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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60화 (60/303)

60화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소? 그래도 여긴 꾸준히 마수라도 습격하는 곳이잖소. 기사들이 그 정도로 엉망이면 영지가 유지될 리가 없는데…….”

“하하. 그래, 그 마수. 적이라고는 그 짐승들뿐이지. 내가 아까 영주를 만나러 갔는데 그 옆에 기사단장이라는 녀석도 있더군. 그런데 그 녀석이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거야.”

“가죽 갑옷 말이요? 아르마늄 합금 마법 갑옷이 아니라 가죽 갑옷? 그건 용병들도 입지 않는 놈이잖소? 한 영지의 기사단장이 그런 갑옷이라니…….”

“그래, 그러니 그 수준이 오죽할까. 여긴 그런 곳이야. 그러니 짐승들 따위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흠…….”

마수들이 없는 남부 지방에서 활동하던 용병대라서 마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데다 폴의 고성능 마수 가죽 마법 갑옷을 알아볼 안목조차 없어 단순한 가죽 갑옷으로 착각하며 시작된 오해는 이렇게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거요. 강행하겠다는 뜻은 알겠는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소? 그래도 깊은 숲에 들어가는 건데 길잡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니오.”

“그렇지. 길잡이는 있어야지. 흠……. 그래. 아까 남쪽에 모여 사는 부랑자들이 숲에서 살던 사람들이라고 했겠다? 그럼 그들이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겠군. 우선 애들 몇을 보내서 길잡이로 도와줄 녀석을 좀 구해봐. 가난한 곳이니 적당히 던져줘도 충분히 원하는 길잡이를 구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우리끼리 길잡이를 구해서 영주의 허락 없이 대수림에 들어가겠다는 거요?”

“쉽게 허락해 줄 분위기가 아니니, 뭐 그래야겠지.”

릭스터는 찝찝한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영주인데 명령을 어겼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돼서였다.

“그랬다가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하지만 제닉의 생각은 전혀 다른 거 같았다.

“문제는 무슨. 우리가 들어가서 상급 마수를 때려잡고 적당히 하급 마수들도 쓸어버리면 오히려 고마워하겠지. ‘아이고, 저희가 몰라뵈었습니다’, 이러면서 말이야.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좀 어때? 어차피 우리 뒤에는 의뢰주님이 계시는데. 사냥에만 성공하면 웬만한 일은 알아서 다 무마해 주실 거야.”

“음……. 거, 그 의뢰주도 귀족인데 그를 너무 믿는 건 아니오?”

“킥, 그쪽 눈에는 우리가 천한 용병 놈들일 테니 전적으로 믿을 순 없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분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 이상 문제 될 건 없어. 그리고 이런 작은 영지 따위 중앙의 고위 귀족의 콧김 한 방이면 바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고. 그러니 문제 될 게 없다는 거야.”

“그거야…….”

릭스터도 황도의 고위 귀족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권력의 중추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방의 영지 귀족도 귀족인 건 마찬가지고 자신의 영지에서만은 사실 황도의 귀족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지가 너무 볼품없어서 그 힘을 무시하는 모양인데, 기분이 썩 개운하진 않았다.

“우선 길잡이를 구하고, 이쪽 영주한테 보고하고 내려갈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무작정 설칠 생각은 없으니까. 어차피 황실의 명으로 온 거고 우리가 굳이 대수림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그쪽에서 우릴 막을 명분은 없어.”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그래. 애들한테 빠르게 움직이라고 해줘. 지금 다른 곳은 벌써 시작했을 거야. 여기가 제일 멀어서 우리가 너무 늦었다고. 가장 먼저 상급 마수를 잡으면 추가금까지 받을 수 있는데 그걸 놓칠 순 없지.”

“서두르라고 하겠소. 그리고 다른 녀석들 말인데…….”

“아아, 평소대로 쉬어두라고 해. 하루 이틀 정도는 쉬어야지. 지금까지 쉬지도 못하고 서둘러 왔으니.”

“그럼, 그렇게 말해두겠소.”

상급 마수에 대한 의뢰를 받은 것은 언리페어 용병단만이 아니었다. 자신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난 용병대에는 모두 의뢰가 들어갔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검은 곰 용병단을 제외하고 이름난 용병단이나 개인 용병들은 모두 의뢰를 받았고, 북부에 겨우 발붙이고 살던 몇몇 용병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뢰를 승낙했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먼 이곳으로 배정받은 바람에 너무 늦고 말았다. 그러니 재수 없으면 그 많은 추가금을 놓칠 수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급해졌다.

제닉은 최대한 빠르게 대수림으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황명을 등에 업은 이상 영주에게는 자신들을 막을 명분이 없으리라. 만약 명분도 없이 자신들을 막아선다면.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제닉은 이번 건을 무사히 마친 후 자신에게 쏟아질 금화를 생각하며 웃음 짓고 있었다. 마치 큰돈이 눈앞에 보이는 듯 그렇게 말이다.

* * *

용병단에서 일부의 인원이 빠져 남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당연히 영지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막지는 않았다. 대수림으로 출발하기 전 근처를 둘러보겠다는데 막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인은 아예 그들을 남쪽 마을까지 안내해 주기까지 했다.

“분명 길잡이를 직접 알아보러 가는 것이겠죠?”

“그렇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협조적이지 않은 건 알았을 테니.”

“어차피 명분도 없으니 안내를 붙인 건 오히려 잘하신 겁니다.”

“그래, 괜히 내려가다가 혼 래빗 사육장이라도 발견하면 피곤해지니까.”

카인이 괜히 안내까지 붙여준 건 아니었다.

영주 성에서 남쪽으로 대로만 타고 내려가면 바로 남쪽 요새까지 다다를 수 있지만, 중간에 샛길로 빠지면 혼 래빗의 사육장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괜히 용병 녀석들이 사육장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길 안내를 자처한 것이었다. 아무리 마수가 생소한 남쪽 지방의 용병이라도 그 큰 토끼를 보면 일반적인 토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마수를 전혀 모르는 용병을 보낼 수가 있죠. 진짜 말도 안 돼요. 저 사람들, 저러다가 다 죽을 거라고요.”

“북부에도 용병이 있긴 한데 마수의 위력을 아는 그들이 이런 의뢰를 받았겠습니까? 아마 모두 단박에 거절했겠죠.”

“아니, 용병 길드도 없나요? 이런 일은 길드 차원에서라도 막았어야죠.”

“용병에게 그런 의리가 있을 리가 없죠. 서로 다 잠재적인 라이벌이자 적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용병 길드는 용병들 간의 갈등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습니다.”

아까는 조금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로빈이 이렇게 핏대를 올리는 이유.

그건 바로 퀘스트 때문이었다.

용병단의 단장이라는 제닉이 떠나고 얼마 안 있어 갑작스럽게 그놈이 나타나고 말았으니.

언리페어 용병단과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라.

보상: ???

페널티: ???

기한: 용병단이 전멸하기 전까지

바로 요런 퀘스트였다.

보상이나 페널티를 떠나서 기한만 봐도 저 용병단이 대수림에 들어가 다 사망한다는 뜻이 아닌가.

솔직히 지금까지는 그놈들이 죽으나 사나 별 관심도 없었지만 퀘스트가 나타나면 사정이 조금 달랐다. 실패 페널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공하는 편이 속 편한 게 바로 퀘스트란 놈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놈들이 우선 살아야 관계를 형성하든, 쌈을 싸먹든 할 테니 로빈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살리긴 해야 했다.

하, 퀘스트 진짜 더럽네. 아까 그놈 성향만 봐도 딱 노답인데. 그런 놈들이랑도 어울려야 하나.

로빈은 아까 본 제닉의 기회주의적이고 탐욕적인 성향을 떠올리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퀘스트가 나왔으니 하긴 할 건데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딱 봐도 그놈은 영지를 개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마을에서 길잡이를 구하긴 힘들 겁니다.”

“그렇겠지. 모야족 누구도 우리의 뜻을 거역하지 않을 테니까.”

어차피 그들이 만나는 건 모야족이었고, 모야족이 우리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대수림에 길잡이를 자처할 리는 없으니 당분간은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잡이 없이도 대수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길잡이도 없이 그들을 보내면 훗날 황제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건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포기시켜야겠네요.”

“우선 내일 그쪽 용병단에 우리 기사들의 실력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우리의 실력을 본다면 그들도 우리의 말을 적당히 알아듣겠죠.”

폴의 말에 로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의견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기사단과 대련해 몇 번 뒹굴다 보면 이곳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님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거 괜찮군. 좋아. 아예 두들겨 패서 며칠간 거동도 못 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적어도 조급한 마음은 가라앉을 거 아닌가?”

카인도 폴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지적하듯이 제닉이란 용병단장은 딱 봐도 성급해 보였으니 며칠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면 이곳을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고, 자신들보다 월등히 강한 존재가 말리는 일이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할 테니 말이다.

“우선 일은 그렇게 하기로 하지. 폴, 부탁하네.”

“네, 영주님.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늠름한 폴의 모습에 로빈도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당장 그들이 숲으로 뛰어들어 자멸할 거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심한 것도 잠시, 바로 그날 밤 문제가 일어나고 말았다.

“하. 강간 미수, 무단 침입, 폭행, 기물 파손, 노상 방뇨, 쓰레기 무단 투기. 아주 가지가지군. 이 새끼들을 다 잡아넣었다고?”

첫날부터 용병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영지를 헤집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영주 저로 달려와 경위를 보고하는 루이의 모습에 로빈도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내심이냐? 하루 만에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다니. 게다가 노상 방뇨나 쓰레기 무단 투기는 뭐야? 저런 것도 잡아넣는 거였어?

사건의 경위는 간단했다.

모든 원인은 영지가 워낙 조용하고 유흥가나 윤락가조차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그리고 인내심을 발휘하기엔 그들이 너무 굶주렸기도 했고.

하루 쉬라는 지시를 받은 용병들은 평소처럼 삼삼오오 모여 윤락가를 찾았다. 급하다는 이유로 강행군하느라 무려 한 달이나 넘게 굶주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레이츠 자작령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고 그 사실을 깨달은 용병들은 어쩔 수 없이 짜증을 내며 작은 술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큰일이 있기 전에 가능하면 사고를 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술이 오른 용병들에게 그런 자제심이 있을 리가 없었고, 그 자리는 뭐 이따위 영지가 있냐고 성토하는 격한 분위기로 서서히 변질되어 갔다.

그리고 비록 영지는 작고 가난하지만 나름 자부심 넘치고 거친 그레이츠 자작령의 남자들이 그 말을 듣고 그냥 무시하지 못한 것이 바로 문제의 시작이었다.

영지를 무시하는 말에 말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고 따지던 남자는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가 맥이 빠져버려 짜증이 잔뜩 오른 용병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렀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영지민이 치안대에 신고한 것.

그리고 주먹까지 쓰면서 몸이 더 달아오른 놈들은 술이 완전히 오르면서 욕망을 못 이겨 소리를 지르거나 술집을 부수고, 심하게는 길거리로 나가 민가를 침입, 혹은 길 가던 처녀들을 창녀 취급하며 돈을 던져주고 강간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무장 후 대기하던 치안대는 바로 출동해 그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에서 일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술은 잔뜩 올랐지, 몸은 달았지, 게다가 이곳을 무시하는 마음마저 가득했던 용병들은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말리는 치안대한테까지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믿는 바가 있었다. 영지를 도와주기 위해 온 자신들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불러 도적을 토벌할 정도로 작은 영지들은 다 그런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영지의 영지병을 적당히 두들겨 패도 나중에 단장이 점잖게 사과하면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 일쑤였으니 그들은 그저 습관대로 행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용병들이 덤벼들자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어 두들겨 팼고, 아무리 거친 용병이라지만 술까지 취한 상태로 이런 일을 대비하고 있던 상급 병사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치안대의 감옥으로 영지 곳곳에서 비슷한 행태를 벌였던 용병들이 모조리 잡혀온 것이다.

물론 로빈의 말대로 쓰레기 투기나 노상 방뇨 같은 건 당연히 구속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독이 잔뜩 올라버린 치안대원들에게 억울한 취급을 당한 거였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고를 받으며 꾹꾹 화를 눌러 참던 카인의 짜증을 폭발시키는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남쪽 요새로 내려갔던 용병들 열 명이 피떡이 된 채 꽁꽁 묶여 영주 성으로 배달된 것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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