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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70화 (70/303)

70화

그리고 분위기를 보니 카인은 무조건 이 일을 관철할 거 같은 느낌이라 반대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어차피 할 거면 굳이 반대해서 서로 감정만 상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금 일부는 무기 개발에 투자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상급 마수의 습격은 계속 대비해야 하니까요.”

“상급 마수라. 하지만 그 녀석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잘 떠나지 않는 습성이 있지 않더냐?”

“그건 맞죠. 하지만 대수림 아래쪽 영지들은 상급 마수의 공격에 큰 피해를 보았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저희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죠.”

“도련님, 그건 괜히 마수를 자극한 용병들 탓이 아닙니까? 이번에 이 난리가 있었는데 설마 또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지온이 때맞추어 아주 좋은 지적을 해줬다.

“이번에 경매장에서 상급 마수의 부산물로 만든 장식품이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었어요. 다른 분들도 그 가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쉽게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그건……. 그렇다만.”

“대체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린 걸까요? 단순히 희귀해서? 전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도련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엔 누군가가 부추기고 있는 거 같아요. 상급 마수의 부산물은 이렇게 비싸게 팔린다. 그러니 누가 가서 잡기만 하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 이렇게 말이에요.”

“음…….”

“제 생각에는 이번 일을 벌인 게 이번에 망신을 당한 고위 귀족 중 누군가일 거 같아요. 완전히 체면을 구겨버린 그들이 그냥 가만히 있을 거 같진 않으니까요. 상급 마수의 가치를 올려 누구나 혹하게 만든 후에 다시 토벌대를 꾸리는 거죠. 그 정도 돈이면 용병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자유 기사까지 유혹할 수 있을 거예요. 거기에 자신의 기사들까지 합류시키면 이번에는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체면이라…….”

“게다가 저번에는 황제 폐하의 명령을 무시하는 무리수를 던져서 그들이 망신만 당했지만, 그 과오를 책임지고 반드시 상급 마수를 토벌하겠다고 나서면 그걸 말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작년의 일을 자신들이 직접 책임진다고 하면 황제 폐하도 말릴 명분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굳이 그들이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어차피 그들이 올린 시세이니 그 가격에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득이 있지. 구겨진 자신들의 체면을 다시 세울 수 있지 않나. 어쩌면 오히려 앞으로 더 눈에 불을 켜고 마수를 잡겠다고 덤벼들지도 모르겠군. 그래, 내가 그걸 잊고 있었어. 그치들은 자신들의 위신과 체면을 위해서라면 이득이 없어도 능히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비록 변방 귀족이라 귀족답지는 못하지만, 카인도 귀족으로 태어나 귀족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귀족의 생리와 사고에 밝았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보냈던 1년의 세월 동안 자신이 직접 본 황도의 귀족들을 생각하면 로빈의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봤을 땐 너무한 거 아니냐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귀족들은 1년간 황궁에 출입을 금지당했어. 이건 단순한 게 아니지. 이게 말이 1년이지, 1년이 지나도 황제 폐하께서 다시 부르기 전까지는 못 들어간다는 말이야.”

그렇다. 황제의 근신 명령은 곧이곧대로 1년만 근신하면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가벼운 명령이 아니었다. 즉, 그 귀족들은 황제가 다시 자신을 부를 만한 업적을 세워야 황궁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군요.”

“전쟁도 없고, 영지전도 없는 시절이야. 그럼 당연히 공을 세울 수 있는 건 마수뿐이지. 그걸 잊고 있었다니. 앞으로도 계속 대수림을 들쑤시겠구만. 하…….”

“그런데 그걸 예상하시다니. 도련님은 역시…….”

“이래서 내가 로빈을 계속 회의에 부르는 게 아니겠나? 저번에는 가도를 점검하고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좋은 말을 해주더니, 이번에도 우리가 놓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았나. 하하.”

이야기가 왠지 이상하게 돌아간다. 단순히 경각심만 일깨울 생각이었는데 이게 아예 새로운 안건이 되어버렸다. 남쪽의 방비를 더 확실하게 하거나 대수림 출입 자체를 막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말이다.

솔직히 급한 맘에 이럴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예시였고 마음속으론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다소 부풀린 건데, 그게 진짜 가능하단다. 자신들의 기사를 이끌고 직접 대수림에 쳐들어가는 그런 무모한 짓을 말이다.

덕분에 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던 로빈의 첫 발언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아니, 정작 자신이 낸 안건은 그냥 넘어갔으면서 또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건 대체 뭔가?

로빈도 갑자기 분위기가 너무 넘어와 버려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도련님이 말씀하시던 그 새로운 무기는 무엇입니까?”

다행히 모두가 완전히 잊은 건 아닌지 폴이 로빈에게 다시 물었다. 과연 영지의 기둥다운 마음 씀씀이였다.

아마 무기에 대한 안건이라 특별히 더 관심이 갔던 것이겠지만 어쨌든 로빈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바로 상급 마수의 뼈로 무기를 만들고 거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거죠. 폴 경도 문헌에서 보셨을 거예요. 아르마늄 합금으로 만든 무기보다도 훨씬 좋은 녀석들이라고요.”

예전에 히센과도 나눈 이야기였지만 상급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마법 갑옷이 그 자체의 성능만으로는 아르마늄 마법 갑옷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마수의 뼈를 가공해 만든 무기는 그 자체의 성능만으로도 아르마늄 합금 무기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빈은 몰랐지만, 그 차이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폴이었다.

“그렇군요. 마수 뼈로 제작한 무기라……. 성능이 대단하긴 하죠. 다루기는 어렵지만요. 그런데 아직도 그 기술이 남아있을까요?”

뭔가 아는 듯한 폴의 반응에 로빈도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폴 경은 아시나요, 마수 뼈로 제작한 무기를요?”

“네, 당연히 알고 있죠. 제 에셋이 그런 녀석인데요. 한때 그런 무기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르마늄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사라지긴 했지만, 그때는 그랬죠.”

그래, 뭔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폴이 대단한 기사라도 푸가를 한 번에 반 토막 내버리고, 지쳤다고는 하지만 가메라의 머리를 한 번에 꿰뚫어버리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분명 에셋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에셋을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범상치 않다 싶었더니 그런 비밀이 숨어있었나 보다.

하지만 뚜렷한 장점이 있는 이 무기들이 사장된 이유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왜 없어져요? 아르마늄 합금 무기보다 월등히 성능이 좋은데요.”

“실제로 써보면 월등한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루기는 말도 안 되게 까다롭죠. 그리고 제작 과정은 더 까다롭고요. 쉽게 설명하면 에셋 같은 녀석을 하나 만드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이라면 아르마늄 합금 무기는 열 개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끙.”

그 정도 차이면 솔직히 인정할 만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하지만 에셋을 만든 것도 결국 영지의 장인이었을 테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만도 했다. 어쩌면 일이 좀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다만 진작에 에셋에 대해 물어봤더라면 그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일이라 그건 좀 안타까웠다.

“에휴, 남의 무기를 붙잡고 무턱대고 이건 뭘로 만든 거냐고 물어보는 것도 웃기니 그렇게 하진 못했으려나?”

“네?”

“아. 아니에요, 폴 경. 그럼 혹시 예전에 에셋을 만든 장인이 누군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그 장인의 후계자나 그런 게 있을까 해서요.”

“음……. 아마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있다면 에보니 마을에 있을 가능성이 크군요. 북부 끝자락에 살던 장인이었다고 들었는데 그쪽 분들은 다 에보니 마을에 정착했으니 말입니다.”

확실히 좋은 정보였다. 조만간 에보니 마을에 사람을 보내 수소문부터 해봐야겠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적어도 뭐라도 나오겠지.

그렇게 폴과 대화하는 가운데 남쪽에 대한 방비는 최대한 빨리 요새와 마을을 보강하고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지금 남쪽에서 한창 마을을 손보는 중이니 그곳을 더 보강하는 걸로 일단락 지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논의가 돌아왔을 때 폴은 로빈이 만들겠다는 무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사들의 역량이 몇 년 사이에 잦은 실전을 거치면서 제법 올라갔고, 앞으로 상급 마수를 만나게 되면 아르마늄으로 만든 무기보다 가메라나 트리플헤드의 뼈로 만든 무기가 더 유효할 수 있다고 덧붙인 것이다.

역시 믿고 보는 폴이 아닐 수 없었다.

무기의 제작법을 알아보고 장인들을 수소문하는 일은 당장 큰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카인도 한번 해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빈의 입장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이룬 셈이었다.

다만 두 가지 안건 모두 큰돈이 드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카인이 공장을 짓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대신 여유 자금을 남기며 그 속도는 조금 늦추기로 한 것이 회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으리라.

공장에 대한 말이 나온 것부터가 그의 자업자득인 면이 있어서 로빈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

로빈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카인에게 남은 유일한 꿈이 바로 영지에 마법 공장을 짓는 일이었다. 예전에 주노가 말했듯이 이 마법 공장은 귀족에서 있어서 최고의 액세서리이자 자부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지민을 위한다는 최후 명제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카인 개인의 욕망도 다분히 포함된 것이다. 카인도 귀족은 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유가 생긴 이상 카인을 막은 방법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 * *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로빈이 ‘에이,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저번에 약속한 거래대로 통신 수정구를 준비해 온 리아넨 공작가 쪽의 행정관이 물건을 건네주며 새로운 딜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여름에 다시 대수림으로 들어가겠다고?”

“그렇습니다, 자작님.”

“그래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원정은 저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공작가의 기사들까지 대거 투입되는 작전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실패할 일도 없고, 자작님은 그저 길 안내와 편의만 제공해 주시고 과실을 나누어 드시면 되는 거죠.”

“하. 이거야, 원.”

정말 카인의 예상대로 리아넨 공작가 쪽에서는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작년에 그 난리를 치고도 바로 이번 여름부터 행동에 들어가려 하니 말이다.

하긴 작년에 난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돈만 댄 것이었고 정작 자신들의 병력은 멀쩡했으니, 그들을 주력으로 토벌대를 꾸린다면 여름에 출격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물론 봄에 열린 경매로 갑자기 가치가 올라버린 마수 부산물을 욕심내는 눈먼 용병들로 머릿수를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고.

하지만 역시 할아버지 카인의 표정은 떫은 감을 씹은 듯 떨떠름하기만 했다. 그 모습에 로빈은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고.

아무래도 저 사람들은 이쪽 사람들의 성향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황도의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이합집산에 능했다. 그건 정치적인 이유, 혹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정적과 손을 잡고 일을 추진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즉,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오월동주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거였는데, 아마 그러니 바로 그레이츠 영지 쪽으로도 손을 내밀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급한 건 그쪽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공짜는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해놓은 짓이 있으니 카인을 설득하기 위해 뭔가 비장의 한 방을 준비하긴 했겠지.

하지만 바로 작년에 개망신을 줘야 했다며 방방 뛴 사람이 카인인데 과연 저들의 뜻을 따라줄까?

카인은 황도의 귀족이 아니라 호불호가 분명한 변방의 귀족이었고 그들의 제안이 아무리 후해도 한마디로 바로 거절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저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전에 지금 한창 남쪽 요새를 정비 중인데 모야족이 가장 늘어져 있을 여름에 대수림에 들어가겠다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때를 너무 잘못 잡았다. 이래서야 제안이 마음에 들어도 거절할 판이 아닌가.

“아, 물론 그냥 도와달라는 건 아닙니다.”

오, 진짜 조건이 나오려나 보다. 과연 그쪽은 뭘 준비했으려나? 돈? 아니면 보석이나 마법 물품?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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