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소설 속 로빈-65화 (65/303)

65화

“X발, X발!! 대체 뭐야? 여기에 왜 저런 괴물 새끼가 있어? 얼굴에 빛나는 건 또 뭐고?”

욕설을 마구 터트리며 있는 힘껏 뛰어 성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고 숲 근처에 도착해 이제 겨우 살았다고 안심하고 있는데, 숲 쪽에서 예상치 못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오는데.

“뭐… 뭐야, 저건?”

바로 덩치 큰 고릴라 형태의 중급 마수 푸가였다.

백랑과 적호 때문에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제닉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저 거대한 무언가가 도무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건 도대체 뭐지? 왜 저런 게 갑자기 튀어나와?

그리고 멍하게 있다가 놈이 거대한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을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놈이 바로 제닉의 머리를 비틀어 뽑아버렸기 때문이었다.

* * *

“족장! 대수림에서 중급 마수 등장했습니다. 푸가 여덟 마리입니다.”

“도망치던 용병들 푸가와 접촉. 전부 사망!”

성채에서 대수림 쪽으로 경계하던 예비 전사들의 경보가 계속 전해지고 대수림 쪽으로 방향을 튼 백랑도 중급 마수의 등장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 그놈들은 마수 마수,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그렇게 만나서 가는구먼. 마수를 만나서 갔으니, 뭐 그리 억울해하진 않겠지.”

“족장, 어떻게 할까요?”

“전사들 다 모아. 우선 푸가부터 잡고 놈들의 유해를 수습한다.”

전사 하나가 남은 전사를 다 소집하러 떠난 사이 백랑은 자신의 도끼를 챙겨 들고 푸가를 마중 나갔다.

“아우, 고릴라 자식들. 진짜 징글징글하다. 우린 대체 무슨 인연이냐?”

예전 난리 때도 마지막까지 튀어나와 자신들을 지치게 했던 푸가.

해가 바뀌었는데 다시 그놈들이 튀어나왔다는 말에 백랑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성채 앞에는 이미 흑웅이 푸가 한 마리를 때려잡고 다음 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예비 여전사들은 로빈이 놀라워했던 루터카우의 뿔을 깎아 만든 각궁으로 멀리서부터 놈들을 저격하고 있었고.

“다시 숲에서 루디플러그 대략 수십 마리 등장, 그 뒤에 케노톱스(사족 보행하는 도마뱀 형태의 마수, 긴 혀로 상대를 잡아 한입에 삼키며 루디플러그가 그들의 주식) 네 마리까지 있습니다.”

“루디플러그가 케노톱스에게 잡아먹힙니다. 루디플러그는 요새 쪽으로 도망, 케노톱스가 추격 중!”

백랑은 망루 쪽에서 계속 전해져오는 소식에 한숨만 내쉬었다. 그나마 예전 난리처럼 놈들이 인간들만을 향해 달려드는 건 아니지만 대신 저렇게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다른 놈들까지 끌고 오는 경우가 생기니 말이다.

“하~ 오늘 잠자기는 다 틀렸네.”

“족장님도 밥값은 해야죠.”

어느새 푸가를 모두 정리한 흑웅이 웃으며 백랑에게 다가왔다. 마수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래도 위협의 실체를 확인했고 중급 마수들이 간간이 나오는 정도는 큰 무리 없이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좀 피곤하긴 해도 무슨 큰 피해를 볼 정도는 아니니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거였다.

“에구, 난 아까 그 머저리들 잡은 거로 오늘 할 바는 다 했거든. 너나 가서 더 잡아. 그러려고 굳이 여기 남은 거잖아? 우리도 오랜만에 대전사 하나 만들어보자.”

“감이 오긴 왔는데 뭔가 불편하고 생각대로 잘 안 되네요.”

“그래, 그렇겠지. 괜히 대전사겠냐? 하지만 계속 마수들을 잡다 보면 딱 느낌이 올 거야. 조상들이 그렇게 기록을 해놨더라고.”

“그렇겠죠?”

흑웅은 백랑과 대화하며 부족의 전사들이 루디플러그와 케노톱스를 처리하는 장면을 가만히 지켜봤다.

“다 잡았네요.”

“그러네, 근데 아마 또 나올 거 같은데?”

“그럴까요?”

“아마도? 분위기 보니 딱 그거네. 안에서 상급 마수가 분탕질 치고 있는 거 같으니 아마 당분간은 계속 나올 거야? 이거, 아무래도 영주 성에 지원을 요청해야겠는데. 우리도 좀 쉬긴 해야 할 테니.”

가끔 튀어나오는 중급 마수가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인 이상 쉬어야 했다. 그래야 더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백랑은 바보들을 영주 성에 인계하면서 사정을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성에서 지원이 나올 테고 자신들도 쉴 시간이 있겠지.

“그나저나, 성벽이 빨리 올라와서 다행이네요. 저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하, 생각해 보니까 또 그러네. 아마 또 부족민들을 대피시키고, 아니 성벽이 없었으면 이쪽으로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겠구나. 하여간 엄청 피곤했겠지. 지금처럼 여전사들이 활로 지원하지도 못할 테니까.”

잠시 쉴 타이밍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둘은 마나를 어느 정도 회복한 후 다시 요새 앞으로 뛰어가 마수를 맞이했다.

그렇게 정말 긴 모야족의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모야족과 마수들이 한창 접전을 벌이던 이른 새벽의 영주 성.

백랑은 아침에 소식을 전할 생각이었지만 처음에 용병들에게 붙인 병사들이 이미 모든 소식을 전한 후였다. 당연히 성에서는 바로 회의가 소집되었고.

영지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영주 저택에 살고 있어서 바로 회의가 시작될 수 있었으니 이런 점은 참 좋았다.

영주 성의 사람들은 마수도 마수지만 용병들이 모야족 마을로 쳐들어갔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모야족의 수준도 그렇지만 그걸 모른다고 하더라도 애당초 그 규모가 용병 몇이 가서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냥 대수림에 들어가는 것뿐이라고 단정 지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고.

“그래서, 놈들을 백랑이랑 적호 단둘이서 도륙했다고?”

“네, 오다가 황무지 쪽에서 순찰하던 전사 하나를 만났는데 다른 전사들은 대수림 쪽을 방비하고 있답니다. 선두에서 직접 상대한 자들은 모두 사망 추정. 그리고 나머지는 도주하다 근처에서 순찰하던 전사들에게 잡힌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중급 마수가 나타났다는 경보를 듣고 넌 바로 돌아왔다는 거군.”

“우선 소식을 알려야 했기에…….”

“아니, 잘했어. 돌아가서 쉬게.”

병사가 카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회의장을 나서자마자 카인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 참, 뭐 하나 조용히 넘어가질 못하는군. 원래 이 시기에 이런 식으로 중급 마수들이 나다니던가? 그것도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말이야. 대수림은 마수 산맥이랑 좀 다른 건가?”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용병들이 갑자기 대수림으로 들어가서 그런 게 아닐는지요.”

“역시 그건가?”

카인도 이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저 조금 푸념하고 싶었을 뿐.

“그나저나 그놈들도 참 맹랑한 놈들이네. 마을이 감당 안 될 거 같으니 불을 지르려고 해?”

“불이 났으면 좀 심각할 뻔했습니다.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아 많이 건조한데다 그 마을은 천으로 만든 천막이 전부였으니…….”

“바람까지 많이 부는 계절이니 재수 없으면 완전히 다 타버렸을 수도 있죠.”

“기가 막히는군.”

솔직히 로빈도 많이 놀랐다. 불이라니.

그 다닥다닥 붙어있는 천막촌에 갑자기 불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테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에 집을 잃은 모야족은 또 어디에서 산단 말인가. 아무리 추위에 강해도 노숙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놈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로빈의 물음에 카인은 별생각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냥 황실에 알려 그들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아무래도 극형에 처할 모양인데 하긴 그 정도 난리를 피웠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긴 해야겠지.

이젠 로빈도 그들을 생각하면 그저 고개가 저어질 뿐이었다.

“우선 서둘러 지원부터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어떤 기사라도 밤새워 쉬지 않고 마수를 상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쪽 전사들의 역량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 그래야겠지. 북부 방벽 쪽은 문제없겠지?”

“예, 예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부탁하네, 폴.”

“네, 영주님.”

영주의 판단은 간단했다. 빨리 가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

거기에 다른 계산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폴은 기사단의 예비 전력과 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도우러 출발할 것이다. 물론 너무 이른 새벽부터 출동할 그들이 좀 안타깝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 이게 무슨 쓸데없는 짓인지.”

로빈도 전적으로 카인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수의 숫자를 좀 줄여놓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방식이 너무 안 좋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상급 마수를 잡아보겠다고 용병들을 밀어 넣은 일부 귀족들의 계획은 정말 최악이었다. 중앙의 주먹구구식 일 처리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엉망이 된 건 솔직히 조금 짜증 나기까지 했다.

중앙에서 황제와 고위 귀족들이 서로 기 싸움이라도 하는 모양인데 그게 자신의 영지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래서 지방 영지는 중앙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나은 법인가 보다.

훗날 황태자와 연수하여 끈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로빈도 생각 달리하게 되었다. 차라리 자생하는 게 홀가분하고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분명 황태자 쪽에 붙게 되면 황태자가 황제가 되기까지 귀족들의 견제가 들어올 텐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피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특히 이런 식으로도 영지에 견제가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만약 이쪽 영지를 견제하려고 대수림 내부를 완전히 흔들어버리면 피곤한 건 자신들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황태자 쪽에 붙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황실 근위대의 무력이었는데 모야족의 합류로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었고, 정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큰일이라면 자신들이 귀족 진영이든 황태자 진영이든 상관없이 근위대가 나설 것이기에 그것도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귀족들은 몰라도 황실은 마수의 구역이 넓어지는 걸 극히 경계하고 있을 테니 분명 그럴 것이다.

되도록 황태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어느 쪽으로도 크게 치우치지는 말아야겠다.

이번 일을 겪으며 로빈은 이렇게 결심했다.

영지의 지원이 이어지자 남쪽 사태는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애초에 상급 마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큰 무리가 없는 전력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다만 마수들이 습격하는 동안 갑자기 하급 마수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도망치는 일도 있었는데 이놈들이 먼 곳으로 돌아 나오는 바람에 모야족의 여궁수들이 그들을 모두 제압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조금 곤란할 뻔했는데 이놈들이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혼 래빗 사육장 쪽으로 다시 모여들었고 그곳을 지키던 전사들이 바로 제압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로빈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운이 좀 따라준 것도 있지만 어쨌든 영지로 올라오는 길목에 사육장을 건설한 것도 나쁘지 않은 수가 된 셈이다.

* * *

그렇게 그레이츠 영지가 쓸데없는 곤욕을 치르는 동안 이들보다 더욱 곤란한 자들이 있었다. 바로 이 일을 이렇게 꼬아놓은 황도의 고위 귀족들이었다.

황도의 황성, 대회의장.

룩센 대제는 고위 귀족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보고서를 직접 살펴보고 있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미네 남작령, 마을 한 개 파괴, 주민들 대피, 사상자 562명. 코다미트 자작령, 북쪽 요새 성벽 완파, 사상자 781명. 드나르 자작령, 사상자 809명 특이 사항에 기사 18명 순직.”

룩센 대제가 나지막한 어조로 이번 사태의 결과를 하나씩 읊을 때마다 귀족들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조금씩 늘어만 갔다.

“그나마 북쪽 영지들은 무사히 토벌에 성공했다는군. 지오닉 백작, 리아누스 백작. 자네들은 수고가 많았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래, 하지만 진짜 가관은 이거였어. 그레이츠 자작령, 용병 60여 명이 난동을 부려 자위권으로 추방령 발동. 불복한 용병들이 남쪽 요새 마을에 방화 시도 후 도주. 일부는 마수들에게 사망했고, 나머지는 영지 감옥에 투옥 중. 하, 정말 미치겠군.”

보내온 보고서를 모두 소리 내어 읽은 룩센 대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리며 한숨을 쉬었다.

“내 경들이 이 정도로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줄은 몰랐군.”

“황송하옵니다, 폐하.”

“황송하옵니다!”

“그래, 황송해야지. 황제의 명령을 귓등으로 흘렸는데 황송하지도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 새끼인가, 금수 새끼지? 안 그런가, 리아넨 공작?”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