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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4화 (24/303)

24화

허… 미쳤다. 진짜 미쳤어. 여성의 몸으로 작위까지 받았다 싶어서 신기했는데 이런 능력자라니.

저 S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스페셜? S급? 정확히는 몰라도 정말 대단하다는 건 분명했다.

게다가 성향에 떡하니 있는 제자 사랑은 뭐지? 성향 창에는 가끔 저렇게 뜬금없는 게 나온다니까.

“이 친구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제자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줄을 섰지. 다만 눈이 너무 높아서 아직까지 제자를 못 구했어.”

“그러게. 제가가 생기면 내가 진짜 예뻐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다들 눈에 차지를 않으니. 적어도 내 제자면 나랑 말은 통해야 할 거 아냐?”

웬만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좀 심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분은 절대 아니었다.

네, 그러셔야죠. 가려 받으셔야죠. 말도 안 통하면 어디 제자라고 할 수 있나요?

어쨌든 눈앞에 계신 이 대단한 분은 제자가 매우 급한 분인가 보다. 우리 실비가 저 어른의 마음에 들 수 있겠지?

실비아를 믿는 로빈이었지만 워낙 공부한 기간이 짧았고 저 어른의 능력이 과하게 출중해 보여 좀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로빈이 걱정하든 말든 실비아와 도리아의 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마 대화의 탈을 쓴 테스트일 것이다.

솔직히 이번에도 로빈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 거였지만 이번에는 왠지 실비아도 몇몇 부분에서는 도리아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리아가 다르게 설명하니 다시 이해하고 대답하는 걸 보니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했을까?

“호호. 이 아이는 천재야. 아니, 이런 보물이 대체 어디에 숨어있었지? 이 아이가 다섯 살이라고? 호호호.”

도리아가 크게 웃음 짓는 걸 보니 아마 합격인 모양이었다. 캬~ 장하다, 우리 실비.

“마음에 드나?”

“마음에 안 들 수가 있을까? 이 아이가 처음 연금술을 알게 된 책이 그 미친 레이산의 『기초 연금학』이래. 이게 말이 돼?”

“응? 그 책으로 연금술에 입문할 수도 있나? 그거 병신같이 같은 말도 더럽게 어렵게 써놓아서 아무도 안 보는 책이잖아?”

“그러니까. 그걸 보고 이해했다니까.”

“허…….”

“연금술 수준이야 당연히 별거 없지. 공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이해력이 미쳤어. 가르치기만 하면 다 알아듣고 이해할 녀석이라고. 이 아이가 사는 곳이 그레이츠 자작령이라고 했지? 나도 같이 가. 난 무조건 이 아이를 제자로 받을 거야.”

“끌끌. 눈 돌아갔구먼. 좋아. 4일 후에 출발한다니 연구실 정리하라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두 분을 실비아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를 마친 도리아는 자상하게 웃으며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선생님이 앞으로 많이 가르쳐줄게. 나중에 보자. 거기, 로빈 그레이츠 도련님이라고 했죠? 제가 이 아이를 맡아보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감사하죠.”

“호호. 재미있는 반응이네요. 그럼 연구실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급하니 전 이만 가볼게요.”

도리아가 번개같이 연구실을 떠나자 그 모습을 본 히센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저 친구 급했구먼. 로빈, 저래 보여도 저 친구가 이 방면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야. 안심해. 좋은 스승이 되어줄 테니.”

그러게요. 딱 봐도 전문가 같네요. 크, 역시 실비.

도리아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에 실비에게 건네준 책이 별로 좋은 책은 아닌 모양인데 그걸 실비가 자력으로 극복했나 보다. 실비아의 능력이 대단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일을 망칠 뻔했다.

하지만 영주 저 서재에 있던 연금술 관련 서적이 그런 거지 같은 녀석일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아니지, 덕분에 실비아의 능력이 더 두드러졌으니 오히려 다행인 건가?

어쨌든 실비아는 무사히 선생님을 구했다. 그것도 기대보다 훨씬 괜찮은 선생님이었다.

* * *

그렇게 무사히 선생님을 구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실비아는 로빈의 손을 슬쩍 잡으며 이야기했다.

“도련님, 저 잘한 거 같은데 소원은…….”

“오, 우리 실비. 잘했어. 우리 실비,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내일 당장 가자.”

“진짜요? 헤헤헤.”

로빈이 크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실비아도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될성부른 실비아를 위해 그깟 디저트쯤이야. 실비야, 무럭무럭 이대로만 자라다오. 어차피 내일은 종일 시간이 비니 실비아에게 할애해야겠다.

영지도 돌아갈 때까지 남은 나흘 동안 로빈은 실비아와 황도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디저트 가게에 들르는 것도 당연한 일과였고.

알고 보니 이 가게는 예전에 실비아의 어머니가 즐겨 다니던 곳이었단다.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진 실비아를 보니 왠지 좀 짠해지기도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맛있는 케이크를 들이밀며 달래주자 기분이 좋아진 듯 살며시 미소 짓는 것도 좀 귀여웠고.

몰론 아버지에게 선물(?)할 고급 물감을 구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로빈은 아버지가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로빈이 머물고 있는 숙소 앞으로 모든 일행이 다시 모였다.

가족들을 데리러 간 용병 단원들, 그리고 자신의 짐을 따로 준비한 히센과 도리아, 영지에 필요한 마법 재료들을 구입한 지온이 일행의 전부였다.

상단주 주노는 아쉽게 작별을 고했다. 아마 그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은 영지에 생필품을 판매할 다음 방문일 것이다. 시기는 대충 겨울이 끝날 때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히센과 도리아는 자신의 실험 장비를 따로 마차에 챙겼는데 그 양이 제법 많았다. 축소화 마법 스크롤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큰 마차에 겨우 다 실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축소화가 대상을 크게 줄여주는 건 아니라지만 저 정도 양이라니. 만약 저걸 영지에서 다 지원해 줘야 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출발 전 로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히센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보름 정도는 걸리는 마차 여행 일정인데 노구(?)의 히센이 괜찮을지 걱정되어서였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막상 마차를 보니 황도로 오는 길이 매우 피곤했다는 걸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로빈이 조심스럽게 마차 여행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히센은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 괜찮을 게 뭐냐고 반문하다 그의 표정을 읽어내고는 어이없다는 듯 한탄을 내뱉었다.

“하… 요 녀석아. 내가 외형이 이래서 그렇지. 아직 한창때야. 팔팔하다고.”

그러면서 두 팔을 걷어붙이는데 슬림하지만 근육으로 꽉 차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마나를 익히는 자들 모두 체력에 신경 써야 한다고 했던가?

그건 다른 소설처럼 마법사라고 골방에 앉아서 마나 서클만 돌리는 세계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애당초 마나 호흡법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정확한 원리를 이해할 순 없지만 강렬한 운동으로 체내의 마나를 활성화하고 그 마나를 제어해 체내의 마나 기관에 모은다는데, 도대체 마나 기관은 또 뭔지.

어쨌든 중요한 건 치료사, 마법 공학자, 연금술사, 흑마법사. 어떤 직종이든 체력은 다들 좋다는 거였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고, 풍부한 마나가 뒤따른다는 참 고루하면서도 바람직한 원칙이 지켜지는 그런 세상이었다.

로빈은 아직 현역인 히센을 너무 무시한 거 같아 고개 숙여 사과했는데 이어지는 히센의 이야기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 외모의 히센이 무려 자신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적어도 환갑은 넘어 보이는데 너무한 거 아냐?

이야기를 들어보니 히센은 어려서부터 탁월한 노안이었고 20대부터 머리가 희게 세면서 조짐을 보이더니 30대가 넘어가면서는 수염까지 하얗게 세었단다.

아니, 그럼 수염이라도 깎으면 되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안 된다나?

20대부터 서서히 그분(?)의 모습으로 변해갔다니 이거 왠지 봉구 때문인 거 같은데, 너무 노안이라 결혼도 못 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 봉구야. 네가 한 사람의 인생을… 아무리 진짜 대마법사를 만들고 싶어도 그렇지. 후…….

그러고 보니 도리아를 처음 봤을 때 도리아가 반말을 사용하는 게 이상했는데 진짜 같은 연배였나 보다.

도리아는 이제 겨우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마나 활성화가 두드러질수록 노화도 느려지기 때문에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저 정도 동안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냥 히센이 매우 특별한 경우일 뿐.

어쨌든 히센까지 여행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하니 안심하고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지루했다.

지온과 히센은 앞으로 있을 마법 갑옷 제작에 대하여 토론하고 있었고, 실비아는 도리아에게 연금술에 대하여 배우느라 바빴으니 말이다.

그러니 혼자 깍두기가 되어버린 로빈은 또 붕 뜨게 되었다. 올 때는 주노 상단주라도 있었지,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었으니.

그래서 로빈은 새로 합류한 용병단의 가족들에게 눈을 돌렸다.

검은 곰 용병단은 젊은 용병들로만 구성된 집단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가족이라고 해도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우선 미혼인 자들이 태반에 기껏해야 부모나 형제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없는 자들도 있었다.

물론 이제 영지에 정착하게 되었으니 그들도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용병단 남자들이 좀 거칠어 보여도 은근히 준수하던데 영지 처녀들의 마음이 좀 설렐 것 같았다.

용병의 가족 중 가장 눈에 들어온 사람은 하워드의 여동생이라는 세나와 로빈 또래의 꼬마 둘이었다.

우선 세나는 예뻤다.

남성향 판타지 소설. 로빈이 이곳에 들어와서 그나마 가장 좋았던 건 여자들이 예쁘다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몸매와 얼굴 모두 전생보다 몇 단계나 위였으니 말이다.

이곳에 와서 처음 본 사람이자 대단한 미인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 마리아나와 세릴도 사실 이곳 기준에서는 그냥 좀 예쁘장한 편이었다. 물론 그녀들 특유의 포근하고 발랄한 이미지가 매력을 배가시키고 있긴 하지만 순수하게 외모로만 판단하면 그렇다는 거였다.

반면 남자들은 그냥 평범했다. 평범하다는 건 전생과 비슷하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이니 할리우드 톱 배우를 외모로 압살해 버리는 아버지 윌리엄은 정말 대단한 거였다. 농담 삼아 어머니가 얼굴을 뜯어 먹고 살아도 죽을 때까지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런 세상인데 세나라는 여성은 이곳 기준으로 봤을 때도 대단히 예쁜 축에 속했다. 아마 영지에 가면 남자들깨나 따르지 않을까?

딱 보니 성격은 괄괄한 거 같은데 저렇게 예쁘면 저런 성격이라도 털털하다고 좋아하겠지.

영지로 돌아갔을 때 검은 곰 용병단 멤버들이 제법 노리지 않을까 싶었다.

하워드는 자신의 여동생을 흉악한 검은 곰들로부터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친한 친구에게는 여동생을 소개해 주지 못하는 남자들의 습성을 생각해 보면 뺏으려는 검은 곰과 지키려는 하워드의 치열한 공방전이 눈에 선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을지도?

그리고 두 소년.

요 녀석들은 처음에 로빈을 보자마자 얼어붙었다. 아마 영주의 손자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하게 얼어붙길래 왜 저러나 싶었는데, 들어보니 요 녀석들이 사는 영지의 영주가 상당히 개차반이었단다.

교묘하게 수탈하고, 심지어 제국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거주 이전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니, 참.

이사를 하려면 재산을 놓고 가라고 강짜를 부려 진짜 다 놓고 와버렸단다. 교묘하게 영지법을 비틀어 이사하기 힘들게 만든 모양인데 사실 저건 막을 방법이 딱히 없었다.

만약 법무관까지 영주와 죽이 맞아 전횡을 일삼았다면 더욱더 그러했으리라.

어쨌든 다 버리고 왔다니 이 가족에게는 아무래도 영지 차원에서 지원을 좀 해줘야겠다.

그렇게 두 아이와 대화하다 보니 주노에게 듣던 것과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민초들의 직접적인 이야기라고나 할까?

특히 나이가 어려 손익을 계산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직관적이면서 날것 그대로였다. 게다가 양아치 같은 영주가 다스리는 영지에서 살았던 아이들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이제 좀 친해져 아이들의 입에서 영주의 험담이 하나둘씩 쌓여갈 때마다 로빈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사람 사는 동네인데 제대로 된 영주가 있다면 양아치 같은 영주도 있겠지. 딱 보니 저 영지는 법무관까지 썩었나 보다.

지온의 말에 의하면 법무관은 인성부터 본다는데 잘 속인 건지, 아니면 사람이 변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로빈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배워 가며 영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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