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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45화 (45/303)

45화

싸게 팔겠다는 남자의 말은 틀리지 않아서 평소보다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물건은 금세 동이 났다. 그리고 당연히 싸게 물건을 팔아준 남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호감도 급격히 올라갔고.

추운 겨울날이라 날이 짧아 하루를 이곳에서 머물게 된 남자는 이윽고 마을 남자들과 하하 호호, 하며 마을의 유일한 선술집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캬~ 역시 맥주는 좋구먼. 그… 자네, 분명 남쪽 마을에서 올라왔다고 했겠다?”

“그랬죠.”

“남쪽 마을이면 그, 뭐냐. 이번에 갑자기 영지민이 된 그 부랑민들의 마을 아닌가?”

“부랑민이라고? 난 무슨 원주민이라고 들었는데.”

“에이, 부랑민이든 원주민이든 뭐가 중요해? 하필이면 이 겨울에 이주민이 늘어난 게 문제지.”

“갑자기 많은 이주민이 생기는 바람에 올겨울 식량 지원은 대부분 그쪽으로 간다던데.”

“에휴, 영지민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시기가 참…….”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은 겨울에 갑자기 늘어난 이주민 때문에 영지의 지원이 그쪽으로 몰리는 것에 작은 불만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지 중앙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은 영지 내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이었고, 자체적으로 겨울을 날 수 있는 북쪽의 에보니 마을이나 해안가의 우버 마을 주민들보다 영지의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에휴~ 그런 말씀 마세요. 이번 난리 때 그 이주민들이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데요.”

“응? 자네, 뭐 들은 거라도 있나?”

“그러니까 그게…….”

남자는 이번 난리 때 대수림에서 얼마나 많은 마수가 나왔고 그들이 그 마수들을 다 막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맛깔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곳에 차기 영주인 로빈이 있었고 로빈 역시 그들과 같이 고생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허……. 대수림에서 마수가?”

“대단하군. 그러고 보니 기사단이 갑자기 남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군.”

“그리고 그 뭐야? 엄청 큰놈을 잡아왔다던데?”

“아이고, 도련님은 왜 그런 험지에…….”

남자들은 사내의 이야기에 심취한 듯 맥주를 들이켜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데, 그 이주민들이 그렇게 대단한가? 기사가 무려 마흔이 넘는다고? 그 정도면 영지 기사단의 기사 수와 별 차이도 없지 않은가?”

“그럼요. 대단하죠. 생각해 보세요. 남쪽에서도 야수가 나오기 시작하면 기사단이 어떻게 그걸 다 막겠어요? 어디 한 손으로 두 구멍을 막을 수나 있나요. 그러니 영주님이 조금 무리해서라도 그 이주민들을 다 받아들인 거겠죠.”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구만…….”

사람들은 그냥 짐이라고 생각했던 이주민들이 남쪽에서 올라오는 마수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에 조금 놀란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자는 은근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이제 앞으로는 남쪽 숲에서도 마수가 나올 거라네요. 지금도 나오고 있고요. 지금 당장은 그 이주민 기사들이 마수들을 잡고 있다는데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는지. 사실 숲에서 튀어나오는 마수를 어떻게 다 잡겠어요?”

“허, 그럼 큰일 아닌가?”

“남쪽에서 마수들이 나오면 여기도 안전하지 않은 거 아냐?”

“이곳에 겨우 자리 잡았는데…….”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마수의 움직임.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당연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에이, 그래도 여기까지 마수가 오겠어? 숲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하하. 그건 그렇죠. 어쨌든 조심하세요. 혹시 모르니까요.”

그렇게 남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남자는 다음 날, 마을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갔다.

“흠… 이걸로 열두 곳째인가? 하여간 사람들은 역시 만족을 몰라. 이런 추운 겨울날 맥주까지 마시며 한가롭게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것도 다 영주님이 보살펴줘서 그런 것이거늘……. 자, 그럼 난 다른 마을로 가보실까?”

며칠 후, 크로츠 마을 앞에 난데없이 마수가 나타났다. 물론 하급 마수 몇이었지만 방비가 전혀 없던 마을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했고.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구한 것은 검은 가죽 갑옷에 거대한 도끼를 든 모야족 전사였다. 그 거대한 도끼로 한 번에 마수들을 갈라버린 모야족 전사는 허허, 웃으며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제때 나타나 마을을 구해준 이 기사님을 항해 여러 번 고개를 숙였고.

“아이고… 기사님.”

“후……. 요즘 마수가 난리예요. 그러니 조금 더 조심해 주시길. 이 마을 앞에도 최소한은 목책은 있어야겠군요. 그럼, 전 이만. 또 다른 곳에 마수가 날뛸 수도 있어서…….”

마수가 날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을 떠나는 기사의 뒷모습을 마을 사람들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분 저거, 그거지? 이주민 기사라는…….”

“그렇겠지? 우리 영지의 기사들은 대부분 검을 쓰는데 저분은 도끼를 쓰니…….”

“부랑자라더니, 훤칠하시구만. 좀 까무잡잡하긴 하다만.”

“하……. 진짜 우리 마을까지 마수가 나오다니. 이거 어디 불안해서…….”

“저분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주민을 받자고 하신 분이 도련님이시라고?”

“역시 도련님이군. 그분이 한 살 때 말문이 트이고 두 살 때 글을 떼셨다지?”

“세 살 때부터 공부하셨다니…….”

“하긴 다섯 살 때 최전방 전선을 지휘하셨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해?”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위험해진 영지에 대한 걱정을 현명하게 자신들을 잘 다스려줄 로빈에 대한 오해(?)로 희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들의 눈앞으로 다가온 마수의 위협과 그 마수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 모야족 전사의 모습이 깊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겨우내 그레이츠 영지의 중앙 지역, 모든 작은 마을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겨울의 끝자락.

지온이 영주 성으로 돌아오자 영주 카인은 바로 중앙 마을의 이주 계획을 발표했다. 잦은 마수의 등장으로 민심이 어지러우니 그들을 안심시켜 줘야 한다는 로빈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물론 모든 영지민이 이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주를 강제하지 않겠다는 사전의 약속을 다시 확인한 후였다.

로빈이 발표한 이주 계획에는 이주는 무조건 마을 단위로만 이루어지며, 이주에 사용되는 금액, 그리고 이주 후 마을을 건설하는 금액과 임금, 마을이 완성된 후 땅을 개간하는 동안에 주민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비용을 영주님이 지원한다고 분명히 명시된 상태.

물론 소출이 나올 때까지 세금이 면제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내용이었다.

영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착순으로 이주 마을을 신청받겠다는 것.

이렇게 이주 계획이 발표되자 모든 마을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내 만연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며 이주 지원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점에는 안도했지만 혹시나 이주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포함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마을 단위로 이주하기 때문에 불순분자(?) 한둘 때문에 이주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떠나지 않고 기존 마을에 눌러앉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엉덩이까지 떠다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모든 마을이 이주에 동의하게 되었다.

* * *

황도행을 마친 지온은 돌아오자마자 영주인 카인에게 회의를 요청했다.

당연히 새로 건설될 마을에 대한 회의였다. 물론 그 회의에도 로빈은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이주를 마치게 되면 중앙에 인구 1만 5천이 넘는 큰 마을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그 마을을 따로 관리할 관리가 필요하고요.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 기회에 에보니 마을과 우버 마을도 제대로 관리를 파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모야족은 도련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 그쪽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요.”

이렇게 말을 시작한 지온은 자신이 황도에서 초빙한 친구들을 카인에게 소개했다. 황도에서 관리로 일하던 자신의 친구들이며 황궁의 권력 다툼에 신물이 나 관직을 벗어던진 반골 같은 녀석들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렇군. 마을이 몇 개로 통합되면 확실히 그렇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지. 자네의 친구들이라니 사람은 믿을 만하겠구만.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네.”

카인은 선선히 지온의 뜻에 따라 그의 친구들을 마을의 관리로 임명했다.

결국 지온의 인맥이 모든 마을을 다스리게 되는 셈이지만 어차피 그래봤자 황실의 권위를 등에 업은 영주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었고, 실질적인 무력인 치안대와 기사단을 완벽히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나마 신경 쓸 만한 일은 관리들이 켄트처럼 부정을 저지르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온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그럴 거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뭐, 할아버지는 당연히 일이 하나라도 줄어드니 속으로 쾌재를 부르시겠지.

그나저나 황궁의 사정이라.

황태자가 아홉 살이 되었으니 슬슬 황궁 내에서도 줄 세우기가 시작될 만도 했다.

그리고 저 지온의 친구들은 그런 줄 세우기에 염증을 느끼고 낙향을 한 모양이었다.

하긴 하급 관리들까지 자신의 세력에 포섭하려고 압박하는 고위 귀족들의 행태는 확실히 신물이 날 만도 했다.

무리를 이루는 게 무조건 잘못된 것만은 아니고 모든 귀족이 사익을 위해 무리를 모으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 하는 관리들의 입장에서는 제법 답답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정치 다툼을 즐기면서 줄타기를 하는 관리들도 있겠지만 저 무심하고 청렴하기만 한 관리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취미가 없었나 보다.

성향만 봐도 정치질에는 전혀 재능이 없어 보이는 저 관리들. 역시 인재 등용의 묘미는 줄줄이 엮여오는 지인들 아니겠는가?

지온이 굳이 황도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이런 생각이었나 보다.

유배지로 온 걸 환영한다, 제군들. 나가는 문은 없으니 이제 이곳에서 뼈를 묻어보세나. 이곳도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거든.

로빈은 지온이 데려온 관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온, 역시 그는 영지의 보배였다.

게다가 지온이 데려온 사람들은 관리들만이 아니었다. 바로 건축 기술자들까지 모셔온 것. 아무래도 지온은 마을을 만들어도 대충 만들 생각은 없었나 보다.

로빈은 지온이 데려온 건축 기술자들을 바라보며 이 기회에 항구까지 손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지만, 돈도 돈이고 항구가 있어도 배나 선원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애써 참았다. 당장 큰 배를 만들 기술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항구를 다시 열고 수도까지 직항으로 연결할 수만 있다면 여러 가지 물자를 실어오는 데 큰 도움이 될 텐데, 그 점은 안타까웠다.

영지가 발전한다고 해도 수도와의 교류는 필연적이었다. 이 작은 영지에 비누나 의복 같은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을 모두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이 점은 그레이츠 자작령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는데 많은 영지가 황도의 생산력에 의존했고, 그런 점도 황실이 지방 영주들에게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였다.

어쨌든 아마 앞으로도 여러 물건을 수도에서 계속 구입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운송 기간이 너무 길고 운송비도 많이 든다.

“후……. 언젠간 항구도 손보고, 배도 만들긴 해야겠지.”

조금 더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그 뒤로도 앞으로 건설할 마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마을이란 게 단순히 사람만 모아놓으면 끝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사람들이 흩어져 살고 있을 때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던 치료 시설이나 교육 시설, 심지어 유흥 시설에 대하여도 신경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주점이나 식당 따위는 어차피 영지민들이 알아서 자리를 잡을 테니 특정 구역에만 너무 집중되지 않게 조절하면 되겠지만, 치료 시설이나 교육 시설은 어쩔 수 없이 영주의 손길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로빈도 지온과 카인의 이야기에서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관의 존재였는데,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자신의 재능을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무예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단련한단다.

그 아이들이 단련하는 장소가 바로 무관이고. 아무래도 가장 빠르게 신분을 올리는 방법이 기사가 되는 것이라 그런 모양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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