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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03화 (103/303)

103화

그 결과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고.

현 리아넨 공작은 명예와 혈통을 과하게 중시하는 답답한 인물.

그릭스 대공자는 다소 오만하고 즉흥적이지만 은원은 분명한 무던한 스타일.

지카스 2공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파렴치한.

누가 공작위에 올랐을 때 3황자파에 가장 유리할까?

“솔직히 같은 3황자파의 거두라지만 조셉 공작과 리아넨 공작은 성향과 목적이 완전히 다르지.”

황후와 혈연으로 묶여있고 3황자와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인 조셉 공작과 달리 리아넨 공작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3황자를 지지한다고 할 수 있었다.

이는 이익의 흐름에 따라 배를 갈아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조셉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일이 틀어지면 같은 3황자파라도 리아넨 공작을 버릴 수 있었으니까.

둘이 완벽하게 한 몸 한뜻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특히 지금처럼 곤란한 문제를 겪고 있을 때는 더 그렇겠지. 리아넨 공작은 출병을 저지하는 것에는 소극적이었다고 하고. 다소 꼬장꼬장한 면이 있는 리아넨 공작은 절대 작은 책임조차 부담하려 하지 않았을 거야.”

대충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큰 문제를 일으켜 우리 쪽에 덮어씌워 위기를 넘기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공작을 세우기 위해 지카스를 충동질하는 조셉 공작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거 같았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고 마음속에 심어진 의심까지 지울 수 있을까?

자신이 떠올린 것을 리아넨 공작이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혈통이 더 우월하다는 이유로 페루를 지지한다고 했던가, 리아넨 공작? 재미있겠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은 잘 이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금 이 시기에 3황자파가 반 토막 난다면, 좀 더 쉬운 싸움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돌아가는 배 안은 올 때보다 더 여유로웠다. 아무래도 황제를 알현한다는 중요한 문제를 무사히 해결했기 때문인 거 같았다.

특히 카인은 뱃머리에서 낚싯대까지 던져놓고 세월을 낚고 있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배 위에서 물고기를 낚을 수는 없으니 그야말로 세월만 낚는 셈이었다.

“자이트 자작이 무슨 말을 한 게냐?”

“아, 그거요? 별건 아닌데요. 자이트 영지에 혼 래빗 사육장을 하나 만들려고요. 저희 영지에는 사육장을 더 늘릴 수 없거든요. 저희야 조금 도와주고 이익을 나누는 거니 별로 손해날 것도 없잖아요?”

낚싯대를 바라보던 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성격상 웬만하면 영지 일을 묻는 법은 없었는데 정말 심심했나 보다. 하긴, 물고기도 안 잡히는 낚싯대와 씨름하며 세월만 낚고 있으니 심심하긴 하겠지.

“그래? 흠…….”

요즘 혼 래빗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에 영지 내에서 그 물량을 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고기의 수요가 많았는데, 맛과 영양이 풍부하고 정력에 좋은데다가 생각보다 값도 싸 황도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로빈이 고기를 그럭저럭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 건 영지민들 때문이었다.

영지 식량 생산 사정상 영지민들이 혼 래빗 고기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당했고 이런 상황에서 잘 팔린다는 이유로 혼 래빗 고기의 가격을 올릴 수는 없었다. 원래 혼 래빗 고기의 용도는 영지의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거였고 파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이익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가격을 올려 이익을 얻고 다른 식량을 사오게 되면 식량 자급률을 올리겠다는 로빈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지에서는 저렴하게 팔고 외부에서만 비싸게 판다?

다른 나라에 파는 것도 아니고 다른 영지, 특히 황도에 파는 일인데 내수 역차별보다 더 사악한 짓을 한다면 다른 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여길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고기의 가격이 저렴하다고 이익까지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귀족에게는 특수 부위라는 이유로 상당히 높은 가격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특수 부위란 건, 고환이나 간처럼 더 효과가 특별하다고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었는데 이것들을 아주 예쁘게 포장해서 귀족들의 저택까지 안전하게 배달해 주고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이다.

일반 고기의 수십 배도 넘는 가격을 받고 있었지만 그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특별한 것을 선호하는 귀족들의 구미에도 잘 맞는지 아직도 예약이 끊이지가 않았다.

덩달아 돈 좀 있다는 상인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아마 당분간은 계속 잘 팔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가죽의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었다. 갑옷의 내피 외에도 잡다하게 사용처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상당량을 군부와 거래하다 보니 시중에 나도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덕분에 가격까지 은근히 올라가고 있었으니.

어쨌든 이렇게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라 로빈도 혼 래빗 사육장을 넓히고 싶어 했는데 이미 영지 내 사육장은 넓힐 대로 넓혀 더 이상 늘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인데 그중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자이트 영지였다.

자이트 자작이 아니라도 혼 래빗 사육장을 문의한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상당히 유망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는지 중부 쪽에서 큰 목장을 운영하는 귀족들이나 여러 대상인이 영지 문을 두드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혼 래빗에게 리퉁 말고 다른 것을 먹이면 이놈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먹는다. 리퉁에 포함된 마나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리퉁이 자생하지 못하는 곳에서 혼 래빗을 키우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채산성이 떨어져 소개해 줬다가 오히려 욕만 먹을 수도 있다고 할까? 키울 수는 있겠지만 효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니 말이다.

물론 가죽이나 모피는 제법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글쎄, 대박을 노리던 상대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상대를 믿을 수 없다는 거다. 괜히 남쪽으로 혼 래빗이 내려가 관리를 잘못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마치 황소개구리나 배스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한참이나 지난 후의 일이니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그 대상이 마수라면 어떤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진다.

혹시 아는가? 중부 사방에서 혼 래빗이 뛰어다니다가 그곳에 새로운 마수 자생지가 생겨나버릴지?

다른 건 몰라도 솔직히 그건 좀 두려웠다.

게다가 제대로 혼 래빗을 판매하려면 역시 모야족의 숙성 창고가 필요했다. 그런데 먼 중부 지방에 모야족을 보내는 것도 불안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결국은 상대를 쉽게 믿을 수 없어서 그런 건데 굳이 돈 좀 더 벌자고 쓸데없이 불안에 떨고 싶진 않은 거였다.

그런데 자이트 영지는 영주의 성격도 직설적인데다가 솔직하고, 지리적으로도 그레이츠 영지와 가까운 편이며 환경조차 매우 흡사했다. 특히 리퉁의 자생지라는 건 혼 래빗을 키우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상대 역시 마수에 대하여 특히 민감한 5대 방벽이다 보니 철저하게 관리할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빈의 심금을 울린 것은 비교적 기반이 안정된 다른 5대 방벽과 달리 자이트 영지는 마치 자신이 처음 봤던 그레이츠 자작령과 너무 비슷하다는 거였다.

한쪽에 바다와 마수 산맥을 끼고 있는 지리적인 조건도 비슷한데다 특별히 주력으로 밀 수 있는 사업도 없어 영지민들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

마치 자신의 영지가 운 좋게 모야족과 혼 래빗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거 같았다.

그러니 로빈도 은근히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이왕에 프랜차이즈(?)를 모신다면 저곳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물론 진짜 프랜차이즈처럼 쓰레기 같은 갑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다른 5대 방벽에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방위할 능력을 갖추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자신들이 위험한 경우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자이트 영지와 협력해서 별로 손해날 것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잘 해보거라. 자이트 영지면 괜찮은 사람들이지. 영악한 사람은 못 되니 말이다.”

로빈의 말에 카인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 예전에 전해 들은 그쪽 사람들의 성향을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네, 저도 그런 거 같더라고요. 무조건 다짜고짜 영지민부터 영주 성으로 몽땅 모은 것만 봐도 그렇죠. 덕분에 이번 난리 때도 영지민들은 모두 무사했다더라고요.”

어쨌든 영지로 돌아가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겠다. 황도에서 만났던 귀족들도 혼 래빗 고기를 좀 더 구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으니 시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드디어 우버 마을 항구에 도착했다.

홈, 스위트 홈이라고 할까?

북적이던 황도 옆 항구 도시 칸 토네의 북적이는 부두에서 시달리다 배라고는 자신의 배밖에 없는 우버 마을의 한가한 항구로 돌아오니 딱 집에 온 것처럼 푸근하기만 했다.

그래, 역시 집은 이래야지.

복잡한 황도 따위 자신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빨리 가서 자이트 영지의 일을 해결하고 다시 히센과 스미스가 작업하는 곳으로 가서 훈수나 둬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영지에는 조금 골치 아픈 문제가 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담이요? 줄리에타 대사제님이?”

“네, 영주님. 아무래도… 추가 신전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렇죠. 그거밖에 생각나는 게 없네요. 흠……. 어쩔 수 없나? 우선 들어오라고 하세요.”

영주 성에 도착하자마자 봉사의 교단 줄리에타 대사제가 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봉사의 교단.

미묘한 목적으로 로빈이 직접 청한 사랑과 봉사의 여신을 섬기는 교단은 그 특유의 놀라운 봉사 정신과 봉사 실력으로 영지 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성물인 여신상이 영주 성에 자리를 잡으면서 각지로 흩어졌던 사제들도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근래 보고받기론 놀랍게도 사제의 수만 200여 명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단다.

황당한 건 대사제 줄리에타도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자신의 교단에 이 정도로 사제가 많을 줄은 몰랐나 보다.

뭐, 적당히 표정 관리하긴 했지만 200명이라고 보고하면서 동공이 미친 듯이 떨렸던 걸 보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하긴 교세는 줄었고 사제들이 생존 신고를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각자 알아서 제 갈 길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물의 느낌만으로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교단이긴 했다. 물론 연락받고 온 사제들도 있다지만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다고 하니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영주님.”

“네, 줄리에타 대사제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물론입니다, 영주님. 여신님과 영주님의 보살핌 덕분이지요.”

지금까지 줄리에타 대사제가 직접 이곳으로 온 적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사제의 수가 200이 넘었을 때 한 번 와서 보고한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 만큼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인데 사제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니 아마 신전에 대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아마 다른 영지에 진출해 지부를 낸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떤 경우에도 지금처럼 그 많은 사제가 본단에만 있는 건 교단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네, 잘 지내신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면담을 요청하신 건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사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래요? 무슨 일이신데요?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러니까…….”

줄리에타의 부탁은 역시 예상대로 신전에 대한 것이었다. 다만 다른 곳에 지부를 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지 내의 다른 마을에도 신전을 올리겠다는 이야기였다.

뭔가 더 나올 것도 없는 영지 마을에 신전을 더 짓고 싶다니,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 오히려 어떻게든 다른 영지로 세력을 확대하는 게 바람직한 거 아닌가?

아, 마땅히 신전을 허가해 주는 영지가 없어서 그런가?

하지만 마을마다 봉사 스페셜리스트가 대기하고 있는 영지라니. 과연 우리 시골 총각들이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황도에서 여기까지 따라온 단골도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심한 경우 한 사제님을 가지고 마을 청년들의 경쟁이 붙을 수도 있었다. 사제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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