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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72화 (72/303)

72화

“이제 제게도 드디어 도련님을 지킬 자격과 능력이 생겼군요.”

이러면서 진심으로 기뻐하니 로빈도 순수하게 축하해 줄 수밖에. 아무리 로빈이라도 저런 상대에게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로빈은 아직도 듀발을 믿기 힘들었다.

물론 인간 듀발의 성품은 믿고 있었다. 이 녀석은 그야말로 폴의 미니어처처럼 진중하게 자라고 있었으니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믿을 만했다. 성향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고.

다만 신뢰하기 힘든 건 아무래도 능력적인 부분이었다. 원래부터 로빈 자신과 동급인 깡통 같은 녀석이기도 했거니와 예전에 두 살 어린 린에게 두들겨 맞던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때 듀발은 좀 찌질했다. 그냥 적당히 맞고 포기했으면 그렇게 찌질하진 않았을 텐데 끝까지 달려들어 두 살 어린 여자아이를 한번 때려보겠다고 몰아붙이다 다시 카운터를 맞고 실신했으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기절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은 근성만은 높이 살 만하지만 상대가 두 살이나 어린 여자라면 그것도 왠지 좀 꺼림칙했다. 물론 상대인 린이 좀 규격 외라 손해를 본 것뿐이지만 어쨌든 기분만은 그렇다는 뜻이다.

그래도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데다가 성품도 진중해 옆에 두기에 괜찮은 녀석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지키겠다고 예전부터 방패를 주로 다루고 있었으니 저 정도 충성심이면 웬만한 일은 믿고 맡길 만은 했고.

이제 열 살이 된 듀발.

요즘 성장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듀발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일곱 살인 자신과 크게 차이가 안 났는데 몇 달 만에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으니 놀라울 정도였다.

이 세계에선 열 살 때부터 성장기에 들어가고 열다섯 살이 되면 정식으로 성인이 된다.

로빈은 사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크게 실감하지 못했었다. 열다섯 살에 성인이 된다고 해봤자 전생처럼 성인과 소년의 중간 정도 되는 어중간한 모습이겠지,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다.

왜, 전생에서도 어린놈이 결혼하면 성인으로 취급해 주지 않던가.

예전 경험으로 생겨난 고정관념 때문에 대충 그렇게 생각한 것인데 사실은 전혀 달랐다.

이곳에서 말하는 열다섯 살에 성인이 된다는 의미는 그 말대로 열다섯 살이 되면 성장이 끝나고 진짜 어른이 된다는 의미였다.

즉, 성장 속도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소설의 시작 부분에 황태자의 성인식 장면이 나온다. 그때 봉구가 열다섯 살 황태자를 묘사한 장면이 있었는데 키가 180이 넘고 어깨가 떡 벌어졌다고 설명했었다.

로빈은 그 장면을 읽으면서 역시 주인공답게 피지컬도 우월하고 성장도 엄청 빠르군. 벌써 다 컸다니.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때 황태자는 이미 진짜 성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열다섯 살에 성인이 되는 이 세계에서는 대략 열 살부터 빠르게 자라기 시작하는데, 듀발이 지금 그 시기인 것이다.

맨날 자신과 별 차이 없이 고만고만했던 듀발만 보다가 저렇게 훌쩍 자라는 듀발을 보니 기분이 좀 생소하긴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도련님?”

로빈이 자신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보자 듀발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니. 그나저나 방패를 다루는 건 괜찮아?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으니 차라리 다른 무기를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뇨. 방패면 충분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녀석이 주로 다루는 것은 방패다.

원래 이 세계에서 방패병은 하급 병종이었고, 기사 중에서도 방패를 다루는 건 하급 기사들뿐이었다.

이곳 영지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하급 마수와 싸우는 병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급 마수만 해도 그 무지막지한 완력 때문에 사실상 방패가 무의미했으니 기사들이 꺼리는 장비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본인의 재능이 미천하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진짜 위기 시에 내 옆에서 시간만 끌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방패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폴도 처음에는 말렸지만 결국에는 포기했을 정도니 내 말 한마디 정도로 그 뜻을 꺾지는 않으리라.

끝까지 방패를 들고 나를 지키겠다라.

그렇게 생각하니 은근히 믿음직한 것도 같았다.

다만 나와 많이 친해졌음에도 저렇게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건 고쳤으면 좋겠다. 진중한 것과 답답한 것은 좀 다르기 때문이었다.

폴은 좀 다르지만, 기사들을 보면 자유분방한 녀석들도 많던데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애초에 폴을 롤모델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저런 것까지 닮아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진짜 폴 MK-2 같은 녀석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폴은 그래도 필요한 말은 조리 있게 잘하니 양산형 폴 MK-2 같은 녀석이 되려나?

차라리 자유분방의 대명사인 모야족 전사들에게 보내 교육시켜 볼까?

린과의 일로 모야족이라면 학을 떼는 듀발이 만약 로빈의 생각을 알면 펄쩍 뛰며 고개를 저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는 진지한 듀발이 아니라 로빈이 원하는 말 많은 듀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원래 심하게 당황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말이 많아지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에보니 마을에서 입수한 마수의 뼈 제련 비전서로 추측되는 서책은 많이 낡아있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빠진 부분도 제법 있어서 이걸로 당장 무슨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매우 죄송하다는 듯 책을 건네는 순박한 청년의 모습에 그냥 큰 도움이 되었고 고맙다고 말하며 적당한 금액을 사례했다. 나중에 제련에 성공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고.

그리고 돌아가기 전 잠시 마을을 둘러보았다. 리리 여사까지 영주 저에 들어와 사는 바람에 마을을 떠난 후 단 한 번도 이곳에 와보지 못한 듀발 때문이었다.

어쨌든 유년기를 보낸 마을을 오랜만에 방문했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긴 할 것이다.

“예전보다 마을에 활기가 넘칩니다.”

“그래? 아무래도 몇 년간 계속 돈을 풀고 있으니까. 물건도 많이 풍족해졌고.”

2년 만에 자신이 살던 마을에 돌아온 듀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네가 구해준 꼬마는 잘 지내고 있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좀 딱딱한 듀발을 놀려주고 싶었던 로빈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나이에 목숨을 걸고 여자아이를 구하다니, 그 녀석은 너한테 완전 반했겠는데. 그건 완전 찜이네. 그 녀석, 영원히 널 못 잊는 거 아냐?”

하지만 듀발은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상황도 로빈이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고.

단순히 꼬맹이들의 수줍은 소꿉장난 정도를 생각하고 말한 건데, 이건 뭐.

“그보다 그 아이가 나중에 저를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제가 영주 저택으로 들어간다니 나중에 첩으로라도 받아달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음. 그래서?”

“찾아오지 말라고 했죠. 전 앞날 일 기약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도 아니라고요. 그랬더니 울면서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 대화가 설마 예전에 리리 여사님을 데리러 마을로 돌아왔을 때 오고 간 건 아니겠지? 그때 넌 여덟 살이었잖아?”

“네, 그때였습니다.”

장난하냐? 그 나이가 저런 대화가 오갈 나이가 아니잖아? 무슨 갭이 이리 심해?

평소에 놀 때는 전생의 아이들처럼 뭔가 유치하게 노는데 이런 부분으로는 또 엄청 조숙한 거 말이나 되냐?

게다가 실비아도 저런 비슷한 케이스였고 온몸으로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으니 저걸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저렇게 의젓하게 말하는 듀발의 모습 위에 예전에 어린 린에게 달려들던 찌질한 모습이 겹쳐지면서 뭔가 미묘하기도 했다.

쑥스러워하거나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농담조로 말을 걸었는데 저 녀석이 팩트, 그것도 농담으로 받아치기 힘든 너무 진지한 이야기로 대꾸하는 바람에 완전히 망해버렸다.

망할 꼬맹이, 여덟 살 주제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아니지, 음담패설이 튀어나오진 않았으니 그 정도면 여덟 살답긴 한 건가?

저렇게 무게 잡는 녀석도 나중에는 루이처럼 온갖……. 아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듀발.

예전에 그 아이가 너의 마지막 인연일 될 수도 있다는 건 전혀 생각 못 했겠지?

그때 가서 땅을 치며 후회해도 이미 늦은 거라고. 보니까 꼭 너 같은 녀석들이 히센처럼 혼자 늙어가면서 그렇게 후회하더라고.

사실 히센도 입버릇처럼 다섯 살 때 만났던 첫사랑을 잡아야 했다고 말하곤 하거든. 뭐, 요즘은 쌍둥이 주술사 자매 때문에 살판난 거 같지만서도.

어쨌든 듀발의 뭔가 언밸런스한 진지한 태도에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돌아온 로빈은 자신이 구해온 자료를 영주 성 대장간 쪽으로 넘겼다. 혹시 무슨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그쪽 사람들도 난감해할 뿐이었다.

“중요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어 이대로 적용하긴 무리입니다.”

“이걸 기초로 계속 연구한다면 시간이 걸려도 불가능은 아닌데 사실 시간이 좀…….”

“웬만한 장인이 아니고서는 이런 기법으로 그걸 다루지 못할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저었으니 말이다.

영지의 장인들은 그들대로 할 일이 많았다. 영지 이곳저곳에서 한창 이런저런 공사를 벌이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따로 이것만 담당하는 장인을 구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로빈은 어쩔 수 없이 황도로 나가있는 주노에게 연락을 넣었다. 이곳 장인들로는 왠지 답이 없어 보이니 혹시 황도 쪽에 마수의 뼈에 관심 있는 장인이 있나 알아봐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예산을 별로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장인 몇을 고용하기에는 충분한 돈이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통신구가 있으니 이런 점은 참 편했다.

하지만 이 일이 하루 이틀 안에 해결될 거 같지는 않았다.

* * *

영지로 돌아온 로빈은 그 후로도 쉴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인 카인이 공장에 대한 업무에만 열을 올리고, 요즘에는 아예 그곳으로 출근하는 바람에 그 외의 소소한 업무는 로빈에게 넘어오게 된 것이다.

원래 지온이 맡아서 하다가 그의 일이 너무 많아 잠잘 시간조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로빈이 나선 것이었다.

물론 남쪽 요새의 공사와 가도 정비에 대한 안건은 대부분 지온과 월령의 손에서 해결되고 있었지만, 그 밖에 영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분쟁들이나 대외적인 문제들은 로빈이 처리해야 했다.

그야말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권력 이양.

솔직히 로빈은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영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로빈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남쪽 대수림 문제였다.

올여름 한 번 박살 났던 리아넨 공작 쪽에서 겨울이 오면 다시 토벌대를 꾸리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리아넨 공작의 단독 작전이 아니라 황궁에서 추방당한 귀족 넷이 모두 나선 대규모의 원정이었다.

올겨울이 지나면 황제가 말한 1년의 시간이 지나다 보니 몸이 달아오른 모양인데 그레이츠 영지의 입장에서는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 정도 근성이면 그냥 적당히 한 마리 잡아주고 보내고 싶은 심정이네요.”

“허허, 하긴 그렇긴 합니다. 저희도 장담할 수 없는 녀석들이라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군요.”

로빈이 푸념하자 웃으며 받아주는 폴.

그래, 이거지. 폴도 이렇게 말을 잘 받아주는데 듀발, 넌 대체…….

그 녀석은 확실히 부관으로서 기본이 안 돼있었다.

로빈은 오늘부터 듀발을 남쪽 모야족 마을의 전사들에게 파견 보내기로 결심했다. 거기서 유들유들한 백랑에게 좀 시달리다 보면 삶을 살아가는 법도 적당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운 좋으면 귀염둥이 모야족 소녀와 섬싱이 있을 수도 있고.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듀발을 위해서였다.

그런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조금 푼 로빈은 다시 한 번 리아넨 공작 쪽에서 보내온 협조 요청 서류를 훑어보았다.

리아넨 공작을 중심으로 네 명의 고위 귀족이 모두 힘을 모아 출정하는 상급 마수 토벌.

토벌의 성공 가능성을 떠나서 그냥 관여하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신경 쓰기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폴 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들과 함께하는 것과 그냥 내버려두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을까요?”

“일장일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동참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 규모라면 실패하는 게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음, 역시 그런가요? 할아버지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냥 알아서 하시랍니다. 전적으로 따르신다고.”

“후~ 그래요?”

어떻게든 올해 안에 공을 세워 체면을 세우고 당당하게 다시 황궁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고위 귀족들.

웬만하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었지만 이번에는 몇 가지 이유로 같이 움직이는 게 나아 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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