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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10화 (210/221)

〈 210화 〉 209. 우리, 만날 수 있을까?

* * *

조준은 기생인간들을 전부 굴복시켰다.

아직 진홍지대 곳곳에 숨어 있는 놈들이 남아있었지만, 그놈들은 버섯인간과 기생목들이 탐색 중이었다. 아마 숨어버린 놈들 또한 전부 복속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기생인간 따위가 아니었다.

'칠흑바퀴가.. 강화됐다더니..'

조준은 자신에게 다가와 더듬이를 꼼지락 거리는 칠흑바퀴를 쳐다봤다. 뭔가... 좀 더 외형이 날카로워졌다. 집바퀴를 수백배로 확대해 더욱 끔찍하게 만든 것 같던 외형이 좀 더 멋있어졌지만...

'외형.. 불합격...'

여전히 그닥 친해지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기에 외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강화된 칠흑바퀴의 효과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새끼의 유지 시간은 3시간까지였는데... 제한이 사라졌군.'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새끼바퀴들의 생존가능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칠흑바퀴가 죽어서 소환해제가 되지 않는 이상 죽지 않고 계속 생존해 있을 수 있었다.

그밖에 칠흑바퀴의 생존력이 더 높아졌고 전투 능력도 조금 증가했다.

'새끼들을 계속 증식시킨다면... 칠흑바퀴가 생존해 있으면 생존해 있을 수록 더욱더 수가 늘어날거고... 대한민국을 뒤덮어 버릴지도..'

다만 먹이가 없다면 굶어 죽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해 보였지만 조준은 별로 상관 없었다. 널리고 널린게 인간의 시체니까.

칠흑바퀴까지 확인한 조준은 이제 나락을 어찌 운용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만큼 이곳에서 버섯인간이나 기생목, 칠흑바퀴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겠군. 최하계급인 기생인간의 수만 안정적으로 늘려서 가축화 시킬 수만 있다면.. 백만 대군을 만들 수 있겠다.’

조준은 나락을 잘만 이용하면 병력을 빠르게 높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락 태생인 기생인간들은 보아하니 임신과 출산이 인간보다 훨씬 짧았다. 그만큼 수명도 짧은 모양이지만 그건 별로 상관 없었다. 조준의 입장에서 기생인간들은 먹이사슬의 최하에 위치해 있는 플랑크톤 같은 놈들이었으니까.

‘그런데 1분이 이곳에선 1시간이니까 여기에 닉이 들어왔다면... 현실시간 6일 만에 봉인이 다 풀리겠군.’

밖에서 일주일 쯤 보내고 나면 이 안에선 1년이 지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티의 서로 인해 1만 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게 된 닉 또한 이 안에 집어넣어 진다면 현실시간 6일 만에 봉인이 깨질게 분명했다.

‘놈이 깨어나기 전에 죽이는 게 베스트..’

조준은 이미 그가 깨어나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엘라와 벨라, 헬렌 또한 그건 몰랐다. 그야 나락의 입구가 열리기 직전에 선신들이 만티의 서를 불태워 닉을 깨워냈으니까.

사실 선신들은 나락을 이용하면 빠르게 봉인이 풀린다는 점을 빌미로 나락의 입구가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니콜라스의 봉인을 풀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보다 가능할 일을 조금 앞당기는 것이 인과율 소모가 훨씬 적게 드니까. 선신들은 애초에 닉이라는 인간에게 반쯤 돌아선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여기 환경만 어찌 잘 조성하면 농사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몇 배나 빠르게 흐르는 장소기에 여기서 농작물을 심어두면 현실시간 일주일 쯤 만에 수확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이미 플랜트 파머와 드루이드로인해 식량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냥 나락을 방치하는 것보단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영원한 희생룡을 이곳에 끌고 와서 기생인간들에게 도축시키면 한시간 만에 몇백인분의 고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축을 키워도... 엄청 수를 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직접 여기에 기어들어와서 가축을 키울 놈들은 여기서 금방금방 늙겠지만.. 노예 새끼들이 늙던 말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니까.’

어쩌면 거점의 애들을 여기에 다 처넣고 어른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니 조준은 신났다.

하릴 없이 놀고먹는 식충이 녀석들을 구멍에 집어넣으면 몇 달 만에 어른이 되어 나온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는 나락을 이용할 생각에 기뻐하며 구도자에게 다가 갔다.

방 안에 있던 기생인간들은 이미 모두 내쫓은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왔구나. 재앙의 사도여.]

조준은 혹시 몰라 이은지와 강화영을 방의 입구에 대기 시켜 둔 다음 홀로 구도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러자 나락의 구도자는 기도를 멈추고서 기다렸다는 듯이 조준을 올려다봤다.

[추락한 천사를 찾기 위해 들어온 것이겠지.]

나락의 구도자가 언급한 천사라는 말에 조준은 고개를 꺄우뚱 거렸다.

그는 인디크론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 정체까진 전해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맞는 것 같습니다.”

조준의 대답에 구도자는 손갖춤을 이리저리 바꾸더니 다시 조준을 향해 말했다.

[그는 황반의 중앙에 봉인되어 있다. 끔찍한 독기를 내뿜으며. 그곳으로 가게 도와주겠다.]

가야 할 곳의 위치, 황반에서 생존할 수단, 봉인된 자의 봉인을 깨트릴 도구까지.

나락의 구도자는 3개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값은 받지 않겠다. 이미 재앙신님들이 값을 치르었으니. 허나 황반의 중심부는 그대 홀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조준은 그대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구도자를 쳐다봤다.

******

갇힌 둥지의 탈출구에 자리잡은 베이스캠프.

수많은 이들이 성녀와 사제들의 비호아래 모여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죄다 힘겨워 보이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해 희망을 놓은 모습들은 아니었다.

그들에게선 묘한 열기와 흥분, 의욕이 내비쳐지고 있었다. 이유는 별거 아니다. 마이클이 드디어 공략법을 알아냈고, 성녀와 사제들이 철저하게 정화스킬을 사용한 결과 나락의 입구와 출구까지의 길을 안전구역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영역을 지배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락을 공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어쩌면 이곳을 지배해 새로운 낙원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들 힘이 났다.

물론 모두에게 희망을 준 마이클은 여전히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에릭슨, 오늘 몇 명이나 죽었지.”

“스물세 명입니다.”

“하아...”

그들이 여기로 들어온 지 약 5일이 지났다. 현실에서는 120분, 2시간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그동안 대략 일흔 명 가량이 사망했고 서른 명이 중상을 입고서 밖으로 탈출했다.

솔직히 죽거나 다친 사람만 놓고 보자면 피해가 무지막지했다. 거의 이백 명이 진입해 백 명이 죽거나 장애를 얻었으니, 사실상 나락 공략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이클..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이 구역의 공략법을 알아냈다고 해도.. 닉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선 결국 우린 여길 떠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저 밖으로, 새로운 위협과 맞서야 하잖아요. 그때도 이렇게 희생을 강요할 생각입니까?”

에릭슨의 날 선 질문에 닉은 잠시 눈을 감았다. 에릭슨의 말대로 생존자 캠프를 이끌던 이들이 대거 죽어 나갔다.

당장 재앙 초반부터 함께 했던 올리버도 그렇고 이단 심문관인 안토니오의 죽음도 마이클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물론 대부분 히든 클래스가 아닌 일반적인 클래스였기에 엄청난 피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에릭슨 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솔직히 이 정도로 많이 죽을 거라곤 나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우린 그보다 더 갚진 걸 얻었다.”

“뭘 얻었단 말입니까..”

“시간.”

“예?”

“너도 봤다시피.. 이 안은 밖보다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요?”

“이걸 잘 이용하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단 거지.”

“여길.. 점령하고 식민지 삼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다. 그리고 에릭슨, 잘 생각해 봐. 너는 지금, 이 장소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머리가 굳어 있어. 봐, 현실에서의 1분이 여기선 한 시간이야. 농사를 한다고 치면... 며칠 만에 수확을 할 수 있단 거지. 그게 얼마나 대다한 일인지는... 아무리 네가 나처럼 뛰어난 백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테지.”

“흠... 식량난 해결이겠네요. 당신 말대로 일이 잘 풀린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맞아. 수천 명이나 되는 입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이제 더 이상 쓸데없는 희생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돼. 죽을 걸 알면서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캠프 밖으로 나가는 우를 범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이건... 혁명이야.”

현실에서 가져온 발전기와 전기계열 스킬을 가진 이들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빛을 만들 원예용 전등과 물, 흙을 공급할 수만 있다면 완벽하다.

별로 특별한 걸 키울 생각은 없었다. 감자만 심어도 됐다. 파머 클래스의 각성자들이 다섯 정도 있으니 그들을 로테이션으로 나락에 투입하면 완벽할 것 같았다.

“우린 단지 닉의 기억을 되찾는 것뿐만이 아니라 향후 생존을 위해서라도 나락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게 현재 마이클의 생각이었다.

나락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저 버릴 수 없었던 에릭슨은 그의 말에 차마 대놓고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지속해서 대두되던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여기서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미국에 식량이 부족한 게 아니다. 그들이 자리 잡은 장소에 식량이 부족한 것이다. 생존자들의 수가 수천 명이나 되다 보니 발생한 문제였다.

민족 대이동을 하듯 다른 장소로 떠날 수가 없다 보니 한 구역에 고립되어 그곳에 있던 생필품이나 음식들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그렇다고 대륙을 횡단하듯 농경지로 갈수도 없었다. 고로 각성자들이 나서서 다른 지역으로 탐색을 갔는데 이때 유실되는 각성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대부분 죽거나 다른 이들에게 사냥 당했다. 이게 마이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심어둔 작물이 다 자랄 때까지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러니 계획변경이다. 컬티스트 탐색은 잠정적으로 중지한다. 로이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놈들과 괜히 맞붙을 필요가 없어.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얻고 빠지는 편이 낫다.”

닉의 기억보다 어쩌면 나락 그 자체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이클은 당초의 계획을 변경시켰다.

‘갇힌 둥지는 천연의 요새... 이 안에서 외부의 침입을 막으며 힘을 비축하는 편이 괜히 컬티스트와 맞붙는 것보다 훨씬 나아.’

대현자의 스킬로 확인해 본 결과 마이클은 자신들이 떨어진 공간이 죄다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이곳의 지명이 갇힌 둥지라는 사실까지는 알아낸 마이클은 괜히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갇힌 둥지 밖으로 나갔다가 외부의 위협적인 것들이 이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분명히 자신들을 찾고 있을 컬티스트와 전쟁을 벌이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여기서 나가려면 억지로 벽을 뚫거나 파란 가시거인들이 있는 방을 지나 입구를 열어야 하니. 놈들도 쉽게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할 거야.”

“그럼 닉은 버리는 겁니까?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늘 당신이 하던 말인데. 우두머리에게도 가차 없군요.”

에릭슨의 말에 마이클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갇힌 둥지의 요새화와 닉의 구출 둘 다 잡을 생각이었다. 최소한의 희생만으로. 그야말로 극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아니. 그게 아니야. 닉의 기억도 분명 되찾아야 해. 기억을 되찾아 성검해방의 조건을 떠올리지. 만약 기억을 되찾기 못할 거라면 차라리 닉을 죽이라는데.. 그럴 순 없으니까.”

닉이 가진 3자루의 보검.

그중 하나가 성검이다. 중요한 것은 성검을 뽑을 시동어를 닉만이 알고 있다는 점인데. 기억을 잃었기에 그는 성검을 뽑지 못했다.

한 마디로 성검 받침대인 닉은 그 능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고로 선신들은 기억을 되찾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닉을 죽이라는 계시를 내렸다. 그래야 세이비어의 자리가 다시 날 테니까.

초반에 선신들이 워낙 공을 들여 인과율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니콜라스에게 이번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 아니었다면 진즉에 닉은 이단으로 몰려 죽임 당했을지도 몰랐다.

“일단 몇 명만 나가서 지혜의 샘을 공략하고, 나머지는 여기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자.”

“몇 명이라뇨..?”

“나와 성녀는 물론이고 지혜의 샘물을 마셔야하는 닉을 포함해 최정예만 갇힌 둥지의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그동안 너에게 이곳의 지휘를 부탁하지.”

“예? 저한테.. 여길 맡긴다구요?”

“그래.. 너는 내가 본 다른 흑인들과는 달리 믿을 만 하니까.”

“그건 마치.. 꼭 흑인들은 전부 신용이 안 간다는 말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을 한 마이클은 기도 중인 성녀와 용사파티를 불러 모았다.

‘최대한 은밀하게... 목 없는 도살자만 처치하면 된다..’

그들은 갇힌 둥지의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헨리의 몸통이 날뛰고 있을 곳으로 가기 위해서.

그들은 아마 미쳐 알지 못했겠지.

그곳으로 조준이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단 사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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