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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73화 (73/303)

73화

먼저 이번 토벌에 투입되는 전력이 너무 과했다.

네 영지의 최정예가 모두 투입된 작전인데다 저번의 실패로 완전히 이를 갈았는지 마수를 상대하기 위한 새로운 마법 도구까지 개발해 왔다.

이 말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혼란이 대수림을 뒤덮는다는 거고, 그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엄청난 마수들이 뛰쳐나와 결국 자신들이 피곤해진다는 뜻이었다.

길도 정확히 모르는 그들이 상급 마수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소란을 피울 것이며, 그들이 일으키는 소란에 얼마나 많은 마수가 밖으로 튀어나올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최대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그들을 안내하는 게 현명하리라.

그리고 그들의 집념이 식을 줄 모른다는 것도 문제였다.

여름에 그렇게 당했음에도 이렇게 집착하는 걸 보니 이번이 끝이 아닌 거 같은데, 매번 저렇게 와서 난리를 치는 것보다 차라리 그냥 한 번 같이 힘써주는 게 나았다.

하루라도 빨리 공을 인정받고 황궁 출입을 허락받을 생각뿐인 그들이 이번에 실패한다고 그냥 포기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여름과 겨울, 두 번이지만 내년에는 몇 번이나 찾아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하신 황제 폐하라도 지지 기반이 든든한 그들을 계속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그들이 지은 죄가 있어서 잠잠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귀족들의 요청이 줄 이을 것이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1년이나 2년 정도가 한계일 텐데 그것조차 못 견디고 저러고 있다니.

하긴, 당장 급박하게 돌아가는 황실 사정을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려나? 권력을 잡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당장 1년이 급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문제인데, 훗날 제국을 위해 싸울 기사들이 이런 일로 크게 상하는 건 거국적인 차원에서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설에선 제국의 권력 다툼은 내전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들을 잠재적인 적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고, 훗날 일어날 난리를 생각하면 그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황태자와 황실 근위대만으로 제국의 모든 땅을 지킬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3황자를 따르는 귀족들이라도 그들과 너무 척을 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황태자가 훗날 황제가 되긴 하겠지만 저들을 한 번에 압도하는 것은 아니었고, 당분간은 계속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너무 눈 밖에 났다가 저들의 집중 견제라도 받는다면 그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로빈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친하진 않지만 데면데면한 놈이 황태자의 편을 드는 것과 진짜 엄청 미운 놈이 황태자의 편을 드는 건 확실히 다르지 않겠는가?

황태자의 편을 들더라도 너무 대놓고 그들을 적대해 괜히 피해를 보지는 말자는 뜻이다. 만약 이번에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들도 이 일을 잊지는 않을 테니 아마 이 일이 훗날 손해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무모하게 달려들기만 하는 거라면 과감하게 무시하겠지만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 이 시점에서는 한 번 정도 그들을 돕는 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이번에는 적당히 도와주고 이득을 챙기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가능성은 어때 보이시나요?”

“흠, 기사들의 수준을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제가 듣기론 그들의 수준도 크게 나쁘진 않다는군요.”

“가능하다는 거군요. 물론…….”

“네, 저희가 길 안내를 완벽하게 해 큰 피해 없이 상급 마수와 전투를 시작한다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긴 아무리 전력이 대단해도 중급 마수를 끊임없이 만난다면 상급 마수와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다 지쳐 나가떨어지겠지.

“흠.”

“저희 영지의 기사들도 충분히 전력을 가다듬었습니다.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래요? 폴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실전이라…….”

차분한 폴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1년 동안 북쪽은 조용했고, 얌전히 훈련만 받은 기사들도 좀이 쑤시긴 한 모양이었다. 미래를 위해서는 확실히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을 쌓는 건 중요한 일이었고.

자신들의 단독 작전이라면 아무래도 위험해 허락할 수 없겠지만 잘나간다는 고위 귀족의 기사들과 함께이니 더 안전하긴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을 안내한다면 어느 녀석이 좋을 거 같은가요? 상급 마수라도 다 같은 녀석들이 아니잖아요?”

“그건 도련님의 뜻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군요. 만약 그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판단한다면…….”

“아니, 그건 아니고요. 최대한 인명 피해가 없는 쪽으로 가야죠.”

와, 이 어른이 또 누굴 잡으려고.

폴은 그들이 만약 잠재적인 적이라면 차도살인이라도 불사할 생각인가 보다.

황태자만 생각한다면 꾀를 써 그들을 최대한 줄여 귀족들의 기를 꺾는 것도 생각해 볼 만은 하지만 아직 그런 의리는 없었고, 훗날 제국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으니 그런 건 자제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기사들도 어느 정도는 상할 수밖에 없으니 전혀 내키지 않았고.

“가장 안전하게 가려면 아무래도 칸누라스 아니겠습니까?”

“흠, 그놈이 느려서 그나마 좀 편하긴 하죠?”

가메라처럼 두꺼운 가죽 덕분에 방어력은 뛰어나지만 움직임이 빠르지 않아 그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칸누라스.

그것도 가메라에 비해서 느리다는 거지 웬만한 기사들이 아니면 공격을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만약 막으려 든다면 그대로 떡이 될 테고.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 투입되는 기사들은 딱 봐도 웬만한 수준은 넘어 보였으니 공략이 더디긴 해도 잡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거 같고.

“대수림에도 칸누라스가 살긴 하겠죠? 웬만하면 안전한 놈으로 갔으면 해서요.”

“모야족 쪽에 연락해서 정찰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네, 가능하면 안전한 루트로 알아봐달라고 하시겠어요? 정찰조도 안전에 유의해 주시고요.”

“그러겠습니다.”

대수림에서 나고 자라온 모야족 전사들이라면 마수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칸누라스의 서식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놈이 대수림에 살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럼 대충 길 안내를 맡는다고 치고 보상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마땅히 필요한 것도 없지 않나요? 솔직히 기사들을 투입하면서 돈 같은 걸 받고 싶지는 않네요. 용병도 아닌데 너무 격 떨어지잖아요? 기사들의 체면도 있는데.”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물론 영지를 위해서라면 그런 용병 일도 마다하진 않겠지만, 기사들의 자존심이 좀 상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진 않네요. 이젠 저희도 굶어 죽는 수준은 아니니까요.”

사실 기사들을 용병처럼 취급하는 건 그들에게 상당히 모욕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영지 운영에 무리가 없는 상황에서 돈을 받고 기사들을 투입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물론 충성심이 대단한 영지의 기사들이 자신의 명령이라면 듣긴 하겠지만 굳이 상대가 언짢아할 일을 할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돈이 아니라면 더욱 받을 것이 없었다.

그나마 영지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아마 사람일 것이다. 아직 영지 내 공백지도 많았고, 이제 와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혼 래빗의 숫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적당히 인구가 늘어나도 충분히 부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영지의 힘은 인구에서 나오니 만약 지금보다 영지민이 3~4만 정도 늘어 10만 정도 되면 딱 다스리기도 적당하고 영지의 힘도 많이 늘어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인구 증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민은 영주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고위 귀족이라도 그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순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가라고 추방해도 그들이 다른 곳으로 새면 그들을 제지할 근거도 없고, 막을 방법도 없었다.

“그나마 사람은 좀 모자라지만, 그건 뭐 답도 없고요. 흠, 뭐가 좋으려나…….”

고민하며 슬쩍 눈을 돌리는데 우연히 리아넨 공작이 보낸 공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이번 토벌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중력 강화 마법이 부여된 아르마늄 강화 사슬이었다.

과거의 사냥 기록까지 찾아봤는지 영지에서 쓰는 사슬처럼 마수의 몸을 결박할 사슬까지 준비했다는 건데, 철저하게 과거의 사냥 기록을 살펴본 것도 인상적이지만 불과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아 저런 물건을 개발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휘하의 마법 공학자들을 어지간히 갈아 넣은 모양이었다.

중력 강화 마법이 부여된 마법 사슬이라. 그러고 보니…….

“리아넨 공작의 영지는 중앙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지 않나요? 그래서 마수는 많이 생소해 저번에 그런 실수를 한 거고요.”

“네,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럼, 저 마법 사슬은 일회용이네요. 저런 게 팔릴 리도 없으니…….”

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그들도 굳이 상급 마수를 상대할 필요가 없으니 아마 저 사슬은 다시 용광로로 들어가 다른 용도로 사용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흠……. 저거 괜찮지 않나요? 상급 마수를 결박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희가 받아오는 게 어떨까요? 그쪽도 당장 마수를 잡는 건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안 쓸 물건이니 굳이 거절할 거 같지 않은데요.”

“어느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겠지만 여기 적힌 대로라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물건 같긴 하군요. 만약 견고함이 떨어진다면, 지금 쓰는 사슬과 동시에 사용하면서 마법적인 효과만 적용시키면 될 테고요.”

“확실히 그렇죠? 음, 그럼 역시 보상은 저걸로?”

확실히 저런 마법 물품을 얻을 기회는 드무니 나쁘지 않았다.

사실 히센은 마법 갑옷 쪽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마법 공학자라 저런 물건을 만드는 데는 아주 서툴렀으니 말이다. 물론 만들어달라면 만들긴 하겠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전적으로 기사들을 위한 물품이라 기사들에게도 명분이 서고.

훗날 상급 마수를 상대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럼 그렇게 하죠. 물론 그쪽과 직접 만나봐야 하겠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저걸로 해요.”

“네, 그럼 그렇게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당장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황제에게 공을 인정받고 다시 황궁으로 들어가 다른 귀족들이나 관리들을 포섭해야 하는 리아넨 공작은 마음이 아주 급했다.

그놈의 근신 명령 덕분에 사가에서도 마음 놓고 다른 귀족들을 만나기가 껄끄러웠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바가 아니었지만 조급하게 움직이기에는 지난여름에 당한 게 너무나 커 방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상급 마수 사냥 경험이 있는 그레이츠 자작령에 다시 도움을 청한 것이다. 물론 저번에 제 뜻을 거절한 건 못마땅했지만 급한 건 자신이었으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이번에는 자신 있었다.

만만하진 않지만 그만큼 철저히 준비했고, 다른 귀족들까지 한곳에 힘을 모았으니 아무리 위험한 상급 마수라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계속 남아있었고 피해는 줄일수록 좋았으니 그들의 안내와 조언이 필요했다.

특히 마수가 넘치는 대수림의 거지 같은 상황을 생각하면 그곳 지리에 익숙하다는 그레이츠 영지의 안내는 필수적이기까지 했다.

저번에 나름 큰 것을 걸었는데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쉬운 일은 아닐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상대가 쉽게 허락했고 빠른 시일 안에 진지한 논의를 해보자는 요청에 그날로 바로 관리를 파견했다.

* * *

그로부터 약 2주 후, 리아넨 공작이 보낸 관리가 영지에 도착해 로빈과 마주하게 되었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

회의장에 도착해 인사를 건네던 관리는 상석에 위치한 로빈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서 와, 그레이츠 영지는 처음이지?

너무 당황하지 말라고, 친구.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드는 로빈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당황해 아무 말도 못 하는 관리.

로빈의 옆에 앉은 지온이 상황을 설명하기 전까지 회의장은 그렇게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이 자리에 처음 앉았을 때는 솔직히 로빈도 조금은 긴장했다. 아무래도 공식 석상에 나서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지 일에 꾸준히 참여는 해왔지만, 옆에서 훈수만 두는 거랑 직접 나서서 책임지는 건 확실히 다르니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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