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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55화 (55/303)

55화

“그래서 지금 몇 마리까지 늘었나?”

“처음에 잡아온 녀석들이 6마리, 그리고 지금 사육장에 있는 녀석들이 52마리입니다. 저희가 잡아먹은 놈들이 20마리고요. 지금 저희가 살펴보기로는 60마리 이상으로 늘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키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만큼이나 늘었나? 엄청나긴 하네.

게다가 월령의 말에 의하면 요 녀석들이 성체가 되는 기간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된다니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한번 연구를 해봐야겠군.”

히센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수학자다운 호기심과 연구 욕심에 불이 붙어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지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 말리기도 어려웠다. 마법 갑옷을 만드는 일도 얼추 마무리되고 있었으니 이곳에서 혼 래빗을 연구하며 모야족의 주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아무래도 저도 남아야겠군요. 상황을 좀 살펴봐야 할 거 같고, 대수림에 성채를 짓는 것도 신경 써야 할 테니까요.”

지온까지 이곳에 남기로 했다.

하긴 중앙에 마을을 짓는 일은 이제 지온이 할 일이 없었다. 이제 곧 다가올 가을 징수가 문제 되긴 하겠지만, 좀 번거롭지만 그건 여기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온이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모양이니 확실한 일 처리를 위해 이곳에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쨌든 영지의 주요 인사들이 당분간 이곳에 머물 거 같으니 영주 성은 한동안 조용할 거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혼 래빗 굴을 통째로 파서 온 거예요?”

다시 영주 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을 배웅 나온 백랑에게 로빈이 슬쩍 물었다. 아까 끊긴 이야기가 조금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원래 사람도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잠도 잘 못 자고 그렇잖아? 그래서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괜찮지 않겠냐고 말한 거였어.”

“음…….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닌데요. 그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번졌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무식한 놈은 아니라고. 토끼 굴을 통째로 파오다니. 그게 말이나 돼?”

백랑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월령이라는 여자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로빈은 왠지 저 월령이라는 여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건 많은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하려면 명령에 권위가 있어야 했고, 그래서 월령이 백랑의 말을 등에 업고 그렇게 명령했다. 아무래도 이런 시나리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 들어갔고 혼 래빗을 사육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혼 래빗을 사육하지 못했나 보다.

솔직히 마수가 즐비한 마수 서식지에서 혼 래빗을 발견해 잡아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인부들을 동원해서 그 집까지 파와야 한다니, 그야말로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그런 미친 짓을 할 사람도 없을 테고.

아마 모야족도 대수림의 먹이 사슬이 흔들려 혼란에 빠진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 같았다. 실제로 백랑도 이제 슬슬 대수림으로 사냥을 들어가는 게 조금씩 벅차다고 했으니 말이다.

월령이라, 확실히 괜찮은 인재였다. 성향도 냉정함과 열정적, 순종적이면 크게 나쁘지 않은 거 같았고.

아마 저 순종은 부족이나 전사들의 권위를 따른다는 뜻이겠지?

다만 능력이 괜찮아 보임에도 월령에게는 타이틀이 없었다. 다시 한 번 타이틀에 대하여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게 재능 같은 거랑은 좀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20대 중반쯤 된 월령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다니.

* * *

그렇게 모야족 마을에서는 혼 래빗의 생태 연구가 개시되었다. 로빈의 꿈과 희망을 가득 안고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가을이 한창이던 어느 날.

모야족 마을에만 틀어박혀 있던 히센이 환하게 웃으며 영주 성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그의 연구가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찾았어! 하하.”

“오, 드디어요? 이제 혼 래빗을 대량으로 사육할 수 있는 건가요?”

“맞아. 역사상 처음으로 마수를 사육할 수 있게 된 거지.”

처음 히센이 연구한 것은 바로 흙이었다고 한다.

혼 래빗이 살고 있는 집을 파왔다고 하니 그들이 살던 주변 환경이 이곳과 얼마나 다른지를 조사해 본 것이었는데 아무리 성분을 조사해 봐도 다른 게 없었단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갈색과 회색이 이상하게 뭉친 딱딱한 덩어리였지.”

결국 흙에서는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혼 래빗이 살던 흙을 사방에 뿌려놓았다는 장소를 다시 천천히 조사했는데 그곳에서 뭔가 이상한 작은 덩어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히센은 사람들에게 지시해서 지금 살고 있는 혼 래빗의 집을 다시 파내기 시작했는데, 그 가장 깊숙한 곳에도 이 덩어리가 있었단다.

“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놈을 계속 조사했지.”

“오, 그래요? 뭐였나요, 이건.”

“똥이었어.”

“네? 똥이요? 뭔가를 먹으면 엉덩이로 나오는 그 똥 말이에요?”

“그래, 어이없지만 맞아. 딱딱하게 굳은 똥. 난 무슨 특별한 광석인 줄 알고 계속 조사한 건데 그놈이 방금 싸놓은 똥이랑 구성 요소가 완전히 같았단 말이야.”

“세상에…….”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은 혼 래빗은 자신의 영역임을 확인하기 위해 딱딱하게 굳은 자신의 대변을 굴 깊숙이 보관하며 그렇게 확인된 영역에서만 새끼를 낳는다는 거였다.

즉, 혼 래빗만 몇 마리 잡아다놓으면 자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새끼를 낳지 않는다는 것.

“방금 싼 똥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은 놈이 필요한 거였어. 그리고 이놈이 완벽하게 굳어서 이렇게 딱딱해지려면 대략 십수 년 정도 걸리는 거 같아.”

히센은 이 점을 조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강도의 차이를 이용해 역산으로 계산했다는데 그 과정은 솔직히 로빈의 귀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 부분을 조사할 때는 도리아의 도움까지 받았다니 참 복잡하긴 하다.

“그래서, 이놈들을 대량으로 사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건 간단하지. 저 딱딱한 놈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사육장 곳곳에 뿌려놓아 그놈들의 영역을 넓혀주면 돼.”

“…그런데 저게 굳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십수 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구해요?”

“그렇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어. 일반적으로 그냥 내버려두면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만, 특정 온도로 가열하니까 더 빠르게 굳어버리더라고.”

처음에는 이 똥의 정확한 정체를 알기 위해 고생했다면, 나중에는 이 똥을 원하는 만큼 빠르게 굳히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똥과는 조금 다르기도 했고, 가열 정도에 따라 상태가 조금만 달라도 이 혼 래빗이 바로 외면했다고 하니 설명만 들어도 어지간히 고생을 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대수림에 마수가 자리 잡은 시간이 기껏해야 9년이에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저런 게 있는 거죠? 원래 십수 년이나 걸린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대수림에 자리를 잡았을까요? 저놈들이 저걸 들어서 옮기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흠…….”

“그리고 번식력이 대단하다는데 자체적으로 영역을 늘릴 때는요? 십몇 년이나 기다리면서 영역을 늘릴 거 같지는 않은데요.”

로빈의 의문에 히센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야.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 추측으로는 저놈들이 이주할 때 저걸 들고 온 게 아닌가 싶어. 그게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거든. 실제로 내가 연구를 한 이후부터 저놈들을 그대로 내버려뒀는데 수가 늘어나니 저걸 물고 들어가 새로운 굴을 파더군. 그리고 그때 갑자기 새로운 덩어리가 나타난 걸 보면 저놈들은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저걸 늘릴 수 있는 모양이야. 이놈들은 토끼가 아니잖니? 어쨌든 마수라고. 무슨 우리가 모르는 방법이 있는 거야.”

그래. 마수지. 저놈들도 마수야.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주지를 박차고 나와 인간들에게 주기적으로 덤벼드는 마수.

솔직히 저놈들이 내일 갑자기 육식을 시작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수 놈들 이상한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다가도 자신이 들은 내용이 정확한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요. 자기들이 알아서 영역을 늘리더라고요? 지금까지는 개체 수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요?”

“하, 그게…….”

히센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 녀석들이 일정한 개체 수를 이루면 한동안 포화 상태에서 현상 유지하는데 그런 안전한 시간이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새로운 영역을 넓히더구나.”

“그러니까, 그 말은…….”

“모야족 사람들이 그 한 달을 못 참고 한 마리씩 두 마리씩 계속 잡아먹으니 영역을 늘리지 않은 거였다.”

와. 모야족, 진짜.

하긴 그들이 안전한 식량을 계속 내버려두길 바라는 건 좀 무리긴 하지만.

그래도 개체 수를 늘리겠다면서 잡아먹고 있는 건 좀 그렇잖아?

가만있자, 결국 그 말은…….

“하, 그러니까 히센 님도 굳이 연구할 필요가 없었네요.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요.”

로빈의 지적에 움찔한 히센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렇지.”

“하하. 에이, 그래도 히센 님이 연구를 해주셔서 명확히 알게 된 거잖아요. 만약 히센 님이 모야족 마을에서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계속 잡아먹어서 대량 사육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히센이 급 의기소침해하자 로빈이 크게 웃으며 그의 공을 치켜세웠다. 그가 고생한 것만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뭔가 좀 안습한 기분을 떨쳐버리긴 쉽지 않았지만…….

게다가 모야족의 성향을 봤을 때 히센이 없었으면 꾸준히 혼 래빗을 잡아먹었을 거란 짐작도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달랜 덕분인지 히센의 기분도 조금은 나아진 듯 보였다.

어쨌든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혼 래빗을 사육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로빈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고 있었다.

* * *

돌이켜보면, 히센이 혼 래빗을 한창 연구하던 여름날에도 영지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가장 바빴던 사람은 지온이었을 것이다. 지온은 영지의 징세 업무와 중앙 마을의 건설 현장, 그리고 요새 건설 현장까지 방문하며 일의 진척 여부를 확인했으니 말이다.

남쪽 성채 건설 작업에는 히센이 부른 그의 친구들과 도리아, 그리고 도리아의 제자 몇이 동참하게 되었다.

그 당시 히센은 제 친구들을 부르기 위해 무려 통신 수정구를 꺼냈는데 로빈이 자신을 부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쓰게 웃으며.

“솔직히 나도 영지에 통신 수정구가 없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몇 개 구입하는 게 어떨까?”

이렇게 말해 로빈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는데.

일개 마법 공학자도 가지고 있는 물건조차 없는 영지가 그레이츠 자작령이었으니 로빈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로빈도 추후 수정구를 구입할 때 염가로 구할 수 있게 히센의 협력을 약속받을 수 있었으니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로빈은 훗날 혼 래빗 장사에 성공하면 반드시 마을마다 수정구를 비치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마수학자를 겸하고 있다는 히센의 친구들은 예상보다 더 능력이 출중했다. 게다가 지인 세일(?)까지 받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고.

심지어 일을 마치면 히센이 있는 곳까지 찾아와 이런저런 참견을 늘어놓는데 그 훈수가 또 은근히 히센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도 했단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로빈은 카인에게 말해 최근 도축한 혼 래빗의 가죽 몇 장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가메라 가죽도 한두 장 정도 건네주며 친분을 더 쌓고 싶었는데 모두 갑옷으로 만들어버려서 남은 게 없어 어쩔 수 없었고.

어쨌든 지온이 총괄 책임을 맡은 성채와 방벽을 건설하는 일은 전체적으로 순조로웠다.

애초에 모야족이 성채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대수림 초입부를 벌목하기도 했고 강의 경계를 교묘히 걸치게 위치를 잘 생각해 놓아서 그곳에 그대로 짓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제법 수심이 깊고 서쪽의 해안가로 흘러나가는 이 강은 앞으로 영지 남쪽을 보호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여름에는 모야족의 피서지가 될 예정이었지만.

빠른 건설을 위해 각 마을에서도 많은 장정이 차출되었다. 히센과 도리아의 지인들이 편의를 봐줘 제법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고, 그 돈의 일부를 영지민을 위해 푼 것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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