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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15화 (215/221)

〈 215화 〉 214. 도망가라, 겁쟁이들아

* * *

해골마가 단태의 주먹질에 박살 나며 낙마해 목이 부러지기 직전 가까스로 낙법을 취한 팔어스.

그녀는 어지러운 머리를 내저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선 주변을 둘러봤다.

“하나, 둘, 셋... 아홉?!”

그녀는 죽여야 할 적들의 수를 확인하곤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이리 많아... 부담스럽게..’

그녀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앉아서 밥을 기다리던 팔어스.

그녀는 식판에 밥을 받자마자 갑자기 급하다며 나락으로 끌려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듀라한의 등에 태워진 다음 적진 한가운데로 날려 보내졌다.

이건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밥 먹다 말고 나락에 떨어졌는데 당연히 황당하겠지. 애당초 적이 이렇게 많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다.

적들이 서너 명 정도면 그냥 적당히 쓱삭 처리하고 집 가서 밥 먹고 쉴 생각이었는데 적들은 무려 아홉 명이나 있었다.

더욱이 아홉 명 중 네 명은 특히나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일명 강자의 기운이었다.

팔어스가 강하다고 느낀 이들은 플레이어 다섯 명을 제외한 동료 NPC들이었다. 야수 사냥꾼 킬리언과 용혈기사 아란, 이단 추적자 카이사르와 거인 살해자 단태까지.

‘하나같이.. 강한 거 같은데...’

별거 없다는 말과 달리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자신 만큼이나 강해 보이는 녀석(용혈기사)도 있었고 그보단 약하지만 만만찮은 녀석들도 좀 보였다.

팔어스는 위기감을 느꼈다.

‘세 번 만에 절대 다 못 죽일 거야...’

그녀가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횟수는 하루에 세 번뿐이다.

그 이상으로 진심 참격을 날리면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며 다섯 번쯤 휘두르면 피토하며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놈들은 총 아홉 명이나 된다.

결국, 그녀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최대한 가오를 잡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먹혔나...’

다들 그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팔어스는 성공적으로 겁을 줬다고 생각했다. 허나 살기가 뿜어지거나 말거나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죽어라 이단!!”

자신이 환술 따위에 속았다는 생각에 눈이 돌아가 버린 카이사르였다.

‘저 새끼가..’

팔어스는 이주하에게 철퇴를 휘두르려는 카이사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머리부터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적들이 뒤 없이 달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그녀는 카이사르의 팔을 베어냈다. 곧바로 죽이지 않음으로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여지를 줌과 동시에 적들을 협박하며 체셔가 레이저 게틀링을 재장전하고 바퀴 떼와 버섯인간, 기생목들이 모여 들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등장과 동시에 팔어스가 취한 모든 행동은 전부 의도된 행동들이었다. 하루 세 번밖에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한다는 제약을 안고 있던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제약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얼핏 보면 우직하고 단순 무식한 무골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팔어스는 그 누구보다 간사했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는 놈은 죽는다..!”

살기를 머금은 그녀의 외침에 일순 적막이 감돌며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팔어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2분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분석 중···]

한편 마이클은 카이사르의 팔이 잘리기 전부터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로 급하게 팔어스를 분석했다.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컬티스트가 본진을 끌고 나타날 거고.. 바퀴 떼와 후속주자들에 의해 완전히 고립되어 포위 섬멸 당할지도 몰라.. 위험하다.’

그는 팔어스가 선봉이고 컬티스트가 거점에서 본진을 데려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팔어스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자 마이클은 자신의 생각에 더욱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검성 팔어스: 선천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극도의 단련으로 검성의 위치에 오른 인물. 체력이 낮기 때문에 장기전에 불리하며 검을 많이 휘두르지 못한다. 대략 하루 세 번 정도 휘두를 수 있다]

[상태 이상­구음절맥, 호르몬 이상, 극도의 저질 체력, 타고난 약골, 유리골격, 느린 성장, 외팔, 애꾸눈, 성별 전환]

‘뭐야.. 완전.. 환자잖아. 그런데 굳이 저렇게 체력이 낮은 놈을 먼저 내보냈단 말은.. 결국 저 놈은 시간 끌기용에 불과하단 건가... 도대체 얼마나 강한 놈들을 데리고 있으면 저런 괴물을 시간 끌기용 버림패로 내보낼 수 있는 거지... 두렵구나.. 컬티스트..’

완전히 빗나간 추리를 한 마이클은 팔어스의 정보를 대강 읽어내자 마자 기세에 눌려 잠시 행동을 멈추었던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블러핑!! 블러핑이다!!! 저년 약골이야!!! 두 번만 더 막으면 쓰러진다!! 빨리 조지고 여길 떠야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팔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움직이지 말라고 말하자마자 1분도 채 지나기 전에 마이클이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저 새끼가!!”

팔어스는 곧바로 마이클을 향해 참격을 날렸다.

놈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을 읽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약점을 간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가놈이 상대의 정보를 간파하는 놈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했었지..’

팔어스가 쏘아낸 검기가 마이클을 목을 썰어버릴 기세로 날아들었다.

“으랴아아!!!!”

­콰왕!!!!

마이클이 죽는 순간 정말 답이 없어진다. 그렇기에 용혈기사 아란은 마이클의 앞을 가로막고서 대검을 들어 참격을 받아 내려 했다.

­푸화악!!!

허나 스스로를 극도로 단련시켜 입신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 팔어스의 비기는 반인반용의 힘으로도 쉬이 막아 낼 수 없었다.

“무슨 미친!! 끄아아!!!!”

용혈기사 아란은 피를 뿜어내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들고 있던 대검이 반으로 잘려 나갔고 목이 반쯤 베여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용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상처야 금방 아물겠지만, 그걸 떠나서 용의 뼈로 만들어진 대검을 가르고 목을 베어낼 뻔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날카로움..’

아란은 목이 반으로 갈려 피를 쏟아 내면서도 고간이 커질 정도로 잔뜩 흥분했다.

자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나타났다. 심지어 애꾸눈에 외팔이라는 페널티까지 가진 예쁘장한 여검사라니.

‘아아.. 운명이다.’

꿈에 그리던 여인의 등장에 그는 가슴이 설레었다. 좀 더 싸우고 싶었다. 좀 더 서로의 육체를 부수고 상처를 들쑤시며 한쪽이 죽을 때까지 진심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팔어스의 마지막 남은 일격까지도 받아 내보고 싶어졌다.

“크하하!!!!”

용의 피가 들끓는다. 그의 피부가 갈라지며 비늘이 몸을 뒤덮었고, 이마에 뿔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눈동자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눈의 수정체가 불게 물들고, 그의 입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폭주한다고..?! 저 미친 새끼..!’

마이클은 완전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지금,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흥분을 주체 못 하고 폭주하기 시작한 용혈기사를 보고 있으니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건 방법이 없다.’

도저히 저 미친 도마뱀 새끼를 진정시킨 다음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버리자..’

마이클의 결단은 빨랐다. 그것 말고는 무사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조용히 피해가려던 것을 굳이 붙잡아 싸움을 걸고 상황을 꼬이게 만든 건 전부 용혈기사 아란이었다.

‘제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아군만큼 위험한 게 또 없다.’

그의 트롤링에 진절머리가 났던 마이클은 마음을 다잡았다. 아란은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마이클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곤 다른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닉 시발 새끼야!! 넋 놓지 말고 정신 차려!! 그리고 안나!! 아란의 뒤편으로 결계를 쳐라!! 아란을 여기에 두고 간다!!! 알렉스랑 로이는 카이사르를 챙겨라!! 나머지 분들도 빠집시다!!”

“잠깐!! 저쪽에 누님이...”

“닥쳐라 로이!! 저 꼴이 안 보이냐!!! 저 시발 벌레 새끼들이 네 눈엔 안 보이냐고!!”

“젠장!!”

성녀는 곧바로 결계를 펼쳐 밀려드는 바퀴 떼를 막아 냈고 검투사 알렉스가 카이사르를 들쳐 업고, 로이가 잘려 나간 그의 팔을 챙겼다.

그사이 야수 사냥꾼 킬리언은 재장전 중이던 체셔를 향해 마탄을 쏘아냈다. 도망가긴 가더라도 레이저 게틀링 건만큼은 부수고 가고 싶었다.

레이저 게틀링의 단일 화력은 거의 드래곤 브레스 급이었기 때문이다.

­파아앗!!!

“저 썩을 인형이....”

허나 마탄은 에일라의 방어벽에 막혀 사라졌다.

에일라는 새로운 보석을 꺼내 들며 다시 체셔를 가로막는 마나방벽을 만들었다. 그 사이 체셔가 게틀링 건의 힘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곧 장전이 끝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킬리언은 레이저 게틀링을 부수길 포기했다. 지금 당장은 마이클의 말대로 여기서 빠지는 게 답이다. 숫적으로 너무 열세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몰려들고 있는 버섯인간과 기생목, 특히나 칠흑바퀴 떼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시간이 더 지체되면 밀려드는 벌레 떼에 휘말려 봉변을 당할게 분명했다.

“재장전 완료!! 팔어스!! 주하 데리고 옆으로 빠져!!”

마침내 재장전을 끝낸 체셔가 다시 게틀링 건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팔어스는 재빨리 이주하를 들쳐 메고서 옆으로 빠져나갔다.

­투두두두두!!!!!!

“끄아아!!!”

변신 중이던 아란에게 레이저 탄이 고스란히 처박혔고, 완전히 변신을 끝내지 못한 아란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고서 몸을 수그렸다.

­콰자자작!!!

곧 안나의 결계가 깨져나갔다

물론 이미 마이클과 그의 일행들은 전부 빠져나간 후였다.

“크아!!! 비껴라 벌레 새끼들아!!! 다시 나에게 외팔무사를 데려와!!! 나는 그녀와 싸우고 싶다!!! 도망가지 말란 말이다!!! 크아아아!!!”

결국 홀로 남은 아란은 밀려들어온 잡몹들에 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얻어맞기 시작했다.

에일라는 서둘러 아란의 주변으로 다이아몬드를 뭉텅이로 집어던졌다. 놈을 잠시 붙잡아 두기 위해 수백 억이 깨지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보석이나 화폐가 가치를 잃은 시대이기도하고, 용으로 변하기 시작한 놈을 억제하려면 그 정도는 투자해야 했으니까.

곧 재료 값만 수백억에 달하는가성비 최악의 봉인진이 완성되었다.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체셔 너는 저놈들을 쫓아.”

“알겠어... 조심하고.”

체셔는 기절한 듀라한의 머리를 주워들고서 뺨을 후려갈겼다.

"우어... 머리.. 자른다.."

"지랄하지 말고 해골마나 불러."

"우우..."

체셔는 급하다며 얼른 해골마를 소환하라 지시했다. 곧 박살났던 해골마가 다시 재생되었고 체셔는 그 위에 올라탔다. 그 때쯤 소식을 들은 이들이 막 격전지에 도착했다. 이훈과 이선재, 그밖에 각성자들이었다.

체셔는 모여든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덟 명의 미국인이 도주했다!! 놈들을 붙잡은 사람에게 조준이 엄청난 보상을 줄 거야!! 그러니까 다들 뛰어!!! 적들을 잡아!! 안 되면 그냥 죽여!!”

““우오오오!!!!””

버섯인간과 기생목까지 포함해 수백 명이나 되는 이들이 도주한 여덟 명의 미국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붙잡히면 최소 노예다. 잘 안 풀리면 고문당하다 죽는 거고.

실로 비인간적인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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