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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56화 (56/303)

56화

이런 결정은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았는데 일손이 늘어나며 성채 및 마을 건설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고, 아직까지는 주민들과 많은 접촉이 없었던 모야족과 주민들이 같이 일하며 조금씩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의 시작은 에테 마을에 모야족 일꾼들이 통나무를 옮겨주었을 때부터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을이 완성되고, 서로 제대로 거래하기 시작하면 이런 모습이 더욱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지온이 이곳에서 성채 쪽 문제만 관여한 건 아니었다.

그는 현재 모야족이 살고 있는 황무지 전체를 혼 래빗 사육장으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을 옆에서 지원한 사람이 바로 월령이었다.

가장 먼저 거대한 주술 숙성 창고를 두 개나 짓고 근처에 두꺼운 울타리를 쳤다.

큰 주술 창고 하나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주술사 둘이 매일 마나를 충전해 줘야 했는데, 그 말은 적어도 이 농장에 주술사가 넷이나 상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모야족 주술사의 숫자가 총 열네 명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제법 많은 수가 필요한 셈이다.

마나를 충전하는 건 주술적 소양이 그리 깊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모든 주술사가 할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리고 히센의 연구를 통해 혼 래빗이 굴을 팔 때 2미터 이상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바로 울타리 아래쪽에 철심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혹시 혼 래빗이 굴을 파 외부로 나가 번식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는데, 초식이지만 어쨌든 마수고 그들이 밖으로 뛰쳐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예상할 수 없어서였다. 그 큰 울타리에 모두 철심을 박느라 돈이 제법 들었지만,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울타리까지 완성될 때쯤, 히센의 연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성채와 방벽은 완성되어 모야족의 대이주가 시작되었다.

튼튼한 집보다는 차라리 천막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모야족의 성향 때문에 마을의 터만 닦고 바로 이주가 시작된 것인데, 덕분에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요새 마을에 전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어버린 황무지에는 거대한 혼 래빗 사육장만 남았는데 본격적으로 혼 래빗의 사육이 시작되자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육장을 지키는 모야족 전사들이 머물 거대한 막사, 그리고 경계 초소. 혼 래빗을 도축할 도축장, 혼 래빗 가죽을 수거할 세공업자까지.

심지어 이곳에서 작업할 여러 사람을 위한 것인지 작은 술집까지 하나 들어왔는데.

“엥? 존 씨? 왜 여기 있어요?”

“에테 마을 건설은 이제 마무리만 남아서요. 그리고 여기가 더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삶의 여유를 되찾은 존이 동생 둘과 이곳에 작은 술집을 차린 것이었다.

존의 가족은 이제 에테 마을에 정착하는 걸로 아는데 이렇게 혼자 또 나와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다니, 이래서 괜찮겠나 싶으면서도 왠지 가장으로서의 그의 애환이 느껴지는 거 같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의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생활력이 있긴 해도 순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이상하긴 했다. 혹시 이 사람, 은근히 고개 숙인 남편이나 그런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줘야 하려나.

하지만 이곳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존이 이곳에서 동정을 살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 굳이 말리진 않았다.

백랑은 이곳에 전사 열다섯 명과 예비 전사 서른 정도를 배치했는데 솔직히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이 요새를 피해온 마수들의 집결지가 될 거라는 말에 로빈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수 범람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수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거였고, 그러니 먹이들이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있는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백랑은 그래서 아예 이곳을 영지 방어를 위한 거름망 정도로 쓸 생각인 것 같았다. 덕분에 모야족이 지킬 곳이 두 곳이 되었지만, 지금 폴이 훈련하고 있는 기사들이 자리를 잡으면 이쪽으로도 파견하기로 했으니 그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지온도 백랑의 뜻을 이해하고 이곳에도 목책을 쌓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남쪽에 요새를 짓기 위해 추가 벌목한 목재들이 다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요새에 정착한 모야족 남성들까지 다 나와 목책을 쌓으니 생각보다 빨리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전체적으로 관리했던 지온은 겨울을 코앞에 두고서야 겨우 일을 마치고 영주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든든하게 건설된 성채와 사육장을 오가며 생활하던 백랑은 의외로 존과 죽이 잘 맞았다. 서로 무슨 코드가 통하는 건지, 서로를 화끈한 놈과 웃기는 녀석으로 부르고 있었는데 대체 저건 또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두 여자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백랑과 은근히 부인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듯한 존이 저렇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은 왠지 좀 웃기기도 했다.

* * *

바야흐로 늦가을의 정취가 한창이던 때.

에테 마을과 남쪽 요새, 그리고 혼 래빗 사육장까지, 이 모든 것이 계획대로 겨울이 되기 전에 마무리되면서 이제 느긋하게 겨울을 지낼 일만 남았던 그레이츠 영지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일의 발단은 이렇다.

작년 마수 범람으로 많은 영지가 피해를 보고 그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던 룩센 대제는 겨울이 깊어지기 전 미리 마수들을 선제공격해서 그 숫자를 줄여놓기를 원했다.

그래서 황실의 돈으로 많은 용병을 고용해 각 영지에 파견했고, 영지는 용병들과 힘을 합쳐 정해진 수 이상의 마수를 잡아 황실에 보고하라는 명령서를 전달한 것이다.

그레이츠 자작령의 수뇌부는 이 명령서를 들여다보며 모두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분명 황제 폐하가 좋은 뜻으로 명령하신 건 맞는데…….”

“음…….”

“뭔가 귀찮네요, 이건. 뒷북이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황제의 명령에 뭐라고 말도 못 하고 뜸만 들일 때 어린 로빈이 바로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들도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하지만 저희 영지만 생각할 일은 아니죠. 아마 다른 영지 같은 경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수림에 접하고 있어 갑자기 봉변을 당한 아래쪽 영지들은 분명 그럴 겁니다.”

“흠, 그건 그런가?”

용병으로 마수를 토벌한다라.

제국이 건국된 후, 어느 시대든 용병은 존재해 왔다.

다만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에는 영지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마수의 습격도 잦아 용병들의 수준도 제법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황실의 권위가 높아 정세가 매우 안정화된 상황이고, 덕분에 영지전이 마지막으로 일어난 것도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수준도 지금은 그저 그런 상황.

다만 지온의 말처럼 일반적인 영지병들보다는 싸움에 익숙한 용병들이 필요한 영지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테니 말이다.

다만 이곳 영지는 전혀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인데. 결국 그레이츠 자작령의 입장에서 이번 명령은 그저 귀찮기만 한 명령인 것이다.

“그놈들이 괜히 대수림에 들어가 이상한 놈만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백랑이 한마디 툭 던지자 모든 사람의 눈이 순간 백랑 쪽으로 돌아갔다.

그렇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마수의 수를 줄인다고 해도 겨울에 마수 산맥으로 당당하게 쳐들어갈 바보는 없을 테니 황제도 그걸 바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대수림 외곽의 마수들을 줄여 마수의 습격에 익숙하지 않은 영지들을 지원하는 것이 이번 명령의 최종 목적임은 틀림없었고.

그렇게 용병들이 대수림에 들어갈 텐데 그놈들이 멋모르고 이상한 놈이라도 건드렸다가는 또 마수들이 광란의 질주를 벌일 가능성이 컸다. 작년 난리 때 백랑이 상급 마수를 자극하는 바람에 수많은 중급 마수들이 대수림 밖으로 튀어나왔던 거처럼 말이다.

그게 용병들 수준으로 커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니 피곤한 거였다.

“아니, 그렇잖아요. 흑웅의 말을 들어보니까 용병 애들 수준이 가관이라던데요. 그런 애들이 와서 도움이나 되겠습니까? 사고만 안 쳐주면 다행이지.”

“하지만 황제 폐하의 명령이니 따르는 수밖에 없네.”

“끙.”

무려 황제 폐하의 명령이라는 말에는 백랑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용병들의 수준이 매우 낮다고 하던가요? 정확히 어떤데요?”

흑웅이 영지에 들어온 후 사건, 사고가 잦아 제대로 대화해 보지 못한 로빈은 업계 경험자인 흑웅이 평가하는 용병들의 수준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영지전이 난무하던 전성기보다는 많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칼밥 먹는 사람들이니 어느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있었고.

“글쎄. 말을 들어보니 대부분 이쪽 영지 기준으로 상급 병사 정도? 가끔 초입 기사 정도 되는 녀석들도 있지만, 수가 별로 안 되고. 흑웅이가 모은 검은 곰은 그야말로 별종 중의 별종이었다는데.”

“음.”

확실히 검은 곰 용병단. 이제는 검은 곰 기사단이 된 이 남자들은 제법 괜찮긴 했지. 다른 용병들도 이 정도 수준이기를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였나.

“그보다 더 문제는 성격이 개차반인 놈들이 태반이라는 거야. 괜히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피곤한 거 아닌가?”

“아…….”

잠시 잊고 있었다. 어느 소설이든 성질 안 좋은 용병들이 영지로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소란을 일으킨다는 걸.

다른 건 몰라도 손에 꼽을 만한 이곳 영지 치안대의 수준이나, 기사단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곳에 와서까지 그런 난리를 벌일까 싶으면서도 뇌가 우동 사리인 녀석들이 그런 걸 생각이나 할까 싶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용병도 아니고 황제의 이름으로 보낸 용병이라.

생각보다 피곤할 수도 있었다.

“…혹시 용병들이 들어왔을 때 문제가 될 만한 건 없나요?”

로빈이 다급하게 묻자 폴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가끔 용병이 들어왔었기 때문에 본 것과 들은 것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문제가 될 만한 건 아무래도 유흥 시설일 겁니다. 영지에는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요.”

“유흥 시설…….”

“기껏해야 작은 술집들이 전부고, 가장 중요한 사창가가 없으니까요.”

아, 그렇지. 영지에 사창가가 없지.

허리하학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어 허리 쓰는 걸 좋아하는 이 녀석들이 사창가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생활할 때 벌어질 일들. 솔직히 안 봐도 알 만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이 대수림 쪽으로 들어간다면 결국 모야족 마을 쪽에 기거한다는 건데.

여관도 없고 천막에서 살아가는 모야족들과 용병들이 같이 있게 되면…….

이거 괜찮은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소설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그 용병들이 발정 난 개새끼라는 데 로빈은 제 불알 두 쪽을 다 걸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쓰려면 한참이나 남아 덜 여물고 작긴 하지만 명품임은 자부할 수 있는 그것을 말이다.

어쨌든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인데 혹시나 이 녀석들이 괜히 모야족 여자들을 건드렸다가 맞아 죽기라도 한다면…….

모야족의 스타일을 봤을 때 건드리는 순간 사망 확정이었으니 말이다.

“백랑 님, 모야족에서는 여성을 강제로 덮치다가 실패한 남자를 어떻게 처리해요?”

“응? 우리 부족은 그런 일이 전혀 안 일어나는데. 반대라면 몰라도. 아, 그래, 예전에 그런 일이 있긴 했어. 그때 어떻게 했더라? 그냥 팔다리 다 잘라서 짐승들 먹이로 줬던가?”

근래 모야족 내에서는 여초화 현상이 조금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마을 교류가 활성화되면 여성들이 영지민들과 짝을 이룰 수 있겠다며 좋아하기도 했었지.

과거에도 제국에 합류하자마자 혼혈이 급격히 늘어났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부족민들이 굳이 순혈을 고집하지는 않는 거 같아 로빈도 잘 융화되면 좋겠다고 덧붙였었다.

그렇다 보니 근래에는 강간 사건 따위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인데, 어쨌든 처벌만은 강력하게 하는 모양이다.

로빈이 강간범을 어떻게 처벌하는지 묻지 않고 강간 미수에 관하여 물었던 것은 제국법에 의하면 강간범은 거세, 혹은 사형에 처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음담패설을 읊어도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아닌 사회라 그런지 강간 미수에 대한 처벌은 비교적 가벼웠는데, 그 갭이 너무 큰 것이 신기해 로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강간의 기준이나 판단 방법이었는데, 우선 여성이 거부 의사를 표시했으면 무조건 강간이었고, 여성이 신고해서 강간당했다고 하면 거의 유죄 확정된 상황에서 남자가 무죄를 입증해야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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