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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19화 (219/221)

〈 219화 〉 218. 전투가 끝난 자리

* * *

“끄아아아!!!!”

킬리언이 피 칠갑한 채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상의는 칠흑바퀴들에게 물어 뜯겨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며 몸 곳곳이 베이고 찢겨져 피가 흘러내렸다.

­키샤샤샷!!

“저리 꺼져라!!!”

킬리언은 몸에 달라붙는 바퀴 떼를 쓸어 버리며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 성하린의 손톱을 도끼로 겨우 막아 냈다.

­콰왕!!!!

“쿠헉..!!!”

“이제 좀 뒤져!!!”

피를 토하며 성하린의 손톱을 쉴 틈 없이 막아 내던 킬리언. 그는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적의 본진이 여기까지 당도했다... 마이클과 니콜라스의 기운은 사라졌고... 성녀도 끝났군.’

가망이 없다.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망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사냥 실패다.’

세계수에게 받았던 컬티스트 혹은 드루이드를 사냥하라는 의뢰를 말아먹게 생겼다. 마지막 기회를 놓쳤으니 그는 이제 버림받으리라.

“한눈팔면 안 되지!!!”

킬리언이 앞날을 내다보기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고 있을 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강화영이 마지막 남은 마력을 쏟아부어 스킬을 사용했다.

“혈흔폭발..”

­콰과광!!!!

“크아아아아!!!!”

킬리언의 몸에 묻어 있던 피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이때까지 계속해서 강화영을 견제했으나 잠시 집중력이 끊어진 순간 온몸의 핏물이 터져 나가며 그는 바닥에 무릎 꿇고서 쓰러졌다.

“커허억!!!!”

킬리언의 입에서 피가 줄줄줄 흘러내렸다. 동갑내기인 강화영과 성하린은 힘을 합쳐 야수 사냥꾼을 쓰러뜨렸다.

물론 셀 수도 없이 많이 몰려와 적의 옷을 찢어 발기고 전투를 방해한 칠흑바퀴나 틈틈이 치고 들어와 적들의 공격을 대신 막아 내준 버섯인간, 기생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어쨌든 킬리언은 완전히 넉 다운 되어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어쩌지? 주군도 지금 바쁜 것 같은데.. 그냥 죽일까?”

“아니야.. 하린아.. 최대한 사로잡는 편이 좋을 거야. 후우.. 후우..”

어쩌다 보니 성하린을 대신에 킬리언의 공격을 죄다 몸으로 때운 강화영은 당장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킬리언의 숨통을 끊고 싶어 하는 성하린을 억지로 말린 뒤 바닥에 드러누웠다.

성하린은 숨을 헐떡이는 킬리언의 양손을 결박한 뒤 몸 곳곳에 숨겨져 있던 사냥꾼의 도구를 죄다 뺏어서 저 멀리 던져 버렸다.

“하아.. 하아.. 피가 모자라.. 어지러워...”

“화영아.. 내 피라도 좀 줄까?”

“응? 아.. 오빠 피.. 먹고 싶은데.. 일단.. 살아야겠으니.. 좀 줘..”

“자, 여기.”

“고마워... 쭈룹..”

킬리언의 피를 빨아도 됐으나 냄새 나는 아저씨 피는 먹기 싫은 화영이었다.

******

­쿠구구궁!!!!

거인 살해자 단태가 나락의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쳐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가던 메르와 헨리가 잠시 비틀거렸으나 곧 그들은 자세를 바로 하고서 다시 단태에게 다가 갔다.

2대 1의 구도가 잡힌 순간 거인 살해자에게 승산은 없었다.

물론 단태는 분명 강했다. 아마 헨리와 1대 1로 붙었다면 승부의 행방을 알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허나 메르가 가세하는 순간 단태에게 남은 미래는 패배뿐이었다.

만약 여기서 메르헤레가 추락하기 전의 모든 힘과 권능을 오롯이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녀 혼자서 단태를 잡을 수도 있었으리라.

참고로 메르헤레는 조준이 건네준 계정생성 카드를 이용해 플레이어의 자격을 얻게 됨으로서 과거의 힘을 일부 되찾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힘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그녀 또한 체셔나 헨리처럼 원래 가진 힘을 그대로 다룰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어쨌든 다리를 잃은 단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헨리와 메르를 향해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악신의 개들아!!! 부끄럽지도 않나!! 특히!! 추락한 주제에 뻔뻔하게 악신들의 창녀가 된 빌어먹을 사탄마귀야!! 네가 제일 나빠!! 야이 개시발년아!! 하하하하하!!!”

메르헤레를 향해 시원하게 욕을 갈긴 단태는 웃기 시작했다. 욕을 최대한 자제하며 살았는데 죽을 때가 되니 방언 터지듯이 욕이 뿜어져 나왔다.

어차피 곱게 뒤지긴 글렀으니 마음대로 지껄이는 단태였다.

“다리 없는 병신. 선신이 버린 종놈. 머저리. 패배자. 멍청한 거인 한 마리 잡고 가오 잡는 등신.”

메르헤레는 별로 화난 기색도 없이 무표정하게 바닥을 기고 있던 단태를 매도했다. 마치 그냥 상대가 욕을 했으니 비슷하게 되돌려 준다는 느낌이었다.

“크아아아!!!! 야 이 개년아!!! 너랑 내가 1대1로 붙었으면 분명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을 거라고!!!”

“그래? 잘 모르겠는 걸. 휴, 패배자 새끼의 자위질은 들어 주기 역겹군,”

“으아아아!!! 죽여!!! 이따위 모욕을 당하며 살 순 없다!!!”

차라리 죽여 달라며 고함치는 단태. 그의 얼굴에선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간만에 몸을 쓰니 피곤하구만.”

한편 헨리는 땅바닥에 주저 않아 숨을 골랐다. 머리와 몸이 따라 떨어져 있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몸과 머리가 하나로 붙으니 여간 피곤하고 힘든 게 아니었다.

오히려 완벽해짐으로서 더 약해진 헨리였다.

******

“으으...”

닉과의 격돌로 어깨를 꿰뚫린 한아름은 피가 흘러내리는 어깨를 붙잡고서 봉인된 이은지를 향해 다가 갔다.

정확히는 성녀를 고문 중인 조준에게 어깨 좀 치료해 달라고 가던 중에, 이은지가 봉인석에 몸이 갇혀 머리만 배꼼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웃겨서 놀리러 온 것이었다.

“언니 거기서 뭐 해?”

“아, 아름아.. 나 좀 도와줘.. 움직이지를 못하겠어.. 목이 너무 뻐근해.. 오빠 도와줘야 하는데..”

이은지는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성녀의 봉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곁눈질로 상황을 대강 살피던 중이었다.

“하. 하하하. 언니.. 지금.. 되게 웃긴 거 알지?”

“아.. 아름아. 웃지 말고..”

“언니, 미안. 사실 나도 팔이 이래서...”

“어? 너 어깨가 왜 그래.”

“몰라. 찔렸어. 존나 아파.”

“허... 아람이가 팔찌른 놈 죽이려고 하겠네.”

“그놈 벌써 죽었어.”

“그래? 저기... 우리, 이긴 거 맞지?”

“응. 완전 대승했어. 지금 준이 오빠가 살아남은 놈들 노예로 만드는 중.”

“아하.. 다행이다.. 이겨서..”

“응.. 다행이야..”

곧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봉인석에 기댄 한아람.

이은지는 봉인을 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봉인된 본인은 웬만해선 봉인석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외부에서 봉인석을 부숴서 꺼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

“하아.”

나는 죽어 버린 마이클과 닉을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두 사람 다 노예로 붙잡을 수 있었는데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무안의 마안도 안 통했고..’

놈들을 일망타진할 절호의 기회라 무아의 마안을 사용해 멍해지게 만들려고 했으나 대현자 놈은 눈이 반쯤 터져 있던 상태라 마안이 전혀 먹히지 않았고, 닉은 얼추 먹혔으나 어찌해보기도 전에 대현자가 죽여 버렸다.

차라리 마안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닉이 눈먼 대현자의 공격을 쉽사리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끝나버린 일이니 후회해봤자 너무 늦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야이 쌍년아!!”

“꺄아!!”

나는 괜히 성녀를 걷어찼다. 어찌 보면 정신 나간 결계를 펼치고서 끝까지 버틴 이년 잘못이다. 이 미친년이 결계를 조금만 더 빨리 해제했었어도 세 놈 년 전부 사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죽어 버린 놈들 때문에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혹여나 놈들이 부활할까 싶어서 그러는 거다.

‘명색이 용사인데... 부활 능력 같은 거라도 가지고 있으면 어쩌지..’

세이비어라는 직업명부터 무슨 재림예수 같은 느낌이 풀풀 풍긴다.

사실 이 새끼들 일부러 죽고 죽인 거 아닐까? 부활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대현자 놈이 노예가 되기 전에 용사를 가차 없이 죽여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부활이 가능하단 사실은.. 희선 누나로 증명이 됐으니까.’

재앙 초반에 악신들은 나를 위해 희선 누나를 좀비에서 사람으로 되살려 준적이 있다. 내가 봤을 때 그때는 희선 누나가 드루이드로 각성한 상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용이 싸서 살려 줬던 것 같은데...

‘용사쯤 되는 놈을 되살리려면 인과율 소모가 굉장히 크지 않을까...?’

그렇다면 용사가 여기서 죽어 버린 것만으로도 만마전에 도움 됐다고 볼 수 있다. 제일 베스트는 부활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게 그냥 노예의 낙인을 찍는 거였지만..

뭔가 피드백을 받고 싶었는데 악신들은 바쁜 모양인지 나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시선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거의 항상 지켜보고 있던 보타밀리의 시선마저도..

마치 단체로 자리를 비운 느낌이 들었다.

‘뭐, 당장은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나.’

그나마 성녀는 노예로 만들어서 다행이다. 남들 다 죽을 때 혼자서 이상한 환술계열 스킬로 살아남은 걸로 보아하니 무엇보다 자기 목숨을 제일 중요시하는 것 같다.

‘이것들은 어떡하지.’

죽어 버린 닉과 마이클의 몸뚱이. 당장 이 시체들을 부활시킨다는 미친 짓을 할 것 같진 않다. 아무리 만신전 놈들이 병신이라고 해도 적진 한가운데에서 자기 챔피언을 부활시키는 짓 따윈 하지 않겠지.

만약 정말로 뒤졌던 놈들이 부활한다면, 다른 장소에서 부활한다거나 딴 놈의 몸을 빌려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일단 닉과 마이클의 시체를 버섯인간들에게 챙기라고 지시했다. 바로 불태워 버릴지, 인디크론이나 카쉬낙스에게 이놈들의 시체를 공양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손하은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기생목과 결합해 시스템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리치킹 손하은이라면 이놈들의 시체를 멋들어진 언데드로 재탄생 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 두 놈이 나중에 부활해서 나에게 찾아온다면 언데드가 되어 버린 시체를 보여 주며 티배깅을 해야겠다.

‘저쪽도 얼추 정리됐고...’

너클 낀 단발머리 남자와 수염 덥수룩한 사냥꾼도 모두 제압당한 상태였다. 특히나 단발머리의 팔다리가 다 잘려 있는 꼴을 보아하니 당장 노예로 만들기 힘들단 사실을 알고 미리 사지를 썰어둔 것 같다.

완전히 소실된 것만 아니면 팔이나 다리를 다시 붙일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적의 몸뚱이를 때려 부수는 것에 거침이 없어졌다.

‘일단 이 백마의 스킬을 확인해야겠군..’

혹시나 노예낙인을 해제할 만한 스킬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사로잡았던 사제나 선신진영 클래스들은 노예낙인을 해주할 만한 스킬이 없었지만 성녀는 또 어떨지 모르니까.

그러니 괜히 거점에 곧바로 데려갔다가 단체로 노예낙인이 지워지는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미리미리 확인해 둬야 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살려 둔 채로 나락에 방치해야 하나..’

나락의 구석에 처박아두거나 억압용 입마개를 물려서 무능력자 상태로 만들어 두는 것 말고는 당장은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안나 그린]

[레벨: 18]

[클래스: 세인티스(성녀)]

[근력: 69]

[민첩: 74]

[체력: 97]

[의지: 121]

[마력: 140]

[행운: 33]

[스킬: 경건한 기도, 심판의 사슬, 명상회복, 자애의 은총, 정밀진단, 끊이지 않는 축도, 완전무결한 정화, 체질개선, 무자비한 속박, 봉인지정, 들춰진 저주, 광역회복, 위대한 가호, 성스러운 축복, 신비주의의 장막, 성역지정, 빛의 일그러짐, 급속치유]

의지와 마력이 특히나 높은 성녀. 그녀가 가진 스킬은 대부분 치유스킬들이었다. 중요한 건 해주관련스킬인데...

‘들춰진 저주와... 완전무결한 정화.’

이 2개가 노예낙인을 지울 수 있는 스킬들이었다. 만약 이 스킬을 나의 본진인 효선 여고에서 사용한다면 그대로 죄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나의 구속에서 벗어나 돌발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나는 곧바로 성녀에게 이 두 개의 스킬을 금지시켰다. 명령을 내렸으니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성녀의 노예낙인이 지워지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발생해선 안 된다.

‘선신놈들이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 몰라...’

성녀에게 걸린 저주를 푸는 것쯤이야 신들의 입장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인과율이 허용하는 한 그들은 전지전능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들이니까.

‘당장은 아이템으로 최대한 묶어두고...’

나는 일단 성녀의 입에 억압용 입마개를 물려 무력화 시킨 다음 조련용 밧줄을 몸에 묶어 2차 예방을 했다. 온몸을 꽁꽁 싸매고 나니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일단은 붙잡은 놈들을 노예로 만들고... 남은 놈들을 일망타진한다...’

나는 다리 하나가 완전이 터져 버린 로이를 향해 다가 갔다. 놈은 최대한 살려서 거점까지 데려가야겠다. 눈앞에서 누나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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