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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00화 (200/221)

〈 200화 〉 199. 일주일만의 귀환

* * *

“아, 오셨습니까.”

“뭐야. 또 너야?”

“예?”

문을 열고 나오자 하진성과 바로 마주쳤다. 이 새끼는 보면 거의 항상 제일 첫 순위로 마주치는 것 같다.

“어.. 형님 그건...”

놈은 내가 들고 있는 피투성이의 여자, 헬렌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모진 고문의 흔적들과 억지로 붙여둔 염소 다리가 기괴해 보인 모양이다.

물론 거의 원년 멤버답게 워낙 이상한 걸 많이 봐서 그런지 금방 표정을 풀었다.

“아, 맞다. 형님. 형님 안 계신 동안 총 열 다섯으로 구성된 생존자 무리가 찾아왔습니다. 전원 각성자였구요.”

“뭐? 그래서 어쨌는데. 다 죽였어?”

“아, 저기 그게... 저희들이 죽이려고 하니까 바로 항복해서 일단 가둬뒀습니다. 물론 노예들 시켜서 24시간 풀로 감시시켜 뒀고요. 혜지 씨도 길드 매니저 스킬로 면밀히 감시 중입니다.”

“그래? 흠. 일단 나중에 노예로 만들게. 아, 그리고 마주친 김에 이거 데려가라.”

나는 들고 있던 헬렌을 하진성에게 던져 줬다.

“그거 대충 씻기고.. 음.. 일단 가둬놔.”

“으윽 냄새.. 예. 알겠습니다.”

하진성은 복도를 쓸고 있던 다른 노예를 불러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헬렌을 씻기라고 명령했다. 다른 노예에게 명령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 보아하니 하진성도 이젠 완전히 중간관리직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듣자 하니 이제 노예들은 나보다 진성이를 더 무서워한다고 하던데.. 웃길 노릇이다.

“오빠?! 오빠 왔다고!? 뛰어!! 은지 언니 뛰어!!”

“뭐! 오빠라고!!”

그때 아래층에서부터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하진성이 말을 전해준 모양이다.

“오빠아아!! 왜 이제 와아아아!!!”

오니 상태로 폭주한 은지와 흡혈귀 모드로 변한 화영이가 계단을 거의 반쯤 날아올라 나에게 달려들었다.

둘 다 나에게 매달려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서 마구 얼굴을 비비고 나의 체취를 맡아댄다.

내가 봤을 때 지금 두 사람 다 살짝 발정 난 것 같다. 은지와 화영이는 나에게 음문이 새겨진 상태라 나의 정기를 정기적으로 흡수하려 드니까.

“아이고. 얘들아. 그래그래. 허허..”

둘 다 체셔나 메르 같이 키가 큰 여자들에 비해선 체형이 아담한 편이라 달려든 상태 그대로 안아 들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고 있자 소란을 듣고 다가온 하린이와 희선 누나도 우리를 반겨 줬다.

“돌아왔네, 주군.”

하린이는 나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꼬리를 정신 사나울 정도로 흔들어 댔다.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해도 꼬리가 저렇게 흔들리니 감출 수가 있나. 반응으로 보아하니 오랜만에 만난 게 반가워서 미칠 지경인 모양이었다.

“하린이도 이리 와.”

“응!”

내가 오라고 허락하자 그제야 달려와서 껴안는 하린이. 중간에 끼인 은지와 화영이가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린이는 나를 껴안아 왔다.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주인이 허락해야 달려온다니. 처음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반인반수가 되더니 점점 뭔가 진짜 짐승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후후. 준아, 어서 와. 에일라씨도 어서 오세요. 그리고 새로운 분들도 계시네요. 그쪽이 체셔?”

지난주에 암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대충 체셔의 정보를 말해 둔 상태라 다들 체셔의 나이가 제법 많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전직 천사인 메르와 수백 년을 살아왔을 에일라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내가 파악하기로 최소 60대 이상은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사실상 34살인 희선 누나에겐 어머니뻘인 셈. 물론 그런 사실을 입 밖에 꺼냈다간 체셔에게 꿀밤을 육십 대 정도 얻어맞을 수도 있어서 굳이 말하진 않았다.

“응! 반가워요. 저기, 이름이...”

체셔는 나에게 하렘 멤버들의 정보를 듣긴 했으나 실물로 본적이 한 번도 없어서 조금 헷갈려 했다. 애초에 하렘 멤버가 십여명이 넘어갈 정도로 많으니 헷갈릴 만도 했다.

“저는 희선이라고 해요. 강희선. 후후.. 어서 와요, 체셔. 다들 오신다고 고생하셨어요.”

희선 누나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여 체셔를 맞이했다. 체셔도 반갑게 맞이 해주는 희선 누나의 반응에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었다.

곧 에일라는 공방에 잠시 들려야겠다며 갔고 체셔는 희선 누나에게 나머지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이분이 체셔 언니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화영이에요.”

“저는 은지요. 이은지. 헤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오빠가 늘 신세 졌다고 하던데..”

나에게 매달려 있던 은지와 화영이도 그제야 체셔에게 다가가 활기차게 말을 걸었다. 물론 그녀들의 웃음이 진정한 미소가 아니란 사실을 나는 안다.

상대를 살피는 눈동자. 묘하게 떠보는 듯한 어투. 둘 다 지금 체셔를 견제중이다.

‘흐음..’

은지와 화영이는 나의 오른쪽 자리, 즉 내 본처이자 정실이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내가 딱히 누가 내 본처라고 의사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경쟁에 불이 붙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한 사람만 감싸고돌았다간 감정싸움이 될 테니..’

하렘을 차린 남자의 고민이랄까. 그녀들을 모두 인격체로 대우하므로 난 그녀들과의 관계에 늘 신경 쓰고 있다. 그렇다 보니 눈에 뻔히 보이게 된다. 그녀들 사이엔 묘한 알력 다툼이 있다.

누가 나의 본처로 가장 어울리는지 경쟁하며 주하나 은하, 나나세와 같은 후발주자들은 스리슬쩍 사다리 치기를 해선 첩으로 여기는 등 난리다.

‘현재 내가 손댄 여자들은 총 열세 명 정도.. 그중에서 진지하게 본처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은지, 화영이, 메르. 이 셋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강하게 정실을 노리고 있다. 그다음이 하린이와 희선 누나 정도?

아람이는 그냥 내 자지에 완전히 빠진 상태고... 아름이도 날 엄청 좋아하지만 은지와 화영이처럼 집착하는 그런 느낌은 별로 없다. 예원이야 그냥 관심만 가져져도 좋아라하고. 불쌍한 예원이..

그리고 일본인인 나나세는 뭔가 약간 나를 그냥 남친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주하랑 은하는 조건보고 선진국 남자에게 시집온 개도국 소녀 같은 느낌? 셋 다 찐 사랑이라기엔 아직 손색이 있다. 그렇다고 날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은지나 화영이처럼 숭배에 가까운 사랑(집착)은 하지 않는단 거지.

‘체셔와 에일라는...’

체셔는 아마 은지와 화영이, 메르와 경쟁하려 들 거다. 에일라도 그럴 것 같다. 둘 다 보기보다 승부욕이 강하고 정복욕도 있으니까. 특히 에일라는 코인에 집착하는 것만큼 소유욕도 상당히 강한 편이라 나에게 집착할 것 같기도 하다.

“언니! 준이 오빠도 오랜만!”

“어, 그래! 아름아!”

그때 반대쪽 복도에서 땀에 흠뻑 젖은 아름이가 달려왔다. 한 손에 검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까지 팔어스와 대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드 댄서에서 소드 마스터로 전직 중이라 열심히 수련중이겠지. 대견하다.

그런데 아름이는 내 품에 벌써 세 명이나 달라붙어 있으니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그래서 언니인 아람이에게 갔는데..

“아. 땀. 으.”

“아니! 언니! 오랜만에 봐놓고 반응이 그게 뭐야!”

바로 극혐하는 표정을 지으며 땀에 젖은 아름이에게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아람이.

“언니! 나는 언니 혹시나 못돌아올까 봐 엄청 걱정했는데!! 나빠!”

“죽을 뻔했어. 몇 번이나.”

“뭐? 진짜? 헐. 어쩌다가.”

“안 알려줌.”

“아악! 언니!”

아람이는 진짜 이번에 정말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암시장 지하층 공략은 순조로웠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미안해서 죽을 것 같다. 본인은 힘든 걸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 모습 마저도 안쓰러웠다.

“아! 오라버니!! 여기!”

그리 아람이를 안쓰럽게 보고 있자 이번엔 창문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여기.. 1층 아닌데..?

“으어! 시발!! 뭐야!”

나는 화들짝 놀라 창문밖에 있는 물체를 쳐다 봤다. 그건 바이크만한 크기의 괴물에게 붙잡힌 예원이었다. 가만 보니... 저거 꼭 날개 달린 도마뱀 같다? 설마...

“헬겐?”

분명 암시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아직 저 정도로 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일주일 사이에 도대체 뭘 먹고 저렇게 큰 거지?

‘언홀리 퀸의 능력인가..’

만신전의 세인트 메이든이었던 예원이는 나에게 겁탈당하고 나선 만마전 소속의 클래스인 언홀리 퀸으로 전직했다. 그때 이후로 스킬들이 죄다 마수조련과 성장에 관련된 것으로 나오더니.. 그 스킬들이 해츨링이었던 헬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모양이다.

정말이지 일주일만의 폭풍 성장을 해 버렸다. 나는 창문을 열어 예원이를 받아 냈다.

“우리 헬겐 엄청 크죠.”

“와. 진짜 크네. 뭐 먹였어?”

“아, 헬러스 할아버지가 무슨 물약이랑 그.. 드레이크? 그 뭐였더라...”

“희생룡?”

“아, 맞다. 그 희생룡 고기랑 물약이랑 같이 먹였더니 저렇게 컸어요.”

“아하.”

언홀리 퀸의 스킬 때문이 아니라 우리 거점의 도라x몽 같은 존재인 헬러스의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저번에 흑각룡 머리 줬을 때 이것저것만들어 본다고 하던데. 그걸로 성장 촉진제를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키아아아!!!”

“으악. 깜짝이야..”

“헬겐!! 조용히 해야지!”

숫기 없던 예원이는 헬겐을 키우면서 담력이 많이 커졌다. 이젠 소리도 칠 줄 알고. 자식새끼처럼 드래곤을 키우더니 기가 좀 세진 모양이다.

“주인.”

그리고 드디어 메르가 소란을 듣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나세와 주하, 은하 자매도 데리고서 나에게 다가왔다.

분명 암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메르에게 한국어에 약한 그녀들이 한국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라고 맡겼었던 것 같은데.

“조준 오라버니 어서 오세요. 엄청 기다렸어요.”

“오. 나나세..”

일본인인 나나세는 완전히 네이티브 본토 한국인의 발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발음이 구수해졌다. 역시 노력파.

“왔습네까.”

“아니, 주하야. 너는 어찌 된 게 여전히 북한 사투리냐.”

“뭐, 내래 나고 자라길 북에서 다 했는데. 말투가 어찌 쉽게 변함까. 그리고 첨부터 서울말로 배우는 일본 처자랑 내랑 어찌 같슴까.”

“어허.. 그건 맞지.”

그녀의 주장대로 아예 백지상태로 표준어를 주입받은 나나세 보다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던 주하가 오히려 표준어를 더 배우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데 정작 은하는 서울말을 능숙하게 한단 말이지. 이건 단지.. 주하의 배움이 좀 느린게 아닌가 싶다.

'분명 클래스는 여우 중의 여우인 구미호인데.. 갈통은... 흠.. 그래도 이것도 귀여우니 됐지.'

나는 말을 아꼈다.

암튼 내가 나나세와 북한 자매들과 대화하고 있자 메르는 체셔에게 다가 갔다.

“체셔, 오랜만이다.”

“응. 반가워. 그때 이후로 처음이네?”

“맞다.. 그때 뒤를 맡아줘서 고맙단 말을 직접 하고 싶었지. 고맙다.”

“후후. 뭘.”

메르를 구입했을 때 지하경비대의 습격에서 체셔는 홀로 남아 우리가 도망갈 시간을 만들어 줬었다. 그때의 일을 메르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고 오늘 드디어 제대로 직접 감사인사를 했다.

메르는 방긋 웃으며 체셔에게 손을 내밀었고 체셔도 고개를 끄덕이며 메르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하며 잠시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뒤 나는 사제 클래스인 겐과 나머지 일본인들을 불러 금간 앙크를 주며 명령했다.

최대한 금간 앙크를 검게 물들이라고.

만신전 놈들보다 먼저 나락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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