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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50화 (50/303)

50화

주술사 자매와 찰싹 달라붙어서 썸만 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왠지 저렇게 늘씬한 두 미녀에게 둘러싸인 히센의 모습은 역시 배가 좀 아프다고 할까?

그래서 로빈은 좀 이른 타이밍에 폭탄을 던져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에 말해야 할 일이니 좀 빠르면 어떤가.

“참, 히센 님. 그 연구를 마치면 마수 뼈로 무기를 만들 방법을 좀 생각해 보세요. 아르마늄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려면 마나 전도율이 좋은 대체재를 개발해야 하잖아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설마 가메라의 뼈로 무기를 만들 셈이냐?”

“그렇죠. 그 외에도 뼈는 많거든요.”

“끙, 그건…….”

로빈도 곤란해하는 히센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렇겠지. 이건 마수 가죽으로 마법 갑옷을 만드는 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이었으니 말이다.

마수 가죽으로 마법 갑옷을 만든다지만 사실 마수 가죽으로 가죽 갑옷을 만드는 기술은 예전부터 존재했고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문가들은 에보니 마을에 즐비했고.

결국 히센은 완성된 가죽 갑옷에 마법을 부여하는 일만 한 것이다.

하지만 마수의 뼈로 무기를 만든다면 우선 제작 방식부터 고민해야 했고, 마수의 뼈로 완성된 무기를 뽑아낼 수 있는 장인도 구해야 했다. 아니면 뼈를 녹여 기계적으로 무기의 모양으로 찍어낼 수 있는 마법 기구를 발명하든지.

히센은 마법 공학자이지 장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하자고요. 그래도 알고는 있으셔야 할 거 같아서 말씀드린 거예요.”

상당히 곤란한 요구임에도 아르마늄에서 자유로운 마법 무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목적에 알맞은 연구다 보니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히센.

그리고 그렇게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로빈도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거 같았다.

물론 그가 연애 따위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복잡한 과제를 던져 심통을 부린 건 절대! 아니었다. 어차피 나중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미리 언질을 준 것뿐이다.

마수 마법 갑옷이나, 마수의 뼈로 제작한 무기.

로빈이 이런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건 이 소설의 미래 때문이었다.

소설이 중반부쯤에 접어들었을 때였나?

아마 그날이 황태자가 3황자와의 황위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드디어 황제로 즉위한 바로 그날이었을 거다.

로빈은 이제 황제가 제국을 차지했으니 주변국들과의 국제 정세가 변화하고 타국과의 대규모 전쟁, 치열한 외교전 같은 이야기들로 소설이 진행될 거라고 믿었다.

사실 제국 내 세력 다툼은 정예 대 정예의 느낌이 강했고, 소규모 전투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색다른 변화를 기대한 것이었는데, 봉구는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큐브 포털을 말이다.

큐브 포털.

게이트, 포털, 몬스터 큐브, 기타 등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소설에 오르내리는 그 소재.

그렇다. 바로 대레이드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날로 세계 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큐브 포털.

큐브 포털 내에 있는 몬스터를 일정 시간 안에 제거하지 못하거나 진입한 제거반이 전멸하면 더욱 강해진 그들이 포털 밖으로 튀어나와 인간을 살육했고, 초창기에는 그런 몬스터들 때문에 다시 제국이 혼란에 빠져들게 되는데…….

솔직히 이게 웹 소설이 아니라 종이책이었으면 읽다가 그냥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뜬금없이 정통 판타지 소설이 레이드 소설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 당시 로빈은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사실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의 제목이 SSS급 황태자의 어쩌구였던 게 이런 복선(?)이었나 싶어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었다. 물론 봉구에게 직접 물어 대답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큐브 포털에는 역시 다양한 제한과 혜택이 있었는데, 그 제한 중 하나가 바로 큐브 포털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장비나 마수의 소재로 만든 장비가 아니면 입장할 때 소멸해 버린다는 거였다.

사실 이것도 이해가 안 됐다.

대체 무슨 이유로 마수 재질로 된 장비는 괜찮고, 다른 건 안 되는지.

큐브 포털에서 얻은 전리품만이 유효하다는 설정이었으면 당연히 마수 소재도 소멸하는 게 정상 아닌가?

어쨌든 그런 이유로 큐브 포털이 생겨난 이후에 무작정 포털을 제거하려고 출동했던 많은 기사가 다치거나 죽었다. 아무리 대단한 기사라도 알몸으로 몬스터를 제거하기는 힘들었으니 말이다.

약한 녀석들이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지만, 그놈들 중에는 중급 마수, 혹은 상급 마수에 달하는 녀석들도 있었으니 어찌 무기도 없이 그런 놈들을 상대할까.

물론 그 후에 여러 가지 정보들이 밝혀지고 여러 실험을 통해 마수 가죽은 큐브에서도 유효하다는 게 밝혀지게 되지만, 그전에 사망한 기사들이나 병사들이 돌아오진 않으니 인류의 전력이 약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로빈이 유일했다.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 황태자조차 큐브 포털이 생기기 전에 회귀하는 바람에 그것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랐고.

물론 황태자가 회귀로 돌아올 시간조차 6년이나 남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

로빈도 자신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전혀 아니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고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 하지 않아도 황태자, 그때는 황제지만 어쨌든 주인공인 그가 황도를 수습하고 정국을 주도해 나간다.

하지만 그런 혼란한 시기가 도래했을 때, 적어도 자신의 기사들이 맨몸으로 큐브 포털에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국의 변방에 위치해 중앙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지만, 다행히도 이곳의 기사들은 용맹하니 장비만 잘 갖춰진다면 영지를 방어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어쨌든 로빈의 목적은 최대한 방어 시설과 장비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그날이 왔을 때 자신의 영지와 인근 영지 정도에 도움을 주는 거였다. 괜히 옆 영지에서 포털이 터져 나와 몬스터가 자신의 영지에까지 들어오는 건 사양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일이니까.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저도 그럴 테니까요.”

로빈은 히센에게 한 가지 고민을 안겨주고 밖으로 나갔다.

“하, 그러고 보니 리퉁 때문에 왔다가 엉뚱한 소리만 하고 가는 거네. 야, 넌 진짜 안 되는 거냐? 차라리 개라도 먹을 리퉁이었으면 가축의 먹이로라도 썼을 텐데. ‘개도 안 먹을’이라니. 넌 대체…….”

로빈은 리퉁을 하늘 위로 던졌다 받으면서 한숨만 쉬었다. 아무래도 일이 쉽게 풀리진 않으려는 모양이다.

“하……. 진짜 그나마 마수는 처먹는다니 진짜 초식 마수라도 키워야 하나? 가축 키우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잖아? 맛있기도 했고. 하지만 가능하긴 한 건가?”

로빈은 예전에 백랑이 보내준 생각보다 더 맛있던 마수 고기를 떠올리며 고민에 빠졌다. 당장은 아니라도 다음에는 이 부분도 어른들과 상의해 봐야겠다.

식량과 리퉁에 대한 고찰(?)은 그렇게 로빈에게 실망감만 남기고 말았다.

“하. 봉구 놈아, 제발 이런 쓸데없는 잡 설정 좀 넣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물론 마지막에는 리퉁의 존재를 어이없는 설정으로 폄하하며 봉구를 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그렇게 로빈이 쓸데없이 리퉁을 붙잡고 고민하고 있던 봄의 끝자락.

제국의 황도 중앙 경매장에는 수많은 귀족이 모여들었다. 바로 얼굴 없는 화가 윌의 진정한 유작이 공개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 천재 화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과연 어떤 그림일까? 사람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경매에 참여하는 귀족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그림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관람객까지 만원을 이루었으니 이 경매가 얼마나 큰 화제가 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고 딜러가 앞으로 나와 이번 경매에 출품된 작품들을 공개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어차피 오늘 경매에 출품된 물건은 윌의 그림이 전부였고, 이미 그렇게 공지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대략의 설명까지 추가할 여유가 있었다.

“이번 윌의 유고 작품은 죽기 직전까지 그가 꿈꾸던 작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섯 편의 그림이 한 가지 큰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연작 형식의 작품인 것이죠! 자, 그렇다면 공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 「내 마음속에 천사」! 이 그림은 윌이 마음속으로 품고만 있던 그녀, 그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기 전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완성한 작품이며,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애절함과 그녀에 대한 그리움까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 여인의 그림을 살펴보면…….”

“허……. 지금까지 윌이 그려왔던 인물화와 완전히 달라. 저런 섬세한 표현이라니.”

“정말 아름답군. 그 윌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만해.”

“윌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건 어쩌면 저 여자가 아닐까?”

“누굴까? 제국의 귀족일까?”

“에이, 설마. 남부 연합국 어딘가의 공주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귀한 여인이겠지.”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리아나의 그림부터.

“두 번째 작품! 「마음속의 보금자리」! 이 작품은 윌이 처음으로 그린 정통 풍경화이며, 소박한 작은 저택에서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여지없이 표현된 작품입니다! 남부 연합국의 한적한 시골 출신이라는 윌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한가한 전원생활을 꿈꿔 왔고 이 그림처럼 한적하고 작은 저택에서 조용히 그림과 자연을 즐기며 살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그가 꿈꾸던 저택은…….”

그레이츠 자작령의 저택.

“세 번째 작품! 「나를 위한 행복한 공간」! 이 작품의 의미 역시 두 번째 작품과 일맥상통하는데요. 윌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만의 작은 정원을 가지길 원했고, 이제는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자신만의 정원을 꿈꿔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만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이 정원은…….”

윌이 항상 손수 꾸미고 있는 정원.

“네 번째 작품! 「나의 작은 천사들」! 윌이 꿈에 그리던 여성과 행복한 가정을 이룬 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났을 작고 귀여운 천사들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 특히 이 그림에서는 지금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그만의 감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요. 게다가 이쪽 한 아이의 은은한 붉은 머리 색은 윌의 머리 색이 붉은색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쌍둥이인 듯한 두 아기는…….”

그리고 세이라와 로빈의 모습까지.

그림이 하나하나 소개될 때마다 경매석의 술렁임은 더욱 강해졌다.

지금까지의 그림들은 그저 연습이었다는 듯, 자신의 모든 기교를 쏟아부어 그린 그림들.

귀족들이 그간 봐왔던 윌의 작품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를 정도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솜씨였기 때문이다.

“하, 정말 혼을 바친 것인가?”

“저 고급스러운 색채를 봐. 저건 르퐁쉘 안료를 사용한 물감이야. 거의 최고급품이라고. 가난하다던 윌이 저런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니.”

“정말 자신의 최후를 예상하기라도 한 거 같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역작을 남긴 것 같지 않은가.”

모두가 그림을 가지고 싶어 했다.

특히 1번과 3번, 2번과 4번 그림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어 연작 느낌을 물씬 풍기며 구매욕을 더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17번 9,600골드 낙찰입니다!”

“17번 10,200골드 낙찰입니다!”

“17번 10,900골드 낙찰입니다!”

“17번 11,200골드 낙찰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17번 손님이 모든 작품을 쓸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윌의 그림은 적게는 2천 골드부터 많게는 4천~5천 골드 정도로 낙찰되곤 했는데, 사실 그림 중에서는 상당히 비싼 축에 속했다.

그런데 아무리 유작이고 지금까지보다 뛰어난 작품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고가로 판매되다니.

이건 전적으로 무조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저 17번 손님 때문이었다.

덕분에 다른 귀족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들이라지만 1만 골드에 육박하는 금액을 그림 한 점에 투자하는 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였다.

그냥 그림이지 무슨 고대의 물품 같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제길, 저 17번 놈은 대체 누구지? 황도 귀족이 아닌 거야? 처음 보는 놈인데?”

“저런 졸부 자식이 윌의 그림을 다…….”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든 17번은 꿋꿋했다. 마치 무조건 저 그림을 다 사가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듯 그렇게 말이다.

지금까지 모든 그림을 포기하며 이를 갈았던 귀족들도 드디어 마지막 그림이 공개되자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작품! 윌의 유작, 윌의 행복 시리즈의 백미이자 마지막 한 조각! 바로!! 「나의 낙원」!”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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