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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32화 (32/303)

32화

“네, 대수림에서 마수와 전투를 벌이는 전사들이 날뛰면 날뛸수록 이곳이 안전해지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그 전사들이 죽거나 다칠수록 저희 영지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는 겁니다. 보아하니 모야족 전사들은 살아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이곳에 최후의 방어선이 있으니 상황이 안 좋아지면 무조건 이곳으로 끌고 오세요. 만약 명령에 불복하면 남아있는 모야족 주민들이 큰 고초를 치를 거라는 협박을, 제 이름으로 해도 좋습니다.”

“네, 도련님.”

로빈의 명령을 가만히 듣고 있던 루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간언했다.

“하지만 도련님, 그렇게 한다면 이곳의 방비가 너무 취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마법 갑옷을 보조하는 건 영지에서도 고려했던 일이지만, 기사들을 열 명이나 대수림 쪽으로 보낸다는 건…….”

로빈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루이는 기사들을 더 투입하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하지만 로빈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대수림에 남은 전사들이 압도적으로 날뛰는 것이 이곳이 더 안전해지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단순히 게릴라전을 벌이기에는 과도한 전력을 투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나하나가 귀한 전력인 기사급 전사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어요. 만약 영지의 기사들이 그들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월아 님?”

“…네, 죄송한 말이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부족민을 위해 죽는 것이 전사들의 가장 영광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바로 그 전사 분들이니까요.”

그래, 안 들어도 뻔하지.

어려서부터 카인에게 들어온 이 세계의 영웅담들이 대부분 그러했으니 부족을 책임지는 전사들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인기 있는 영웅담은 대중성을 갖추고 있으니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거니까.

“그런 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한둘만 보냈다가 목소리를 높이지도 못하고 제압당하면 그건 그거대로 어이없는 일이죠. 적어도 목소리를 높이려면 열 명은 있어야 할 겁니다. 사실 열 명도 적지만 저희 전력이 뭐, 이 정도니…….”

“음…….”

“하지만 그렇게 과도한 전력을 투자한 만큼 성과만은 확실할 겁니다. 오히려 병사들과 같이 싸우는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겠죠. 루이 경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쌓아놓은 목책은 기사들이 싸우기에 좋은 전장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도련님을 호위할 병력입니다.”

루이가 만들어놓은 목책은 방패를 든 병사와 창수가 합격을 하기 좋게 만들어놓은 구조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검을 든 기사가 중간에 끼어들기는 조금 곤란한 방어선이었다.

그래서 기사들은 큰 충격에 기울어져가는 방패병을 지원하거나 마수가 특정 부분으로 몰렸을 때 투입해 균형을 맞추고, 혹시 모를 우회를 대비해 로빈의 곁을 지키게 된다.

그렇기에 로빈은 그 많은 기사를 놀리느니 차라리 대수림에 풀어 날뛰도록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자신을 호위하고 전선을 보조하는 건 남은 여섯 명의 기사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병사들을 지원할 기사의 수가 열여섯 명인 것과 여섯 명인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 그렇기에 이곳에 남은 로빈과 병사들의 부담은 자연스럽게 커지게 된다. 게다가 위기 시에 로빈을 보호하고 탈출시킬 여유도 줄어들 테고.

“마수가 득실거리는 대수림에서 날뛸 기사들과 전사들은 이곳의 병사들보다 훨씬 위험해요. 그러니 이곳 방어선의 병사들도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죠. 물론 저도 그렇고요.”

“음…….”

로빈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막아야 할지 고민하던 루이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영지의 미래를 위해 되도록 많은 전력을 보전해야 한다는 로빈의 뜻과 기사들이 대수림을 전장으로 선택하면 더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을 거란 예상에도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날뛸수록 이곳이 더 안전해진다는 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정 안 되면 자신 혼자만이라도 로빈을 데리고 탈출할 각오를 다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로빈만은 살릴 생각이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알고, 앞으로의 방어 전략을 점검해 봐요.”

루이의 반론마저 뿌리친 로빈은 기사들과 전사들이 대부분 대수림에 들어간다는 전제하에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모야족은 이 마을을 떠나 북쪽 영주 성 근처까지 대피했으면 좋겠네요. 이곳이 그 숫자를 감당하기도 힘들거니와, 괜히 이곳에 있다가는 마수의 먹잇감밖에 안 되잖아요? 너무 많은 사람이 한곳에 있으면 없는 마수까지 불러올 판이니까요.”

“네, 소영주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감히 그러고 싶습니다.”

물론 로빈은 아까운 모야족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기 방패 따위로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방진을 갖추고 싸우는 상황이니만큼 병사급 무위를 가진 건장한 부족민들도 사실 방해만 될 테고.

그들을 여기 붙잡아놓을 생각이었으면 차라리 그냥 그들을 대수림 안으로 추방했겠지. 뭐, 여기까지 몰린 상황이니 그들도 순순히 대수림으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그리고 그들도 이동해 자리를 잡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건장한 장정들이 필요하긴 했다.

“좋아요, 월아 님.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 특별히 많은 지원을 해 드릴 수는 없어요. 눈도 오고 있는데 모야족의 사정은 괜찮은가요?”

현재로선 넉넉하게 지원해 줄 수 없다는 로빈의 말에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는지 월아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네, 당분간 먹을 양식은 다행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래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떠도는 부족이다 보니 노숙에도 익숙하고요. 모든 부족민이 한곳에 모여있던 지난 8년이 저희에게는 오히려 생소한 경험이었죠.”

하긴, 적은 수로 마을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채집과 수렵에 의지해야 했을 테고, 자연히 빈번하게 보금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겠지.

“게다가 저희는 더위에는 약하지만, 추위에는 대단히 강한 부족입니다. 눈이 오고 있지만, 이 정도는…….”

이 날씨에 가죽으로 몸 일부만을 가린 그 복장을 보니 확실히 그래 보이긴 했다. 그렇다면 모야족의 피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려나? 솔직히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마땅히 지원할 방법도 없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좋아요. 우선 마수 범람을 막을 때까지는 영지 내에서 스스로를 보호했으면 좋겠네요.”

“네, 북쪽으로 쭉 올라가 알아서 자리를 잡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부족의 비전투원들을 모두 이끌고 북쪽으로 대피하겠다고 대답한 월아는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렸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의아했던 로빈은 결국 참지 못하고 더 전할 말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보채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입을 떼게 된 월아. 그녀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그러나 로빈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사실……. 전사급은 못 되지만, 그에 준하는 예비 전사들이 있습니다.”

“오호…….”

전사들이 수십 있다는 모야족, 그러니 당연히 그들에게도 일반인과 전사 사이에 마나를 느낀 병사들 같은 속칭 예비 전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수림에서 게릴라전을 벌일 정도로 강력하진 않지만, 지형지물과 집단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물론 북쪽으로 이동하는 부족민의 보호를 위해 모든 예비 전사가 같이 싸울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만 합류해 줘도 제법 큰 힘이 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오면서 병사 분들의 굳건한 방진을 봤습니다. 그런 방진 사이에 저희 예비 전사들이 끼어든다고 한들 방해만 될 거 같았습니다.”

바로 이것이었다.

기사들까지 끼어들기 애매하게 만들어버린 루이의 방어진.

애초에 기사들은 모두 북쪽으로 간다고 알고 있던 루이는 위급 시에 병사들로만 목책과 마을을 보호할 생각으로 강하고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그 덕분에 방어에 탁월한 방진을 이룰 수 있었지만 다른 인물이 끼어들면 손발이 안 맞아 오히려 틈을 만들 가능성이 커져버렸다. 처음에 로빈이 기사들을 대수림 쪽에 보내자고 한 것도 이런 이유였고.

게다가 딱 봐도 모야족은 기사나 병사보다 용병에 가까운 스타일로 보였으니 아마 더 난장판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방진이 무너지거나, 위급 상황에 투입할 병력으로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물론 영지의 병사들을 믿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만…….”

아, 이건가.

왜 저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나 했더니 영지에 합류하자마자 병사들이 무너질 때를 대비해 예비대를 꾸리자고 말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나 보다. 하긴 처음 봤을 때부터 상당히 조심스러운 인물로 보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성품 덕분에 많은 부족민을 이끄는 대표자 격으로 자신 앞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사이긴 하지만 초면에 반말부터 나오는 저 적호라는 여성과 비교해 보면 바로 답이 나왔다.

하지만 월아의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성 예비 전사는 50분 정도지만 여성 예비 전사가 있습니다. 수는 대략 120명 정도고, 전부 각궁으로 무장한 궁수들입니다. 물론 마수와의 전투에 여성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부디 고려해 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허…….”

로빈은 솔직히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에이스 병사급 예비 전사 50. 솔직히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부담 가는 전력은 아니었다. 어차피 당장은 예비대로밖에 못 쓰는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수 120? 이건 정말 요긴한 전력이다.

그레이츠 영지에도 당연히 궁수 전력이 있다.

기사를 상대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서 영지전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전력이지만(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의 기사들에게는 화살이 그냥 튕겨 나온다), 마수를 상대할 때는 제법 요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육성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번 범람의 격전지는 명백히 북쪽 관문이기 때문에 모두 그곳으로 출동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이곳이 또 다른 격전지가 될 거로 생각하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앞에 방진을 세우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궁수 전력이라니. 게다가 각궁을 든 여성 궁수란다. 아마도 미녀일 테고. 안 봐도 뭔가 포스가 느껴졌다.

월아의 어조에서 느낀 것인데 모야족 내에선 생각보다 여성을 많이 차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차별이 보호를 바탕에 둔 차별인 거 같긴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전사라던 저 적호도 여성이기 때문에 대수림에 남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느낌이 그랬다.

하지만 자신은? 차별은 개뿔. 당장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마수가 남자, 여자 가려서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오, 좋네요. 아주 좋아요. 궁수라고요? 사거리는 어느 정도죠? 혹시 곡사도 되나요?”

로빈이 너무나도 반기자 오히려 제안한 월아가 살짝 당황하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곡사도 가능합니다. 50보 밖에 있는 물체는 정확히 관통할 정도고요.”

유효 살상 거리는 대략 40~50미터 정도란 건가?

조금 모자란 듯 보이지만 관통한다고 했으니 그 위력이 유지되는 거리가 그 정도란 뜻이겠지?

아쉬운 대로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곳은 활이 발달한 곳이 아니라 사실 영지의 궁수들도 그 정도 위력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영지의 궁수가 그냥 평범한 치안대인 것에 비해 예비 전사들이라길래 그냥 혹시나 했던 거고.

“좋네요. 그럼 그분들의 편제와 지휘는 어느 분이 맡게 되나요?”

로빈의 물음에 잠시 움찔한 월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가능하면 제가 맡고 싶습니다.”

이 말은 부족장을 대리하는 월아까지 여기에 남는다는 건데, 이거 괜찮은 건가? 피난민들을 통솔해야 할 거 같은데.

로빈이 이점을 지적하자 월아는 이제 교섭을 마쳤으니 자신이 할 일은 다 했고, 부족민이 북쪽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는 건 원로들이 맡을 거라고 대답했다.

교섭 담당이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미녀로 교섭해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거할 생각이었나?

아마 상대도 미인계 따위를 전혀 쓸 수 없는 다섯 살짜리가 교섭 대상이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다.

물론 저 침착한 성격도 교섭 대표가 되는 데 한몫했을 테고. 하긴 다섯 살짜리 교섭 상대를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제 할 바를 다 한 것 같긴 하다만.

어쩌면 월아의 딸이라는 저 린이 회의에 참석한 것도 이쪽 대표가 어린 로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균형을 맞춰 분위기를 부드럽게 가져가기 위해서 급하게 결정된 것일 수도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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