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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3화 (3/303)

3화

순간 우연이겠지, 하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솔직히 제국의 이름 정도는 같을 수 있겠지만 초대 황제의 이름까지 우연히 같을 확률은 정말 희박했기 때문이었다.

로빈이 고민하는 동안에도 카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초대 황제 카이사르 대제는 말년에 그만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말았다더구나. 그리고 그때 피폐해지는 제국을 위해 황태자 브루투스께서 분연히 일어나게 된 것이지. 그렇게 즉위하게 된 브루투스 1세는 초대 황제의 실정을 모두 바로잡고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가셨단다.”

맙소사.

로빈의 염려는 그저 염려에서 끝나지 않았다. 봉구가 자신에게 키득거리며 이야기했던 설정 일부가 다시 카인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으니 말이다.

카인은 이야기를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손자가 오늘은 왜인지 울먹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던 로빈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앙!!”

그리고 이내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로빈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 아니……. 대체 왜…….”

무엇이 억울한지 원통하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어대는 로빈의 모습에 당황한 카인은 서둘러 아기를 달랠 마리아나를 찾아 방을 뛰쳐나갔다.

“들어봐. 초대 황제 카이사르가 사치를 일삼자 브루투스가 반역을 일으키는 거야. 그리고 아들의 반란에 당황한 카이사르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지.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그렇게 폐위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원통하다는 듯이 ‘내가 너의 아비다(I’m Your Father)!’ 이렇게 외치면……. 어때 재미있지 않아?”

홀로 남은 로빈의 귓가에는 자신이 때려치우라고 했던 봉구의 얼토당토않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혼종 같은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했다.

분명 들은 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워낙 어이가 없고 충격적이라 기억하고 있었던 이야기.

하지만 지금 로빈이 느끼는 감정은 그때 느꼈던 충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거지 같은 봉구의 소설 『SSS급 황태자의 귀환: 짐은 무적이다』의 세계인 것이 분명해졌으니 말이다.

마리아나를 찾기 위해 부랴부랴 카인이 방을 떠나고 홀로 남은 후에도 로빈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로빈의 전생은 한마디로 거지 같았다.

그래서 이번 생은 좀 피는 거 같아서 기대에 부풀었는데 하필이면 봉구의 소설 속이라니. 인생이 피기는 개뿔, 살기 위해 발악해야 할 판이었다.

도대체 자신의 인생은 왜 이따위인가.

“띤뽕구 개깩끼! 쭉어버럿(신봉구 개XX! 죽어버려)!”

로빈만 홀로 남은 방에서 절규에 찬 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록 아무도 들은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 * *

평소에 전혀 울지 않던 로빈이 울음을 터트려 온 집 안이 쑥대밭이 되었던 그날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아기를 울려버린 못된 할아버지가 된 카인은 다른 식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고 카인은 억울한 듯 한숨을 쉬었지만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했던 그날.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그날의 충격은 이미 잊힌 듯 집 안의 모든 식구는 평소 같은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다만 로빈만은 아직도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혼자 있는 시간마다 한숨을 쉬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대째… 왜(도대체… 왜)…….”

수많은 소설을 섭렵한 로빈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소설에 빙의나 환생하는 스토리는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였다. 대부분 흔히 말하는 환생 트럭에 치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만, 번개에 맞아 사망하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너무 익숙한 이야기라 특별히 거부감은 없었지만, 기껏 환생한 곳이 왜 하필이면 이곳인지 신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냥 평범한 일상물이나 힐링물 안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체 왜 블록버스터급 사건, 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지는 이런 소설이어야 했나. 심지어 아직 완결도 되지 않아서 그 복선들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로빈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혼란스러운 3일, 그리고 신을 원망하던 3일, 마지막으로 자포자기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낸 4일.

그렇게 얼추 열흘이 지나고 나서야 로빈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차피 일은 벌어진 것이고 자신은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대비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봉구의 소설 『SSS급 황태자의 귀환: 짐은 무적이다』는 제목처럼 억울하게 배신당해 죽은 황태자 페리안이 회귀해 황제가 되는 먼치킨 사이다물인 척하는 소설이었다.

로빈이 이 소설을 먼치킨 사이다물인 척하는 소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능력 있는 황태자가 시원하게 정국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계속 벌어져 황태자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터지는 가운데 황태자가 결국 황제가 되고 트와이드 제국을 지배하게 되는 그런 전개가 예상되었다.

이 소설이 어떻다고 단언할 수 없는 건 아직 결말을 보지 못한 로빈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짐작할 수 없어서였다.

보통 평범한 작가라면 당연히 황태자가 황제가 되어 제국을 호령하면서 끝나겠지만 범상치 않은 사고방식의 봉구가 막판에 무슨 짓을 할지는 로빈도 전혀 예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사실 무적이라고 해놓고 전혀 무적이 아니었던 황태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로빈의 생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으리라. 물론 황태자의 무력은 정말 대단하긴 했지만.

그리고 만약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봉구의 소설 속 세계라면 과연 지금은 황태자 기준으로 1회 차인가? 2회 차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시기인가?

솔직히 이것부터가 문제였다.

물론 이것들은 자신의 말문이 트일 시기가 되고 시간이 지난다면 대충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전에 자신의 행동 방향 정도는 정해야 할 듯싶었다.

로빈은 천천히 황태자를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 방향을 점검해 보았다.

지금이 소설의 주된 배경인 황태자의 2회 차 인생이라면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황태자가 어느 정도는 활약해 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기도 했다.

아무리 자신이 재수가 없다지만 소설 속에 들어왔는데 소설에서도 몇 줄밖에 언급되지 않은 답 없는 1회 차다? 자신이 그 정도로 재수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지 않은 다음에야…….

어쨌든 지금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2회 차라면 그냥 자리보전하면서 황태자 형님에게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어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무 능력 있어 보이면 인재 욕심이 과한 황태자에게 피곤하게 시달릴 것이며, 너무 능력 없어 보이면 완전히 황태자의 눈 밖에 나 중앙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을 테니 정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거 같았다.

그리고 소설 속이라도 자신이 주인공도 아닌데 큰일은 주인공인 황태자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촌구석 영지에서 특별히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마의 1회 차. 만약 지금 세상이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1회 차라면 그야말로 답이 없었다.

황태자 옆에 있다간 결국 3황자의 반란에 목숨을 잃을 것이고, 그런다고 3황자에게 붙어봤자 양아치 같은 3황자와 그 부하들에게 시달리기만 할 것이다.

그나마 약간의 가능성은 황태자에게 붙어 그의 호구 근성을 뜯어고치는 건데, 배신의 충격으로 겨우겨우 사람 구실이나 하고 있는 황태자를 과연 쉽게 바꿀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게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로빈은 솔직히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중앙에서 어떤 세력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그냥 영지에서 떠나지 않고 꼭꼭 숨어 살고 싶었다.

외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변방의 한가한 영지라고 하니 어쩌면 중앙의 정치 다툼과는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으로의 흐름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시무룩해졌다. 중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지 못하는 시기가 도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띠, 개 깥은 뽕구 새끼(아씨, 개 같은 봉구 새끼).”

소설의 스토리 흐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봉구를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따위 소설은 진작에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했다.

로빈은 어떻게든 봉구를 닦달해서 엉뚱하게 흐르는 스토리를 바로잡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하지만 이곳이 봉구의 소설 속이라는 사실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자신은 앞으로 일어날 큼지막한 사건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이 소설 속의 세계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이러한 지식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특히 상황 묘사와 주변 묘사, 인물 묘사에 탁월한 봉구의 성향 때문에 적어도 이 세계를 주도하는 인물들이 어떤 성격이며, 어떤 외형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중심인물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들의 성미를 건드려 피해를 보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의 여자에게 괜히 찝쩍대다가 패가망신하던 수많은 엑스트라를 생각해 보면 이것조차 좋은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사이다물인 척하는 소설이지만 여주인공에 대한 관리만은 철저해서 여주인공에게 접근하면 여지없이 주인공의 철퇴에 맞게 되니 히로인은 엑스트라에게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로빈도 엑스트라답게 히로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예쁘다지만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하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도 로빈은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이왕이면 평화로운 소설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전혀 모르는 세계는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하며 최대한 상황을 좋게 이끌어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솔직히 발악과 망상에 불과했다.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것이었고 한 살 아기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상하는 것뿐이었으니까.

* * *

갓난아이의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차피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할 것이 없는데다가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훨씬 긴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빈은 모든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씩 빨랐다.

말문이 트이는 것도 그렇고, 걷는 것부터 다른 모든 것까지.

당연히 로빈 본인이 적절히 조절한 것이었다. 덕분에 어른들도 로빈에 대하여 크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마 로빈의 식구들은 로빈이 생각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해도 대견하게 생각하기만 할 뿐 특별히 의심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의 입장에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괜한 의심을 사는 것은 사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무려 3년.

이제 로빈은 자력으로 집 안을 돌아다닐 정도로 성장했다.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로빈은 집안 식구들의 큰 활력소였다. 원체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놀랍도록 귀여운 외모의 로빈이었기에 집안에서 로빈을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소변도 빠르게 가리고 집 안을 어지럽히지도 않으며 사고도 전혀 치지 않는 귀여운 도련님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고용인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인기 만점이었다.

그리고 3년의 세월 동안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로빈의 성격도 조금은 바뀌었다.

전생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가시를 세우며 살던 로빈은 3년 동안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그리고 고용인들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그나마 조금은 무던하고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습성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의 시야가 본인 한정에서 본인과 그 주변인까지는 넓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이제 움직일 수 있는 나이가 된 로빈.

로빈은 서서히 자신이 이곳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부터 궁금해하던 모든 사실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평화롭고 꿀 빠는 안정적인 인생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오늘 로빈에게 정해진 일과는 정원에서 아버지인 윌리엄과 정원수를 돌보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원수를 손질하는 윌리엄의 옆에서 재롱을 떠는 것.

부자간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윌리엄이 다른 가족들의 견제(?)를 모두 물리치고 쟁취해 낸 힐링 타임이었다. 이제 겨우 태어난 지 3년 된 로빈은 여전히 모든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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