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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83화 (83/303)

83화

돈도, 정보도 아니고 발정 난 남자들에게 욕먹는 걸 피하고자 사창가를 만들어야 한다니, 참 어이가 없었다.

이거 그냥 제쳐(?)버릴까? 욕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지들이 알아서 손으로 빼든지 하겠지.

하지만 옛날처럼 그런 체면 따위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라면 모를까,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모양이다. 굳이 지온이 이 부분을 지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테고.

어쨌든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자신을 제외한 이 사람들이 모두 한입으로 필요하다고 하니 굳이 반박하거나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봤자 자신만 피곤해질 뿐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게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냥 사람들보고 알아서 만들라고 하면 안 되겠죠?”

“그건 안 됩니다. 쓸데없는 날파리들이 꼬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치안은 안 좋아질 테고요. 게다가 괜히 체면만 깎일 수 있습니다. 영주들이 괜히 윤락가를 자신의 손 안에 쥐고 있는 게 아니죠.”

영지의 치안을 관리하는 루이가 바로 반대하고 나섰다.

역시 그렇게는 안 되는 건가?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고, 이 일을 민간으로 돌리면 어쨌든 사창가가 생겨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 수준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다만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올 어두운 손과 너무 수준이 낮았을 때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비난은 그냥 무시할 각오로 민간으로 넘긴 후 그냥 관리만 병사들에게 시켜볼까?

이렇게 영주들이 직접 윤락가를 제어하기 시작한 건 전전대 황제인 듀리아 황제 시기부터였다. 어차피 어떤 정책을 시행해도 결국 사라지지 않을 곳이 윤락가였으니 그럴 바에는 양지로 끌어올리자는 생각에 각 영주에게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어떤 영지가 가장 화려하면서 수준 높은 윤락가를 가졌는지도 비교의 대상이 되었고 은근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이 계속 이어져 윤락가의 수준이 영주의 체면과 관련된 일이 되고 말았는데.

다만 현 황제인 룩센 대제는 윤락가의 관리 의무를 완화하여 반드시 영주가 직접 그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법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예전에 해왔던 것도 있고 이게 생각보다 큰 이권인데다 소소한 부수입도 만만치 않아 거의 영주들이 전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 영지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만 위무할 생각이고 다른 목적은 없는데 굳이 이걸 제가 해야 해요? 차라리 민간으로 넘기고 병사들로 경계만 하면 치안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요.”

이게 성가신 이유는 윤락가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우선 여성들이 필요한데 이 여성들이 대단한 전문가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에게 만족을 줄 정도의 색기와 교태는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때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눈치가 빨라야 하며 심지어 영주의 입을 대신해 줄 정도로 지적이기도 해야 했다.

게다가 웬만한 남자들은 거부감 없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비위까지 좋고 이 일 자체를 사랑해야 했으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제대로 하려면 그야말로 창녀를 가장한 전천후 스파이 빗치 요원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물론 모든 여성이 그런 능력을 갖출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최소한 몇은 그런 능력을 갖춰야 했고 그것만 해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게다가 이런 여성을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나마 로빈은 이런 목적으로 윤락가를 운영할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단순히 예쁘고 이쪽 일을 거부감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성을 구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만큼 허들이 낮은 셈이긴 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인 창녀라면 상관없겠지만 적어도 능력 있는 상인이나 혹시 귀족이라도 방문한다면 가무에 능하고 지적 수준도 높은 아가씨들이 필요할 겁니다.”

하, 그래. 그냥 단순한 창녀가 아니라 기생 같은 존재도 필요하다는 거군. 그러려면 사람을 뽑아서 제대로 교육해야 하고 너무 수준 낮으면 또 그게 체면이 상한다는 건데.

비난 따위 무시하고 은근슬쩍 피하려고 했는데 역시 또 실패했다.

“아가씨를 뽑아도 그들을 따로 교육해야 하잖아요? 그건 누가 해요? 우선 교육할 사람부터 구해야 할 거 같은데요.”

“차라리 황도 쪽 환락가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오는 게 어떻습니까?”

“음……. 황도라.”

아이러니하게도 법령 개정의 혜택을 가장 먼저 본 것은 룩센 대제 본인이었다. 그는 법령을 공포하자마자 황도 윤락가의 관리를 포기했으니 말이다.

다만 로빈이 말했던 것처럼 치안에 대한 관리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이권과 관리는 모두 포기했던 것이다.

인구 100만에 엄청난 유동 인구를 자랑하는 황도.

그곳의 환락가에서 나오는 수익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도대체 룩센 대제는 왜 이런 알짜배기 사업을 포기했는지 의문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설명한 적이 없어 그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갑자기 황금 알을 낳던 거위는 주인을 잃었고, 수많은 귀족이 그 거위를 독차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슬 퍼런 황실 경비병이 지키는 이곳을 강압적으로 지배할 순 없었고 그야말로 남자를 홀리는 능력으로 서로 경쟁해야 했는데, 워낙 많은 업소가 생기고 사라지면서 아직까지 누구도 이곳을 완벽하게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쟁의 순기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훗날 이곳을 양분하는 대단한 여걸이 나타나는데 황태자가 요 여자를 낚아채 자신의 네 번째 첩으로 삼아버린다. 그리고 뒤에서 은연중 다른 업소들을 압박해서 이곳을 일통하고 이곳의 정보력을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확실히 호구로 유명한 1회 차 황태자와 지옥(?)에서 돌아온 2회 차 뉴 타입 황태자는 질적으로 다르긴 했다.

뭐, 어쨌든 황도의 상황은 그랬다.

황도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열한 경쟁으로 망하는 업소들도 허다했고 발품을 팔면 제법 괜찮은 아가씨들을 스카우트할 가능성도 있긴 했다.

확실히 마음에 드는 방법이었다.

“그게 되겠습니까? 그곳의 아가씨들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지만 그만큼 자존심도 대단합니다. 대우가 좋다고 이런 촌구석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하지만 문제는 바로 저거였다.

높은 수준의 아가씨들은 그 나름의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마치 수준 높은 기생들은 아무에게나 옷고름을 풀지 않고 현대의 에이스들이 아무 업소에나 몸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대우가 좋아도 이런 촌구석으로 올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럼 아가씨들 말고 관리자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에게 새로 아가씨들을 육성하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가장 현실적인 의견이긴 했다.

하지만 이 의견에는 큰 맹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괜찮은 생각이지만 그 정도나 시간이 있나요? 주노와 지온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 머지않아 방문객들이 늘어난다는 건데요?”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전력감 에이스는 이런 곳에 오지 않을 거고, 새로운 아가씨를 처음부터 가르칠 시간은 부족한 상황.

사람들에게 흉잡히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윤락가를 꾸미는 게 이렇게 어려웠다.

게다가 솔직히 이 영지의 아가씨들이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설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사회의 분위기나 이 세계 사람들의 특성상 그런 일을 하는 거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업소의 에이스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일하다가 마음에 들어 고위 귀족의 첩이나 둘째, 셋째 부인으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하다고 하더라. 어차피 평민은 귀족의 정실부인이 될 수 없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혼 대상이란다.

다만 왠지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곳과는 좀 달라 보여 걱정스러운 거였다. 다소 억척스럽기도 하고 환경 탓인지 자신을 책임질 남자는 스스로 고른다는 생각도 팽배해 있었으니 말이다.

속 편하게 그냥 즉전감 아가씨를 스카우트하는 것에 솔깃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영주가 되자마자 지방 업소의 사장(?)이 되어 아가씨부터 구해야 하는 현실에 망연자실해진 로빈은 잠시 다른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영지의 체면이 있으니 어떻게든 에이스 아가씨를 스카우트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당장 그런 전문가가 필요한 건 아니니 평범한 수준의 아가씨부터 구해서 급한 불을 끄자는 의견.

우선은 평범한 아가씨부터 구해오고, 관리자를 구한 후 이곳의 아가씨들을 육성하는 방법을 병행하자는 의견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다만 마음에 딱 드는 의견이 없어서 슬플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던 릭스터가 조용히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러니까 영주님은 이곳 윤락가에서 나오는 수익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으신 거죠?”

“네, 릭스터. 그건 상관없어요. 그냥 체면을 구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 있는 접대를 할 수만 있으면 되죠.”

“그러면 좋은 곳이 한 곳 있긴 합니다. 무슨 업소 같은 건 아니긴 하지만……. 저, 혹시 영주님. 따로 믿는 교단이 있으신가요?”

로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 주제에서 뜬금없이 교단이라니. 로빈은 길을 가다가 도를 믿느냐고 달라붙는 잡상인을 만난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그런 건 없는데요. 애초에 영지에 신전이 있는 것도 아니라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그 사실……. 흠흠. 사랑과 봉사의 여신을 섬기는 교단이 있습니다. 그쪽 사제들을 모신다면 당장 닥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사랑과 봉사의 여신이라.

로빈도 얼핏 생각이 났다.

예전에 켄트의 집에서 보았던 그 야한 여신상. 맞나?

겟츄 사인이 아주 인상적이었지.

하지만 뜬금없이 이런 문제에 사제를 모시라니, 저 녀석, 지금 제정신인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듯 감탄한 표정이었다. 이거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뭔가가 있는 모양인데?

“하, 그렇군요. 가능합니다. 금전적인 문제나 다른 이익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

“그들이 확실히 전문가이긴 합니다. 영주들은 꺼리는 편이라 교세가 약화하였지만 능력 하나만은 정말 대단하죠.”

“뭔데요? 저도 좀 알고 싶네요. 누가 설명 좀 해주세요.”

“그러니까 사랑과 봉사의 교단은…….”

사랑과 봉사의 여신을 섬기는 교단.

줄여서 봉사의 교단.

이곳은 신전에서 기도만 드리는 일반적인 교단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직접 몸으로 뛰며 봉사하는 교단이었는데, 그 봉사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성적 봉사를 베풀고 화대, 아니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교단이라고요? 교세도 그렇게 확장하고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천적 봉사는 바로 그거죠.”

“네, 정말 대단한 교단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봉사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는 교단이라니.”

그래. 진짜 대단하긴 하다. 너무 대단해서 어이가 가출할 지경이었으니까.

이걸 대체 뭐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이제는 웬만한 일로는 놀랄 거 같지도 않았다. 포주 영주에, 몸 파는 교단까지 나왔는데 더 이상 놀랄 게 뭐가 있을까?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키스 대신 펠라티오를 한다거나 맞선 보기 전 궁합보다 속궁합을 먼저 본다고 해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았으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정말 궁금한 건 이런 모든 것을 상상했을 우리 봉구 녀석이 과연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이 가능하냐는 거였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이젠 진짜 진지하게 걱정된다, 이 녀석아.

로빈이 어이없어하는 중에도 봉사의 교단에 대한 설명은 계속되었다.

“봉사의 교단은 영주들이 직접 환락가를 관리하면서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었는데요. 지금은 본단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그나마 황도에서 영업, 아니 봉사를 베풀고 있고요.”

아니, 당신도 지금 영업이라고 말하면서 당황했잖아?

이게 정말 교단이 맞긴 한 거야?

어쨌든 영주들이 환락가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면서 이 교단의 교세는 많이 위축되었단다. 아무래도 환락가를 운영할 때 얻는 이익이 생각보다 큰데 세금조차 내지 않는 이 교단에 그 자리를 넘겨준 영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있던 지부들은 모조리 폐쇄되었고.

그나마 룩센 대제가 황도의 환락가를 포기하면서 다시 황도에 자리를 잡긴 한 모양인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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