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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06화 (106/303)

106화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미 사육장 자체는 완벽해서 자이트 영지민들에게 도축한 고기를 나눠 주고 있었고, 혼 래빗을 관리하는 것도 그쪽 병사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어 자신들은 별로 할 일이 없단다.

하지만 숙성 창고 쪽은 아직 난항이라니 겨울을 나고 봄은 지나야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자이트 영지의 삼남이 그레이츠 영지로 넘어와 모야족 마을에서 주술사들에게 숙성 창고 관리 요령을 배우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데 자신의 셋째 아들을 보낸 건 자이트 자작이었는데 아무래도 모야족과 릭스터, 그리고 그 똘마니들을 잘 보살피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로 생각된다.

일종의 인질 비슷한 거라고 할까?

물론 로빈과 동갑인 자신의 셋째 아들이 그레이츠 자작령의 영주인 로빈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레닌 자이트.

뭔가 붉은 냄새를 잔뜩 풍기는 이 녀석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로빈도 순간 움찔했었다.

전생에서 너무 유명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막상 이 녀석은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너무 다른 녀석이었다. 천생 막냇동생 같은 녀석이랄까?

이 녀석은 막내답게 구김 없이 밝은 녀석이었는데 마법적 재능이 대단하다는 자이트 자작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빠른 속도로 숙성 창고의 관리 요령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진 지금은 심지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성격도 워낙 밝고 붙임성이 좋은 탓인지 대부분 그를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어머니 마리아나까지 로빈에게 남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라며 레닌을 귀여워했으니, 만약 영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이트 자작이 이 녀석을 파견했다면 임무는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어머니가 저와 동갑인 친구를 동생 취급하는 상황이 좀 미묘하긴 했지만 로빈도 굳이 레닌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성향 창으로 저 태도나 성격이 꾸민 것이 아니라 자기 본연의 것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보고 느낀 것이 자이트 영지로 전해지긴 하겠지만 특별히 숨기는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막을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게다가 왠지 솔직하고 직설적인 또래의 귀족 아이가 좀 신기하기도 해 반말을 허락하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자신과 동갑이면서 아직 덜 자란 요 녀석이 생각보다 밝히는 녀석이라는 거였다.

“로빈! 여긴 천국이야! 미쳤어! 그 탱글탱글한……. 아우! 그냥 얼굴을 확! 나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될까?”

녀석은 여름에 모야족 마을의 풀장을 구경한 후 이렇게 말했다.

뭐냐, 이 녀석아. 무슨 코박죽이라도 할 생각이야?

하긴 자극적이긴 했겠지. 나도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유로 고향을 등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와, 쟤는 뭐야? 엄청 귀엽잖아?! 침대로 데려가고 싶어!”

이제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는 실비아를 처음 본 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물론 성장기에 들어가 부쩍 자란 실비아가 엄청 귀엽긴 하지만 침대라니, 그건 너무 이르지 않나? 이놈도 은근히 아청아청한 녀석인 모양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결국 둘 다 같은 나이니 그건 또 아니려나?

어쨌든 녀석은 실비아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이곳저곳에서 실비아에 대하여 알아보더니 그녀가 다섯 살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를 선언했다.

“이 녀석! 네 첩이면 진작 말했어야지! 이 부러운 놈.”

이렇게 말하며 울면서 뛰어가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

하지만 다음 날 다시 회복되었는지 이젠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며 방긋 웃는데, 이놈은 대체 뭔가 싶었다.

어쨌든, 놈은 지금 모야족 마을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얼빠진 녀석이지만 마법적인 재능만은 진짜였다. 도리아와 히센의 말을 들어보니 조금만 집중하면 충분히 좋은 마법 공학자가 될 만한 자질이라나.

하긴 타이틀로 능숙한 마나 제어력(R)이 있는 걸 보니 확실히 그런 거 같긴 했다. 다만 저 얼빠진 성격으로 제대로 집중이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그렇게 겨울이 한창일 무렵.

황도 쪽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지카스 리아넨 2공자가 가문에서 축출되고 리아넨 공작이 3황자파에서 탈퇴.

중립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로빈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저게 어떻게 된 일이래요? 지카스는 어떻게 된 건데요?”

심각한 표정의 주노는 자신이 조사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늘어놓았다.

특별한 정보통이 있는 게 아니라 정보의 습득은 좀 느리지만 혼 래빗 특수 부위를 귀족들에게 배달하며 은근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인지 적어도 남들이 대충 알 만한 정보는 정확히 취득할 수 있는 주노였다.

“지카스는 가문에서 축출된 후 사라졌는데, 아마 그릭스 대공자가 처단했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처단이요? 허…….”

말을 들어보니 예전 황태자의 성인식 날 밤에 그릭스 대공자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고, 그게 지카스 2공자가 사주한 것이란다.

여기까지는 로빈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도 원작에 그릭스가 나오지 않은 이유를 지카스의 암살이나 그에 준하는 무엇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 뒤의 이야기였다.

지카스 2공자를 뒤에서 부추긴 사람이 조셉 공작일 가능성이 크고 그 일을 리아넨 공작이 알게 되어 3황자파를 탈퇴하게 되었다는데, 로빈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둘 다 황태자가 싫다고 모인 사람들인데 한쪽이 다른 쪽 후계자를 죽이려고 했다니, 무슨 팀 킬인가 싶어서였다.

자신이 리아넨 공작이었으면 중립 노선은 개뿔, 바로 황태자파로 달려갔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어차피 한편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한편인데 저번 자이트 영지 건으로 서로 대립이 있었습니다. 조셉 공작은 자신과 동급인 리아넨 공작 말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지카스 리아넨을 새로운 공작으로 세우려고 한 거랍니다.”

“그래봤자 지카스가 바로 공작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날 리아넨 공작이 타고 왔던 마차의 연결 부위가 조금 헐거워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리아넨 공작의 저택이 있는 3번 거리 쪽으로 가다 보면 크게 돌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만약 그 마차를 타고 갔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답니다. 공작의 사두마차는 황도에서도 빠르게 달리는 편이니까요. 그릭스 대공자가 마차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고 공작을 자신의 마차에 같이 태워 무사할 수 있었다는데 이 일도 조셉 공작과 지카스 2공자가 꾸민 일이라는군요.”

“아, 맞네. 그랬지.”

그릭스가 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넬 때 마차 사고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그릭스의 암살 시도와 연결된데다가 심지어 두 가지 사건 뒤에 조셉 공작이 연관되어 있었다니.

이 정도면 지카스가 가문에서 축출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릭스를 암살하려 한 것과 리아넨 공작과 같이 있는 그릭스를 공격한 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게다가 그게 다 들통 났다니.

지카스는 결국 다른 가문과 손잡고 가주인 아버지와 대공자인 형을 동시에 공격한 반역자가 된 것이다. 물론 그에게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마차에 손을 댄 것부터가 에러였다.

“도대체 조셉 공작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그리고 주노가 조셉 공작과 리아넨 공작의 상황과 성향, 그리고 목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로빈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

결국 물고 물리는 정치 공작에, 권력 다툼, 그리고 주도권 싸움이었다.

그건 걸로 결국 암살까지 시도하다니. 그것도 표면상으로나마 같은 편을.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래서 내가 영지를 벗어나기 싫다니까.

로빈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귀족이란 참 대단한 존재다.

암살에 처단.

아무리 배다른 형제라도 저럴 수 있는 걸까?

그 실없어 보이는 그릭스 대공자마저 이런 경우에는 저런 독심을 보일 수 있다는 거다.

솔직히 저기에 비하면 우리 가문은, 음…….

귀족 가문이라기보다는 변방에 있는 시골집? 뭐, 이 정도 아닐까?

그나저나 저 일로 황도 정치판의 세력 판도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이쯤에서 저 황도의 정치 파벌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보면 기본적으로 귀족파와 황제파가 나온다.

대부분 귀족의 권리와 이익을 중요시하면 귀족파, 황권 강화를 중요시하면 황제파라고 나오는데 이곳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황권을 강화한 후 한 명의 절대 황제가 집권해 정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황제파는 황제의 절대 권력을 지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황제의 자질 판별이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황권은 강한데 엉뚱한 놈이 황제가 되어 제국을 말아먹을 수 있으니 철저하게 잘난 놈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마인드였다.

그러니 이들은 황제의 뜻을 철저히 따르는 자들이지만 유일하게 차기 황권에 대해서는 황제의 뜻과 조금 다른 포지션을 취할 수도 있었다.

반면 귀족파는 황제의 전횡을 막기 위해 신권을 강조하는 자들이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 아래 황제의 권한이 절대적이라면 그의 실책을 막을 수 없고, 황제의 독단보다 황제와 신하가 논의를 통해 정국을 이끌어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 제국도 중앙 귀족 회의를 통해 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어느 정도는 보장하고 있었다.

저번 겨울 자이트 자작령 사건 때 결국 황제가 황실 근위병을 즉각 출동시키지 못한 것도 이 귀족 회의에서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대대로 황제의 치적이 대단할수록 귀족파가 입을 다물었고, 황제가 실정을 반복할수록 귀족파가 득세하는 형국을 보여왔다.

그리고 지금.

룩센 대제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은 황권이 대단히 강한 시기였다. 그만큼 룩센 황제가 국정을 잘 이끌어왔다는 방증이었다.

한 번의 실정을 이유로 고위 귀족에게 1년간의 근신을 명한 예전의 일을 생각해 보면 황권이 얼마나 강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 황태자파와 3황자파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이건 전통적인 황제파와 귀족파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쟁이었기 때문이다.

귀족파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황태자파와 3황자파 내에는 사실상 귀족파와 황제파가 혼재해 있는 상황이었다.

즉, 3황자파에는 황제를 적극 지지하지만, 차기 황제가 된다는 황태자의 자질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지는 황제파들도 있고, 반대로 귀족파이면서 차기 황제로는 황태자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귀족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황제 자체도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황제가 누군가를 확실히 결정하여 공개적으로 공표하게 된다면 이런 3황자파나 황태자파의 대립은 조금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컸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이 집단행동을 보이는 목적은 황제에게 황태자 혹은 3황자가 진정 황제의 재목이라는 걸 어필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저번 자이트 자작령 사건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정치적 혼란을 틈타 거의 입을 다물고 지내던 귀족파가 본격적으로 황권 견제의 깃발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귀족파의 거두인 리아넨 공작과 조셉 공작의 의견 대립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각자의 이유로 3황자를 지지하고 있고 내심 신권 강화를 갈구하고 있는 둘이지만, 이 혼란을 기회로 황제의 독주를 한 번쯤 견제하고자 했던 조셉 공작과는 달리 리아넨 공작은 이런 일로 황권을 견제하는 건 제국에 좀먹는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예전 대수림 건으로 한 번 크게 데인 이후, 마수와 관련된 사안은 절대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조셉 공작은 리아넨 공작의 반대에도 황실 근위대의 출동을 지연시켰고, 그 결과 지금 3황자파 쪽에서 이번 일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라이넨 공작 입장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셉 공작은 그런 리아넨 공작이 못마땅한 거였고.

“그런데 중립파라니, 좀 웃기네요. 원래 리아넨 공작은 귀족파잖아요?”

“네, 그런데 상황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 같습니다.”

“뭐가요?”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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