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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8화 (18/303)

18화

이름도 곰인데, 용병단도 곰이고 타이틀도 곰이라니. 솔직히 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생김새도 일반적인 이곳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거의 백인에 가까운 이곳 사람들과 비교하면 흑웅은 라틴계? 이런 느낌이 좀 났으니 말이다. 살짝 황인종과 비슷한 피부색이라고 할까? 물론 이목구비는 뚜렷하니 서양인 느낌이었지만.

이상하긴 했지만, 눈앞에 사람을 두고 길게 딴생각을 할 순 없어 바로 미리 만들어놓았던 치료제를 흑웅에게 내밀었다. 이런 사람을 상대할 때는 이리저리 계산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냥 약을 내어주는 것이 나았다.

로빈이 두말하지 않고 바로 약을 내밀자 흑웅은 조금 감탄한 듯한 얼굴로 다섯 살 로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혼자만의 생각을 한 후.

“만약 이 약으로 제가 낫는다면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저 말은 이곳에서 목숨 바쳐 은혜를 갚겠다는 의미였다.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하죠. 우선 약부터 드세요. 완전히 회복되는 데 며칠은 걸릴 테니까요.”

로빈이 말을 돌리자 흑웅은 묘한 눈으로 로빈을 잠시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이고 이곳을 떠나갔다. 아마 자신의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보셔서 알겠지만 긴말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두말하는 성격도 아닙니다. 아마 병이 나으면 이곳에 자리 잡겠죠. 생각보다 좋은 친구들이니 많은 도움이 될 거고요.”

흑웅이 너무 직접적으로 약부터 요구하는 바람에 로빈의 기분이 상했을까 봐 지온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로빈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말만 앞서는 사람보다는 훨씬 믿음직하긴 하네요.”

그리고 로빈이 이렇게 말하자 그제야 안심한 듯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저런 태도 때문에 의뢰주와도 종종 트러블이 있었던 흑웅인데 아직도 저 버릇을 못 고쳤다. 하긴 만약 이곳에서 자리 잡는다면 저런 성격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저 친구를 아는 사람들은 다 진국이라고 하니 이곳에서도 금방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지온은 기사들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수가 넉넉하지 않은 이곳에 흑웅이 정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흑웅은 치료를 위해 바로 칩거에 들어갔지만, 그 단원들은 지온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남았다.

로빈은 지온과 친분 있는 용병단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단원들도 자신들이 구하지 못한 약을 단장에게 건네준 꼬맹이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거리낌 없이 편하게 대했다. 물론 나중에 로빈이 영주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놀라 급하게 사과하긴 했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저 직설적인 흑웅이 사실은 내 가족에게만 따듯하고 은근히 츤데레 같은 남자라는 이야기라든지.

실비아가 편하게 캔링을 구할 수 있게 그레이츠 영지로 보내고 자신들은 다른 곳에서 캔링을 구하기 위해 쓸데없이 고생한 이야기라든지.

어떤 치료사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절고 있는 다리부터 잘라야 한다고 나서는 바람에 때릴 뻔했다는 이야기 등등.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만약 단장이 진짜 완쾌된다면 단원들의 가족들까지 다 데리고 이곳에서 정착할 생각이라는 이야기였다.

로빈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정착을 고민하는 단원들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용병들이 왜 용병 일을 하는가.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용병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었고, 그중에 뛰어난 자들은 기사보다 나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은 곰 용병단은 그 뛰어난 용병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한 인원은 모두 17명으로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실력이 중급 기사 정도였고, 단장인 흑웅은 평범한 영지의 기사단장급의 실력이란다.

이 정도 실력이면 오라는 곳도 많을 텐데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거친 용병 일을 하는 건 아무래도 한자리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품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용병대의 단원들은 자신의 단장을 위해 그 자유마저도 포기할 각오였다. 흑웅이 자신의 가족에게는 따듯한 남자라더니 확실히 인망이 있긴 한가 보다.

“이거 생각을 좀 달리해야겠는데. 그냥 단순히 한두 번 고용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더니……. 그런데 지금 우리 영지 사정으로 17명이나 되는 기사급 용병을 고용할 수 있으려나?”

진짜 이곳에 남는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고민이었지만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영지 자금에 대하여 간섭해야 하려나.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로빈의 고민도 점점 깊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로빈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회의장으로 이끄는 카인의 모습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라왔더니 어느새 영지 재정을 의논하는 자리에 자신이 끼어있었으니 말이다. 카인과 지온, 폴까지 다 모여있는 걸 보니 갑자기 생긴 1만 7천 골드의 사용처를 의논하는 자리인 모양이었다.

검은 곰 용병단 때문에 자신도 이곳에 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자기가 나서기도 전에 강제로 끌려오니 급우울해졌다.

청개구리 심보라고나 할까?

특히 다섯 살 아동의 노동력을 가열하게 착취하는 카인의 행태가 조금 불만스럽기까지 했다. 헬 조선에서도 아동의 노동력을 이렇게까지 착취하진 않았건만.

로빈은 뚱한 얼굴로 회의를 진행하는 세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급한 건 영지의 자급자족 아니겠습니까? 언제까지 외부에서 식량을 구매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만약 흉년이라도 들면 정말 곤란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큰돈이 생겼을 때 그쪽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 마수 범람의 시기가 코앞까지 다가왔어. 그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마수가 늘어나는 건 분명하다는 뜻이지. 그러니 가장 급한 건 영지 방어라네. 기사들의 무장도 손봐야 하고 북쪽 관문의 마법진도 강화, 보수해야 해.”

영지 개간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자는 지온과 우선 영지 방어를 공고히 하자는 폴의 주장.

두 이야기 모두 일리가 있어 카인의 고민이 깊어 보였다.

그나저나 마수 범람이라.

마수도 자신들만의 생태계와 먹이 사슬을 이루고 있지만, 어느 순간 흐름이 가속화되어 그 수가 급증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 많은 수의 마수들이 부족한 먹이를 찾아 사방에서 날뛰게 되면서 인간이 사는 곳까지 내려와 습격하는 것이 마수 범람이며, 십수 년을 주기로 반복한다고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마지막 마수 범람이 15년 전이었으니 확실히 폴의 말대로 그 주기가 눈앞으로 오긴 했다.

그리고 마수 범람을 떠올렸을 때 로빈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슨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요즘 황당한 일을 제법 겪어 담이 좀 커졌다고 자부하는 로빈으로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기이한 일이었다.

시작은 눈이 오는 북쪽 관문에서 두 기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하… 올해 첫눈은 왜 이렇게 많이 내리는 거야? 첫눈이 며칠 동안 오는 경우도 있었나?]

[하하. 드문 일이지. 게다가 예년보다 보름도 넘게 빨랐으니까. 올해 겨울은 유독 춥겠어.]

[겨울이 추우면 사람들이 고생하겠군. 후…….]

[그렇겠지. 어? 잠깐, 저게 뭐지?]

[마… 마수다. 당장 경보를 울려!]

그렇게 경보가 울리고 기사들이 모두 나서 마수들을 상대했지만, 그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기사들이 상대할 수 없는 강한 마수는 아니었지만, 그 마수가 관문을 넘어 영지 안으로 침입하는 건 막을 수 없는 규모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관문에 침입을 방지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있다는데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상당수의 마수가 영지 안으로 들어왔고 영상은 수많은 영지민이 마수에게 공격당해 죽고 다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허… 이거였어? 영지민이 줄어드는 이유가? 기가 막히는군.’옆에 사람들이 있는 관계로 “ ”를 ‘ ’로 수정했습니다.

로빈은 며칠 전 자신이 고민했던 그 퀘스트 보상을 지금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꼬인 퀘스트였다. 켄트를 몰아냈다고 방심하다가 뒤통수 맞지 말고 마수를 막을 준비를 하라는 뜻인가?

그럴 거면 퀘스트를 제대로 주든지.

아무래도 이 퀘스트는 이런 거 같았다.

켄트 때문에 가난해진 영지가 마수 범람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많은 영지민을 잃게 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

하지만 만약 제대로 된 퀘스트라면 영지 자금을 확보해 마수들로부터 영지민을 보호하라,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꼭 집어서 켄트만 저격해 놓고 그 보상으로 마수에 대하여 알려주다니.

자신이 삐딱해서 그런지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왠지 좀 속은 기분도 지울 수 없었고.

솔직히 로빈도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 영지의 자금 사정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온의 이야기에 더욱더 솔깃했다고 할까?

우선 영지에 돈이 돌고 먹고살 만해야 방어를 확충하든, 검은 곰 용병단을 고용하든 할 거 아닌가. 만약 이대로 이 돈을 영지 보호에 다 투자하게 된다면 내년에도 또 자금 문제로 고민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 물 건너갔다. 지금은 무조건 영지 방어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우선 영지민들이 살아야 내일 일을 고민할 수 있을 테니까.

카인도 그렇게 결론을 내렸는지 폴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 폴 경. 영지 방어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가?”

“망가진 관문에 마법진을 보수하고 기사들에게 제대로 된 마법 갑옷을 보급하려면 아마 1만 5천 골드 이상이 들 겁니다.”

“하…….”

1만 5천 골드라는 이야기에 로빈도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영지 방비가 시급해도 거의 모든 돈을 여기에 투입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폴의 이야기도 공감할 만했다. 자신이 본 영상에서도 관문의 마법진이 움직이지 않아 영지민이 큰 피해를 보았고, 기사들의 무장이 빈약해 귀한 기사들도 많이 잃지 않았던가.

“폴 경, 마법진의 보수 및 유지 비용만 따진다면 얼마죠?”

“마법진 보수 비용은 대략 3천 골드 정도일 겁니다.”

폴 경의 이야기에 로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결국 갑옷 값이 1만 2천 골드인 건가?

아니, 폴 경. 기사들을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아니지, 이 정도 목돈이 영지에 들어올 일이 앞으로는 없을 테니 이 기회에 가장 비싼 걸 해결하려는 생각인가?

하긴 빈약한 무장 때문에 영지 전력이 야금야금 깎이는 것보다는 목돈이 있을 때 그걸 보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그럴 바에는 좀 더 생산적인 방법을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아르마늄 마법 갑옷이 1만 2천 골드라는 거네요. 그런데 그 방어구를 사면 그걸로 끝인가요? 제가 본 책에서는 마법 갑옷은 주기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건… 그렇습니다.”

“마법진 보수 비용이나 마법 갑옷 점검 비용이나 재료비보다는 오히려 마법 공학자의 출장비가 가장 많이 든다는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마법 공학자를 한 분 고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법 공학자 한 분을 모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죠?”

“그것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마이너 공학자를 고용해도 계약금 3천 골드 이상, 연봉으로 1천 골드는 줘야 할 겁니다. 영지 입장에서는 이게 더 부담되지 않을까요?”

“흠…….”

이 시대의 대표적인 공돌이 마법 공학자는 마법진의 부여, 마법 물품의 개발, 생산 등을 책임지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비싼 인력이었고.

특히 자신의 마나로 직접 물품에 마법을 부여할 수 있는 메이저 마법 공학자를 고용하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영지에서는 스크롤과 마법 재료를 이용해 마법 물품을 손볼 수 있는 마이너 마법 공학자를 고용해 영지의 마법 물품을 관리하곤 한다.

그 고용 비용이 감당하기 버거운 그레이츠 영지 같은 경우에는 마이너 마법 공학자도 없었지만.

그렇게 카인과 로빈, 폴이 모두 고민하고 있을 때 지온이 넌지시 운을 띄웠다.

“어쩌면 저렴한 가격에 모실 수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순간 모든 사람의 눈이 일제히 자신에게 모이자 흠칫한 지온은 헛기침을 몇 번 내뱉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도 들은 말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원로 마법 공학자 분 중에 마수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적극적으로 마수에 대하여 연구하게만 해주면 사소한 일들은 염가로 해결해 주겠다고 하시는 분인데, 아시다시피 요즘 시대에 마수학이란 게 참…….”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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