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소설 속 로빈-1화 (1/303)

1화

프롤로그

어느 한 허름한 술집에서 두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 야, 어떻게 그런 식으로 흘러가냐? 이럴 거면 애당초 그런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지는 말았어야지. 아직 늦지 않았어. 방향을 바꾸라니까.”

답답함을 토로하는 남자의 이름은 로빈.

로빈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남자였다.

하루 벌어 하루 근근이 먹고살 정도로 궁핍한 이 남자가 얼마나 가진 것이 없냐 하면, 그래도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일가친척 피붙이조차 전혀 없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흙수저, 아니 심하게는 똥수저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런 로빈에게도 유일한 삶의 안식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한 편에 100원.

물론 가난한 로빈에게는 이런 돈조차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워도 한 갑에 5천 원, 술잔을 기울인다고 치면 적어도 몇천 원에서 때에 따라서는 몇만 원까지 깨지니 차라리 그 돈으로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것이 더 나은 취미라고 그는 위안하고 있었다.

담배나 술을 마실 돈으로 차라리 소설을 본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몸도 건강해지고,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숙취 때문에 다음 날 일을 나가는 데 힘들지도 않으니 이 얼마나 저렴하고 좋은 취미인가.

이렇게 소설을 읽은 지가 10년 정도 되었을까?

무수하게 많은 소설을 읽다 보니 이제 웬만한 소설은 뒷이야기가 얼추 예상되고 소설의 시작 부분만 살펴봐도 자신의 취향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생긴 것도 당연했고 말이다.

로빈이 요즘 즐겨 보는 스타일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힐링할 수 있는 일상물이나 강력한 먼치킨 주인공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이다물이었다.

현실을 사는 것도 빡빡한 로빈은 소설에서까지 주인공이 머리를 굴리며 온갖 고난을 겪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고, 아마 그런 마음이 힐링물이나 사이다물을 선호하는 취향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리라.

다만 사이다물은 주인공이 너무 막 나가기만 하면 곤란하다. 적어도 자신만의 뚜렷한 기준과 경계가 있어야 한다는 뜻.

주인공이 적당히 이기적인 건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무분별하게 해치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현실에서 높은 사람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는 거 같은 현자 타임이 오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나름의 기준이 있다 보니 흔히들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사이다물을 보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많았고, 요즘은 아예 그냥 편안한 분위기로 볼 수 있는 힐링, 일상물 쪽으로 취향이 기울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로빈의 취향을 생각하면 눈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한숨짓는 안경 쓴 남자, 신봉구의 소설은 전혀 로빈의 마음에 드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은 『SSS급 황태자의 귀환: 짐은 무적이다』.

뭔가 양산형 먼치킨 소설 같은 제목의 이 소설은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전혀 먼치킨류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황태자가 귀환한 것도 맞고 능력이 있는 것도 맞는데, 소설이 진행될수록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느낌이니 로빈은 솔직히 가슴이 답답할 지경.

특히 예상치 못한 뜬금없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황당한 탄식만 튀어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로빈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수많은 독자들이 비난을 퍼부으며 선삭을 하고 있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로빈은 차라리 제목을 그렇게 짓는 게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만약 제목이라도 달랐으면 처음엔 구독 수가 좀 적을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뜬금포에 가까운 사건들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긴 했겠지만.

“하… 제목은 뭐, 어쩔 수 없었어. 한 명이라도 더 보게 하려면 적당히 어그로를 끌었어야 했으니까.”

씁쓸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봉구.

솔직히 이 부분은 로빈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좋은 소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으니 작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 그럼 그냥 제목대로 갔었어야지. 지금 네 소설하고 제목을 보면 솔직히 사기에 가깝거든. 그냥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노선을 바꿔. 지금까지의 고난은 추진력을 얻기 위한 움츠림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후… 그게 그렇게 쉽게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야.”

로빈의 충고에도 봉구는 한숨을 쉬며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빈은 자기도 모르게 같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하긴 그게 쉽게 됐으면 아마 처음에 자신이 충고했을 때 그 말을 들었겠지.

소설을 쓰는 작가 신봉구.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소설을 섭렵한 독자 로빈이 자신의 앞방에서 기거하고 있던 봉구가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야말로 우연 중의 우연이었다. 평생 독자로서만 살다가 주변에 작가가 있다는 신기함에 자연스럽게 그가 쓴 소설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물론 그 내용이 전혀 자신의 취향이 아니어서 지인이 쓴 것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손절해 버릴 만한 작품이었다는 건 그야말로 씁쓸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솔직히 재능은 있는 거 같은데… 대체 왜 이런 재능 낭비를 하는 건지.”

로빈이 생각하기에 봉구는 충분히 재능 있는 작가였다. 만약 봉구의 소설이 엉망이기만 했으면 아무리 지인의 작품이라도 로빈은 과감하게 손절을 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뜬금없는 스토리를 빼면 눈앞에 실제로 펼쳐진 듯한 상황이나 주변 묘사, 등장인물의 외모나 성격 묘사,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은 솔직히 지금까지 본 작가 중에서도 발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말로 표현하긴 그렇지만 골 때리는 19금 설정이나 간간이 튀어나오는 19금 묘사도 나름 매력적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놈의 스토리.

로빈은 지금까지 수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체적으로 거르는 스토리 라인이 있었다.

판타지에서 뜬금없이 흑막으로 등장하는 흑마법사.

레이드물인데 잡으라는 몬스터는 안 잡고 인간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만 하는데다가, 심지어 정부나 길드까지 싸잡아서 모두 쓰레기인 경우.

주인공의 상대가 점점 강해지더니 파워 인플레가 감당이 안 돼 결국 주인공이 신이 되어버리는 일명 신 루트를 타는 소설.

자신의 취향이 다분히 담겨있는 평가지만 로빈으로서는 이런 소설들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봉구의 소설은 정말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결말까지 도달하진 않아서 주인공이 어떤 루트를 탈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로빈이 보기에 장단점이 명확한 봉구의 소설은 그의 예상대로 많은 비난에 직면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그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같이 술자리를 가지게 된 상황.

술을 사 먹을 돈으로 차라리 소설을 보자는 마인드의 로빈으로서는 나름 큰 희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오늘 술집에서 같이 먹는 술값이면 어떤 소설을 완전히 정주행할 수도 있는 돈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스토리 라인을 바꿀 수는 없어. 물론 당장 보기에는 뜬금없는 스토리처럼 보이겠지만 이게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내뱉는 봉구의 말에 로빈은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참 심지가 굳은 건지, 고집이 있는 건지 봉구는 많은 사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생각인 듯 보였다. 자신이었으면 사람들이 욕하는 게 싫어서라도 생각을 바꿀 텐데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봉구의 말에 의하면 어쨌든 그가 소설상에서 나름의 설정에 따라 큰 그림을 그리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래도 글을 쓰는 작가이니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는 게 당연하긴 했다. 당장은 황당해 보여도 무슨 이유가 있긴 하겠지.

다만 로빈은 그 그림이 너무 커서 도화지가 찢어지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하루에 한 편씩 올라오는 소설.

어떤 복선을 넣고 수십 편이 지난 후에 그 복선이 밝혀진다고 하면 적어도 두 달은 족히 지난 후일 것이다.

과연 사람들이 그 복선을 그때까지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아마 소설이 끝난 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정주행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그 복선을 기억하기는 힘들 것이다.

자신도 그랬으니 분명 많은 독자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큰 그림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 것이다.

편당 결제로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라면 그런 면도 고려해야 할 것인데 조금 답답했다. 게다가 모든 걸 다 떠나서 무적이 아닌 황태자가 무적이라고 우기는 제목은 좀 그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은 그저 독자였고 글을 쓰는 건 봉구였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봉구가 쓴 글을 그냥 읽는 것뿐이었고 그 이상의 행동은 아마 불필요한 참견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다.

로빈은 그런 생각을 이어가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하긴 나름 괜찮은 표현력을 가진 봉구인데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아마 봉구는 그저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술자리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 소설에 대한 불평은 그만하기로 했다. 자신이 보는 소설이 봉구의 소설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자신이 그의 인생을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끝까지 우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접고 그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끝낸 술자리.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술집을 나와 거처로 돌아가려는 그때, 때마침 쏟아지는 빗줄기에 두 남자는 허탈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밤중에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니 둘은 그냥 비를 맞으며 돌아가기로 했다.

술에 취해 열이 조금 오른 상황에서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어딘지 시원한 게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 다 젖어버려서 빨래 때문에 신경 쓰이긴 하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네.”

“그런가? 하긴…….”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찰나.

번쩍! 하는 빛과 함께 큰 천둥소리가 나며 한 줄기의 빛무리가 로빈의 몸을 강타했다.

어이없게도 길을 가다가 벼락에 맞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버린 운 없는 남자 로빈.

사람이 죽어갈 때 자신의 삶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고 했던가?

하지만 로빈은 그런 주마등이 지나갈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사망했다. 그나마 죽어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구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뭐라고 말도 못 하고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쓰러져 있는 로빈을 잠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로빈은 보잘것없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32세의 짧은 인생. 삶의 행복 따위는 전혀 누리지 못한 그저 박복하기만 한 인생이었다.

【성장기】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아담한 방 한쪽에 작은 침대가 놓여있었다.

순백색의 우아한 캐노피로 꾸며진 침대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귀여운 아기가 잠이 든 듯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뱉고 있었고, 그런 아기를 지켜보는 두 여성은 아기가 깰까 소곤대며 부드러운 손끝으로 아기의 볼을 살살 간지럽힌다.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두 여성의 눈빛은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헤… 너무 귀여워요, 언니. 서방님과 언니의 아이라니…….”

“그러게 말이야. 내가 낳은 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너무 예뻐. 뱃속에서는 그렇게 애를 먹이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귀여울 줄 누가 알았겠니.”

“하긴, 입덧이 좀 심하긴 했었죠? 그래도 전 예상했어요. 언니와 서방님의 아이인데 귀엽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부러워요.”

“부럽긴… 너도 어서 가지면 되지.”

그렇게 두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방의 문이 열리더니 단정한 메이드 복을 입은 여성이 방에 들어서며 나지막하게 고했다.

“마님, 영주님과 작은 가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 오셨나 봐요.”

“그래, 어서 나가보자. 뭐, 금방 다시 이곳으로 오겠지만 말이야.”

“킥, 그렇겠죠? 요즘 서방님과 영주님, 두 분 다 로빈을 보는 재미로 사시니까요.”

두 여성은 메이드를 따라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방 안에 잠시 맴도는 정적. 그런 정적 사이에서 잠든 줄 알았던 아기가 슬며시 눈을 떴다.

“하… 띠발. 쩡말 미찌겠네(하… X발. 정말 미치겠네).”

갓난아기 특유의 구강 구조 때문인지 혀 짧은 소리를 내뱉은 아기는 아기답지 않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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