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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11화 (211/221)

〈 211화 〉 210. 마주치면 대참사

* * *

나는 구도자가 건넨 3가지 물건들을 받아들였다.

하나는 끝부분이 화살표 모양으로 깎인 듯한 묵직한 금속 도리깨 같은 물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입에 물 수 있게끔 끈이 달린 구멍이 뚫린 나무 재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물건은 까만 돌멩이로 만들어진 조잡한 손도끼였다.

나는 물건들의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일단 셋 다 아이템 취급받는 물건 같으니까.

[구도자가 깎은 화살촉 편곤: 화살촉 모양으로 깎인 자편이 황반의 중심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의.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부식됩니다.]

[구도자가 깎은 입마개: 구멍이 뚫린 나무 입마개입니다. 치명적인 황색 포자나 오염물질들을 막아 줍니다.] [주의. 한 번이라도 입에서 뱉어낼 경우 효과가 사라집니다.]

[구도자가 깎은 주구도끼: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손도끼입니다. 모든 종류의 봉인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주의. 내구도가 약해 충격에 쉽게 파괴됩니다.]

각각 황반의 중심부를 가리키는 편곤과 오염방지용 입마개, 봉인파괴용 흑요석 도끼였다.

셋 다 굉장히 원시적인 느낌의 물건들이었다. 또한 세 물건 전부 굉장히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주의문구가 붙어 있었다.

함부로 사용했다간 바로 박살 날 거라는 경고문 같았다. 심지어 입마개는 한번 사용하면 완전히 황반에서 벗어날 때까지 입에서 빼낼 수도 없었다. 입에서 빼면 두 번 다시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

‘아니, 그런데 이것들 가지고 나 혼자 황반의 중심부에 들어가라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이 새끼.. 설마 나를 엄청난 강자라고 인식하고 있나?’

어쩌면 나락의 구도자는 나를 아주 고평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 재앙의 사도라며 칭송하듯 나를 맞이 해준 것만 봐도 엄청난 기대를 하는 모양인데... 나는 내 동료들과 소환물이 정신 나갈 정도로 강한 거지 나라는 인간 자체가 강한 건 아니다.

그리고 나락이 어떤 곳인데 나 혼자 돌아다닌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죽으러 가라는 것과 같다. 가다가 용사파티라도 마주치면 그대로 끔살 당할 수도 있다.

내가 비록 나락에서 두 번째로 위험하다는 진홍지대를 점령하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칠흑바퀴를 비롯해 내가 구입했던 버섯인간과 기생목이 잘나서 그런 거지 내가 강해서 지배한 건 아니다.

나는 내 수준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리저리 특이한 루트로 세력을 무지막지하게 키워서 그렇지 당장 일대일로 치고 받고 싸우라고 하면 은지도 이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전율저택에서도 선동과 날조, 꼼수로 닉과 메이링을 골로 보낼 수 있었던 거지 놈들과 정면 승부로 싸우라고 했다면 아마 놈들과 동귀어진해서 다 같이 죽었을 거다.

그야, 나는 지배자이자 노예들의 주인이지 전선에 나서서 싸우는 전사는 아니니까. 이게 내 본질인데 지금 이 미친 자식은 나보고 혼자 나락의 어딘가에 있을 황반의 중심부로 가라고 말하고 있다.

“저기 죄송한데.. 혼자 중심부로 들어가면 분명 죽을 거 같습니다만.. 저 죽으면 꽤 곤란하지 않으십니까?”

[흐음..]

생각보다 내가 약하단 사실에 구도자는 당황한 듯 손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그러더니 품에서 나무 조각 2개를 더 꺼냈다. 황반의 중심부에서 버틸 수 있다는 입마개였다.

[흐음.. 두 개 밖에 없으니... 이걸로 만족하라.]

“와.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나락의 구도자에게서 입마개 2개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자 구도자는 빠르게 회피하며 조금 짜증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허.. 이건 공짜가 아니니.. 값을 내도록 하라. 하나에 삼만..]

“아, 예.”

하나에 무려 3만 코인이나 하는 나무 조각이라니. 그래도 황반의 중심부로 들어가려면 꼭 필요해 보이니까 2개 전부 구매했다.

‘황반자체는 다 같이 갈 수 있지만 중심부 내부로 진입하려면 꼭 필요한 물건... 나랑 메르랑.. 누굴 데려가지.. 체셔? 에일라? 아니면 팔어스라도 끌고 내려와야 하나... 위기감지를 가진 헬렌을 끌고 가는 것도 괜찮겠는데..’

나는 누구와 함께 갈지 고민하며 구도자에게 다른 건 안파냐고 물어 봤다. 듣자 하니 나락의 구도자는 나락 유일의 상인 NPC였으니까 뭐라도 팔 것 같았다.

어쩌면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만들어 둔 조각상이 세 개뿐이다.]

“아하.”

구도자는 조각상을 판매하는 NPC인 모양이었다.

좀 전에 받은 물건들도 전부 구도자가 직접 깎은 물건들 같고... 하긴 있는 거라곤 냄새 나는 오물들과 이상하게 생긴 기생인간뿐인 장소에서 보부상이 판매하는 것과 같은 완제품을 바라선 안 되겠지.

“일단 그것들 세 개 전부 보여주시겠습니까?”

나의 말에 구도자는 품에서 이상한 생김새의 조각상들을 꺼냈다.

[푸른 질병 조각상: 기생인간 세 마리를 제물로 바쳐 푸른 비늘을 가진 기생인간을 탄생시킵니다. 푸른 비늘은 일반적인 기생인간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며 단명합니다.]

[가격: 50,000C]

[붉은 질병 조각상: 기생인간 세 마리를 제물로 바쳐 붉은 뿔을 가진 기생인간을 탄생시킵니다. 붉은 불은 일반적인 기생인간보다 근력이 훨씬 높으며 단명합니다.]

[가격: 50,000C]

[뒤틀린 질병 조각상: 기생인간 열 마리를 제물로 바쳐 촉수달린 기생인간을 탄생시킵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기생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합니다.]

[가격: 100,000C]

‘뒤틀린 질병 조각상이라...’

마음 같아선 전부 구입해 보고 싶지만 당장은 여기에 투자할 만큼 자금이 넉넉하지 않다. 암시장에서 저축해 뒀던 코인을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당장은 조금 힘들고 다음에 구입하겠습니다.”

[그리해라.]

그는 조금 아쉬운 듯 조각상들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기생인간 양산에 성공하면 한 마리 당 70의 코인이 들어오니 놈들을 도축해서 빠르게 코인을 수급해 저걸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기생인간으로는 칠흑바퀴를 뽑아내고.. 남은 뼈다귀들은 기생목 양산에 쓰면 되니.. 딱이군.’

버섯인간들도 이 안에서라면 엄청 빠르게 수를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300마리 이상 늘어나면 ‘여왕’이 나타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지만...

‘그런데 그 포자여왕이라는 존재.. 왠지 만마전 소속일 것 같은데...’

그냥 내 느낌이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악신들이 굳이 포자여왕을 불러내라고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쩌면 나에게 그다지 우호적인 악신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렵꾼이 평가한 강함은 키시리아나 에이낙스 급이라고 했으니 악신들의 오른팔 쯤 되는 강함일 거다.

‘상당한 괴물이란 소리지만... 일단은 괜한 생각 말자.’

나락에 자리 잡고 농사지어야 하는데 컨트롤이 불가능한 미친 포자덩어리를 불러낼 수는 없지.

나는 다시 참선에 들어간 구도자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은지와 화영이를 불렀다.

“일단 출구 쪽으로 나가 보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게요?”

“응. 되돌아가려면 길이 기니까. 일단 나갔다가 입구 쪽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나가자마자 바로 들어가야 한단 거다. 밖에서 1분은 안에서 한 시간이기 때문에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내부에선 엄청난 시간이 지나있을지도 모른다.

‘나간 김에 하진성한테 최대한 빨리 구호물품을 들여보내라고 해야겠군..’

내부사정을 정확히 몰라서 아직 들여 오지 않은 물건들이 많았는데, 나간 김에 다 집어넣으라고 해야겠다. 밖에서 1분이 여기선 한 시간이니 최대한 물건을 빨리 집어넣는다고 해도 들어오는데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릴 테니까.

가령 물건을 전부 집어넣는데 24분이 걸린다 치자면 여기선 이미 하루가 지난 거나 다름 없었다.

******

마이클과 그가 꾸린 샘물 탐색조는 갇힌 둥지의 벽을 뚫고서 겨우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오자 갇힌 둥지의 벽이 상처가 아물듯이 다시 닫혔다.

“윽...”

“여기서부터는 고기로 된 벽인가.”

“여기도 역겨운 냄새로 가득하네요...”

밖으로 나온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역겨운 향으로 가득한 육벽이었다.

그들은 갇힌 둥지를 벗어나 진홍지대에 들어섰다. 조준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아란님. 이런 거.. 보신 적 있나요?”

성녀 안나의 질문에 아란은 고개를 저었다. 반인반용인 그로서도 이런 광경은 쉬이 볼 수 없는 것이기에 흥미와 동시에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참고로 지혜의 샘물 탐색조에 속한 아홉 명 중 플레이어는 다섯으로, 용사인 니콜라스와 대현자 마이클, 성녀 안나, 어릿광대 로이, 검투사 알렉스가 플레이어고 나머지 넷은 NPC였다.

순서대로 용혈기사 아란, 거인 살해자 단태, 야수사냥꾼 킬리안, 이단추적자 카이사르가 있었다.

조준 진영의 헬러스나 체셔, 팔어스처럼 그들 또한 니콜라스의 기연을 통해 합류한 이들로, 하나같이 상당한 실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물론 네 명 모두 용잡이 지크프리트보단 약하겠지만.

“킬리안,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이쪽 방향으로 쭉 가면 나올 거야. 뿌리가 저길 가리키고 있으니까.”

야수사냥꾼 킬리안은 손에 들려 있는 꿈틀거리는 녹색 뿌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세계수가 그에게 내어준 물건으로 저주받은 낙인을 추적하는 도구였다.

한마디로 저주 받은 청부업자인 헨리를 가리키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헨리의 몸이 날뛰고 있는 곳에 지혜의 샘물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헨리의 몸을 추적하기로 한 것이다.

킬리안은 뿌리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컬티스트나 드루이드를 죽이라고 했었지...’

킬리안은 '어떤 대가'를 받기로 한 뒤 만귀전의 의뢰를 수락했다. 그의 목표는 이제 닉의 기억이 아닌 나락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컬티스트나 드루이드였다.

죽이지 못하면 의뢰 실패로 페널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야수사냥꾼 킬리안은 상당히 고심 중이었다.

‘컬티스트 사냥이라... 괜히 만마전을 건드는 것보단... 이미 팽 당한 드루이드를 사냥하는게 뒤탈이 적겠군..’

야수사냥꾼은 강희선을 표적삼기로 했다.

일곱 발의 탄환이 있다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드루이드가 나락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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