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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1화 (11/303)

11화

의리의 남자 지온이니만큼 지금 이러한 로빈의 노력이 그의 마음속에서 마일리지처럼 꾸준히 쌓여 훗날 큰 보답으로 다가오리라.

그렇게 점수를 많이 따긴 했지만 아직도 지온과 실비아 모두 실비아의 병이나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꺼려하고 있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본데 남의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라 로빈도 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온이 자주 자리를 비우는 건 아무래도 실비아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마 무슨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그 치료약이나 치료제를 찾아 이런 시골 영지까지 찾아온 것일 테고.

그렇다면 어쨌든 이 바닥(?)이 홈그라운드인 자신이 외지인인 지온보다 더 유리한 것만은 자명했다.

누가 구해도 실비아만 살면 장땡이지만 상황을 보니 지온이 쉽게 실비아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살 아이라면 자신에게 그런 퀘스트가 내려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공을 들였으니 오늘은 반드시 승부를 보겠다고 생각한 로빈은 어머니와의 티타임을 마치고 바로 지온에게 찾아가 승부수를 던질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는 로빈을 마리아나는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요즘 우리 로빈이 귀여운 아이를 만나러 다닌다지? 호호. 그 아이가 마음에 드니?”

“예?”

혼자 다른 생각을 하다가 기습 공격을 당한 로빈은 짓궂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놀라긴. 실비아라고 했던가? 그 아이가 그렇게 귀엽다며? 호호. 그러니 우리 로빈이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 거겠지? 요즘 매일 그곳을 들르는 모양이니…….”

실비아가 물론 귀여운 아이이긴 하지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로빈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뒤이어지는 이야기에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는데.

“호호. 그래. 미래가 창창한 귀여운 아이는 먼저 줍는 게 임자란다. 잘하고 있어, 아들. 게다가 일찍 주우면 아들 취향대로 착실하게 길들일 수도 있지 않겠니? 그게 키잡의 묘미지~”

“풉!!”

이런 얼빠진 이야기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당황해서 마시고 있던 차를 뿜어내고 만 로빈은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계속 지온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슨 오해를 하는 게 분명했다.

하긴 영지 돌아보기에 매진하던 자신이 갑자기 외지인을 꾸준히 방문한다는 첩보(출처는 분명 루이일 것이다)를 접한데다가 그 외지인에게 상당히 귀여운 딸이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그런 오해를 할 만하기는 했다.

하지만 겨우 다섯 살 된 자신에게 키잡을 시전하라니. 일러도 너~무 일렀다. 게다가 저 취향이란 것도 왠지 성격이나 그런 게 아니라 그것보다 더욱 특별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저 짓궂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의 오해였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여 왠지 더 슬펐다. 자신의 모친이 다섯 살짜리 아들을 성희롱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은 영지를 위해 고군분투, 모두 같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건만 자신의 노력을 한낱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연애 놀음으로 치부하다니,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내가 영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실패하면 영지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 좀 답답했고.

“하… 그런 거 아니거든요, 엄마. 오늘 왠지 좀 우울하네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 소심하게 표현하며 우울한 표정으로 반항(?)해 봤지만.

“어머. 로빈, 무슨 일이니? 갑자기 몸이라도 어디 안 좋은 거니? 치료사! 치료사를!”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애정 어린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아나의 모습에 다시금 마음이 풀어지고 말았다.

“에이. 그런 건 아니에요, 엄마. 그럼 다녀올게요!”

로빈은 그렇게 기운을 차린 척 의연한 얼굴로 마리아나에게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서둘러 영주 저를 나서는 로빈의 뒤로 마리아나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로빈! 아프면 안 돼!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엄마에게 이야기하렴! 내 아들. 알았지!?”

지온을 만나러 가는 로빈의 입가에는 헛웃음이 맺혀있었다.

자신이 시무룩해지자마자 치료사부터 찾으며 호들갑을 떠는 어머니라니. 저렇게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하는데, 조금 놀리고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은들 어떠하랴.

소설을 보다 보면 정말 다양한 가족이나 친척들이 나온다. 어떤 가족은 주인공에게 큰 도움을 주지만, 사실 그런 가족은 드문 편이었고 대부분 주인공의 짐이 되어 주인공의 고난이 되곤 한다.

사기를 당하거나 오해하고, 심지어 욕심을 부려 주인공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가족의 모습에 독자들은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었던가. 그야말로 제대로 고구마였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가족들은 정말 천사였다. 욕심이 없으니 사고를 치거나 사기를 당할 일도 없을 거고, 가정적이라 집에만 있어 어디 가서 엉뚱하게 다치거나 납치당할 일도 없다. 게다가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아끼고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란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가족들이 그거 하나만은 확실히 지켜줄 거 같았다. 뭐, 원래 좀 게으르기도 한 거 같고.

로빈은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지며 적어도 자신의 가족만은 자신이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눈앞의 지온부터 함락(?)시켜야 했다.

“오, 로빈 도련님이군요.”

지온은 평소보다 더 자신을 반겨주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자신이 노력한 것이 헛된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어쨌든 실비아의 증상에 대한 정보와 치료의 협조를 부탁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평소보다 자신을 반기는 모습과 처음보다 더욱 지쳐 보이는 행색을 보니 왠지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로빈은 넌지시 실비아의 증상에 대하여 운을 띄웠다. 차도 없는 실비아의 상태에 지친 지온이 넋두리라도 늘어놓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운이 따르는지 로빈의 예상대로 지온이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죠. 수도 근처에서 마수의 습격을 받다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

지온의 말인즉, 오랜만에 시간을 내 수도 근교로 나들이를 나가던 지온의 가족이 갑작스럽게 마수의 습격을 당했단다. 그것도 제법 큰 규모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한 용병도 몇을 대동했는데 그들조차 막을 수 없는 규모였다니, 수도 인근의 치안 상태를 생각하면 조금 어이없긴 했다.

그리고 그 습격으로 아내까지 잃고 만 지온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내와 용병 친구가 목숨 걸고 지킨 딸이 이상한 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마나 프로즌이요?”

“네. 그렇다는군요. 하… 진짜 하늘도 무심하시지.”

설명을 들어보니 실비아가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은 마나 프로즌. 이름 그대로 몸속의 마나가 굳어가며 몸까지 굳게 만드는 병이란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불치에 가깝다고 알려진 그런 병.

오래전에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성녀가 신성력을 희생해 체질을 바꿔 낫게 한 전적이 있고, 그 외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병은 사실 인간하고는 그리 친하지 않은 병이었다. 원래 마수에게나 발병하는 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이 병에 걸리는 경우는 재수 없게 마나 프로즌이 발병한 마수에게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뿐이었다.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려 공수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마수에게도 마나는 생명을 좌우하는 존재였다. 그러니 마나가 굳어가는 마나 프로즌은 마수에게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나 프로즌에 걸린 마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약해진다.

그렇게 도태된 마수는 당연히 먹이 사슬에 걸려 사망, 인간을 습격할 일이 거의 없었고 습격한다고 해도 약해져 일반 짐승만도 못한 마수에게 뻔히 당해줄 인간은 없었으니, 마나 프로즌은 정말 드물게 발견되는 병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실비아를 습격한 마수는 마나 프로즌이 발병한 지 얼마 안 된 마수인지 아주 쌩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수의 발톱에 스쳐 상처를 입은 실비아도 마나 프로즌에 걸리고 말았고.

일반적으로 물리지 않으면 거의 발병되지 않는 마나 프로즌에 스친 상처만으로 감염된 실비아는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캔링을 수월하게 구입하기 위해섭니다. 캔링이 마나 프로즌의 증세를 억제하기 때문이죠.”

캔링. 일명 ‘마나 베리’라고 불리는 이 열매는 그레이츠 자작령의 북쪽 관문 근처에서 발견되는 채집물 중 하나이자 그레이츠 자작령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였다.

체내의 마나를 정순하게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이 열매는 특이하게도 이 근방에서만 자생하는데다가 채집량은 적지만 제법 비싼 값에 팔려 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캔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곳이 가장 적당한 장소이긴 했다. 채집량이 적어서 황도에서 구하려면 더욱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물론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마나 프로즌에 대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죠. 아무래도 이곳은 마수의 습격이 더욱 빈번한 곳이니까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한 지온의 표정은 괴로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행복했던 가정이 단 한 번 마수의 습격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아내까지 잃은데다가 딸아이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으니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클까.

모르긴 몰라도 그때의 일을 상기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올라 울분과 괴로움을 참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아마 그동안 자신의 질문을 슬쩍슬쩍 회피했던 것도 다시 그 일을 상기하고 싶지는 않아서일 테지.

로빈이 지온과 같은 입장이라도 그날의 일을 다시 입에 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죄송해요.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어요.”

“아닙니다. 다 지난 일인데요.”

“음… 부족하지만 저도 도울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외지인인 지온 님보다는 이곳 토박이인 제가 알아보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요. 제가 어려도 어쨌든 영주님의 핏줄이니까요.”

로빈의 이야기에 지온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사실 지온이 로빈에게 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은 건 순수하게 답답해서만은 아니었으니까.

처음에는 자력으로 어떻게든 실비아의 병을 치료하고자 했던 지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리 인심 좋은 곳이라고 해도 외부인이 드문 곳이었고 외지인인 자신이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는 것에 애로 사항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병을 앓고 치료한 내역 같은 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보니 외부인인 자신이 그런 걸 캐묻고 다니자 사람들은 대답을 회피하기만 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잡기 위해 사방을 들쑤시는 지온에게 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정말 치명적이었다. 그러니 실비아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 마음이 조급해진 지온에게는 어린 로빈의 도움이라도 가뭄의 단비같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 물론 영특해 보이는 로빈이었지만 지온이 기대하고 있는 건 로빈의 도움 자체는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건 로빈의 뒤에 있을 영주나 어른들의 도움이었으니까.

만약 로빈이 집으로 돌아가 귀여운 실비아의 이야기를 꺼내고 도움을 청한다면, 그리고 가족들이 거기에 반응을 보인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았다.

게다가 꾸준히 방문해 실비아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로빈이니 아마 당장 집에 가서 도움을 청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실비아가 나을 수만 있다면?

훗날 로빈이 실비아를 2부인이나 3부인으로 달라고 해도 아무런 불만 없이 흔쾌히 내어줄 수 있었다. 이렇게 한가로운 곳에서 영주의 부인으로 살 수 있다니, 실비아에게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어 보였으니 말이다.

귀엽지만 소심한 실비아에게는 황도보다 오히려 이런 곳이 나았다. 게다가 실비아도 로빈이 올 때마다 은근히 얼굴을 붉히는 것이…….

그러고 보니 어린 나이이지만 로빈이 참 귀엽게 생기고 의젓하긴 했다.

지온은 상념을 지우고 자신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분연하게 일어나 떠나는 로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부디 영주 저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해 실비아를 살릴 방도를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제발 어떻게든 살리기만 해줬으면…….

딸을 살릴 방법이 요원해 절망한 아버지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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