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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12화 (212/221)

〈 212화 〉 211. 마주치다

* * *

일단 가야 할 곳은 명확해졌다.

헨리의 머리가 알려주는 나락의 유적지와 화살표 편곤이 가리키고 있는 황반의 중심부로 가면된다.

이제 문제는 선신의 개종자들의 동태다.

‘행운이 777이나 되는 놈이 끼여 있으니 아마 제일 쉽다는 나락의 유적지 쪽에 떨어졌을 거고....’

대충 예상해 보자면, 놈들은 나락의 유적지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행운이 777이나 되는 놈이 끼여있는데 설마 제일 난이도가 어렵다는 갇힌 둥지에서 시작했을 리는 없겠지.

‘놈들이 등신이 아니고서야 나락의 이점을 깨달았다면 분명 영역을 넓히고 있을 거고..’

그러다 헨리의 몸통과 마주쳐서 다 죽어 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어쩌면 헨리의 몸통이 역으로 사냥 당할지도 몰라.. 그러니 최대한 빨리... 나락의 유적지로 가서 헨리의 몸을 가지고 나오는 편이 좋을지도...’

황반으로 바로 가는 것보다 헨리를 영입하고 가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에일라는 한곳에 자리 잡고 싸우는 편이 효율이 더 잘 나오니까 거점을 지키는 게 나을 것 같고.. 팔어스는 조루라서 좀... 그냥 메르와 헨리를 데리고 황반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게 맞겠군.’

사실 나도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엘라와 벨라, 헬렌에게 전해 들은 선신쪽의 전력은 상당히 막강했다.

엘라와 벨라는 그저 강해 보이는 이들이 몇 있다라고만 말했지만 헬렌은 정확히 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데, 저쪽에도 체셔나 팔어스 급의 강자들이 네다섯쯤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놈들이 어찌 움직일지 모르니...’

놈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닉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중요한 건 닉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뭔지는 나도 모른다는 점인데... 만약 그 방법이 구도자를 만나를 것이라면 놈들은 우리가 있는 진홍 지대를 습격할 것이고, 놈들의 목적지가 황반에 있다면 중심부로 가는 도중에 마주칠 수도 있다.

‘애초에 진홍 지대도 전부 탐사가 끝난 게 아니니까.. 여기 어딘가에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칠흑바퀴가 새끼 떼를 끌고서 진홍지대를 맵핑 중이긴 하지만 워낙 넓다 보니 아직 전부 파악되지 않았다. 고로 놈들이 여기 어딘가에 떨궈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한 마디로 놈들과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알 수 없으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쪽 거점을 다 털어먹고 문을 통해 효선 여고로 빠져나간 다음 그대로 본진까지 다 털어버릴 지도 모른단 거다.

그리고 그건 반대로 놈들이 자리를 비운사이 우리가 놈들의 거점을 박살 내고 출구로 빠져나가 생존자가 수천 명이나 있다는 놈들의 거점을 싸그리 털어먹을 수도 있단 의미였다.

“일단 은지랑 화영이, 메르랑 체셔는 나랑 같이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에일라는 거점 지켜 주시고.. 주하랑 하린이는 소라 따라다니면서 정화작업 돕고...”

참고로 현재 진홍지대는 소라와 사제들이 정화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생인간들을 위해 전체 구역을 완전히 정화시켜선 안 되겠지만 우리가 자리 잡을 영역만큼은 확실하게 넓혀 두는 편이 좋으니까.

그러니 거점을 지키고 소라를 보호할 인원들은 여기에 남아 있어야 했다.

“저는요?”

“나는..?”

그때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아름이와 아람이가 동시에 물어왔다. 솔직히 둘 다 남아줬으면 좋겠는데...

“어.. 아름이랑 아람이는 어떡할래? 여기 남아서 거점 지켜도 되고 나랑 같이 유적지 쪽으로 가도 되고.”

“저도 따라 갈레요.”

“어... 나는 남을게...”

“아니, 언니. 우리도 가자아아.”

“아름아. 언니 힘들어.. 암시장 다녀와서 피곤해.. 혼자가..”

아름이와 아람이의 의견이 갈렸다. 같은 조로 묶어 뒀는데 의견이 갈리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아름이는 우리랑 가자.”

“아싸!”

“아.. 좋겠다.”

아름이가 나와 함께 간다고 하자 하린이도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모양인지 부러워했다. 꼬리까지 축 처진게 좀 안쓰러워 보였다.

‘이렇게 되면 조를 나눈 의미가 사라지는데.. 거점을 지키는 인원도 너무 부족해지고... 그래도 가고 싶다는데 어찌 두고가...’

이렇게 되면 헨리의 몸통을 찾으러 가는 쪽에 너무 인원이 많이 몰린다.

거점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한 명 정도는 빼고 가야겠다.

‘헨리의 몸통만 얻을 수 있다면 바로 체셔 급 전력이 바로 생기는 거니까...’

어차피 가는 길에 버섯인간들과 기생목들도 몇 마리 끌고 갈 생각이니 체셔도 남겨두고 가야겠다.

“체셔. 미안한데..”

“괜찮아. 나는 에일라랑 여기 지키고 있으면 되니까.”

결국 체셔가 남기로 하고 우리쪽에 하린이를 넣었다. 이걸로 나와 은지, 화영, 아름, 하린, 메르가 유적지로 가기로 했다.

“다녀올게. 다들 조심하고.”

“준이야말로 조심해.”

“잘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는 에일라와 체셔의 응원을 뒤로하고 일행들과 함께 헨리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닉의 일행이 진홍지대에 들어선 지 무려 다섯 시간.

그들은 아직도 여길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이제 막 유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조준일행보다도 더 멀었다. 갇힌 둥지 자체가 헨리의 몸통이 있는 유적지와 굉장히 멀었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겠죠?”

“좀 더 가야 할 것 같다.”

“으으..”

야수사냥꾼 킬리언의 대답에 안나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녀는 육벽에서 풍겨 오는 역겨운 냄새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도 가도 고기로 이루어진 벽만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서 안나는 그만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없던 결벽증까지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번엔 용혈기사 아란이 괜히 불평을 늘여놓았다.

그는 안나와 달리 육벽으로 이루어진 진홍지대 자체엔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저 더럽게 따분했기 때문에 심술이 잔뜩 났을 뿐이었다.

그는 전투에 미친 전투광이라 빨리 목 없는 청부업자란 녀석과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허나 속도를 높이자니 나머지 일행들이 그의 체력을 따라 오지 못했고,그렇다고 일행들을 다 버리고 가자니 목적지인 유적지로 가는 방법은 킬리언이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심각한 길치라 분명 여기서 빙글빙글 돌며 길을 잃을게 뻔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속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낮추고 있었다.

물론 주변인들은 그의 나불거림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됐지만.. 그가 미쳐 날뛰는 것 보단 그의 한탄이나 짜증스런 중얼거림, 불평불만을 듣는 편이 훨씬 나았기에 다들 참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행들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아란이라 뭐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하아.. 아란, 조금만 참으세요. 자꾸 보채도 방법이 없...”

­우우우우...!!

“방금.. 무슨 소리였죠?”

십 분 간격으로 불평을 늘여놓는 용혈기사에게 참다 못해 한마디 하려던 거인 살해자 단태는 멀리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있나 본데..”

이단 추적자 카이사르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품에서 로자리오를 꺼내 전투에 대비했다. 허나 마이클은 카이사르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피해가자는 의미였다.

‘드디어 그 기생인간이란 놈들이 나오는 건가..’

마이클은 놈들과 교전하는 것보단 피해 가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도 잘 피해 다녔듯이 괜히 마주쳐서 놈들의 주의를 끌기 보단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편이 더 낫겠다 싶었다.

마이클은 살짝 긴장하며 다른 일행들에게 알렸다.

“정신이 연결된 놈들이니.. 엄청나게 몰려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일단 놈들과의 교전은 최대한 피합시다. 하나하나 다 죽이고 가기엔 시간이 너무 지체될 거에요.”

“흐음...”

“아란님.. 심심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저런 머저리들 보다 목 없는 청부업자가 더 죽이는 맛이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참을 수밖에 없나..”

마이클의 설득에 그의 일행들은 전부 코너에 몸을 숨기고서 다가오는 적들을 관찰했다.

“어?”

그때 간파를 사용해 적들을 관찰하던 마이클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괴물들을 보곤 당황했다.

‘버섯이라고..? 저것들은 기생인간이 아닌데.. 뭐지..?’

분명 그가 진홍지대를 간파하며 보았던 기생인간들의 설명은 하얀 피부의 기괴한 생김새를 가진 괴물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존재들은 거대한 버섯들이었다.

심지어 기생인간에 대한 설명과도 달랐다. 마이클은 곧바로 걸어다니는 버섯들의 상세정보를 파악했다.

[버섯인간: 생김새와 달리 근력이 매우 높으며 타격공격을 대부분 흘려 낸다. 베기나 찌르기 공격이 적합하다. 시체에서 포자가 흘러나와 들이 쉬면 몸에 독소가 쌓이니 주의.] [상태 이상­노예낙인]

“버섯인간과 노예낙인이라..”

“포자 뭐요? 노예?”

마이클의 중얼거림에 로이가 그게 뭐냐는 듯이 물었다.

대현자인 마이클은 항상 뭐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로이는 자연스레 그게 뭐냐고 질문한 것이었으나, 마이클은 로이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 줄 수가 없었다. 노예낙인의 상세설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까만 장막이라도 씌워진 듯 설명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마이클.

“모르겠다.. 노예낙인이라는데.. 저놈들은 기생인간들의 가축인가?”

마이클이 대강 노예낙인에 대해 추측한 순간 버섯인간들은 육벽을 찢고 그 안에 숨어 있던 기생인간들을 끄집어내 패죽이기 시작했다.

­푸확!!!

­콰지직!!!

“끼에에에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다진 고기가 되어 버린 기생인간 두 마리.

‘패죽이는 걸로 보아하니 기생인간의 가축은 아닌것 같은데.. 노예낙인이라니..’

마이클은 저들이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버섯인간의 주인은 현재 진홍지대를 청소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락에 기어들어와 그런 짓을 할 만한 인간은 그가 파악하기로 단 한명밖에 없었다.

‘컬티스트... 저런 괴물들을 키우고 있었군..’

마이클은 버섯인간들의 수를 확인하며 전율했다. 기생인간을 패죽이는 버섯인간은 족히 일곱 마리가 넘었다. 어쩌면 저것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이클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역시.. 마주치면 죽여야 해.. 컬티스트는 너무 위험하다...’

마이클은 그런 다짐을 하며 목적을 이룬 버섯인간들이 어서 떠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버섯인간들은 떠나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뭘 기다리는 거지..? 설마.. 여기로 컬티스트가 직접 오는 건가? 그렇다면.. 놈을 죽일 절호의 찬스다...’

허나 버섯 인간들이 기다린는 건 주인인 장조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후속처리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키샤샤샤....

­우어어...

버섯인간들의 뒤에서 자그마한 벌레 떼가 몰려와 죽은 기생인간의 살점을 뜯어먹었고, 남은 뼈다귀에는 붉은색의 뿌리들이 기어들어가 안착했다. 그러더니 뿌리와 뼈가 뒤엉킨 스켈레톤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생목 아종..? 그리고.. 칠흑바퀴 새끼는 또 뭐야.. 심연생물? 거기다 전부 노예상태인데.. 저것들.. 전부.. 컬티스트의 수하라고..? 시, 시발..’

자체적으로 수가 불어나는 괴물들. 마이클은 좆됐음을 감지했다. 그때...

“잠깐만! 저랑 같이 가세요!”

괴물들의 뒤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하아.. 여러분들.. 너무 빠릅니다.”

“야야, 네가 너무 느린 거 아니니?”

“주, 주하 오네짱.. 아, 언니짱? 아, 아무튼 같이 갑시다. 저 언니들 보다 느려요.”

“흥.. 근성 없는 일본 간나 같으니라고.”

“하~암.. 오네짱이라.. 소라 감점. 그리고 주하, 너 또 북한사투리 쓰네.. 감점.”

“아, 아니! 아람 언니!”

“거 너무 한 거 아니요! 오라버니도 없는데! 자꾸 평가하지 마시라요!”

“흐흐.. 둘 다 귀엽긴..”

마이클은 머리가 멍해졌다. 저들의 대화는 영어가 아니라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저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매우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아니.. 나락에서 저리 평화로운 대화라니...’

마이클은 그녀들을 어찌 할지 고민했다. 죽이는 게 맞지만 지금 괜히 잘못 건들였다가 닉을 되돌리기도 전에 역공당할 위험이 너무컸다.

컬티스트 본인이었다면 그냥 공격을 감행했겠지만 그의 동료를 죽인다고 본인들의 위치나 정체를 노출시키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마이클은 판단했다. 적들 또한 자신들의 위치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텐데 먼저 뒤를 잡아 습격하는 편이 더 처리하기 쉬울 테니까.

그래서 마이클은 일행들을 데리고서 그냥 조용히 옆길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흠.”

하지만 용혈기사 아란은 생각이 좀 달랐던 모양이다.

“이봐! 너희들!”

용혈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제법 재밌을 것 같은데.”

그러곤 대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나와 죽고 죽여보자!!!”

그는 상당히 제멋대로인 인물이었다.

마이클은 아란에게 살심을 품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팀 내에서 최강이라 감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저것들은 뭐야.."

일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조준을 따라가지 않았던 아람이는... 괜히 거점에 남기로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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