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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88화 (88/303)

88화

지금 교단에 남은 사제가 정확히 52명.

그중에서 특별한 봉사를 하는 사제는 33명이란다.

그리고 나머지 19명은 다른 업무를 보고 있었고.

하지만 아무리 얌전한 아이들이라지만 아이들의 수가 무려 400명이 넘는데 그 정도 숫자로 보살필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었다. 너무 많이 모여있는 건 교육 환경에도 별로 좋지 않을 텐데.

“음……. 혹시 아이들 키우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그러니까 교단에서 훗날 사제가 될 아이들 말고 외부로 나갈 아이들은 영지의 보육원에 맡길 수도 있거든요. 사제님들의 일이 너무 많을까 봐요.”

히센과 카인이 후원하는 영지 보육원은 요즘 매우 한가한 상황이었다. 영지 상황이 급격히 좋아지며 고아들이 생겨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원체 아이들의 성장이 빠른 세상인데다가 기본적으로 13~14세만 되면 바로 독립하는 분위기라 오랫동안 머무는 경우도 드물어서 지금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만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게다가 독립한 아이들이 조금씩 보육원을 후원하고 있기도 해서 히센과 카인이 후원하는 금액과 십시일반 모은 금액을 모두 합치면 금전적으로도 매우 여유로웠다. 그러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100여 명 정도는 충분히 더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맡은 아이들이니 끝까지 저희가 책임지고 싶군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줄리에타.

그녀의 반응을 보니 역시 억지로 아이들을 맡고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모습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지원과 인력을 지원해 줘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게 될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줄리에타의 말을 들어보니 원래 황도에 본단이 있을 때도 사제들을 각지로 보내 제국 각지에서 고아들을 거두고 있단다.

물론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아이들을 받는 건 아니지만 만약 교단에 여유가 생긴다면 아이들이 더 늘 수도 있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줄리에타가 미리 사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로빈은 교단의 교리가 그렇다면 그것이 범죄 행위가 아닌 한 굳이 막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갑자기 늘고 있으니 생각은 좀 해봐야겠다. 살림이 좀 피었을 때 뭐라도 가르칠 만한 교육 기관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지 자체에도 베이비 붐이 일어난 상황이니.

솔직히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곳은 많은데 그 외에 단순한 계산이나 다양한 기초 지식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었다.

원래 아이들을 적당히 가르치는 일도 했다고 하니 이곳을 아예 작은 학교처럼 만들어 봐?

* * *

다음 날, 로빈은 우선 줄리에타 대사제와 함께 영주 성안에 마련된 교단의 터를 찾아갔다. 교단이 어느 곳에, 어떻게 들어설지 설명하고 그녀의 생각도 들어보기 위해서였는데.

그녀는 영지에서 이 정도로 넓은 곳을 교단에 맡길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지 감격에 찬 눈으로 넓은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렇게나 넓은 곳을…….”

“마음에 드세요? 다행이네요. 그럼 우선 이곳에 예배당과 사제님들이 지낼 곳, 그리고 아이들이 지낼 곳을 만들면 되겠네요.”

“네, 정말 마음에 듭니다. 하… 이곳이라면 여신님의 성물을 비치할 수 있겠군요. 내 생전에 성물을 다시 꺼내들 수 있게 될 줄이야.”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린 줄리에타는 공터의 가운데로 들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주 고풍스럽고 현란한 문양으로 꾸며진 작은 상자였다.

하지만 로빈의 동공은 그 상자에 새겨진 문양을 보자마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이게 지금 왜 나와?

저거 성물이잖아? 저런 이상한 교단에 무려 성물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교단에 대하여 많이 알아본 로빈은 이곳 세계에도 성물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교단에 다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교단인 생명과 전쟁의 교단에는 분명 성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물은 특별한 신성 문양으로 된 보관함에 보관되게 되는데.

저 작은 상자의 무늬가 바로 그 신성 문양이었다. 게다가 줄리에타조차 그렇게 말했고.

그리고 줄리에타가 상자를 열자 눈부신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줄리에타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부심이 완전히 사라진 후.

로빈은 자신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여신상의 모습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저런 여신상이라니.”

예전에 로빈이 봤던 대로 정말 요염하고 농염한 여신상.

심지어 이번에는 서있는 여신상이 아니라 옆으로 누워있는 여신상이라 더욱 그래 보이는 것 같았다. 한쪽 팔에 턱을 괴고 있음에도 다른 손으로는 멋지게 겟츄 사인을 내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게다가 매끄럽게 조각된 아름다운 이 여신상은 심지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성물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크기였다.

이 넓은 부지의 30% 이상을 이 여신상 하나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만있자. 성물이라. 분명 성물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로빈이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이곳 세계의 성물은 그야말로 밸런스를 무시하는 오버 파워였다.

전설에 의하면 생명의 교단의 성물인 성녀의 심장은 한 번에 수백 미터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부상자를 완벽하게 치료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전쟁의 교단의 성물인 파괴하는 검은 한 번의 휘두름으로 성벽을 무너트렸다는 기록도 있었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성물을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없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지금도 그 성물들은 얌전히 보관함 안에서 자신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물과 성물을 다룰 수 있는 사제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설마 우리, 대박 친 건가?

“그런데 이 여신상은 어떤 능력이 있는 건가요? 딱 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요.”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기대한 듯한 상기된 얼굴로 줄리에타에게 묻는 로빈.

저렇게 위용 차고 거대한 여신상이니만큼 어떤 위대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로빈과 마찬가지로 감격에 찬 눈으로 여신상을 바라보던 줄리에타는 자애롭게 웃으며 로빈에게 대답했는데.

“저 경이로운 여신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 모든 사람의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피부를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그야말로 위대한 여신님의 은총이지요.”

줄리에타의 대답에 기대감으로 잔뜩 달아올랐던 로빈의 두 뺨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혈액 순환 참 좋지.

혈액 순환만 잘돼도 위험한 병들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다지 않은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이런 것도 미리 방지할 수 있다고 하고. 게다가 피부 미용에 좋은 건 확실히 이 교단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아주 좋은 건 맞지만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감을 감추기는 힘들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완료!]

사랑과 봉사의 여신을 섬기는 교단의 신전을 건설하라.

부지가 넓을수록 보상의 등급이 상승한다.

보상: 위대한 여신상

페널티: 없음

기한: 신전의 완성

끙, 거지 같은 퀘스트 녀석아. 네놈이 여신상을 준 거처럼 이렇게 나오면 그건 사기잖아?

하긴 지금까지도 항상 이런 식이긴 했지만, 오늘은 왠지 좀 더 기분이 나빴다. 아직 신전이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완료부터 뜬 것도 그렇고.

이 이상으로 뭔가 보상을 받을 순 없다는 뜻이겠지?

어쨌든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다. 물론 드물게도 페널티가 전혀 없는 퀘스트였지만 말이다.

* * *

거대한 여신상을 중심으로 신전이 빠르게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세계가 예전 세계보다 그나마 좋은 점 중 한 가지는 여러 가지 마법 자재와 스크롤의 도움으로 건물을 빠르게 지을 수 있다는 거였다. 아무리 단순히 나무로 만든 건물이라지만 이 정도 건물들을 지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텐데 그 시간을 돈으로 줄일 수 있었다.

아마 이런 거라도 없었으면 예전에 두 마을을 그렇게 1년 만에 마무리 짓지도 못했을 것이다. 요새를 짓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넉넉하게 지어진 신전 숙소에 아이들이 들어차고, 교단의 사제들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빈은 아이들을 위해 신전의 허드렛일을 돕고 아이들을 돌볼 도우미들을 구해 신전에 보냈는데, 줄리에타 대사제도 아이들을 돌보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는지 군말 없이 도움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거절만 하는 사람은 답답하기만 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저 여신상, 정말 눈에 띄네요.”

“저 정도 크기니 아무래도…….”

완전히 자리 잡은 신전을 멀리서 바라보던 로빈과 지온은 너무 거대해 영주 성 어디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여신상의 위용에 작게 감탄을 터트렸다.

“요즘 저 여신상에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영지민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일이라죠?”

“네, 이상하게 저 여신상에 기도하면 하루가 왠지 활기차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자신이 저 여신상의 위대함을 무시하고 있었나 보다. 영지민들이 이 정도로 여신상을 좋아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한 번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고 꽤 오랫동안 침묵해야 하는 다른 성물에 비해 저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유지하는 저 여신상이 오히려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은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 하는 자신에게는 저런 성물이 더 적당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거, 이대로 가다가는 이 여신상이 무슨 영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버 마을 쪽은 어때요? 제가 그곳 상황을 파악하기는 좀 무리네요.”

“하하, 좋다고 합니다. 외지에서 온 방문객들의 반응도 아주 좋고요. 영지 청년들도 은근히 반기는 분위깁니다.”

우버 마을의 교단 지부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지 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주라도 어린 로빈이 그곳으로 직접 가 그녀들의 서비스(?)를 몸소 확인하는 건 조금 무리였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대단한 에이스들임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영지 청년들도 반긴다는 건 조금 의외지만 어쨌든 이제 그런 일로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이때만 해도 로빈은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요. 우버 마을에 연락해서 사제님들 보호에 더 신경 쓰라고 하세요. 남쪽 관문 쪽도 문제없는 거죠? 갑자기 검문을 시작했으니 불만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루이 경의 말을 들어보니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볼멘소리가 좀 있긴 한데 원래 당연히 해야 하는 걸 하는 거뿐이니까요. 아마 그것도 금방 익숙해질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다행이네요.”

몇 개월 동안 교단과 관련된 일에만 집중했더니 벌써 여름이 한창이었다. 예전에 계획했던 영지 순방을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여러 가지 계획들이 대충 마무리된 시점이니 한 번쯤은 영지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보고로 듣는 것과 눈으로 확인하는 건 확실히 달랐으니 말이다.

물론 사심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주목적은 영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제가 영주 성을 비울 동안에도 잘 좀 부탁드릴게요. 급한 일이 있으면 통신구로 연락해 주시고요.”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당분간 큰일이 없을 거란 걸 로빈과 지온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웬만한 일들은 지온의 선에서 다 해결될 수 있었고.

그런 지온을 믿고 로빈도 마음 편히 영주 성을 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을 순방을 다니는 동안 저 통신구에 불이 들어올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번 순방을 로빈 혼자 떠나는 건 아니었다. 린과 실비아, 심지어 세이라까지 함께였으니 말이다.

당연히 공무라는 이유로 그들을 배제하고 싶었던 로빈은 그럼 진짜 일만 하고 올 거냐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마리아나의 일침에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은 페일(Fail).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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