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소설 속 로빈-20화 (20/303)

20화

다만 흑웅과 검은 곰 용병단의 처우는 아직 논의의 대상이었다. 폴은 그들을 그냥 기사단에 합류시키고자 했지만 로빈이 반대하고 있었으니까.

기사단의 수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로빈이 보기에 그건 좀 무리였다.

물론 영지의 기사단이 여느 기사단과 달리 용병이나 한다는 마수 잡이가 주된 임무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사단은 기사단이었고 그에 따라 규율이 엄정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들끼리 끈끈하게 묶인 저들이 쉽게 기사들과 융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폴은 닥치면 다 하게 된다고 하는데 시골(?) 사람답게 그런 면에서는 참 막무가내였다.

딱히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 사람들은 영지에 정식으로 임관했다기보다는 단장의 목숨 값 때문에 의리로 남은 사람들인데.

로빈은 흑웅도 은근히 걱정하고 있길래 차라리 용병단원들을 모아 특별한 기사단을 따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흑웅이 단장을 맡고 말이다.

폴도 단시일 내에 용병단과 기사단이 융화하기 힘들다는 점만은 인정했는지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용병단이 영지에 완전히 융화되면 그때 그들의 처우를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은 그렇게 일단락 지었다.

* * *

그렇게 용병단 일까지 대충 마무리 짓고 황도로 출발하는 날.

로빈의 어머니 마리아나는 무려 한 달도 넘게 집을 비우는 아들을 눈물로 배웅하고 있었다.

“로빈,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지온 님 말도 잘 듣고. 사고 치면 안 돼. 알았지?”

으레 하는 평범한 당부로 시작한 작별 인사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마워 감사해하던 로빈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질릴 정도였다.

“알았어요,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안전하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올 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요 녀석아. 지온 님, 잘 부탁드립니다. 실비도 조심해서 다녀와.”

“네. 마님.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테니까요.”

결국 로빈이 나서서 진정시킨 다음에야 겨우 작별 인사를 마치고 출발할 수 있었다.

“하하. 마님이 아주 자상하시네요.”

“네. 그렇죠. 가끔은 너무 자상해서 곤란하다고나 할까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노 상단주는 모자의 다정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조금 창피했던 로빈은 왜 대체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남짓 걸릴 로빈의 황도행이 시작되었다.

황도를 향해 출발하면서 로빈은 기대감을 가짐과 동시에 각오도 다지고 있었다.

한 달도 넘게 걸리는 먼 여행.

온갖 피곤한 이벤트가 자신을 기다릴 거로 생각해서였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긴 여행을 떠날 때면 도적, 몬스터의 습격, 흑막과의 조우, 심지어 라이벌과의 만남까지 다양한 고난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여행 중에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적이요? 호위 용병이 열 명도 넘는데 피곤하게 이런 상단을 습격할 이유가 있나요? 게다가 대규모 도적 떼가 다 토벌된 이후로 더 이상 큰 무리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마수 산맥이랑은 다르죠. 이 근처에는 잔챙이들밖에 없어요.”

마수나 도적에 대해서는 이런 반응이었고. 그 외 흑막이나 라이벌은 뭐, 내가 주인공도 아닌데 그럴 걸 만날 리가.

어쨌든 덕분에 여행은 그냥 순조롭고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귀여운 실비아랑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것도 자신이 실수하는 바람에 그냥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번 황도행에서 실비아의 선생님을 구하고 싶었던 로빈은 그녀에게 틈틈이 연금술의 기초 이론을 완전히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로빈과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흥분되고 즐거운지 실비아가 도통 책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실비아의 이해력이면 황도에 도착하기 전에 이 책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텐데.

그래서 로빈이 실비아에게 당근을 던졌다.

“지… 진짜요? 이 책을 다 이해하면 소원을 들어주신다고요?”

“응. 대신 불가능한 건 말고.”

그때부터 갑자기 불이 붙은 실비아가 미친 듯이 책만 파고 있었다.

솔직히 실비아의 집중력을 무시했다. 설마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이 정도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할 줄이야.

역시 될성부른 떡잎은 다르단 걸까? 오히려 저 집중력에 로빈이 두려움을 느낄 지경.

진짜 황도에 도착하기 전에 저 책을 마스터할 거 같은 불안함에 로빈은 무슨 소원을 빌 거냐고 넌지시 물어봤는데 실비아는 앙큼하게 로빈과의 데이트를 원했다.

하긴 다섯 살짜리 아이 둘이 노는 걸 데이트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테니 맛집 탐방 정도 되려나.

그녀가 원한 건 로빈과 같이 ‘초코페숄라’라는 디저트 가게에서 디저트를 먹는 것이었는데, 지온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특별히 귀족용 고급 매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부탁이라 로빈도 적잖이 안심할 수 있었고.

어쨌든 이렇게 실비아도 독서 삼매경인 상황이라 로빈에게는 심심함과 무료함만 남았다.

그나마 그레이츠 자작령과 너무나 다른 다양한 영지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낙이리라.

“오, 도련님. 왜 이 마차에…….”

“하… 실비아까지 절 버리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상단주님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들어볼까 하고요.”

“아, 실비아 양의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만, 그건 도련님의 자업자득이 아닐는지…….”

“뭐, 그건 그렇죠.”

주노는 뚱한 표정으로 쿨하게 인정하는 로빈의 모습이 어이없어 폭소를 터트렸다.

저 표정이 어떻게 다섯 살의 반응이란 말인가, 게다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니.

확실히 재미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무료한 참이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주노의 반응에 로빈도 편한 마음으로 마차에 안착했다.

이름: 주노 라테일

성향: 성실. 독기. 보은

타이틀: 대박을 보는 안목(UC)

타이틀을 봤을 때 눈앞의 주노는 거상의 재목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저 안목 있는 건실한 상인 정도라고 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래서 로빈의 사업 파트너로는 매우 적합했다. 로빈이 원하는 수준의 상인은 영지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안전하게 팔아줄 상인 정도였으니까.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있어 보여 더욱 좋았고.

“이곳은 리안나 백작령입니다. 영지 아래쪽에 생산성 좋은 평야가 있어 제법 안정된 곳이죠. 세수도 많은 편이고요.”

“그렇군요. 확실히 그래 보이네요. 그런데 저쪽에 저건 뭔가요?”

로빈이 영지 구석에 보이는 큰 건물을 가리키자 주노는 마법 공장이라고 알려주었다.

“저곳은 의류를 생산하는 마법 공장입니다. 그러니까… 옷을 만드는 곳이란 뜻이죠.”

어린 로빈이 마법 공장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할까 봐 아주 간단하게 설명한 주노. 하지만 로빈은 마법 공장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을 뿐.

로빈은 책에서 보고 ‘이게 뭐야?’라며 의문을 가졌던 마법 공장의 실체를 확인하고 어이가 없었다. ‘설마 대량으로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그 공장?’이라는 의문이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로빈도 책으로 알게 된 것인데 이곳에는 무려 마나 에너지로 돌아가는 공장들이 있었다.

공장이 생겨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 자본을 축적한 자가 생겨나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부유한 피지배 계층이 늘어나게 되면서 결국에는 기존 지배 계층의 위치가 흔들린다.

전생에서의 가방끈이 짧은 로빈이었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흐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공장 비슷한 생산 시설이 처음 생겨난 지도 거의 100년이 넘었다는데.

“와, 물건을 막 생산하면 돈을 많이 벌겠네요.”

“네? 돈이요?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저건 남는 게 별로 없거든요.”

주노의 설명에 의하면 저 공장은 유지비가 아주 많이 든단다. 지금 로빈이 모시러 가는 마법 공학자가 공장을 관리해야 하고 비싼 마나석도 꾸준히 투자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옷의 가격은 별로 비싸지 않았다. 그러니 옷을 다 팔아도 별로 남는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황실이었다.

황도와 그 인근에는 제국에서 가장 큰 생산 기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실의 자본을 이용해 엄청난 물량의 생필품들을 생산하고 있었고.

황실은 자신들이 생산한 대량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제국 곳곳에 팔고 있었는데, 심지어 가격까지 간섭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레이츠 자작령 같은 가난한 영지에서도 그럭저럭 튼튼하고 기능성 좋은 옷들을 저렴하게 사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황실에서 가격까지 간섭하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따로 공장을 돌려도 별 볼 일 없다는 거였다.

“그럼 돈도 안 되는데 저 공장은 왜 만들었을까요?”

“음…….”

로빈의 의문에 주노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허세죠. 귀족의 허세. 자신도 황실처럼 물건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허세요. 사실 저 정도 규모의 공장을 돌리는 건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귀족이면 저런 공장 한두 개는 가지고 있어야 면이 서는 거죠.”

“아, 돈지랄.”

그거라면 확실히 이해가 가긴 했다. 돈이 많은 귀족이라면 그 정도 허세와 과시는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런 귀족들의 허세 때문에 물건이 더 잘 돌고 백성들이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다. 귀족이 만든 물건이라도 황실에서 정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순 없었으니 말이다.

“하… 진짜 웃긴 곳이야. 이게 말이 되나?”

이 세계는 빈부 격차가 대단히 심한 세계였다. 아마 계급이 있는 사회고 황실과 귀족들의 부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평민들이 큰돈을 벌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다면 재능을 폭발시켜 기사나 마법 공학자, 연금술사, 치료사 같은 초전문직으로 일하거나 황실의 관리가 되든가, 그도 아니면 상인이 되어 자신만의 상단을 꾸리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극소수의 인원 외에는 그냥 평범하게 농사를 짓거나 영주가 운영하는 저런 공장, 혹은 상단에 취직해 그렇게 살아간다. 물론 병사나 용병이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로빈은 이렇게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빈익빈 부익부에 대한 정신적 박탈감도 없단 말인가? 욕망이나 욕심은?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렇게 황실에서 생산을 과점하고 저렴하게 물건을 공급하면서 적은 돈으로도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먹고살 만한데 혁명을 꿈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주노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귀족의 소비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인데 이곳 귀족들은 절대로 탈세를 하지 않는단다. 정해진 세금을 정확히 납부하지 않는 것은 귀족으로서 치욕스러운 일이라나?

로빈으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여기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한단다. 평민들을 제법 수탈한다는 3황자를 따르는 귀족들도 세금만은 정확히 낸다니 정말 어이없었다.

하긴 세금을 착복했다고 바로 사형을 때려버리는 세계니 아무리 귀족이라도 그런 거로 배짱을 부릴 수는 없는 건가?

왠지 이곳에서는 세금을 포탈하면 귀족이라도 황도에 있다는 귀족 재판소에 끌려가 극형을 당할 거 같았다. 귀족들 사이에서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세금 포탈을 했으니 다른 귀족들에게 구명을 청할 수도 없을 테고.

이곳에서는 세금 포탈이 진정한 망트리로군.

로빈은 자신도 세금은 절대 건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세금을 그대로 내는 게 바보인 세상에서 살아온 경험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세금을 속이면 바로 파멸행이었으니까.

그리고 주노와 대화하다가 느낀 것인데 이곳에서 돈을 벌려면 무조건 귀족에게 먹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했다. 딱 들어봐도 박리다매는 그냥 의미 없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돈도 안 되는 공장을 돌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면 누굴 상대할까?

고급품을 사용하는 귀족들은 조금 더 좋은 물건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한다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호구 중의 호구였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자신과 거래하는 상대의 격도 따진단다. 상대가 자신과 격이 맞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거래도 꺼린다는 의미였다.

로빈은 자신이 그나마 귀족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그 호구들에게 물건을 팔지도 못할 게 아닌가.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