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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46화 (46/303)

46화

그러다 보니 그레이츠 영지에도 당연히 큰 마을에는 무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은 아이들이 커서 영지의 치안대로, 치안대에서 다시 마나를 느끼고 다룰 수 있게 되면 기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귀족의 아이 같은 경우 가정 교육을 통해 이런 과정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그레이츠 영지에는 영주 일가를 제외하고는 귀족이 없어서 다들 저런 과정을 거쳐 기사가 되었단다.

그리고 그 무관을 운영하는 사람은 영지의 은퇴 기사들이라는데 현재 영지에서 운영되는 무관들은 다 폴과 같이 활동했던 동기들이나 그 선배들이 책임지고 있었다.

기사들이 모두 죽지 않았다면 은퇴를 했을 테고 장원도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풀린 셈이었다.

다만 아이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영지 자체로 연금술사나 마법 공학자 같은 고효율 직종을 양성할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쉬웠다. 은근슬쩍 재능 있는 아이를 찾아다가 도리아나 히센에게 들이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도리아는 실비아에게만 정신이 팔려서 곤란할 테니 히센 쪽을 집중 공략해 봐야겠다. 아이들을 은근히 좋아하는 거 같으니 똘망똘망하고 귀여운 놈을 붙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관을 제대로 육성하는 학교 같은 건 역시 없는 건가? 이러니 영지 마을을 제대로 관리할 만한 사람이 없는 거지.

아무래도 이것도 영지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어쩌면 굳이 많은 문관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몰랐고.

* * *

그렇게 마을에 대한 세세한 조정까지 이루어지고 마무리된 회의.

회의를 마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로빈은 자신이 맡긴 일들을 훌륭하게 처리해 준 남자 둘을 따로 만나 서로의 입장을 정리했다.

“훌륭하게 잘 마무리되었네요. 수고하셨어요, 존.”

“아닙니다, 소영주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가족들은 잘 있죠?”

겨우내 영지의 여러 곳을 돌며 마을 이전에 대하여 바람을 잡은 존은 며칠 전 드디어 꿈에서나 그리던 아내와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존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로빈은 좀 어이가 없었는데 존의 아이가 겨우 네 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헤어진 시간을 고려하면 당연히 열 살은 넘었을 거라고 예상한 로빈의 계산을 완전히 뛰어넘어버린 것인데.

아무래도 존은 무려 황실 기사단의 눈을 피해서 아내를 만난 걸 뛰어넘어 심지어 아이까지 만든 모양이었다. 황실 기사단이 무력한 건지, 아니면 존의 변장술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건지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젊은 아내가 10년이라는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뎠나 의아했는데 저렇게 중간에 섬싱이 있었으면 불가능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살아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확인했으니.

다만 아이를 가지고 혼자 고생했을 그녀가 불쌍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비정상적인 루트로 상당한 금액을 지원받았다며 밖에서 고생했을 존이 더 안타까웠다고 했다.

존이 거지같이 살았던 걸 생각해 보면 아마 그 돈이 모야족과 거래를 하며 얻은 이익의 전부였나 본데, 그렇게 보면 가장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한 것도 같았다.

어쨌든 처음에는 조금 어이없었던 로빈도 그만큼 능력 좋은 사람을 얻은 거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네, 소영주님 덕분입니다. 다른 녀석들도 가족을 다시 만나 소영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이제 저희는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로빈은 존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겨우내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고생했던 동생들 모두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방치했었다. 가족이 없는 녀석들에게는 편하게 쉴 수 있게 적당한 금전을 지급했었고.

그렇게 며칠 쉬며 마음의 안정은 찾았고 이제 적당히 쉬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거란 생각에 존이 먼저 청한 것이었다.

“이번에 영지에서 마을을 만드는 건 아실 거예요. 존 씨도 한 발 걸친 일이니까요.”

로빈이 이야기를 꺼내자 경청하던 존은 자신도 당연히 알고 있는 일이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그렇죠.”

“전 존 씨와 동생들이 그 마을에 정착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모야족의 마을을 생각했었는데 거긴 교육 환경이 영… 아무래도 아이까지 있으니 좀 그렇더라고요.”

“소영주님이 그러라고 하면 당연히 가야겠지만 사실 좀 그렇긴 합니다.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이젠 가족까지 있으니.”

아무래도 존 역시 지금 상황에서는 모야족 쪽으로 들어가는 걸 꺼리는 거 같았다. 하긴 영주 성 마을에서 행동하는 것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쨌든 존 씨는 동생들과 그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 마을의 동정을 살펴주시면 돼요. 간단하죠? 아무래도 갑자기 생겨나는 마을이라 뒷말들도 많을 거고 갈등도 많을 테니까요.”

“음…….”

로빈의 이야기에 존은 잠시 생각을 거듭했다.

이거, 설마 무슨 착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특별한 임무를 맡길 생각인 건 아닌데.

로빈도 이들에게 무슨 일을 맡길까, 고민이 많았다. 그냥 놀리기에는 생각보다 유능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할 일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맡길 만한 일은 첩보나 정보 수집, 혹은 교란 정도일 텐데, 마땅히 견제할 적조차 없는 영지였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시국이 크게 혼란스러운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 궁금한 게 있다면 황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였는데 마법 통신구도 없어서 정보를 즉각 전달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큰 의미가 없었고, 그런 의미 없는 일에 이제야 가족들과 만나 살고 있는 이들을 보내는 건 솔직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로빈이 낸 결론이 바로 이들을 새로운 마을에 정착시키는 거였다. 여러 곳에서 무작정 모인 사람들이니 충돌이나 사건, 사고 등이 많이 발생할 거고, 적어도 저들이 거기 살고 있으면 물밑에서 일어나는 일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그냥 특별한 일 없이 계속 그곳에서 아무 소식 없이 잘 사는 거겠지만.

“그럼 차라리 장정들이 마을에 공사하러 들어갈 때 동생들과 공사에 동참하겠습니다.”

“예? 너무 이르지 않겠어요? 그냥 마을이 완성된 후에 여관이나 주점 같은 걸 운영하면서 살펴보는 거로 충분할 텐데요. 가족들과 만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번 공사는 마을에 이주할 장정들을 한곳에 모아 임시 숙소를 지은 후 그곳에 기거하면서 계속 진행하게 된다. 빠른 이동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서 에테 지역까지 오는 시간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냥 그대로 진행해도 각자 알아서 오긴 하겠지만 카인은 돈이 더 들더라도 굳이 그런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존과 동생들이 공사에 합류한다면 다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로빈이 공사가 다 마무리되면 합류하라고 했던 거고.

“하하. 가족을 구했으니 일을 해야죠. 공사에 합류하면 공사 수당까지 받을 수 있겠죠?”

“그거야 그렇지만…….”

일을 했으니 당연히 일당을 받겠지만 자신이 주는 돈도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존의 이야기에 혀를 차며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우리 마누라가 생활력이 너무 강한가 봐요. 앞으로 가장 노릇 잘하라면서 바가지를 긁는데……. 뭐, 어쩔 수 있나요. 일이라도 하러 가야지.”

유부남의 애환이 또 이런 식으로.

몇 년 만에 만난 것도 좋고 살아있는 것도 좋지만, 좋은 건 잠깐이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며 부인이 바가지를 긁는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존이 로빈에게 밀명을 받고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니 부인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부인은 자연스럽게 백수(?)인 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왠지 제 잘못 같네요.”

“아닙니다. 어른들이 말하길 부부는 원래 오래 같이 지내면 계속 싸우게 된답니다. 오랜만에 만나야 정겹고 반가운 거고요.”

뭐, 예전 세상에서도 가장 좋은 부부는 주말 부부라는 말이 있긴 하다만.

자신은 존을 배려해서 그렇게 판단한 건데 본인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사는 동생들은 무슨 죄인가 싶었지만 그건 존이 알아서 하겠지.

“어쨌든 그럼 수고 좀 해주세요.”

“네, 소영주님. 공사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는지 잘 살피겠습니다.”

그렇게 부부의 현실을 깨달은 존이 로빈에게 고개를 숙이고 영주 저를 나섰다. 아마 공사 현장에 투입하게 되면 휴일이 되어서야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본인이 굳이 원해서 간 것이니 로빈의 잘못은 아니었다.

존이 떠나고 다음에 만날 상대는 바로 백랑이었다.

“백랑 님, 겨우내 수고가 많으셨네요.”

“수고는 무슨, 하급 마수 따위를 잡는 데 고생이라고 할 게 있나. 물론 잡았다가 놓아서 마을 쪽으로 몰아넣는 건 번거롭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요. 다친 영지민이 하나도 없다니 모야족 전사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선하네요.”

로빈의 치하에 백랑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래도 되는 건지 몰라.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마을 사람들이 우리 전사들을 보는 눈부터 달라졌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긴 한데. 이건 엄연히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잖아?”

겨우내 있었던 마수의 습격은 당연히 로빈이 계획한 자작극이었다.

마수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해 이주의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모야족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일종의 쇼.

심지어 카인이나 폴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로빈의 독단이었다.

실제로 폴은 상황이 안 좋은 거 같으니 당장 기사단을 보내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했었다. 물론 로빈이 나서 모야족이 충분히 순찰을 돌고 있으니 사람들은 안전하며 폴은 미래를 위해 기사단 훈련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설득해 막을 수 있었고.

이번 이주의 당위성을 직접 느낄 필요가 있던 카인도 실제로 마수가 마을 근처까지 배회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을 완전히 굳히게 되었다.

그러니 지온이 돌아오자마자 잡음 없이 마을 이주 계획을 바로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쇼도 한몫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왜요? 어때서요? 다친 사람도 없고 모두 좋은 일인데요. 실제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을 미리 보여준 거뿐이거든요.”

“그거야 그렇지만……. 하. 소영주님, 진짜 다섯 살 맞아? 너무 영악한 거 아냐? 게다가 영지 일을 그렇게까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래요? 아, 어린 녀석이 영지 일에 너무 깊게 간섭한다고요? 난리 때 남쪽 저지선까지 내려가 있던 걸 보셨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사실 그게 더 어이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영악이라니.”

하, 진짜 솔직히 내가 영악한 게 아니라 느그(?)들이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

고작 다섯 살배기 아이도 생각할 정도로 뻔한 방법이 있는데 손 놓고 있던 사람들이 누군데.

나 말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런 번거로운 짓을 꾸미지도 않았겠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참.

게다가 할아버지나 폴 경이 이런 연극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아, 그건 좀 상상하기 싫네. 폴 경은 몰라도 할아버지한테서는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너무 영악하다는 백랑의 말에 혼자 투덜거린 로빈은 입을 삐죽 내밀며 그의 말을 수정했다.

“그리고 해가 지나서 이제는 여섯 살이거든요.”

“에휴,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나. 그런데 그렇게 입을 삐죽이 내밀고 있으니 또 아이 같긴 하네.”

로빈은 이 아이 같다는 말이 칭찬인지, 비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작게 한숨 쉬며 말을 돌렸다.

“자자, 그건 그렇고요. 이제 봄이 다 되었으니 모야족도 본격적으로 움직이시겠네요. 그거 물어보려고 불렀어요. 어쨌든 당장은 제가 모야족 쪽 최종 책임자니까요. 오신 김에 린도 좀 보고 가시고요.”

“아, 그렇지. 걱정 마. 소영주님 말대로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대수림 쪽으로 계속 전사들을 보내서 살펴보는데 영지 근처에는 마수들이 많이 빠졌나 봐. 아무래도 상급 마수 둘이 지배하던 넓은 구역이 비어버려서 그쪽으로 많이 들어간 모양이야. 덕분에 열매나 약초를 채집하기는 좋아졌어.”

“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영지에서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약초. 대수림 쪽에서도 여러 약초를 캘 수 있으면 당장 올해에도 제법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마을 살림은 어때요? 당장 먹을 식량은 충분한가요?”

“아… 그건 월아가 관리하는데. 뭐라더라? 좀 빡빡하긴 하지만 전사들이 사냥해 오는 짐승들이랑, 초식 마수들을 가공하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거라던가?”

“…족장은 백랑 님인데 어째 일은 월아 님이 다 하는 분위긴데요?”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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