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소설 속 로빈-105화 (105/303)

105화

“확실히 RN-7은 아니었어. RK-2에다가 오히려 RN-5를 조합하는 것이 효율적이야.”

“이번엔 RK-2, RN-5에 추가로 TT-3을 조합해서 작업해 볼 생각이에요. 저희의 계산대로라면 이 조합이 가장 효율이 높을 거예요.”

다 좋은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대충 들어보니 어느 정도 성과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히센의 설명 중에 로빈도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루터카우의 굳은 배설물을 용광로에 넣으면 화력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계기로 저 배설물을 불 속에 넣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신기한 이야기였다.

“에이, 나쁜 녀석. 네 녀석은 사기꾼이야.”

잠시 쉬는 시간에 히센은 로빈에게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볼멘소리인 거 같았다.

하지만 로빈도 할 말은 있었는데.

“에이, 여기만큼 마음 편하게 마수 부산물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덕분에 갑옷도 잔뜩 만들어보셨잖아요. 아마 지금까지 평생 만져본 것보다 요 몇 년간 영지에서 작업하신 양이 훨씬 많을걸요?”

“그거야…….”

“저는 떳떳합니다, 히센 님. 후후. 게다가 황도에 계셨으면 계속 혼자 쓸쓸하게 지내셨겠죠. 그 나이에 창녀들 엉덩이나 두드리면서 살 생각은 아니셨죠? 자고로! 남자란 떠받들어주는 여자가 있어야 살맛 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것도 둘이나! 히센 님도 참 성공하셨다니까.”

“쩝.”

솔직히 찔리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 서둘러 주제를 쌍둥이 쪽으로 돌려버렸다.

마수에 대한 작업만 전념하기로 한 히센에게 주술 문양이니, 주술 창고니, 심지어 그레이츠 호의 조정 작업까지 부탁했으니 사실 계약 위반은 맞았다. 하지만 쌍둥이가 있는 이상 무조건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혼 래빗 고환이 그렇게 좋다네요. 황도의 귀족들이 아주 사족을 못 써요. 귀족들이 괜히 그 값을 주고 사가는 게 아닌가 봐요. 어때요? 황도로 넘어갈 물건 중 몇 개를 쓱싹해 드릴까요? 거의 판매용으로 나가는 물건이라 쉽게 구하기 힘드시죠?”

“오호, 그걸?”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저것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믿고 있었다. 히센 역시 그것의 위력을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였고.

가장 이성적인 마도 공학자가 특별한 근거도 없는 사실을 믿고 있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우연히 그것을 먹은 날 침대를 초토화시켰던 기억이 있어 믿지 않을 수 없는 거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걸 구하려고 몇 번이나 알아봤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로빈의 말대로 대부분 판매용으로 빠지는 귀한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이곳 영지에서 이런 걸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인맥, 즉 인간 관계였는데 히센은 사람들과 두루 친한 스타일은 아니었고 도축장 쪽 사람들과는 전혀 친분 관계를 쌓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걸 구해올 만한 사람은 쌍둥이 정도였는데 또 남자의 체면(?)상 그녀들에게 그걸 구해달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니 로빈의 제안이 솔깃할 수밖에.

뭔가 좀 속은 기분이긴 하지만 이대로 그냥 일만 하는 거보다야 그걸 받고 일하는 편이 훨씬 뿌듯했다.

결국 히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는데.

“뭐, 좋아.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받을 수 있을까?”

“후후, 좋아요. 히센 님이 드시겠다는데 그거 한두 개가 뭐가 아깝겠습니까? 그러니 힘내서 서둘러주세요.”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도리아 여사는 극적으로 타협하는 둘의 모습에 웃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이 웃음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호. 잘됐네요, 히센.”

이렇게 히센을 축하해 주던 도리아 여사는 엄격, 근엄, 진지한 태도로 로빈에게 충고하기 시작하는데.

“요즘 어르신이 많이 마르셨어요. 하긴, 그분도 건강을 신경 써야 할 나이니까요.”

“예? 아… 예.”

이런 말 하기는 뭐 하지만 로빈이 보기에 자신의 할아버지 카인은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다. 말라 보이는 것도 단단하고 슬림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 거뿐이고.

그걸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 도리아 여사님인데 왜 느닷없이 그런 이야기를……. 어? 설마, 저거.

“아, 그렇네요. 제가 그걸 잊고 있었네요. 할아버지께도 몇 개 대접해 드려야겠네요.”

“어머, 그래요? 호호. 역시 영주님은 효심이 지극하시네요.”

이제야 비로소 밝게 웃으시는 도리아 여사님. 로빈의 예상대로 도리아 여사님도 그걸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기, 흠흠. 혹시 가능하면 저도 좀……. 그게 정말 효과가 좋다더군요. 요즘 망치 잡는 것도 기력이 필요한 일이라…….”

옆에서 망치질을 하던 스미스까지 나선 상황.

웬만하면 작업에만 열중하는 장인 스미스까지 나설 정도라니. 정말 그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와, 이 정도면 이거 뇌물로 써도 될 정도 아니야?

효과는 직방인데, 이런 물건은 뇌물로 취급되는 종류도 아니잖아?

로빈은 주노에게 연락해서 이 물건이 뇌물로써 가치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생각보다 더 괜찮은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임무를 맡은 공방의 삼인방에게 그것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후 놀라울 정도로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었다. 아마 계속된 연구와 노력으로 성과를 보일 만한 시기가 되어 결과물이 나온 거겠지만 로빈은 자신의 선물이 사기를 올려 성과를 앞당겼다고 자찬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그해 겨울, 드디어 완성된 검 한 자루가 로빈에게 전해졌다. 가메라의 뼈로 벼린 후 히센이 마법까지 부여한 완제품이었다.

“오… 이게 바로.”

금속제 무기와는 묘하게 다른 색감과 느낌.

특히 먹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검신은 검을 다루지 않는 로빈마저 매료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이 처음 느껴보는 고양감. 주몽이 강철 검을 처음 받았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정말 짜릿하고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색이… 참 예쁘네요. 그런데 에셋은 이런 색이 아니었는데요. 이건 왜 이래요?”

폴의 애병 에셋 역시 상급 마수의 뼈로 만든 무기였는데 이렇게 오묘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로빈도 호기심을 느낀 것인데.

“그게 어느 놈의 뼈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지더라고. 이 검은 놈은 가메라의 뼈로 만든 거야. 폴의 에셋이 뭘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메라는 아닌 거지.”

“아… 그렇군요.”

마수의 종류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 그리고 히센의 설명에 따르면 트리플헤드의 뼈로 만든 건 은은하게 푸른빛을 띤다고 한다.

하지만 로빈은 개인적으로 이 은은한 검은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선 색 자체도 엄청 예뻤고 만약 밤에 이걸 사용한다면 상대를 더 성가시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큰 변수가 되진 못해도 분명 적당히 귀찮게 만들 순 있을 것이다.

외형은 충분히 마음에 들었으나 역시 문제는 성능이었다. 웬만한 마법 부여 무기보다 성능이 좋아야 자신도 이걸 영지의 주 무기로 밀어붙일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법은 어때요? 잘 먹나요?”

“생각보다 더 괜찮은 거 같더군. 상급 무기의 경우 세 가지를 부여할 수 있어서 오히려 아르마늄보다 나아.”

“오, 그래요? 정말 반가운 소리네요. 하긴 이게 얼마나 빡센 녀석인데 아르마늄 마법 검보다 부족하면 말도 안 되죠. 마법은 어쩌실 생각이에요?”

“우선 견고함, 마나 전도율, 이 두 가지를 고정적으로 부여하려고 해. 나머지 한 가지는 개인 취향에 맡길 생각이고. 병사들이 사용할 중급 무기는 저 두 가지로 통일하면 되겠지.”

히센도 이 무기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귀찮게 개인적인 취향대로 한 가지 마법을 걸어준다고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로빈이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자 히센은 헛기침을 하며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흠흠. 뭐, 이 정도 물건이 나왔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기사라고 해봤자 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으니까. 게다가 사실 기사들이 원하는 게 뭔지 뻔하기도 하고.”

“그렇죠?”

취향에 맡기겠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기사, 전사들이 신체 능력 향상을 원할 것이 뻔했다. 견고함, 마나 전도율 상승, 그리고 신체 능력 향상은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며 삼위일체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것을 원하면 히센이 선택권을 주는 것도 그냥 허울뿐이라는 건데,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 로빈, 솔직히 다양한 마법을 부여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야. 괜히 엉뚱한 마법이라도 걸어달라고 하면, 그건 생각만 해도 정말 피곤하군.”

실전으로 단련된 기사나 전사들이 무기를 장난으로 만들어달라고 할 리는 없으니 엉뚱한 마법을 걸어달라고 할 가능성은 없었다. 긴박한 순간에는 어떤 마법이 부여되어 있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지는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결국 저건 히센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뜻인데.

“음, 그렇군요. 하긴 이것저것 바꿔 가면서 마법을 부여하시려면 히센 님이 피곤하긴 하시겠어요.”

“하하, 맞아. 그래서 말인데, 저번에 그게 참 좋더라고. 가뿐하고 말이야. 그게 있으면 더 수월히 할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아하, 그거였군. 어쩐지 서론이 길다 했더니.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도 모른다더니, 이분이 지금 딱 그렇다. 그게 그렇게 좋은가?

히센의 말에 따르면 상급 마수의 뼈로 만든 무기는 무려 세 가지나 마법을 부여할 수 있다니 이것은 통짜 아르마늄으로 만든 무기랑 거의 비슷한 성능이었다.

물론 특별한 아르마늄으로 만든 건 네 가지 마법까지 부여할 수 있다지만, 애초에 기본적인 강도 면에서는 이쪽이 우월하니 정확히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걸 영지의 주 무기로 밀어붙여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성능이 좋다는 거였다.

어쨌든 앞으로 당분간은 또 마법을 부여하느라 바쁠 히센이니 불알 몇 개 따위는 서비스로 넣어도 충분했다. 일종의 보너스라고 할까?

자신은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치르는 좋은 영주였으니 말이다.

옜다. 기분이다. 불알 받아라!

새로 만든 검은 기사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무기보다 단단하고, 게다가 뭔가 있어 보이는 외형까지.

만약 홈쇼핑에 올라왔어도 수많은 충동구매를 부추길 대단한 물건인 것이다.

결국 만장일치로 영지의 새로운 무기는 이것이 되었다.

다만 예전에 폴이 지적했다시피 다루기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그 위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리라.

“이제 무기는 순차적으로 이걸로 바꿀 생각이에요. 폴 경은 어쩌시겠어요?”

“전 아무래도 계속 같은 걸 써야 할 거 같군요.”

이미 마수의 뼈로 만든 에셋을 소유한 폴.

역시 폴은 자신의 애병을 계속 쓸 생각이었다.

하긴, 에셋 정도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훌륭한 무기이긴 하지. 지금까지 손에 많이 익었으니 굳이 바꿀 이유는 없었다.

“아무래도 그렇죠? 그럼 그러세요, 폴 경.”

무기의 제련법이 완성된 후 여유 있는 장인들을 모두 이쪽에 붙였다. 적어도 수백 자루가 넘는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스미스 혼자 감당할 만한 작업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실수 연발로 스미스를 속 터지게 만들던 장인들도 몇 번의 작업 끝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이제는 생산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장인들까지 제련법에 익숙해져 이제는 굳이 스미스가 영지에 남을 이유가 없어 큰 상을 내린 후 차후의 행보를 물어보았는데 그는 그냥 계속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영주 성에 거주하는 여성 하나와 눈이 맞아 이곳에 가정을 꾸리겠다는 건데.

게다가 상급 마수의 뼈를 제련하는 방법을 ‘스미스 제련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게 엄청나게 감동이었단다. 자신의 이름을 딴 제련법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장인으로서는 여한이 없고 자신을 알아준 로빈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어?”

그저 따로 이름 붙이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불렀던 건데 생각보다 상대의 반응이 격해 로빈도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어쨌든 솜씨 좋은 장인을 종신 고용할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지난 늦은 봄에 모야족 장정들이 자이트 영지로 넘어 간 후, 각 마을에 신전을 건설한 릭스터와 똘마니들도 자이트 영지로 넘어갔다.

그리고 여름 내 혼 래빗 사육장을 만들어 겨울에 접어드는 지금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다만 숙성 창고에 대한 관리가 안정화될 때까지는 그곳에 머물러야 하므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