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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2화 (12/303)

12화

* * *

지온이 어떤 생각인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로빈은 어떻게든 실비아를 살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마나 프로즌이라니, 소설을 읽을 때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병이었다.

로빈은 우선 이 병이 무슨 병인지, 혹시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영주 저의 서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뒤졌을까. 아무래도 마나 프로즌이 드문 병이라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는지 별다른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얻은 정보도 지온이 알고 있던 캔링을 장복하면 병을 조금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하긴 솔직히 그렇게 드문 병이었으니 황도에서도 해답을 못 찾고 이곳까지 걸음을 옮겼겠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낀 로빈은 이 지역의 오리지널 토박이라 할 수 있는 외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지온의 말대로 마수의 습격이 가장 빈번한 이곳 사람이라면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민간요법이라도 알고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음? 마나 프로즌? 아아아, 미친 마수에게 물려서 몸이 굳는 병 말이구나. 나도 말로만 전해 들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구나.”

“혹시 무슨 특별한 치료법은 없나요?”

“글쎄, 그것까지는……. 아, 그러고 보니 그 병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 있었던 거 같은데…….”

“네? 그런 책이 있어요? 집 안 서재에는 없던데요.”

“아, 그러니? 내가 그걸 어디서 봤더라…….”

카인은 오랜만에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손자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기억을 세세하게 더듬어갔다.

로빈이 긴장된 얼굴로 그런 카인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는 동안, 카인의 표정은 조금씩 구겨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고통이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무언가 떠오른 듯 카인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하하. 기억났어. 비밀 창고에서 본 거였어!”

“비밀… 창고요?”

처음 듣는 생소한 이야기에 로빈의 고개가 갸웃거려지자 카인은 웃으며 로빈의 손을 이끌었다.

“하하. 사실 그레이츠 가문의 영주들이 대대로 자신의 애장품을 모아놓은 창고가 있단다. 난 그곳에서 그 책을 본 거지. 음…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한번 가보겠니? 어차피 나도 조만간 그곳에 들르려고 했었거든.”

“네! 좋아요!”

그래도 천 년이나 이어진 그레이츠 가문의 비밀 창고라…….

로빈의 마음도 조금은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딱 봐도 그리 화려하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골동품 한두 가지는 있지 않겠는가?

물론 마나 프로즌에 대하여 기록된 서책이 가장 중요했지만 돈 되는 물건이 한두 가지만 있어도 없는 살림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조손이 같이 방문한 곳은 영주 저의 한구석, 거대한 그림이 걸린 벽 앞이었다.

그레이츠 영지의 일부를 그려놓은 듯한 거대한 그림. 영주 저와 그곳을 둘러싼 풍광이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 아래쪽에는 작게 ‘Will’이라는 낙관 비슷한 사인이 그려져 있었다.

로빈도 집 안을 드나들 때 종종 봐왔던 그림이었는데 이 그림이 무려 아버지가 직접 그려 걸어놓은 거라는 이야기에 로빈도 감탄을 자아내곤 했었다.

그러고 보면 현대에 살았으면 마이클 잭슨이나, 고흐 같은 예술가가 되었을 법한 자신의 아버지가 정원수나 돌보고 있다니, 참 시대를 잘못 타고나긴 했다. 아니,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적당히 돈 벌면 바로 은퇴해 전원생활로 돌아섰을 테니 그렇게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으려나.

로빈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카인이 그림 옆쪽 벽을 슬쩍 밀어 넣었다.

그러자 튀어나온 작은 바늘. 카인이 바늘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자 벽 한쪽이 내려앉으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지도 못한 오버 테크놀로지에 로빈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당연한 노릇.

카인은 그런 손자의 모습이 귀여운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신기하지? 그레이츠 가문의 피를 이은 자에게만 반응하여 문을 열어주는 거란다.”

“와…….”

도대체 무슨 원리인지 알 순 없었지만, 신기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비밀 장소라니, 왠지 더욱 기대되는 기분이었다.

저택의 지하를 모두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지 창고의 넓이는 생각 이상이었다. 하긴 천 년 동안 수십 명의 영주가 자신의 애장품을 보관한 곳이니 이 정도 넓이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주의 수가 많았던 만큼 온갖 잡동사니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로빈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작은 상자에 가득 담겨있는 검은 구슬과 그 옆에 잔뜩 쌓여있는 가죽, 그리고 거대한 뼈들이었다.

“저건…….”

“아아, 예전에 한창 마수 토벌 붐이 일던 시기가 있었지. 마수의 뼈와 가죽이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이 밝혀진 직후라던가? 우리 그레이츠 영지는 그런 마수 토벌의 중심지였어. 그때가 우리 영지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구나. 그때 영지의 인구가 30만도 넘었었다지? 항상 용병도 넘쳐 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도 말로만 전해 들은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는 카인.

카인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영지를 다스리던 영주는 기념비적인 마수를 잡을 때마다 그 가죽과 뼈 일부를 애장품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뼈와 가죽들은 그때 잡았던 그 마수들의 전리품. 지금 시기에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고급 마수들의 전리품이 분명했다.

로빈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마수의 전리품.

한창 끓어오르던 마수 사냥 붐이 수그러든 것은 마수의 뼈나 가죽보다 더 쉽게 마나를 수용할 수 있는 아르마늄이라는 금속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마수 사냥보다 아르마늄을 캐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마나 전도율이나 마법을 부여하는 효율 역시 마수의 뼈보다는 아르마늄이 우월했다.

그 결과 아르마늄은 보석만큼 비싼 금속이 되었고, 마수 사냥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로빈이 알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소설의 내용상 마수의 전리품이 다시 한 번 주목받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가공 비용이 많이 들어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마수 전리품은 어떠한 이유로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가치의 물건이 된다.

특히 저렇게 상급 마수의 전리품이라면 아마 부르는 것이 값일 것이다. 물론 파는 것보다 직접 사용하는 것이 더 유용하겠지만.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옆의 작은 상자 안에 가득 담긴 검은 구슬이었다.

“할아버지, 저 상자 안에 검은 구슬은…….”

“아아, 저거. 등급이 높은 마수의 몸에서는 이상하게 저런 구슬이 나온다지? 당시 마법사들이 저걸 오랫동안 조사했는데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다들 버렸는데 그 당시 어린 소영주가 구슬치기를 하겠다고 그걸 다 모았다고 해. 어릴 때 저걸 가지고 놀던 소영주는 나중에 영주가 되어 저걸 자신의 애장품으로 남긴 거고.”

허. 저게 그럼 진짜 마수 핵이라고? 저게 저렇게 많다니.

아무리 버리는 걸 다 주워 모았다지만 저 정도라니. 당시 마수 사냥이 얼마나 활발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양이었다.

마수 핵. 훗날 마수 핵이라고 명명된 저 구슬은 엄청 고가의 물건이었다. 당시의 마법 기술로는 전혀 용도를 알 수 없었던 저 구슬의 용도가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저 구슬은 특별한 용해제와 같이 놀라운 약을 만드는 주재료였는데 그 약은 무려 사람의 마나 제어력을 올려주는 귀물이었다.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마도 제작자나 치료사, 끊임없이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까지 마나를 사용하는 모든 직종에 유용한 마나 제어력.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나 제어력을 올리고 마나를 모으는 데도 미약한 도움을 준다는 그 물약은 훗날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러니 그 물약의 주재료가 되는 마수 핵 역시 가격이 오를 수밖에.

게다가 고등급의 대형 마수에서만 나온다는 저 마수 핵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 물약이 나올 시기 역시 한가롭게 마수 사냥이나 하기는 힘든 시기였으니 더욱더 그러했고.

생각보다 더 엄청난 물건을 보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진 로빈은 카인의 중얼거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흠… 마수 가죽이라… 저건 팔리려나? 저런 특별한 건 모으는 취미가 있는 귀족도 있을 테니…….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정말 큰일 날 소리에 로빈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할아버지! 안 돼요! 팔면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저 가죽이랑 뼈 그리고 그 옆의 구슬은 절~대 팔면 안 돼요! 아셨죠?”

카인은 칠색 팔색을 하는 손자의 모습이 어이없어 허허, 하고 웃으며 로빈을 진정시켰다.

“허허. 녀석, 알았다. 알았으니 진정하거라.”

네, 할아버지. 저건 진짜 존버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빛이 보여요.

이렇게 생각한 로빈은 환하게 웃으며 할아버지를 끌어안았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뜬금없는 손자의 애정 공세가 의아하긴 했지만, 카인은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로빈을 마주 안을 뿐이었다.

“원, 녀석도 참…….”

로빈을 끌어안은 카인의 기분 역시 최고였다.

두 조손을 모두 기쁘게 한 창고 나들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로빈의 손에는 카인이 말해준 『헤르니의 여행록: 제국 서북편』이 들려있었고, 특히 로빈은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해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아니지. 저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당장 중요한 건 마나 프로즌이야.”

로빈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카인이 소개해 준 『헤르니의 여행록: 제국 서북편』을 펴 그레이츠 영지에 대하여 소개된 부분을 세세히 읽어갔다.

그레이츠 영지는 마수가 많은 곳이다 보니 습격도 빈번하다. 그리고 가끔 이상한 마수에게 물려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몸이 완전히 굳어지고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

하지만 사람들의 지혜는 역시 대단했다. 그레이츠령 북쪽 끝에 위치한 카롯 마을에서는 이 무서운 병을 민간요법으로 치료하기도 한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찾았다!”

로빈은 쾌재를 부르며 카롯 마을이란 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가족들이 티타임을 즐기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할아버지! 카롯 마을! 카롯 마을이 어디예요?”

하루의 일과 같은 가족과의 티타임을 즐기던 카인은 손자가 뛰쳐나오며 소리치자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롯 마을? 그런 마을이 있던가?”

“여기 이 책에 있다는데요? 영지 북쪽 끝에요!”

로빈이 흥분한 듯 소리치자 로빈이 흔들던 책을 잠시 쳐다보던 카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로빈을 타박했다.

“원, 녀석아. 그게 언제 쓰인 책인데 아직까지……. 음… 카롯 마을이라니, 난 처음 듣는 마을이구나. 게다가 영지 북쪽에 있던 마을은 다 관문 아래쪽으로 내려왔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적어도 수백 년은 된 책. 그때 있던 마을이 아직 남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게다가 영지가 축소되며 많은 마을이 사라진 그레이츠 자작령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로빈이 김빠진 표정으로 축 늘어지자 마리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어머… 로빈이 콕 찍은 그 아이가 그런 병에 걸렸다고? 곤란하구나. 그나저나 몸이 굳는 병이라…….”

자신의 설명에 뭔가 오해한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로빈은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았다. 기운이 너무 빠져 반론할 기분조차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그러고 보니 작년인가, 보에니 마을에서 그런 비슷한 병에 걸린 아이가 있었다고 하던가? 뭘 먹고 많이 좋아졌다던데… 뭐였지?”

하지만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중얼거리는 마리아나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영지의 처녀들과 종종 티타임을 즐기는 마라아나답게, 처녀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무슨 정보를 접한 모양이었다.

“보에니 마을이요? 거긴 또 어디지? 어쨌든 루이 경, 당장 가요!”

정신을 차린 로빈은 자신의 보디가드 루이를 이끌고 서둘러 영주 저를 나섰다. 책에서 정보를 얻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된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산에서였다.

서둘러 집을 나서는 로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리아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휴, 풋풋해라. 우리 로빈이 그 아이를 제법 많이 좋아하나 보네. 빠르기도 하지. 우리 아들은 뭐든 다 빠르다니까. 그나저나 로빈이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얼핏 들어도 심상치 않은 병에 걸린 그 아이 때문에 로빈이 상처 입을까 봐 걱정스러운 마리아나는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기원했다.

“얘, 넌 기다렸다가 로빈이 돌아오면 로빈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렴. 중요한 일이야. 다른 아이들이게도 그렇게 전하고.”

하녀 하나에게 로빈이 알아올 민간요법을 성실히 도와주라고 지시하면서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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