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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30화 (30/303)

30화

그리고 로빈이 출발하는 날.

“로빈! 다치면 안 돼! 만약 다치면 다 나을 때까지 비트 수프만 먹일 거야! 알았지? 대신 무사하면 북부 요리 많이 먹게 해줄게!”

어머니 마리아나의 배웅에 로빈은 웃음이 났다.

그래, 무사히 돌아와서 매콤한 북부 요리를 먹어야지. 돌아오면 무조건 전골 요리를 해달라고 조를 테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이면 최고겠지만 그건 좀 무리겠고.

뭔가 좀 웃겼지만 그래도 힘은 났다. 어깨도 조금 가벼워지는 거 같고.

울먹이는 마리아나와 실비아의 배웅을 받으며 로빈은 남쪽으로 출발했다.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 이제 모든 일은 며칠 사이에 결판이 날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온갖 물자를 다 챙긴 로빈은 굳은 표정으로 마차에 올랐다.

로빈을 태운 마차가 남쪽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때 로빈은 기다리던 흑웅의 메시지를 받을 수가 있었다.

[상황 급변. 비전투원 대피. 옥쇄.]

“하… 미치겠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로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짧은 단어로 정확히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비전투원 대피’.

저 말은 모야족의 사람들을 대수림 밖으로 보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거고, 사정이 어떤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으리라.

마을에 도착한 로빈은 루이를 만나 마을의 상황부터 파악했다. 기사들을 대수림 쪽으로 보내 만약 모야족이 나온다면 이쪽으로 안내하라고 지시한 후였고.

불과 며칠 동안 보수한 것이지만 루이가 보수한 목책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얼마나 많은 마수가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을 보호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없어 보였다.

“이거 이놈들, 설마 우회 전술 따위를 구사하진 않겠지?”

대수림과 연결된 남쪽, 대수림 쪽에서 흘러나와 영지 동쪽의 바다로 흘러나가는 큰 강이 막고 있는 서쪽과 북쪽은 상관없었지만, 우리가 들어온 동쪽은 비교적 방비가 취약했다. 아마 이쪽까지 완벽하게 방비하기는 무리였나 보다.

하지만 인간에게 맹목적으로 달려들 마수의 움직임을 상상해 보면 남쪽에서 튀어나와 바로 목책 쪽으로 달릴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터가 넓고 위치가 좋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건 조금 의외였다. 대수림에서 특별한 이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인가?

마을을 대충 둘러보고 자신을 위해 마련된 군막에 들어선 후, 로빈이 그에 관하여 묻자 루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마 토양이 안 좋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으로 많이 떠났습니다.”

“음… 바로 옆에 강이 있는데도 토양이 안 좋다니 이상하네요. 후. 루이 경, 수고가 많으셨어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혹시 이 마을에서 오래 산 분을 한 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루이는 군말 없이 군례를 올리고 로빈의 군막을 떠나갔다. 혹시 자신이 온 것에 대하여 무슨 언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말도 없다니, 진정한 참 군인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변수가 많은 이곳을 완벽하게 맡기지 못하는 것이고.

로빈이 고민하는 사이, 이 마을의 촌장이라는 노인이 군막에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아. 편하게 계세요, 어르신. 제가 여쭈어볼 게 있어서 오시라고 했으니까요.”

“네, 도련님. 말씀만 하십시오.”

아무래도 이 어른도 갑자기 등장한 영주의 손자 때문에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대동한 병사의 수가 많은 것에도 놀랐을 테고. 하긴 마수 범람이라도 이곳에 따로 마수가 등장한 적은 없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하지만 너무 허둥대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혹시 모야족을 본 적이 있나요?”

로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로빈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이제 모야족이 밖으로 나올 텐데 기존 주민들이 모야족을 보고 거부감이나 반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만약 접점이 있다면 조금 수월하게 넘어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네? 아… 그…….”

로빈의 말에 촌장은 당황하며 말을 흐리다가 조심스럽게 로빈을 바라보았다.

로빈은 아까 허둥대던 것도 그렇고 별거 아닌 질문에 당황한 촌장의 모습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굳이 추궁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급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서였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알아둬야 할 게 있어서 그래요.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 추궁 같은 건 없을 테니 솔직히만 말해주세요.”

로빈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네, 사실……. 저희 마을은 모야족과 거래하는 마을입니다. 모야족이 이것저것 내놓는 물건을 곡식과 바꿔 주는 거죠. 저희는 그걸 팔아서 생활하는 거고요. 무… 물론 당연히 세금은 철저하게 내고 있습니다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모야족과 거래한다고? 어쩌면 일이 좀 쉽게 흘러갈 수도 있겠는데.

그동안 모야족과 거래하고 있단 사실을 영주 성에 알리지 않은 건 조금 괘씸했지만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 마을 사람들이 모야족과 안면이 있다는 사실만은 반가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조금 미심쩍지만, 세금도 잘 내고 있다니 모야족과 몰래 거래한 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로빈은 촌장의 말을 더 자세히 듣고 싶은 마음에 다음 질문을 던지려고 했는데.

“도련님, 기사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인데, 그 수가…….”

“알겠습니다.”

병사 하나가 허둥대며 달려와 소식을 전하는 바람에 대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어쨌든 모야족의 존재를 이 마을에서는 알고 있었다니 그 정도만 참고하고 모야족과 직접 대화해야겠다.

로빈은 막사를 나서자마자 방금 병사가 왜 당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복장의 인파가 마을 앞쪽에 꽉 차있었으니 말이다.

저거 대체 몇 명이야?

솔직히 로빈도 이곳에 온 이후 저 정도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걸 본 적은 켄트의 재판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리고 로빈이 나서자 인파가 갈라지며 두 명의 여성, 그리고 소녀 하나가 비무장인 상태로 걸어 나왔다.

“허… 무슨 외모가…….”

대표로 나선 여성은 삼바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남미 스타일의 미녀였는데, 그 몸매가 아주 그냥……. 전생의 남자들이 왜 남미 미녀들이 매력적이라고 노래를 불렀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잔 근육으로 건강미 넘치는 허벅지와 허리 라인, 환상적인 가슴 선. 게다가 도발적인 몸매와 상반된 단아하고 침착한 표정은 그녀의 또 다른 반전 매력이었다.

하, 진짜 더럽게 예쁘네. 저런 부족을 멸족시키려고 했다니……. 그 황제 놈, 진짜 미친 거 아냐? 저 정도면 진짜 세계의 보물이라고 할 만하지 않나?

하지만 까무잡잡하면서 건강미 넘치는 도발적인 몸매라…….

분명 소설에서 봤었다. 백인들만 즐비한 이쪽 세상에서 이런 특색 있는 인물이 있다면 봉구가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로빈은 난잡한 기억 속에서 기어코 한 인물을 끄집어냈다.

그래, 농염한 그림자, 쌍검의 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얼굴 묘사는 없었지만 린의 몸매 스타일이 딱 저랬지.

쌍검의 린은 로빈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읽었던 부분에 나오는 인물이었다.

정체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흑막의 왼팔 같은 존재.

린은 까무잡잡하고 탄력 있는 몹시 아름다운 몸매에 귀신 같은 몸놀림으로 쌍검을 다루는 암살자 캐릭터였다. 게다가 등장 후 바로 황태자의 측근 하나를 암살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고.

하지만 로빈은 그런 흑막의 존재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흑막이야 어차피 소설이 진행되다 보면 결국 주인공인 황태자랑 대립할 수밖에 없으니 어련히 알아서 정리가 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리 봉구라도 최종 흑막이 황태자를 이기는 개막장 소설을 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흑막도 아닌 흑막의 수족인 린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봤을 리가.

하지만 린과 비슷한 느낌의 미녀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 여자를 보니 왠지 린이 이쪽 사람과 비슷한 외모인데 설마 진짜 린이 모야족인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러면 좀 곤란할 거 같았다. 자신의 영주민이 될 모야족이 소설의 흑막과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로빈이 고민하는 사이 그의 앞까지 다가온 여성은 단아한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몸짓 자체는 우아했지만 저런 몸매에 복장조차 노출이 심해 솔직히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겨울인데 대체 왜 이렇게 입고 있어? 모야족은 추위에도 엄청 강한가?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모야족 족장 백랑의 처, 월아라고 합니다.”

“아, 네. 그레이츠 영지의 소영주 로빈입니다. 영지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들의 정확한 목적이 도피인지, 정착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로빈은 그저 환영하는 선에서 인사를 마무리했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윌아의 이야기에서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우선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그레이츠 영지에 완전히 의탁하려고 합니다. 상황이 이래서 죄송하지만, 부디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되려는지 상대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제국에 반감이 강한 상대가 이렇게 숙이고 들어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은 벌어진 거고 지금 당장은 저들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이득인 일이라 별말 없이 그들의 정착을 반겨주었다.

로빈은 우선 급한 대로 몸이 지친 노약자들을 마을로 안내하고 월아와 다른 여성, 그리고 소녀 하나와 자신의 막사로 들어섰다. 검은 곰 기사단의 넘버 투, 하워드와 이 마을의 방어 책임자 루이가 동행한 채였다.

“이쪽은 흑웅 님이 이끄는 검은 곰 기사단의 부단장 하워드 경, 그리고 여기는 이 마을의 방어 책임자, 기사 루이 경입니다.”

로빈이 양옆의 인물들을 소개하자 월아 역시 자신을 따라온 두 여성, 아니 한 여성과 한 소녀를 소개했다.

“여기는 흑웅의 손위 누이 되는 적호. 그리고 이 아이는… 저와 백랑의 아이, 린입니다.”

엥? 린? 설마 진짜 린이라고?

이름: 린

성향: 호전적. 도전적. 순정

타이틀: 흑표범의 몸놀림(UC). 재능의 탐닉(O)

끙. 하……. 이거 아무리 봐도 느낌이 오는데.

어떻게 봐도 딱 악역 꿈나무잖아?

얼핏 봐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데 저 나이에 S급 퀘스트의 주인공 실비아랑 같은 등급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니.

그나마 아직 어리고 가족들이 살아있어서 그런지 성향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만 대체 왜 이런 안 좋은 예감은 항상 빗나가질 않는지.

[완료!]

어둠의 한 자락, 농염한 그림자, 쌍검의 린을 무사히 구원했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언제든 다시 어둠에 물들 수 있으니.

보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등급 상승

페널티: 혼란의 한 자락

기한: 없음

린이 어둠에 물드는 순간, 보상은 영구 상실

느닷없이 등장한 퀘스트 창이 저 린이 그 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퀘스트 진짜.

갑자기 등장해 바로 완료되어 버린 건 좋지만 이거 진짜 이래도 되나 싶었다. 게임하는 것도 아니기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 찝찝하기만 했으니까.

게다가 이 히든 퀘스트란 놈들은 완료되기 전까지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이야 무사히 넘어갔지만, 확인도 안 된 퀘스트의 페널티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지라 마냥 기가 막혔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가만, 설마 이번 범람에서 부족민들이 많이 죽거나 다치면, 저거 혹시 흑화라도 하는 거 아니야?

로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저… 왜 그러시는지.”

월아는 로빈이 린을 바라보며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자 의아한 기분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덕분에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당황하던 로빈도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아, 아니에요. 그나저나 저분은 흑웅 님의 누님이시라고요?”

“그렇다, 소영주. 내가 흑웅의 누이 적호다. 그런데 정말 흑웅이 영지의 기사단을 맡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아, 네. 맞습니다. 물론 그 멤버들이 기존에 흑웅 님과 같이 활동한 용병 단원이지만 기사단의 단장인 건 사실이죠.”

“허… 모야족에게 기사단장을 맡겼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니.”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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