠재웠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쉬는 그의 모습은 마치 딸이 이상한 동네 양아치 한테 시집 간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아버지 같았다.
“후우. 체셔.”
“왜.”
“그래, 드디어 꿈을 이뤘구나. 암시장을 나간다는 꿈.”
“응. 그러니까 축하해 줘. 아저씨.. 아니, 아빠.”
“아빠라.. 하아. 그래, 아버지라면 자식의 독립을 응원해야겠지. 하아..”
체셔는 기습적으로 밀렵꾼을 아빠라고 물렀다.
물론 진짜 피가 이어진 부녀관계는 아니다. 허나 그보다 더욱 끈끈한 유대감이 둘 사이엔 존재할 터였다.
암시장에서 실험체로 사육 당하던 체셔를 구해 내 키운 게 밀렵꾼이니까. 두 사람 사이의 과거사를 정확히 알진 못 하지만 그냥 그런 관계라고 들었다.
아무튼 이때까지 항상 아저씨라고 부르던 그녀가 아빠라고 부르자 밀렵꾼은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욱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이봐, 컬티스트.”
“예, 예?”
“첫 만남 때 네놈을 죽이지 않은걸.. 내가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할 거다. 그 아일 소홀히 대했다간..”
밀렵꾼의 말 없는 경고.
나를 어찌할지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결코 곱게는 못 죽을 거란 사실을.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밀렵꾼에게 약속했다. 결코 체셔가 상처 입을 일 만들지 않겠다고.
그제야 밀렵꾼은 평소의 무뚝뚝한 아저씨로 돌아왔다.
진짜 정신 나가는 줄 알았다. 이게 장인어른과 만난다는 느낌이구나.
이때까지 내가 손댄 여자들 대부분은 재앙으로 인해 이미 가족을 잃었거나 원래부터 혼자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장인어른이라고 할 만한 존재가 생기니 뭔가 느낌이 좀 새롭다. 별로 좋지 않은 쪽으로.
‘저런 괴물이 장인어른이라니..’
대충 나와 밀렵꾼 사이의 대화가 끝났다 싶으니 체셔는 얼른 궁금한 점을 밀렵꾼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 방금 여기 사람 없었어?”
“아빠라고 했다가 아저씨라고 했다가. 휴우, 조금 전까지 있었다. 기다리다 안 되겠는지 지들끼리 속닥거리더니 그냥 나가 버리더군.”
“아...”
“진짜 간발의 차였네요.”
나와 체셔는 밀렵꾼의 말에 더욱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만 더 빨랐어도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놓쳤네요.”
“그러게.. 그런데 아저씨, 방금 나갔다는 두 사람 인상착의 좀 알려주면 안 될까?”
“고객의 정보는 쉽게 말해주지 못해. 알만한 녀석이 그걸 물어?”
“아, 됐어. 또 잔소리 하려고.”
체셔는 말해주기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밀렵꾼은 콧방귀를 뀌며 뒤에 있던 미닫이문을 열었다.
“오늘의 추천 메뉴나 보고 빨리 물건 사서 나가.”
우린 묘하게 틱틱 거리는 듯한 밀렵꾼을 따라 사육장 내부로 들어갔다. 놈들을 놓친건 아쉬운 일이지만 할 건 하고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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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움막의 입구에서 두 명의 여자가 갈팡지팡 어쩔 줄 몰라하며 한참을 고민 중이었다.
“방금 여기로 들어갔지?”
“응. 맞아. 분명 여기로 들어갔어.”
그들은 조준과 체셔를 발견해 그들의 뒤를 쫓던 쌍둥이 자매, 벨라와 엘라였다.
두 사람은 골목의 끝에 세워진 가게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어찌 행동할지 고민했다.
컬티스트가 암시장을 제 집처럼 돌아다닌 다는 사실은 공개되지 않은 정보다. 체셔의 존재도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상하게 생긴 이족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두 사람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정신 나간 암시장에도 자신들을 제외한 플레이어가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마치 타국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합류하기로 했었던 마크와 리오는 눈앞에서 죽어 버렸고 헬렌과 로이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으니까. 멘탈이 약했던 쌍둥이는 조준과 체셔에게 의존하고 싶어했다.
“우, 우리도 들어가 볼까?”
“설마.. 공격하진 않겠지?”
“아닐거야.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다짜고짜 공격하는 미친놈들일 리가 없어. 그리고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도와 준다고 하면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물어보자. 내보내 준다고 하면 잽싸게 빠져나가고.”
“잠깐, 벨라. 그러면 앙크는 어쩌고? 우리 그거 받으러 온거 잖아.. 마크랑 리오는 실패했고. 헬렌이랑 로이도 실패하거나 이미 실패했다면.. 우리 말고는 희망이 없어.”
“야이 바보야. 다음주에 딴 사람들 들여보내면 되지. 그리고 그거 구하려다가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뭘 그리 집착해. 그냥.. 헬렌과 로이가 구해올 거라고 믿자. 아까 봤자나 마크랑 리오 죽는 거.. 나는 더 이상 여기 못 있겠어. 너무, 너무 무서워. 너도 무섭잖아, 엘라.”
“나, 나도.. 나도 무섭긴 해.. 그래, 벨라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닉이고 자시고 우리 가족도 아니고. 은인도 아닌데.”
“더구나 닉 그새끼 지가 멋대로 저주 걸려 온거 잖아.. 왜 우리가 그 새끼 구하려다가 죽어야해.”
“맞아, 벨라. 벨라 말이 맞아. 나 이런 곳에서 도축 당하듯이 죽기 싫어. 우리빨리 저 사람들 한테 도움을 청하자.”
곧 결정을 내린 두 사람은 밀렵꾼의 움막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기다리는 존재가 얼마나 악독한 인간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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