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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62화 (62/303)

62화

제가 속한 용병대가 좀 막장인 건 맞지만 저놈들까지 합류하는 바람에 개막장이 되어버렸으니 뭐 어쩌겠는가.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 사고를 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별로 놀라진 않았다. 별 피해도 못 주고 다 잡혀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는 다른 의미로 조금 놀랐지만.

게다가 안면을 튼 몇몇 귀족들이랑 어울리더니 생각하는 게 묘하게 달라진 단장의 태도도 마음에 걸린다. 자신들을 그저 사냥개로만 생각하는 게 귀족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고 있다니.

용병이 귀족 의뢰주랑 어울려봐야 좋은 꼴을 보는 경우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릭스터는 영주랑 잘 이야기가 되어서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돈을 좀 만지면 자신을 따르는 몇몇 녀석들이랑 따로 나가 독립을 하든지 무슨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왠지 끝이 좋을 거 같지는 않아서였다.

* * *

제닉이 영주 저를 찾아 카인과 만나게 된 그곳에는 카인뿐만 아니라 폴과 지온, 로빈 그리고 법무관인 바이스까지 함께 있었다.

제닉은 갑자기 인원이 늘어버린 걸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최대한 당당하게 카인을 대했다.

“마침 잘 왔군. 이제 막 자네를 부르려던 차였는데.”

아무런 표정 없이 제닉을 부르려고 했다는 카인.

제닉은 카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적당히 사과하고 놈들을 잘 챙겨가라는 말이겠지.

그래서 우선 정중하게 사과부터 건넸다. 적어도 유감을 표해 영주의 자존심은 세워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상대도 군말 없이 놈들을 건네줄 테고.

“어제 단원들이 폐를 끼쳤다고 하더군요.”

“뭐, 그렇다더군. 하지만 내가 할 이야기는 좀 다른 얘기야. 아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겠군.”

“무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난 이 영지의 영주로서 자네들을 추방하겠네. 그러니 당장 나가주게. 당연히 대수림 쪽 길도 열어줄 수 없어. 만약 대수림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다른 영지로 가게나.”

카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말하는데 제닉은 너무 예상 밖의 이야기라 순간 평정을 잃고 말았다.

황제의 명을 받고 들어온 용병에게 그냥 나가라니. 그것도 추방령까지 써서.

이곳 영지가 어찌 되든 그건 알 바 아니지만 이제 와서 다른 영지로 가 언제 대수림에 들어간단 말인가.

“하, 용병들이 소란을 피워 그렇습니까? 네, 그건 죄송합니다만, 윤락가조차 없는 이 영지도 문제인 건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건 방문객을 위한 최소한의 매너라고 생각하는데요. 방문객들도 모두 영주님이 인색하다고 욕하고 있을 겁니다.”

“없네.”

“……?”

“이 영지에는 방문객이 없어. 그리고 욕을 먹어도 내가 먹으니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군.”

단호하게 방문객이 없다는 카인의 말에 제닉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시골 영지라도 상단은 방문할 터인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어이가 없어서였다.

제닉은 그의 말이 창피함을 감추기 위한 그저 둘러대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로빈은 의문이 생겨 슬쩍 지온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예요? 매너라뇨?”

“원래 영지를 방문하는 방랑자나 상단, 그들의 호위 기사나 용병들을 위해 영지 차원에서 윤락가를 운영하는 게 상식이긴 합니다. 물론 그 돈은 거의 영주의 사적인 자금이 되고요. 하지만 이곳 영지에 들르는 사람들이라 봤자 주노 님의 상단뿐인데, 거의 이곳 토박이들 아닙니까? 그러니 윤락가가 필요할 리가 없죠.”

이건 또 참 신박한 소리였다.

영주가 운영하는 사창가라, 무슨 관기 비슷한 건가?

이런 말은 소설에서도, 그리고 책으로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아마 암묵적인 약속인 거 같았다.

무슨 영주가 포주 짓을 다 하냐?

이 소설, 진짜 괜찮은 거야?

하지만 사창가를 영주가 직접 운영한다는 말에 기가 막힌 로빈은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럼 사창가를 관리하는 덩치 큰 형님들은 없느냐고 물었는데, 지온은 사창가는 영지병이 직접 관리한다고 설명하며 쐐기를 박았다.

로빈의 귀에는 그 말이 영주가 포주도 겸하고 있다는 황망한 소리로 들렸고.

그리고 그 밖의 중요한 사항은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나?

로빈은 이런 일에 따로 설명할 무언가가 더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온의 말투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마치 자신의 영지에도 사창가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느낌이기도 했고.

어쨌든 그 순간에도 카인과 제닉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하. 뭐,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믿어야 하는 거군요.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저희를 이렇게 쫓아내셔도요. 저희는 황제 폐하의 명으로 내려온 용병들인데요.”

제닉은 그래도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건방진 말투로 카인을 쏘아붙였다. 아무래도 카인의 말이 마냥 시위 정도로만 들렸나 보다.

그런 태도가 심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솔직히 로빈도 카인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으니까.

애초에 그런 이유로 필요도 없는 용병을 영지로 들인 것이 아닌가.

“내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더군. 법무관께서 확인해 준 사항이니 문제는 없겠지. 할 말은 그게 다인가?”

로빈은 자신이 오기 전에 바이스와 카인이 무슨 대담을 나누나 했더니 이것과 관련해 몇 가지 자문을 구했나 보다. 아마 용병들의 범죄와 관련지어 무슨 방법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어쨌든 황제의 명령이 걸린 일이라 그렇게 일 처리를 하려면 상당히 번거로울 텐데 용케 귀차니즘의 선두주자인 카인이 그런 생각을 다 했다. 진짜 엄청나게 열 받긴 한 모양이었다.

단호한 카인의 태도에 움찔한 제닉은 그래도 마지막 여유를 잃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이 있는 건가?

“하……. 그래요. 하지만 그래서는 영지만의 힘으로 마수들을 막아야 할 텐데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지민이 볼 테고요. 그래도 괜찮은가요? 너무 자존심만 세워 봤자 남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뭐야? 겨우 그거였어? 너의 마지막 카드가?

이놈, 완전 헛다리를 제대로 집고 앉았네. 무슨 축구 선수인 줄.

응, 아니야. 꺼져.

카인도 로빈과 비슷한 생각인지 헛웃음을 짓더니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밖으로 손짓하며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네. 그러니 자네도 자네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나가게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자네들에게 영지 어느 곳에서도 머물 권리를 주지 않았어. 그러니 즉시 떠나시게. 만약 이를 어긴다면 바로 황실에 보고할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자네가 져야 할 거야. 여기 법무관인 바이스 님이 증인이 될 것이고.”

제닉은 단호한 카인의 명령에 잠시 당황하더니 이를 악물고 대답도 없이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딱 봐도 치욕감과 분노가 상당해 보였다.

그럴 거면 단원들 교육부터 똑바로 했어야지. 사창가가 없다고 술집을 부수고 처녀들한테 달려들다니, 아무리 이딴 소설에서라지만 그게 말이나 되냐? 무슨 발정 난 개새끼들도 아니고.

하지만 딱 봐도 얌전히 돌아갈 거 같진 않은데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몰래 대수림으로 들어가는 정도겠지만 그래서야 겨우 살려놓은 목숨을 다시 버리는 격이니 찜찜하긴 할 것이다. 이미 관계 개선은 물 건너갔지만 저놈들이 괘씸해도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카인의 추방령은 그들에게 가장 빅 엿을 먹이는 방법이긴 했다.

의뢰를 받고 들어왔는데 상급 마수는 보지도 못하고 쫓겨나면서 당연히 의뢰는 실패요, 이 일을 황실에 보고하면 자연스레 다른 영주들에게도 알려지며 용병단의 이미지도 급격히 안 좋아질 테니 말이다.

저들에게 그런 명성이 아직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문제는 그만큼 영지도 귀찮아진다는 거였는데.

“어쩌려고 그러세요? 저들을 그냥 보내면 피곤해지는 거 아니었나요? 그래서 쓸 데도 없는 저들을 군말 없이 받으신 거잖아요.”

“우선 영지 자기 방어권을 발동한 거로 하기로 했다. 60이나 되는 용병들이 소란을 피웠으니 대충 여건을 맞출 순 있겠다고 하시더구나. 판단은 황실에서 하겠지만 잘 보고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물론 우리가 정해진 할당량을 모두 맞출 수 있으니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거고.”

영지 자기 방어권에 의한 추방령이라.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충분히 가능하긴 했다. 다만 일의 경위와 처벌 사유를 기록한 증빙 서류를 잔뜩 황실에 안겨줘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영지의 자기 방어권은 영주가 가지는 당연한 권리였지만 황실의 명령과 정면으로 위배된 판단을 한 것이니 그들을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분노가 귀찮음을 완전히 눌러버리는 바람에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저들이 그냥 물러날 거 같은 분위기는 아니던데요.”

“기껏해야 대수림으로 기어 들어가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지들 명줄을 줄이는 거밖에 더 되겠냐? 추방령 때문에 모야족 마을에서 쉬는 것도 불가능한데 이 겨울에 대수림에 들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 들어갔다가 적당히 포기하고 돌아오거나, 그보다 더 정신없는 놈이면 욕심 부리다가 부하들 다 상하게 하고 몇 명만 돌아올 수 있겠지.”

“아마 길잡이도 없이 들어가면 상급 마수를 만나기도 전에 결딴이 날 겁니다. 겨울에 더 혹독한 곳 아닙니까? 아직 첫눈이 내리지 않아서 그 정도지 이제 곧 첫눈까지 내린다면…….”

“그리고 만약 대수림에 기어 들어갔다가 나오면 기다렸다가 바로 체포할 생각이야. 영주의 추방령조차 따르지 않은 놈들이니 그들을 황도로 압송하면 적어도 내 보고에 신빙성이 더해지겠지.”

아예 그들이 대수림에 기어 들어간 후까지 생각한 모양인데 평소의 카인답지 않게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게다가 그들이 들어갔다가 결딴나는 것도 계산하고 있었고.

사람 좋은 카인까지 저런 계산을 하다니, 이게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비정(?)함인가? 물론 저딴 놈들보다야 영지민이 훨씬 소중하긴 하지만.

어쨌든 뒤처리는 카인이 하는 거고, 녀석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 났으니 더 이상 참견할 일도 아니었다.

그냥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라. 괜히 추운데 쓸데없이 사서 고생만 하지 말고.

상급 마수를 건드려봤자 너희나 우리나, 피곤하긴 마찬가지야. 게다가 니들이 죽지만 않으면 퀘스트는 실패가 아니니 웬만하면 그냥 살아주지 않을래?

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퀘스트를 잠정적으로 포기하긴 했지만 이대로 그들이 돌아가면 상당 부분 유예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빈은 문득 아무리 못된 녀석들이라도 저들의 목숨보다 퀘스트를 더 신경 쓰는 자신의 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용병들이 짐을 챙겨 남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지병 몇이 그들을 몰래 뒤따르고 있었고.

역시 그냥 얌전히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나 보다.

하지만 그들은 로빈의 예상보다 더 대책 없이 미친 녀석들이었다.

* * *

영지에서 추방당한 채 감옥에 갇혀있던 녀석들을 데리고 자신이 머무는 숙소로 돌아온 제닉의 얼굴은 굴욕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따위 작은 영지의 영주 주제에 자신을 이렇게까지 홀대하다니.

사창가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주제에 자신들만 탓하면서 그냥 꺼지라고? 막 나가는 것도 정도껏이지 상대는 도가 지나쳤다.

그럼 자신들의 계약과 보상금은 어쩌란 말인가? 심지어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었다.

정말 화가 끓어올라 용병들을 모두 끌고 영주 저택으로 쳐들어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건 그냥 자살 행위였다.

물론 이 작은 영지의 영주 저택 정도는 자신들의 힘으로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마 바로 황실로부터 반역자로 낙인찍힌 채 토벌대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자신들을 고용한 그분도 자신들과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며 모른 척할 테지. 용병대가 영주를 살해하는 건 그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었으니 말이다.

이곳 영주민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

가만있자, 모조리 죽인다라…….

이 울분을 풀 만한 적절한 방법이 떠올랐는지 제닉은 서둘러 릭스터와 남쪽 마을로 내려갔다가 두들겨 맞고 잡혀온 녀석 하나를 같이 호출했다.

“하. 단장, 어찌 됐수?”

“꺼지란다. 추방령이야.”

“허……. 애새끼들이 깽판 좀 쳤다고 바로 추방령이라니. 이거 말이 되는 거요?”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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