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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71화 (71/303)

71화

“저희 공작 각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이번 일이 잘만 풀린다면 자작님을 내무 차석의 자리에 천거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무 쪽은 저희 공작님의 입김이 가장 강한 곳이니 거의 확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응, 안 돼. 안됐지만 완전 망했다.

그들의 무기가 고작 할아버지를 중앙 귀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거라니.

물론 권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관리를 등용하는 내무부의 두 번째 자리. 상당히 힘 있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상대가 얼마나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로빈의 할아버지 카인으로 말할 거 같으면 지방의 영주 직위조차 거추장스러워 빨리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에 로빈을 다섯 살 때부터 영주 수업을 시키고 있는 별종 중의 별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중앙 귀족이라니, 적어도 이 영지에 리아넨 공작이 보낸 끄나풀이나 첩자는 없다는 게 확실해졌다. 만약 있다면 여름에 출동하겠다는 말도, 중앙 귀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의미 없는 조건 따위를 내걸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후, 할 말은 끝났나? 거절이네. 당장 돌아가게나. 그리고 그레이츠 영지 쪽으로는 길을 내어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고, 그렇게 전해주시게나.”

카인이 일고의 여지도 없이 바로 거절하자 관리도 당황한 듯 보였다.

하긴 자신들이 내걸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저렇게 바로 거절하니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하지만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거래임은 분명했다. 상황이 그랬고, 조건도 그랬으니 말이다.

“에이, 별 시답잖은 소리를. 나보고 황도에 가라고? 진짜 나랑 한 판 해보자는 건가?”

떠나는 관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카인이 중얼거렸다.

역시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리아넨 공작은 앞으로도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 보였다.

제안은 불발로 끝났지만 어쨌든 영지에 통신 수정구가 들어왔다.

통신 수정구는 각 마을에 하나씩, 그리고 황도에 있는 주노 상단의 지부에 하나, 빈번하게 원행을 떠나는 주노가 하나를 챙기고, 한 개는 예비로 남겨두었다.

확실히 통신 수정구가 영지에 들어오니 든든하긴 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올 것이니 말이다.

영지에 공장을 세우는 일에는 카인도 정력적으로 움직였다. 지금까지 저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할 정도였다.

로빈도 카인이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자 합리적인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은근히 공장을 염원하고 계셨나? 원래 저런 분이 아닌데 저러니까 진짜 이상하네. 큰 욕심은 없어도 귀족은 귀족이란 건가. 나 참…….”

아무래도 이쪽 세계에서 공장은 귀족들에게 드림카나 마이 홈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긴 한가 보다.

그리고 카인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영지 여기저기서 공사가 끊임없이 벌어지자 영지를 책임지는 지온의 업무 역시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카인은 그저 지시하는 사람에 불과했고 소소한 일 처리는 전부 지온이 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점점 카인이 다른 업무 쪽은 소홀히 하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결국 지온도 조력자를 부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놀랍게도 모야족의 월령이었다.

“능력 있는 분이죠, 월령 님은. 앞으로 월령 님을 제 보좌관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지온은 월령을 한마디로 담백하게 평가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아무래도 지온이 저번 혼 래빗 사육장 건으로 월령과 손발을 맞추며 그녀의 능력을 간파했나 보다.

대대로 물려받았다는 외눈 안경을 장착한 도도한 느낌의 월령.

확실히 로빈의 눈에도 지적으로 보이긴 했다.

그러고 보면 모야족 월(?)가 세 자매도 참 인물은 인물이었다. 백랑이 손 놓은 부족의 소소한 일들을 모두 조율하는 월아도 대단한데, 지적인 월령도 상당한 능력자였다니. 게다가 둘째라는 월연조차 경지에 이른 여전사라고 했었다.

다만 느낌은 좀 다르지만 제법 닮은 자매인데 월아가 두 가지나 가지고 있는 외모에 관련된 타이틀을 월령이 하나도 가지지 못한 건 좀 이상했다. 무슨 다른 법칙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세 자매 중 둘째 월연은 지금 예비 여전사, 그러니까 여궁수들의 수장이 되어 그녀들을 이끌고 있단다. 종종 영주 성 쪽으로 넘어와 영지의 치안병들과도 합동 훈련을 벌이는데 그때마다 영지의 치안병들이 헤벌쭉해진다며 루이가 한탄하곤 했다.

전생의 군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어차피 남자들만 모인 집단이니 모야족 여궁수들이랑 같이 훈련하면 참 싱숭생숭하긴 할 거 같았다.

그래, 그 마음 알지. 원래 그때(?)는 치마만 두르면 마냥 좋으니까.

그런데 모야족 정도면……. 아후, 난리 나겠는데. 화장실 터질지도.

어쨌든 전생에서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던 로빈도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합동 훈련 기간에 사고 치는 놈이 없어서 그건 다행이었다. 하긴 여궁수라지만 전원 정예 병사급 인재들이었으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려나? 예전에 용병들이 그랬듯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영지 곳곳이 공사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작 로빈이 원하던 신무기에 대한 정보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우선 사람을 풀어 영지에서 무기나 농기구를 만지는 장인들에게 수소문했는데 에보니 마을의 장인들도 그 제련법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니 더 이상 길이 없었다.

그나마 알게 된 정보는 원래 그런 비전은 구전이나 비전서로 직전 제자나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것 정도였는데, 그래서 더 절망적이었다. 이쪽 방면의 전문가들은 이미 그 명맥이 끊어진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런 비전서가 확실히 있을 만한 곳이 한 곳 있긴 했다.

그건 바로 로빈이 접근할 수조차 없는 황실의 기록관이었다. 소설에서도 큐브 포털의 특수성을 인지하게 된 황태자가 마수 소재로 된 무기를 알아보기 위해 그곳에 들어가 제련법을 알아냈으니 그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다만 그때까지 많은 기사가 피해를 보았고 로빈은 자신의 영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만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에는 방법이 없었고 우선 영지 각 마을에 공문을 내려 뭔가 특별한 사연이나 정보가 나오면 바로 보내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일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나마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하려나? 예전에 실비아의 치료제를 찾을 때처럼 발품 팔며 돌아다니지는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리고 카인에게 협조를 요청했던 리아넨 공작은 다른 영지에서도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하긴 그레이츠 자작령이야 그나마 피해라도 없었지, 다른 곳은 실질적으로 상급 마수를 상대했으니 더욱 상종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상당히 많은 지원을 확보해 빈약했던 방어진도 보완할 수 있었지만 괜한 피해를 보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물론 실제로도 방어진을 구축하느라 아주 바쁠 테고.

하지만 입궁이 금지된 중앙 귀족에게 인내심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강압적으로 영지 한 곳을 포섭한 후 그들의 계획대로 여름에 대수림에 진입했는데.

결과만 말하자면 크게 망했다.

우선 정찰과 잡무를 위해 끌고 간 용병들이 마수들과의 싸움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길잡이가 없어서인지 상급 마수를 만나기도 전에 중급 마수들에게 진을 다 뺐으며, 실제로 상급 마수를 만나긴 했지만 그놈의 성질만 돋우고 큰 피해를 줄 수 없어 결국 사상자만 내고 결과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놈은 토벌대가 귀찮았는지 굳이 쫓아오지는 않았다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리아넨 공작은 다시 망신을 당했고, 토벌대를 이끌던 기사단장까지 상처를 입었다니 은근히 쌤통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대수림에서 설친 건 사실이라 그 여파가 없진 않았다. 덕분에 남쪽 마을의 공사도 조금 늦춰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중급 마수 몇, 하급 마수 정도로는 영지 방어선에 타격을 줄 수 없어 무난하게 막고 잘 넘어갔다.

이번 여름에 다시 토벌대가 출발할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던 영지에서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혼 래빗 가죽 내의를 만든 것이었다.

아무래도 더위에 약한 모야족이 여름에 마수들을 상대할 것이 염려되어 히센이 고안한 물건이었는데, 몸에 완전히 밀착되는 속옷 형태의 가죽옷에 냉방 마법을 부여해 만든 역작이었다. 안에 내의를 입고 그 위에 가죽 갑옷을 입으면 여름에도 시원하게 적과 싸울 수 있었다.

사실 이미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황도의 기사들이 아르마늄 갑옷 안쪽에 혼 래빗 가죽을 장착하고 있었으니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다만 거기에 영지 가죽 장인들의 피와 땀, 그리고 혼이 스며든 것만은 사실이었다.

특히 여성용 내의.

투박한 스타일의 남성용 내의와 달리 여성용 내의는 그야말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얼마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는지 재질조차 아주 얇아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맵시를 여실히 자랑하고 있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세계에서 저 정도의 물건이 나올 거라고는 로빈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가죽 장인들이 혼 래빗 가죽 문제로 계속 모야족 마을에 거주하더니 분명 무슨 흑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모야족 마을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건물이 바로 강물을 끌어서 만든 거대한 풀장이었다. 더위가 시작되면 마을을 만들면서 더울 때마다 그곳으로 나와 쉴 생각으로 그걸 가장 먼저 만든 것이었다.

실제로 더위가 시작되자 화끈한 모야족 궁수들이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내의만 입은 채로 풀장에서 뛰어놀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인들의 모습만 봐도 그 속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저들 중 젊은 녀석들은 실제로 모야족의 누군가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처녀, 총각이 알아서 눈이 맞는다면 그걸 막을 일도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내의만 입은 모야족 처자들과의 물놀이라.

솔직히 로빈도 마리아나가 혼란스러운 남쪽으로 가는 걸 막지만 않았으면 동참했을 것이다.

마리아나의 저지로 눈물을 머금고 물놀이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로빈은 결국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모야족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같이 물놀이를 즐기면서 눈 호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혼 래빗 가죽으로 만든 내의는 생각보다 명품이었고 로빈도 한 번 입어봤는데 생각보다 편하기도 하고 느낌도 괜찮았다.

이제 모야족을 시작으로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한테까지 이 물건을 보급하겠다는데 확실히 좋은 생각이었다. 여름도 그렇지만 겨울에 저런 내의를 입고 거기에 보온 효과를 추가하면 마수들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갈 때쯤 드디어 로빈이 원하던 소식 한 가지가 도착했다.

“와, 진짜요? 비전서라고요?”

에보니 마을에서 전해진 소식은 로빈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청년이 자신의 집 창고를 정리하다 어떤 책을 발견했는데 그곳에 무슨 마수의 뼈니, 그걸 녹이니 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으니 말이다.

설명을 대충 들어봐도 비전서나, 혹은 그와 비견되는 자료인 것만은 분명했다. 특히 그 남자의 증조부가 어떤 장인의 도제였다는 사실이 그 자료의 신뢰성을 높여주었다.

그리고 당연히 로빈은 에보니 마을로 당장 달려갔다.

이번 외출에는 듀발이 함께였다. 항상 수련과 단련을 빙자한 자기 학대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듀발도 최근에 마나를 느낀 이후에는 조금 여유를 되찾았는지 로빈이 움직일 때면 이렇게 동행하곤 했다.

그렇다. 마나.

항상 로빈과 열등생 콤비를 이루던 듀발이 얼마 전 드디어 마나를 각성했다.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름: 듀발

성향: 충직. 보은. 독기

타이틀: 노력도 재능(U)

성향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고, 독기가 추가되었으며 타이틀도 하나 얻었으니.

확실히 타이들은 각성처럼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자신이 노력해서 이룬 것이나 상황이나 능력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발전 혹은 퇴보한다는 로빈의 가설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저런 타이틀이라니. 참 대단하긴 했다. 그야말로 타이틀이 인정할 만큼 노력했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로빈은 듀발이 마나를 느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녀석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야 마리아나의 등쌀에 좀 억지로 운동하면서 꾀를 부리는 면이 없지 않은데 저 녀석은 진짜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자신의 몸을 학대 수준으로 몰아붙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가끔은 보는 사람이 질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마나를 느끼고 처음으로 건넨 말도 가관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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