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97. 헬렌, 너는 남아라
* * *
마약상의 가게까지 무사히 도착한 헬렌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와 직면했다.
‘도대체.. 저 새낀 뭐지..?’
파이몬을 목도한 순간 헬렌은 목덜미가 저릿할 정도의 아찔함을 느꼈다.
위기감지 스킬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심기를 거슬렸다간.. 죽는다.’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그녀는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건 그녀의 인생 전반을 통틀어 가장 큰 떨림이었다.
당장에라도 여기서 도망치라고 직감이 소리 지른다. 저것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무리가 온다며.
파이몬은 혹여나 거래 대상자들이 픽하고 죽어버릴까 싶어서 직접 본신을 끌고 오지는 않았지만 화신체 만으로도 인간에게 유해했다.
“큭...”
정신오염이 시작되자 헬렌은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허나 그녀는 자신이 왜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봐선 안되는 존재를 보고있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가게에서 풍겨오는 묘하게 달달한 향기 때문인건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그저 빨리 이 상황이 끝나길 빌 뿐이었다.
“누.. 누나.. 크어억...”
결국 구토감을 참지 못한 로이가 바닥에 피를 토해냈다. 헬렌은 그 모습에 적잖이 충격 받았으나 악마의 위압감에 짓눌려 섣불리 동생을 보살필 수 없었다.
그때 유리잔을 닦으며 헬렌과 로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잭슨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그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두퉁을 유발하던 사이한 속삭임들과 시신경을 압박하며 눈 앞을 흐리게 만들던 마기가 일소에 해소됐다.
“파이몬님...”
[흠. 실수했군. 오랜만에 외출이라.]
부탁한다는 듯이 잭슨이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두 사람을 짓누르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점차 몸의 떨림이 잦아든 헬렌과 입가에 묻은 피를 쓱 닦으며 자세를 바로한 로이.
잭슨은 웃으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괜찮으신지요?”
“아.. 예..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헬렌이 감사 인사를 건네자 잭슨은 빙그레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헬렌은 그 미소가 조금 껄끄럽고 소름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후. 두 분 다 저희 가게에 처음 오신 손님분들이니. 가볍게 즐기실 수 있는 음료를 한잔 내드리겠습니다.”
곧 잭슨은 헬렌과 로이에게 뭔지 모를 칵테일을 내줬다.
로이는 자연스럽게 잭슨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칵테일을 마시려고 했다.
그때 로이의 옆에 앉아 있던 헬렌이 그의 손등을 강하게 꼬집으며 이를 꽉 다물고서 중얼거렸다.
“야. 먹지 마.”
“응? 왜?”
“야이 등신아. 경고문 기억 안 나?”
“어..? 아.”
그제야 로이는 들고 있던 포도주스를 내려 뒀다.
마약상이 내주는 음식은 결코 받아서도 복용해서도 안 된다.
친절하게 미소 짓는 마약상의 모습에 로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가 건넨 칵테일을 마실 뻔했다. 헬렌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멍청하게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것이다.
로이가 잔을 내려 두자 웃고 있던 바텐더는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 봤다.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조금 소름끼쳤다.
헬렌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암시장은 뭐하나 정상적인 구석이 없었다. 죄다 뒤틀려있고 역겨웠으며 견디기 힘들정도로 위험한 것들 투성이었다.
‘미친새끼.. 왜 자꾸 쳐다보는 거야.’
대가리가 2개나 달려있는 것부터 이상했다고 생각하며 헬렌은 비정상적인 그의 행동을 애써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머리 둘 달린 바텐더 따위가 아니다.
헬렌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쳐다보는 것 만으로 눈이 아파오는 파이몬에게 일단 집중했다. 그러곤 헬렌은 악마를 향해 질문했다.
“당신이 우릴 불렀군요. 익명의 괴인을 보낸 것도.. 당신이죠? 맞죠? 저희 제대로 찾아온 거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요. 이제 슬슬 미칠 것 같으니까.”
본인들의 거점에 피 묻은 편지를 가지고 나타난 괴인.그 괴인이 전달한 편지로 인해 닉의 동료들은 암시장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금간 앙크를 구하기 위해 암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헬렌은 눈앞의 악마가 괴인을 보낸 자가 맞기를 원했다. 알고보니 전혀 다른 놈이었다거나, 아니면 애초에 금간 앙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원했다.
함께 들어왔던 나머지 인원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더욱이 자신들 조차 점점 정신이 망가져 가는 중이다. 이제는 희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헬렌은 생각했다.
'결국 편지를 보낸 장본인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물건만 받아서 여길 나가면 될거야.'
애써 밝은 미래를 점쳐보는 헬렌. 그녀는 만약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이 끔찍하고 역겨운 장소를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 가만히 헬렌과 로이의 상태를 살펴보던 파이몬이 입을 열었다.
[너희보고 오라고 한적은 없지만.. 편지를 보낸 건 내가 맞다.]
파이몬은 친절하게 헬렌의 질문에 대답했다.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점차 악신의 사도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렇기에 잡담이나 나눌 시간이 없었다. 괜히 악신의 사도가 지금 끼어들면 곤란해진다. 빨리 줄거 주고 받을 거 받고 헤어지는 편이 모두에게 이로웠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파이몬은 곧장 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자, 여기. 너희가 찾는 물건이다.]
그 안에는 닉의 동료들이 애타게 찾아 헤맸던 금간 앙크가 들어 있었다. 헬렌은 얼른 파이몬의 손에 든 금간 앙크를 넘겨받고 싶었다. 허나 악마가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무언가를 내어 줄 리가 없었다.
[이걸 받고 싶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파이몬의 목적은 만신전과 연을 맺는 것. 악신들의 횡포에 질려 버린 파이몬은 이참에 만신전 쪽에 붙을 속셈이었다. 그편이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타당한 판단이었다. 애초에 만마전은 만신전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상태니까.
대부분의 악신들이 소멸하거나 봉인 당했고 3주신 중 하나였던 자는 이름마저 역사에서 지워졌다. 더욱이 인과율조차도 여전히 밀리고 있었고 주력으로 활동하는 플레이어조차 조준 한명뿐이었으니. 파이몬이 보기에 지금이 딱 만신전에 붙을 적기였다.
“조건이 뭐죠?”
[너희 둘 중 한 명이 나와 계약을 맺는 것. 그게 내 조건이다.]
세이비어의 곁에 악마의 어릿광대를 심는 것. 그것이 파이몬의 목표였다.
[이 상자를 집는 사람이 나와 계약을 맺는다. 누가 나의 하수인이 되겠는가.]
헬렌과 로이의 앞에 내밀어진 상자. 그걸 집는 사람이 자연스레 악마와의 계약을 맺게 되는 구조였다.
별다른 복잡한 절차 없이 최강의 악마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니, 참으로 간소화된 방식이자 간단한 조건이었다. 또한 어쩌면 누군가는 애타게 원할지도 모를 그런 상황이기도 했다.
허나 두 사람 다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미 그들도 악마 빙의자들과 여러차례 싸워본 경험이 있었고 악마와 잘못 엮이면 끝이 별로 좋지 않음은 당연한 상식이었으니까.
애당초 악마와 거래를 하러 온 것부터가 그들의 입장에선 굉장히 껄끄러운 일이었는데 이젠 아예 계약까지 맺으라고 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그 누구라도 선뜻 악마의 하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할지 않으리라.
“제가..”
그렇기에 헬렌은 자신이 그 업을 짊어지려 했다. 그야 누나니까. 항상 자신을 지켜주는 동생을 이번엔 자신이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로이가 더 빨랐다. 그는 상자를 향해 손을 뻗는 누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누나. 내가 할게.”
“뭐?”
“내가 한다고.”
“야... 악마랑 계약하는 거야. 쓸모없는 내가 짊어지는 편이 나아.”
“누나는 항상 그런 식이야.”
“뭐가?! 뭐가 그런 식인데! 놔! 내가 할테니까! 너는 그냥 나나 잘 업고 다니라고!!”
“아 됐다고. 내가 한다고.”
헬렌은 그런 여자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도 늘 자신이 모든 걸 짊어지고 가려고 했다. 그럴 수도 없는 몸이면서. 로이는 그런 누이의 책임감 넘치는 행동이 싫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늘 휠체어에 앉아만 있는 주제에...'
그럼에도 항상 먼저 나서는 누이. 로이는 헬렌을 자신보다 훨씬 멋진 누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누이를 감싸 안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는 누이를 대신해 짐을 짊어지기로 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상자를 집어 들었다.
“누나, 짐꾼은 나야. 내가 짊어지는 게 맞아.”
“야! 너..”
“악마님. 저와. 저와 계약합시다.”
순간 꿈틀거리는 문자가 상자에서 빠져나와 마치 저주처럼 로이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로이의 직업이 바뀌었다. 짐꾼에서 어릿광대로. 걱정스레 자신을 쳐다보는 누이를 향해 로이는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계약이 성사되었다. 이제 여기서 탈출해라. 너희를 쫓고 있는 자가 있으니.]
“저희를 쫓고 있는 자요..?”
[그래. 너희의 영웅을 폐인으로 만들고.. 세상의 멸망을 부추기는 존재.]
“설마..”
헬렌은 그제야 쿨타임이 돌아온 위기 감지를 다시 발동했다.
“로, 로이.. 당장 도망가야해.”
“뭐?”
“아까랑 똑같은 기운이야.. 여기로 오고 있어.”
조준이 오고 있었다.
파이몬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꼬인 골목으로 보내주지. 거기서 열쇠구멍이 달린 문을 찾아라. 절대 지상이나 지하로 가면 안 된다.]
곧 파이몬은 두 사람을 꼬인 골목으로 날려 버렸다.
어찌 되었든 금간 앙크를 가진 이가 살아서 빠져나가는 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
딸랑
“하아.. 하아.. 이런 시발!!”
또 늦었다.
이미 가게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잔을 닦고 있는 잭슨을 제외하곤.
“오서오세요. 드러그 앤 러쉬에.”
“젝슨.. 하아. 아닙니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게 뻔했다. 고객을 정보를 흘리지 않는 게 암시장의 불문율이라니까. 그 밀렵꾼도 입을 다물었는데 마약상이 말해줄 리가 없지. 보나마나 술이나 한잔 마시고 물어보라 할게 뻔했다.
괜한 시간 낭비는 사절이다. 나는 빨리 금강 앙크를 들도 도망간 새끼들을 잡아 족쳐야 하니까.
‘이미 여기 없다는 것은... 꼬인 골목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
엘라가 말하길 편지를 보낸 것은 익명의 악마라고 했다. 현실로 편지를 보낼 정도의 악마라면 분명 금간 앙크를 가진 이들을 꼬인 골목으로 날려 버릴 정도의 권능은 가지고 있을 터.
“잭슨 다음에 올게요. 체셔, 꼬인 골목으로...”
“응, 빨리 가자.”
이번 주는 아쉽지만 노예상과 마약상에게서 물건을 구입 못할 지도 모르겠다. 두 곳에 들리는 것보다 일단 금간 앙크를 탈환하는 게 급선무니까.
곧 우리는 꼬인 골목으로 전이했다.
******
“누나.. 하아.. 하아.. 문이 안 보여.”
“이런...”
위기감지로도 탈출구는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위기감지는 그저 가선 안 되는 길만을 찾아낼 뿐. 두 사람은 꼬여 있는 골목에서 벌써 10분째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조준과 체셔, 엘라와 벨라가 꼬인 골목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일라가 있었으면 바로 찾았을 텐데...”
“그러게, 지금이라도 데리고 올까?”
“아니예요. 그럼 너무 늦을 것 같아요. 일단 찾아봅시다. 엘라하고 벨라는 저쪽으로 우린 이쪽 길로 간다. 내 명령 이해했으면 대답해!”
“예스!”
“언더스탠드!”
엘라와 벨라는 기왕 조준의 부하가 된 거 그에게 잘 보이기로 했다. 애초에 그녀들은 그다지 닉에게 충성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팀을 배신하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한편 로이와 헬렌은 다시 한번 조준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친 새끼.. 벌써 이 근처까지 왔어. 로이.. 일단 뛰어. 안 잡히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알겠어..”
그들은 위기감지에 걸린 조준을 피해 달아났다. 그덕에 그들은 코너 옆에 있던 탈출구를 지나치고 말았다.
그렇게 약 1시간이 지났다. 한번 탈출구를 놓쳐버린 두 사람은 계속해서 꼬인 골목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조준과 체셔, 엘라와 벨라는 도망자들의 흔적을 쫓아 점차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러다 드이어 헬렌과 로이는 쌍둥이 자매와 마주치고 말았다.
“아! 엘라!! 벨라!! 너희도 살아 있었구나!”
“로이 오빠!!”
“헬렌 언니!! 다들 무사했구나!!”
“로이 오빠!! 앙크는? 금간 앙크는 찾았어?”
“당연히 얻었지! 이제 탈출구만 찾으면 돼!!”
“우와!! 대박! 로이 오빠 우리 이제 같이 다니자!”
“알겠어! 그리로 갈게!”
로이는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쌍둥이를 살아서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너무 기쁜 나머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녀들에게 다가 갔다.
쌍둥이 자매도 점차 가까워지는 로이를 보며 눈웃음 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아까부터 계속 눈을 감고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던 헬렌이 로이의 팔목을 붙잡았다. 위기감지 스킬의 쿨타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날때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선천적인 능력이 지금 또 다시 발동했다.
“로이. 아니야.”
“응? 또 뭐가.”
“쟤들 한테서 멀어져야 해.”
“뭐?”
“빨리!!!”
이상함을 감지한 헬렌의 경고에 로이는 당황해 하면서도 쌍둥이들을 피해 달아났다. 누이의 말은 절대적이다. 그녀의 비정상적일 정도의 위험감지 능력은 거의 예지의 영역에 올라섰으니까.
“젠장. 저 년이 또 눈치챘어!”
“헬렌, 저 빌어먹을 년이..! 소리질러. 주인님을 불러야해.”
헬렌과 로이는 사냥개에게 딱 걸렸다. 쌍둥이 자매는 두 사람이 도주하자 그들을 뒤쫓으며 골목이 떠내려가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찾았다!!! 여기!!!!”
“주인님!!! 여기예요!!! 여기!!!!!”
비명에 가까운 두 사람의 외침.
“준아. 저쪽에서 고함 소리 들려.”
“예? 이런! 반대쪽이었구나!!”
포위망이 좁혀진다.
여기서 헬렌과 로이가 붙잡히면 사실상 대세는 컬티스트 쪽으로 기울게 된다. 아마 만신전은 막대한 인과율의 손실을 겪으며 울며 겨자먹기로 닉을 되돌리거나, 아니면 닉을 버리고 새로운 세이비어를 찾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겠지.
그쯤 되면 진짜 만마전의 승리를 기대해봐도 된다.
“문!! 문이다!! 로이!! 저쪽!!”
허나 그리 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었다.
결국 문을 발견한 헬렌. 로이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결국 그들은 바깥으로 이어진 문앞에 도달했고 로이는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찾았다.
“누나 우리 이제 나가자!!”
문이 열렸다. 해방이 눈앞에 있다.
“꺄아아!!!!!!”
그리고 그때 헬렌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끌려갔다.
두 사람이 문을 나가기 직전 골목길 어귀에서 튀어나온 촉수다발이 로이의 등에 업혀있던 헬렌을 붙잡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어딜 도망가! 이 개새끼들아!!!”
조준이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로이를 향해 심연아귀를 쏘아보냈다. 목표는 머리. 머리를 뜯어내 죽일 생각이었다.
허나 그건 헬렌의 스킬에 의해 저지됐다. 로이의 머리를 노리고 사출된 심연아귀의 궤적이 비틀렸다.
“끄아아!!! 누나!!!”
“로이 그냥 뛰어!!! 성녀가 치료해 주겠지!! 시발 뛰어!!!”
헬렌의 처절한 외침. 심연아귀가 로이의 오른쪽 다리를 씹어 삼켰다.
순식간에 잘려나간 다리. 로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붙잡혀 버린 누이를 뒤로 한 채 문을 뛰어 넘었다.
금간 앙크는 로이의 인벤토리에 들어있었다.
“젠장.”
조준은 한명을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무조건 잡아야 하는 녀석을 놓쳤다.
그는 사로잡은 헬렌을 보며 씹어삼킬 듯 으르렁 거렸다.
“야이 개같은 년아. 금간 앙크 어디갔어.”
조준의 위협에 헬렌은 그를 보며 비웃었다.
다리를 못쓸 뿐이지 헬렌은 지독하리 만치 독한 여자였다.
“흐. 흐하하하. 뭐라는 거야. 등신아. 나 너희 나라말 못해.”
헬렌의 비웃음과 조롱에 조준은 허리춤에 있던 의식용 단검을 뽑아들었다.
“웃어? 개 같은 년이... 넌 시발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할거다.”
평소보다 조금 과한 고문이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