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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61화 (61/303)

61화

남쪽으로 내려갔던 용병들은 요새에 가득한 천막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여긴 뭐야? 무슨 난민촌이야?”

“하, 영지 수준 진짜…….”

게다가 자신들의 숙소라고 소개해 준 곳조차 천막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우릴 무슨 거지로 아나? 진짜 미친 거 아냐?”

“야야, 진정해. 우린 사고 치러 온 게 아니라 길잡이를 구하러 온 거라고. 우선 오늘은 얌전히 쉬고 내일 바로 사람부터 찾아보자.”

자신들의 임무를 기억하며 애써 화를 참은 그들은 첫날은 그냥 쉬기로 하고 자기들끼리 모야족이 안내해 준 천막에 자리를 잡고 술잔을 나누었다.

윤락가는커녕 술집조차 없는 천막촌.

그래도 백랑이 잘 대접해 주라고 했기 때문에 술만은 넉넉하게 얻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리라.

그렇게 불만에 가득 차 씩씩거리며 술잔을 나누던 용병들은 술에 취하자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 완전 거지 소굴 같은 천막촌인데 아까 보니까 여자들은 제법 꼴리지 않냐?”

“그래, 무슨 원주민이라는데 남쪽의 화끈한 창녀들하고 비슷하게 생겼던데? 까무잡잡한 게.”

“딱히 윤락가 같은 건 없는 모양인데 난민촌이야 전체가 다 윤락가지, 뭐. 적당히 던져주면 알아서 벌리지 않겠어?”

“킥킥. 야, 가서 반반한 년으로 몇 명만 데려와 봐. 물이나 좀 빼자. 한 달을 넘게 못 써서 썩어 들어가겠어.”

“인마, 그딴 이쑤시개 따위 썩어 없어지는 게 더 좋은 거 아냐? 쓸데없이 네놈이 허공에 삽질해서 입맛만 버릴 여자들을 위해서 말이야.”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 놈이 먹잇감을 찾아 천막을 나섰는데.

솔직히 그들도 강제로 뭔가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어차피 적당히 돈만 주면 알아서 벌릴 여자들인데 뭐 하러 그러겠는가.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백랑은 로빈과 지온의 경고를 들은 후 부족민들에게 분명히 전달했다. 외부인이 들어오면 예비 전사 이하의 부족민들은 이동을 삼가라고.

모야족 사람들은 당연히 백랑의 권위에 복종했고, 남자들이 천막에 들어간 이후에는 자신의 집 밖으로는 전혀 나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한 놈이 밖을 서성거려도 쉽게 여자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유연히 한 여성을 발견했는데, 그 여성은 남자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미인이었다. 그녀는 바로 백랑의 둘째 처형이자 월아의 둘째 언니 되는 월연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눈에 띄는 미녀의 등장에 쾌재를 부른 남자는 월연에게 다가가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야, 너 좀 예쁜데. 오늘 밤, 이 오빠가 확실하게 녹여줄게. 어때, 생각 있어?”

허리까지 슬쩍 흔드는 되지도 않는 수작질이었지만 오늘 월연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예비 전사와 전사의 경계에서 정체되었던 자신의 경지가 드디어 전사로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사실을 보고하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자신도 이제 어엿한 전사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방금 족장이 웬만하면 얌전히 지내라고 했었다. 그래서 그냥 곱게 넘어가려 한 것인데.

“응, 말은 고마운데 다른 사람 찾아봐. 난 간다.”

하지만 술이 오른 남자가 월연 같은 미녀를 곱게 보내줄 리가 없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곱게 따라와. 이런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지내기엔 네가 너무 아깝잖아? 이번 원정 때 큰돈을 벌면 이딴 더러운 곳 따위 생각나지도 않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줄게. 나 생각보다 능력 있는 놈이야. 너도 한 번 제대로 맛보면 절대 잊지 못할걸?”

이놈 딴에는 월연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 진심으로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그 말은 들은 월연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하…….”

어차피 외부인이고, 자신의 부족에서는 전사를 제대로 데리고 살려면 그 전사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 리가 없으니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패기를 부리는 건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상대가 옆집 열세 살짜리 아이한테도 줘 터질 거같이 허약해 보여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백랑의 명령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얻게 된 부족의 보금자리를 그딴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심기가 뒤틀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날 데려가겠다고? 좋아, 그럼 덤벼봐. 날 이기면 당장에 벌려줄게. 그게 뭐 어려운가? 아주 꽉꽉 조여서 질질 싸게 만들어줄 테니까.”

삐딱하게 쳐다보며 손끝을 까딱이며 덤비라는 월연의 태도에 기가 찬 남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손을 올렸는데.

그 손이 떨어지기 전에 월연의 발길질이 날아와 자신이 자랑하던 그곳에 직격.

울부짖으며 땅 위를 나뒹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천막 안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튀어나와 그 광경을 보게 되었고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친구가 쓰러져 있고 엄청난 미녀가 그 옆에 있자 회가 동해 달려들게 되었다.

물론 친구에 대한 복수 30에 월연을 덮치고 싶다는 욕망 70의 바람직한 돌격이었다.

하지만 전사 등급에 오른 월연을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그들도 정예 병사 등급 정도는 되지만 전사와의 차이는 숫자로 메울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심지어 술까지 취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들은 모두 월연의 발길질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이대로 쓰러졌으면 그냥 그런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들도 다음 날 무사히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 테고.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남자들은 결국 칼을 꺼내들고 말았다.

상대가 칼을 꺼내들자 눈빛이 변한 월연.

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건 이 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모야족 남자들이었다.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근처 천막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모야족이 남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화를 억지로 참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월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모야족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칼을 빼든 남자들은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100여 명이 넘는 장정들에게 둘러싸여 두들겨 맞기 바빴고.

그리고 월연에게 보고받은 백랑이 한숨을 쉬며 피떡이 된 남자들을 챙겨서 영주 성으로 향한 것이다. 그나마 칼까지 빼든 남자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인내심을 한계까지 발휘한 것이었다.

“하……. 쓰레기장이라 했단 말이지.”

소식을 전해 들은 카인이 정말 화가 난 건 그들이 계속 영지를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지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그 따위로 행동하고 말했을까? 영주 성에서는 거지 같은 영지라고 하더니 이제 남쪽 요새에서는 아예 쓰레기장이란다.

아무리 경우 없는 용병이라지만 남의 영지에서 대놓고 그따위로 말하다니.

카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아끼던 영지가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화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작고 가난하긴 하지만 우리가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남에게 그런 폄하를 들을 정도는 아니거늘.

그래도 어떻게 가꾼 영지인데.

이런 울분이 처음 그들이 영지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쌓이기 시작한 스트레스와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면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카인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않고 이들에게 빅 엿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빈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려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려 했건만 지들이 마을에서 깽판 치면서 카인의 화를 돋우고 말았으니 어쩌겠는가.

카인이 그야말로 대로하면서 자신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일은 커졌고, 처음부터 탐탁지 않았던 점까지 합쳐져 뭘, 어쩌고 싶지도 않아졌다.

솔직히 저렇게 화가 난 카인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대로 기사단에 그놈들을 다 죽이라고 하지나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하, 퀘스트. 이 양아치 놈아, 혹시 이럴 걸 알고 나한테 그런 퀘스트를 준 건 아니겠지?

로빈은 조심스럽게 퀘스트 실패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어차피 살다 보면 언젠가 퀘스트에 실패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퀘스트를 시험 삼아 한 번 실패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긴 했었고.

그나마 중요도가 C고 전혀 내키지 않는 퀘스트였으니 이번에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퀘스트 실패 시 어떤 식으로 일이 흘러가는지도 확인해 봐야 했으니 말이다.

로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짜증을 억누르고 있었다.

* * *

그 시간 용병들의 숙소.

용병 단장 제닉도 용병들이 치안대원들에게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뭐? 치안대에? 대체 왜? 급하게 오느라 한 달이나 굶었으니 얌전히 떡이나 치라고 돈까지 풀었잖아?”

“아… 그, 이곳에는 없답니다.”

“뭐가?”

“윤락가 말입니다.”

“뭐?”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윤락가가 없다고 말하는 릭스터의 말에 제닉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아무리 작은 영지라도 윤락가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혹시 규모가 작아 자기들끼리 다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아예 없을 줄이야.

“…뭐, 이런 거지 같은……. 그래, 그래서?”

“그래서 뿔이 난 녀석들이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었고, 치안대원들이 출동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게 치안대원들이 출동할 일이야?”

“그, 주민들을 몇이나 쥐어 팬데다가 갑자기 흥분한 그놈들이…….”

“그놈들이?”

“술집을 부수고, 밖을 뛰어나가 길 가던 처녀들을 겁탈하려고 했답니다.”

“하… 이 미친놈들. 사고 치지 말라니까.”

원래 개종자들이긴 하지만 여자만 대충 안겨주면 그럭저럭 말을 알아듣던 놈들이 한 달이나 넘게 굶어서 제대로 발정이 났나 보다. 이왕 늦은 거 차라리 달래면서 데려왔어야 했나?

보아하니 웬만한 사고는 적당히 무마할 수 있을 거 같으니 노리고 시작했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대로 다 감옥에 처넣었다고? 영지를 도와주러 온 지원군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안 되겠군. 내 당장 따져야겠어.”

제닉은 자신들의 잘못도 맞지만, 영지의 처신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윤락가도 없는 거지 같은 영지인 게 문제의 발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도 다 있는 윤락가조차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였다. 영지를 들르는 상인들이나 그를 호위하는 호위들, 아니면 용병들을 위무하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사창가를 조성해 놓는 게 영주의 책임이거늘.

도대체 이곳은 기본이 안 돼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엄연한 지원군인데 이런 대우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단단히 따지고 내일 당장 대수림에 들어갈 수 있게 허락까지 구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제닉은 굳은 표정으로 영주 저로 뛰쳐나갔다.

“단장, 잠……. 아, 씨 가버렸네.”

무슨 말을 전하려던 릭스터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휑하니 나가버린 제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잡혀간 단원들의 수는 무려 60여 명.

쓸데없이 나다니느니 차라리 지친 몸을 쉬겠다고 숙소에 누워 버린 인원을 제외하고 마을로 나간 녀석들의 전부였다.

릭스터가 판단하기에 용병들이 삼삼오오 따로 모여있었다고는 하나 험상궂고 건장한 남성들이 인상을 쓰고 있는데 시비가 붙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른 마을에서는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상식적으로 그런 남자들이 인상을 쓰고 있다면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시비가 붙었다면 이곳 사람들의 기질 자체가 그렇단 건데.

그런 거친 성정의 사람들을 제어하는 영지의 병력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실제로도 용병들을 끌고 간 영지병들 중에 다친 자가 거의 없다지 않은가.

아무리 술에 취한 용병들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술에 취해서 더 난폭하고 거칠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바로 제압했다면 이곳 영지의 역량이 자신의 생각 이상일 가능성이 컸다.

릭스터는 제닉에게 이 점을 지적하려고 했는데 듣기도 전에 나가버리고 말았다.

“하……. 뭔가 꼬이는 느낌인데,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

자신의 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뒤틀림에 릭스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따지고 보면 단장 자체도 문제였다. 오늘 밖으로 나가 사고를 친 놈들도 단장이 근래에 받은 놈들이었고.

성질이 고약하기로 소문난 녀석들이라 받아주는 곳도 없는 놈들이었는데 실력이 괜찮다는 소리에 단장이 바로 받아버렸다. 자신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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