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하지만 무슨 특별한 효과가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요즘은 좀 피해왔었다. 이게 생각보다 맛이 좀 묘해서 말이다. 처음 줄 때는 멋모르고 계속 먹었는데 이젠 좀 지겨운 감도 있었고.
그나저나 5년이라, 예전에 먹은 게 대충 4년 좀 넘으니 이제 1년만 더 먹으면 된다는 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좋은 거니 어머니도 적극적으로 권했던 거겠지?
“뭐, 좋아. 그러지, 뭐. 설마 또 있어?”
“그럼요. 이게 본론인데요. 저도 그걸 주세요. 그거!”
“그거? 뭐야, 너도 혼 래빗 그게 필요해?”
이 녀석이 그걸 어디다 쓰려고? 혹시 도리아 여사님의 사주인가? 아니면 어머니?
요즘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것의 반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판매용으로 나가는 것 빼고는 수량을 꼼꼼히 기록해 뒤로 빠지는 걸 막은 건데, 덕분에 어머니 마리아나조차 뒷구멍으로는 이걸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영주 가족이라고 너무 특권을 주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까 조심하게 된 것이다.
생각 같아서야 무한정 공급하고 싶지만 어디 사람 일이 그런가.
하지만 이어지는 실비아의 발언은 로빈의 생각 이상이었다.
“에이, 제가 토끼 불알을 어디다 쓰겠어요? 당연히 영주님 것이죠. 영주님의 주머니, 아니면… 막대기?”
내 것? 요 녀석, 이거…….
너 설마 지금 나한테 섹드립 친 거냐?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혀끝으로 입술을 살살 핥는 모습이 참…….
뭔가 좀 요염한 분위기가 있긴 한데 아직 덜 큰데다가 볼륨도 부족하고 얼굴에 앳된 느낌까지 있으니 언밸런스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 녀석은 선천적으로 초강아지상의 귀염귀염한 얼굴이라 아직 저런 섹드립이 파괴력을 발휘하려면 한참 멀었다.
“악!”
로빈은 요망한 혀 놀림을 보다 못해 실비아에게 딱콩을 날렸다. 뭔가 귀엽긴 한데, 저 혀 놀림을 보고 있자니 거북한 소름이 쫙 올라왔기 때문이다.
“떽! 벌써 그런 거 밝히면 못써, 이것아. 정신 차려!”
“힝, 안 통하네. 흥! 두고 봐요, 영주님! 크게 한 방 터트린 다음에 상으로 꼭 막대기 받을 거니까요!”
딱콩을 맞은 후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실비아. 하지만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상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로빈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는데.
“아후. 저 상 집착녀, 진짜…….”
하지만 원래 저렇게 대놓고 요망한 짓을 하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요즘 대체 누구랑 어울리길래 저러는지 참 기가 막혔다.
저 녀석의 일상도 한 번쯤은 파헤쳐봐야 하려나? 어쩌면 영지 어딘가에 예상치 못한 암적(?) 존재가 숨어있을지도 몰랐다.
* * *
얼마 후 연말이 코앞일 무렵 황도에서 두 개의 공문이 내려왔다.
하나는 로빈만 모르고 있던 그 신년 초대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노가 미리 언질해 준 협조 공문이었다.
“음……. 이런 초대장이 날아오고 있었군. 황제 폐하가 무슨 소리를 하시나 했더니…….”
이런 변방 구석의 자작가에 저런 초대장이 날아오는 건 신기한 일이었지만 굳이 황도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특히 요즘 그곳이 아수라장이라는데 굳이?
그래서 당연히 거절을 표하는 답장을 직접 적어 인편에 들려 다시 황도로 보냈다. 아무래도 저런 초대를 통신구를 통해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쪽도 직접 초대장을 보낸 거고.
어차피 이유야 붙이기 나름이라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문제의 협조 공문.
“아, 이게 드디어 오는구나. 흠…….”
아카데미에서 황태자는 괴짜에 가까운 연금술사와 마법 공학자 콤비를 만나 그들을 등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연구하고 있던 게 바로 마나 제어력 향상 물약이었고 이론상으로는 이미 완성된 상황이었다.
황태자는 호기심으로 황실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마수 핵 몇 개를 가져다가 한번 만들어보라고 던져주는데, 완성된 이 물약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물건이었다.
이 물약을 직접 먹어본 황태자는 이 물건의 가치를 깨닫고 더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에 불타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알려진 마수 핵을 황실이라고 많이 보관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결국 마수와 자주 조우하는 북쪽 영지 쪽으로 이 마수 핵을 구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공문 외에도 자체적으로 버려진 마수 핵을 찾기 위한 무슨 탐지기 같은 걸 다루는 기사까지 파견했다. 아무래도 땅속에 숨어있는 마수 핵을 찾기 위한 장치인가 보다.
분명 황태자의 마법 공학자가 따로 만든 비장의 무기겠지.
이 공문은 결국 자신들이 버려진 마수 핵을 주워 갈 수 있게 협조해 달라는 공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황족이라도 예고도 없이 영주의 영지에 무단 침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북부의 영지들이 대체적으로 협조적이었지만 열심히 수색해도 결국 50개 정도밖에는 구하지 못했다고 적혀있었다.
소설을 읽을 때는 뭐야? 겨우?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타당한 숫자였다.
애초에 상급 마수에게서나 나오는 마수 핵이 그리 많을 리도 없었고, 마수와의 충돌이 빈번한 북부의 상황상 민간에서 간직하고 있던 마수 핵은 마나 프로즌 같은 희소 질병을 대비해 꽁꽁 싸매놓고 보관했을 것이다.
물론 마수 핵의 보상금으로 100골드를 내걸었지만 목숨 줄이 될 수도 있는 귀한 약재를,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약재를 쉽게 내놓기에는 금액이 조금 적은 편이긴 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그 당시 나왔을 마수 핵의 대부분을 구슬치기하겠다며 그레이츠가의 선조가 모아놨다는 거였다. 그러니 아무리 뒤져봐도 쉽게 찾을 수 없었겠지.
다만 그 당시 소설 속의 그레이츠 영주, 아마 카인일 가능성이 가장 컸는데, 이 사람이 왜 그 구슬을 황태자에게 바치지 않은 건지는 좀 의문이었다.
소설에서 한 줄로 언급하길 북부는 많이 피폐하다고 했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그 구슬을 모두 황태자에게 넘기는 것만으로도 한고비 넘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안 나오는 일이었다.
공문을 바라보던 로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처음에 이 구슬을 발견했을 때는 무조건 고사할 생각이었다. 훗날 마나 제어력 향상 물약이 공개되면 정말 대단한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구하려고 해도 상급 마수를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쉽지 않아 그 가치는 점점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까놓고 얘기하면 저걸 100골드에 가져가겠다는 황태자의 선언은 사기에 가까웠다. 물론 훗날의 가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황태자로서는 저 정도도 상당히 넉넉하게 쳐준 셈이었지만 미래를 아는 로빈이 생각하기에는 그렇다는 거였다.
어쨌든 그런 물건이니 이 물건을 들고 훗날 팔자(?)를 고칠 생각이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좀 변했다.
예상외의 일들이 반복되며 영지 상황이 생각보다 좋아졌다. 그래서 오히려 황태자 쪽에 힘을 왕창 실어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훗날 저것들을 비싼 값으로 판다고 해도 돈만 쌓아놓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제국이 망해버리면 그야말로 새 되는 건데.
지금 적당히 잘살고 있으니 황태자가 정국을 빨리 주도해 중앙이 안정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로빈은 결정을 내리고 공문을 전달한 후 수색에 여념 없던 기사를 불러들였다.
“많이 찾았나요?”
“하, 이곳은 더 없는 거 같습니다. 다른 영지에서는 적어도 열 개는 찾았다는데 이래서야…….”
로빈의 물음에 기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구슬치기에 환장했던 그 선조가 자신의 영지에서 마수 핵을 챙기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다른 영지보다 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래요? 흠흠, 그럼 이거 받으세요.”
“네?”
상대는 로빈이 내민 작은 상자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로빈의 설명을 듣고 경악하게 되는데.
“우연히 저희 영지에 이게 좀 있네요. 어디다 쓸지는 모르겠지만 황태자 전하께 잘 전해주세요.”
“오, 설마 구슬인가요?”
“네, 대충 한 250개 정도 돼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허……. 2… 250개요? 무슨…….”
로빈의 결정은 자신이 가진 마수 핵의 절반 정도를 황태자에게 넘기는 거였다.
다 넘기면 훗날 자신의 기사들에게 먹일 물약을 만들 수 없으니 적당히 남기고 저쪽으로 넘기기로 한 것.
그리고 이걸로 황태자가 더 열심히 싸워 제국을 평화롭게 만들길 바랐다. 몇 배로 늘어난 마수 핵으로 그의 전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황태자에 대한 진심 어린 충성에서 우러나온 결단이었다.
로빈의 충성(?)에 감동한 기사는 멋들어진 경례를 남기고 가벼운 발걸음을 놀려 바로 황도로 떠났다.
로빈은 떠나는 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 제발. 황태자 형님, 제발 똥물이 여기까지 올라오지만 않게 해주세요! 일하세요, 형님! 파이팅!”
그렇게 기사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슬 값이 영지에 도착했다.
무려 2만 5천 골드. 물론 이제 그레이츠 영지가 저 정도 돈에 크게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돈은 많을수록 좋았다. 게다가 요즘은 영지의 수익 대부분이 무기 제작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크게 무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여유 자금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었다.
“이걸로는 뭘 해야 하나. 아, 그래. 오히려 잘됐네. 이걸로는 그걸 준비하면 되겠다.”
로빈은 갑자기 생긴 공돈으로 앞으로 있을 난리를 대비해 작은 무언가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스미스의 작업장이었다.
“일은 잘 돼가요? 무기 제작 상황은 어떤가요?”
“순조롭습니다, 영주님. 기사들이 사용할 것들은 대충 마무리되었고요. 이제 전사들이 사용할 도끼를 만들어야 하는데 전투용 도끼는 많이 만들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작업 속도가 좀 더딥니다.”
“음, 도끼요? 하긴 전사들은 대부분 그걸 쓰죠?”
한창 새로운 무기 제작에 바쁜 스미스의 작업장, 이곳에는 스미스 말고도 망치 좀 휘두른다는 영지의 장인들이 대부분 모여있었다.
하긴 가장 바쁜 것이 기사나 전사들이 사용할 무기를 만드는 일이었으니 모든 인력이 이곳에 투입된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래서는 자신의 원하는 걸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딱 봐도 눈코 뜰 새도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노는 사람들은 없다는 거죠?”
“예? 아, 예. 아무래도 장인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전사들의 도끼를 다 만들면 치안대 쪽에서 사용할 무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상급 마수의 것으로 만들 건 아니라 좀 수월하긴 하지만……. 혹시 무슨 다른 주문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음… 별건 아닌데요. 그 강철로 된 단단한 망치나 둔기, 요런 걸 만들려고 하거든요.”
“아…….”
장인 스미스는 또 이 영주가 뭔가 엉뚱한 걸 만들 생각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영주가 만들려고 한다면 자신은 무조건 협조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특별한 물건인가요? 급한 물건이면 제가 어떻게든…….”
“아, 아니요. 아니에요. 그냥 단순히 단단하기만 한 강철 둔기면 되거든요.”
“그저 단단하게…….”
로빈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스미스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웃으며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냥 단순히 둔기를 만들면 된다는 거죠? 그러면 가능합니다. 여기 말고 마을 대장간으로 내려가면 장인들의 수습생들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대장장이들은 별다른 일 없이 놀고 있거든요. 그 녀석들은 이런 고급 작업을 할 수 없어서요.”
“아하, 그래요?”
하긴 대단한 수준의 장인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들었다. 작업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것도 마수 뼈 무기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상급 마수의 뼈가 아닌 이상 아르마늄 무기보다 성능이 제법 떨어진다는 거였고.
여기에 모인 장인의 수가 기껏해야 여덟 명 정도인 것만 봐도 그 난이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둔기는 그야말로 가장 난이도가 낮은 작업이었다. 날을 벼릴 필요도 없이 막말로 쇠몽둥이 수준에서 조금만 가공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노는 대장간이 있다니 빨리 알아봐야겠네요. 수고 좀 해주세요. 아, 그리고 제가 부탁한 건 만들어놓으셨죠?”
“하하. 예. 그럼요. 보시겠어요?”
스미스가 들고 온 건 두 자루의 짧은 검, 그리고 한 자루의 대검. 마지막으로 큰 방패였다.
바로 남쪽으로 내려가 있는 망나니 비글 자매(?)와 듀발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무기들이었다.
아직 기사는 아니지만, 훗날 기사가 되면 쓸 수 있게 그들의 취향대로 무기를 만들어놓은 것인데 훗날 이걸 보고 더 의욕에 차 좋은 기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로빈이 미리 주문 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