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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41화 (41/303)

41화

“조사관이 완전히 파괴된 남쪽 마을을 보고 망연자실해하더군요. 그 마을이 사람은 별로 살지 않았지만 터가 아주 넓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전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살았고요. 잔해를 좀 흩뿌려놓았더니 마을의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더군요.”

“오……. 그런데 그 정도로는 저렇게 지원받지 못했을 텐데요.”

“그렇죠. 남쪽 마을을 살펴본 후 바로 조사관을 데리고 모야족이 사는 곳을 거쳐 영주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난민처럼 살고 있는 수천 명의 모야족이 있었죠.”

“난민……. 파괴된 남쪽 마을과 그 주변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는 수천 명의 난민. 그것도 겨울에…….”

하긴, 이 겨울에 천막을 치고 사는 모야족을 보면 아무리 철심을 가진 조사관이라도 측은함을 느낄 수밖에. 피해도 엄청나게 커 보일 테고.

지온이 전략을 잘 짰다.

제국의 피해 구제는 좀 매정하지만, 사망자보다 터전을 잃은 자를 더 우대하고 있었다.

그건 그야말로 보상이 아니라 구제였기 때문이었는데, 사망한 사람은 이미 사망한 거로 끝이지만 집이나 재산을 모두 잃은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니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을 잃고 자립이 어려워진 경우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그러니 마수의 습격으로 마을 자체가 몰살당해 구제받을 영지민 자체가 사라진 다른 영지보다 마을이 파괴되고 엄청난 수의 난민(?)이 발생한 그레이츠 영지가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모야족을 영지의 난민으로 가장한 지온의 기지는 좋았으나 이거 괜찮은 건가? 물론 제국이 모야족에 유감을 가진 건 아니지만 예전의 일이 너무 커서 쓸데없는 잡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아, 저도 그자가 남부 해안가 출신이 아니라면 모야족을 공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곳이 왜요?”

“거기 사람들은 해안의 따가운 햇볕 때문에 모야족보다 더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거든요. 오히려 혼혈로 피가 옅어진 모야족보다 더 까무잡잡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자는 그런 사람들에 익숙하니 모야족이 대수림의 원주민이란 건 상상도 못 할 겁니다.”

“…그래요?”

모야족 당신들은……. 그냥 대수림으로 도망 오지 말고 남부 쪽으로 도망갔으면 괜찮은 거 아니었나?

아니, 태닝(?)한 제국민까지 있는 마당에 그 미친 황제는 대체 뭐야?

아니지, 아니구나. 제국이 남부 끝 해안가 쪽까지 진출한 게 100년도 안 됐지. 그럼 그 당시에는 검게 탄 제국민이 없었단 거군.

그리고 더위에 지독하게 약한 모야족이라니 남부 지방이 더워서 피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저 금액은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온의 말을 들으니 로빈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사실……. 아무래도 진짜 이유는 이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이번에 잡은 가메라의 머리를 황실에 전리품으로 보냈거든요.”

“아……. 그럼, 말이 되긴 하죠. 마수 대가리 하나에 만 골드 이상이면……. 확실히 남는 장사네요.”

“아무래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니까요.”

황제의 치세 중 처음으로 잡은 상급 마수.

사실 특별한 가치가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여러 영지가 마수에 피해를 본 상황이다 보니 상급 마수의 전리품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인데.

솔직히 지친 가메라라고 해도 우리 영지 기사들 정도나 되니 잡을 수 있었지, 다른 곳이었으면 백랑의 전사들처럼 확실한 피니시를 넣지 못해 잡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놈이 그렇게 요긴하게 쓰였다니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나중에 경매장에 올렸다고 해도 기껏해야 몇백 골드나 받았을까?

“하… 지온. 자네 정말…….”

처음에 우리들이 입은 피해만큼만 보상을 받자고 주장하던 카인은 지온이 2만 골드라는 예상외의 지원금을 확보하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여는데.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받을 만큼 잘 받아왔군. 모야족도 우리 영지민이 분명하니 말이야. 가메라를 잡은 공로를 인정받은 것도 기쁜 일이고.”

이러시는데, 로빈은 은근히 뻔뻔한 반응을 보이는 카인이 어이없었다. 모야족은 원래 그런 녀석들이고 그 마을은 거의 비어있던 마을이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저런 반응이시라니.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할아버지 역시 많은 지원을 원하긴 했었나 보다. 체면이나 프라이드 때문에 차마 말은 못 했지만.

이거지, 이거야. 내가 없어도 내가 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

로빈은 지온을 영지의 재무관으로 삼은 자신의 판단에 뿌듯함을 느꼈다.

저렇게 제 몫을 하는 인재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자신의 해피 라이프가 더 확실히 보장되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지원받은 2만 골드와 마수 처리제를 판 5천 골드에 대한 집행을 논의할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회의장은 마법 갑옷의 수리 비용과 남쪽 지역에 요새를 올리자는 폴과 이제 늘어난 영지민을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온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사실 둘 다 옳은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판단하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로빈은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 흩어져 있던 영지민을 한곳으로 모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일이었고 대수림에 마수가 서식하기 시작했으니 명분도 좋았다.

“둘 다 좋은데, 먼저 영지민부터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수림은 북쪽 관문과는 다르잖아요. 거기는 협곡이라 관문만 막으면 마수가 마을로 침입하지 못하지만 대수림은 숲이라서 어느 쪽으로 마수들이 샐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지금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으면 치안대나 기사단이 일일이 보호하기도 힘들지 않나요? 그렇게 새어 나간 마수가 작은 마을들을 덮친다면…….”

“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영지민들이 쉽게 터전을 포기할까요?”

“해야죠. 살려면.”

살기 위해선 해야 한다는 로빈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인은 무슨 생각이 많은지 눈을 감은 채 계속 고민에 빠져있었다.

잠시 후 생각을 대충 정리했는지 감았던 눈을 뜨며 물었다.

“만약, 영지민을 모은다면 어디가 좋겠는가? 생각해 놓은 곳이 있나?”

이 부분은 지온도 생각해 온 바가 있었는지 로빈보다 먼저 대답했다.

“지금 저희 영지의 인구 분포를 보면 영주 성에 약 2만, 북쪽 관문 에보니 마을에 대략 7천, 그리고 영지의 경계선인 서쪽 해안 어촌에 5천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 황무지에 모야족 8천이, 그리고 영지 중심부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가 대략 1만 5천 정도군요. 그리고 영지민을 모은다면 흩어져 있는 1만 5천 명이 그 대상이 되겠죠.”

로빈도 지온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로빈이 한곳으로 모으고 싶어 하는 영지민도 바로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영지민 중 가장 취약한 자들이었다.

“그러면 이 1만 5천여 명의 주민들을 에테 지역으로 모아서 하나의 마을로 구성하면 됩니다. 옛 에테 마을 터는 예전에도 2만이 넘는 주민들이 살았을 정도로 큰 구역이니까요. 지금은 황무지가 되었지만, 한때 제법 넓은 평야 지역을 이루기도 했고, 제대로 관리만 하면 농사를 짓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땅에 왜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죠?”

“에테 지역이라……. 전에는 그래도 몇천 명 정도는 거기에 살았었지. 지온의 말대로 소출이 괜찮은 곳이었거든. 그런데 홍수가 크게 나면서 다 쓸려 나가버렸어. 강이 크게 범람해 밭들이 모두 모래와 자갈로 뒤덮여버렸고. 그런데 그때 영지는 그 땅을 보살필 여력이 없었단다. 그래서 결국 다들 다른 곳을 찾아 흩어진 거지. 그게 100년도 넘은 일이구나.”

“끙…….”

그나마 소출이 있는 곳을 그렇게 방치했다니. 돈이 없어서였지만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안타깝다기보다 안습이라고 해야 하려나.

“확실히 에테 지역을 개간하면서 영지민들을 그곳으로 모은다면 영지 구역도 체계화하면서 앞으로의 소출도 기대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거금이 확보된 지금이 아니라면…….”

“영지의 방어 체계를 정비하고 안정적으로 영지민을 보호한다는 취지이니 저도 그곳으로 영지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폴까지 고개를 끄덕인 상황이니 문제는 카인의 결단이었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하던 카인은 마음에 걸리는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영지민들이 에테 마을을 떠난 건 우리 영주 일가의 책임이 컸어. 빡빡한 영지 살림에 내우외환이 겹쳐 도저히 마을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내버려둔 거지. 그때는 지금처럼 황실에서 지원을 해주지도 않았었고.”

제국의 역사가 긴 만큼 다양한 성격의 황제가 제국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중에는 광황 같은 미친 황제도 있었고, 백성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황제도 있었다.

그나마 주인공인 황태자의 아버지이자, 현 황제 룩센 트와이드 대제는 제국 역사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백성들을 아끼는 황제였고 그래서 이렇게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영지에 큰 난리가 난 그때 제국을 다스리던 황제는 변방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황제였나 보다.

“그렇게 그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나서도 긴 시간이 흘렀지. 하지만 도저히 그 땅을 복구할 여력이 없었다고 하더구나.”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그 땅을 회복하려면 적어도 수많은 사람이 1년은 꼬박 복구 작업에 달라붙어야 했다. 다시 제방을 세우고 땅을 개간하고, 집까지 지어야 했을 테니까.

그들이 일하는 동안 지급해야 할 임금, 그리고 다음 해 농사가 끝나야 겨우 소출이 있을 테니 다시 1년을 추가로 지원하면, 결국 그 많은 사람이 2년 먹을 것은 준비해야 했다.

단순히 부족한 식량을 지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2년간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하는 건 그레이츠 영지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번에 황실에서 지원받은 금액이 그 정도가 아니었으면 정말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길 찾아간 사람들을 다시 모은다라…….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흩어질 때는 보고만 있다가 다시 강제로 모으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구나.”

영주는 경우에 따라서 강제 이주를 명할 수 있었다. 영지의 모든 땅은 기본적으로 영주의 것이고 영지민은 영주에게 땅을 빌려 사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제 이주에 불응하고 영지를 떠나는 건 영지민의 자유였지만.

하지만 예전의 일에 부채 의식이 있는지 카인은 영지민을 강제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한 일도 아니고 조상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에도 부채 의식이라니. 게다가 지금까지 그들을 원조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뭔가 카인답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가끔 이렇게 일의 선후를 구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지금 같은 경우는 강제력이든 뭐든 동원해서 땅을 개간하고 그들이 완전히 자력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기간에 충분히 지원을 해주는 데도 이렇다니. 너무 감정에만 휘말려서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로빈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이어야 해요, 할아버지. 지금이 아니면 그 사람들을 먹이면서 그 땅을 개간할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도 이주시켜야 하고요.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지켜줄 수도 없잖아요.”

“음…….”

아무래도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인데 사실 로빈도 강제로 이주시키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지. 솔직히 평판의 문제도 있긴 했고.

“할아버지, 이주 자체에는 이견이 없으신 거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능하면 한곳에 모으는 게 보호하기도 좋으니까요. 단지 보살펴주지도 못한 그들을 강제로 다시 불러 모으는 게 안타까운 거고요. 그런데 2년간 세금 면제에 농사지을 땅도 충분히 나누어주고, 개간하는 동안 식량까지 나누어줄 건데 사람들이 반대할까요?”

“그 정도면 많은 사람이 찬성하겠지. 하지만 로빈, 그런 조건들과 상관없이 자신이 머물던 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결국 그들에게는 강제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니?”

하긴 사람은 다양하니 무조건 거주지를 옮기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차피 당연히 이주해야 하는 건데 강제로 이주시키는 건 마음에 걸리신다니, 다른 사람들을 악역으로 만들어야 하려나? 아니면…….

“어쨌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주에 동의하면 괜찮다는 거죠?”

카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빈은 폴을 바라보았다.

“폴 경은 어때요? 지금 당장은 남쪽에 요새를 건설하는 것보다 이게 급해 보이는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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