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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10화 (110/303)

110화

셋 모두 지금까지 계속 한 가지 사이즈만 고집했기 때문에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는데 과연 이걸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다.

마음에 안 든다면 결국 갈아야겠지만, 왠지 조금 서운할 거 같았다.

“좋네요. 그럼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계속 수고해 주세요, 스미스.”

“네, 영주님. 살펴 가십시오.”

은근히 무거운 무기 세 가지를 들고 가려니 생각보다 고생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사람을 시켜서 가져간다고 할 걸 그랬나 보다.

너무 바빠 보여서 그냥 가져온 건데, 후.

내가 저 비글들을 위해 이런 수고까지 자처해야 한다니.

그래도 거기서 고생하고 있을 듀발을 위해 좀 참기로 했다.

관저로 돌아온 로빈은 우선 지온부터 찾았다.

“둔기요? 그 많은 돈으로 다 둔기를 만들겠다고요? 뭐 하러 그런 짓을?”

“음……. 가죽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마수를 잡으려고요?”

“예?”

지온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말이 안 되긴 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끝이 올라간 거고.

하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음. 뭐, 굳이 필요한 일이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만약 쓸모가 없어지면 그냥 녹여서 다른 데 사용하면 큰 문제는 없으니까요. 지금 저희가 예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로빈이 뭐라고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지온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필요한 건 철괴와 손잡이에 덧댈 가죽뿐이라 크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었고, 훗날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녹여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 거 같았다.

어쩌면 추가 예산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영주 자신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인 검은 구슬을 팔아 번 돈이니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예산이 그리 빡빡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영지는 유례없는 호황이었으니 말이다.

영주가 의미 없는 사치품을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철괴를 사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 좋아요. 그럼 주노에게 연락해서 당장 철괴부터 사오라고 해야겠네요. 이게 한 번에 다 나를 수 있는 양이 아니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만들 생각이신지…….”

배로 한 번에 나를 양이 아니라는 로빈의 말에 지온은 아연실색하며 할 말을 잃었다.

“수천 개? 후후, 훗날 불알을 ‘탁’ 치면서 감탄하실 준비나 하세요.”

“끙, 아무리 그래도 그걸 치면서 감탄할 거 같진 않군요. 뭐, 하여간 그 예산 안에서만 해결해 주신다면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로빈이 회심의 농담을 던졌지만, 지온의 반응은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섹드립을 칠 걸 그랬나? 여기선 그게 더 잘 먹히는데 깜빡했다.

“아, 그리고 영지 창고에 비축해 놓은 식량도 좀 점검해 보세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지도요. 모자라면 좀 더 비축해야 할 거예요. 혼 래빗 육포 판매는 당분간 반려하시고 지금부터 생산되는 건 계속 비축하세요. 아, 물론 보관 기간이 얼마 안 남은 건 계속 판매해도 괜찮아요.”

로빈은 마지막으로 식량 비축 상황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아마 지금부터 생산되는 육포만 꾸준히 비축해도 창고를 가득 채우고 남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딱 적합한 시기라고나 할까?

어쨌든 마수 핵을 판 돈이라 그런지 별문제 없이 예산이 집행되었다.

* * *

요청한 대로 주노가 철괴를 대량으로 들여오면서 한가하던 영지 대장간들은 다시 둔기나 망치 등을 만드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최초로 만들어진 것들을 먼저 북쪽 방벽과 남쪽 요새 마을로 옮겼다. 우선 목표는 두 곳에 각각 500개 정도를 비치하는 거였다.

그리고 얼마 후, 두 곳에 목표량을 채운 후에도 생산을 멈추지는 않았다. 덕분에 영주 성 창고, 그리고 우버 마을 큰 창고에 쓸데없는 쇳덩어리 둔기가 넘쳐 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요긴하게 쓸 날이 다가올 것이다.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후 정말 엉뚱한 재앙이 찾아온다.

그러니까 대략 내년 여름이 지나고 얼마 안 있어서인가?

바로 첫 번째 재앙이 발생하는데 난데없이 제국 곳곳에 대량의 언데드가 출현한 것이다.

이름하여 언데드 대란.

이 난리로 몇몇 영지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제국 곳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본다. 덕분에 식량 생산에도 어느 정도 차질이 생기고.

황태자 기준으로 110화 차에서는 정말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북부 쪽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몰려 내려온 마수 때문에 2연타를 맞았다나?

그건 그냥 몇 줄의 설명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년을 기점으로 북부 쪽은 완벽하게 그 기능을 상실한다고 기술해 놓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2회 차의 황태자.

황태자는 이 일을 경고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하긴 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매장되어 있는 시신들을 정리하는 일.

언데드란 것이 무에서 탄생하는 건 아니라 어쨌든 무슨 시체라도 있어야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매장된 시신들을 다 화장하게 명령했는데 그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체를 화장하지 않고 산소를 꾸미는 것은 귀족인 경우가 많았고 자신들의 조상이 묻힌 묘소를 파헤쳐 화장하라는 명령을 바로 이행할 귀족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난리가 일어날 때 당연히 각 무덤에서 조상들이 벌떡 일어났고 그 때문에 소소한 피해를 보게 된다.

아마 귀족들도 조상이 벌떡 일어나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어 깜짝 놀라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새 발의 피, 소소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진짜 문제는 마수 산맥 토벌이 한창일 때 마수 산맥에서 죽은 수많은 용병, 기사들의 시체, 그리고 남부에서 들끓던 도적들을 토벌하고 아무 데나 매장해 버린 것, 그리고 동부 초원에서 유목민이 풍장한 시신들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한다면 대수림에서 죽은 모야족이나 저번에 들어가 죽은 용병들의 시신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어이없는 건 역시 마수 산맥에서 죽은 용병들, 기사들의 시체였다.

도대체 그게 언제인데 아직까지 썩지도 않고 언데드로 살아난단 말인가? 진짜 마가 낀 땅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여러 곳에 넌지시 경고하고 자신도 준비에 박차를 가하지만 실제로 난리가 일어났을 때 황태자가 모든 곳을 막지는 못했다.

2회 차 난리 때 황태자가 가장 먼저 막은 곳은 남쪽 곡창 지대였고, 그다음은 바로 스승의 영지인 레오니스 공작령이었다.

두 곳 모두 식량 생산량이 많은 곳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평야 지대부터 구한 건데, 덕분에 북쪽은 가장 뒤로 밀려 제법 피해가 있었다.

결국, 북쪽은 중앙의 도움보다 자력으로 어느 정도 버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로빈이 준비하고 있는 건 어쨌든 그 언데드 준동이었다.

이곳 세계의 언데드는 머리를 완전히 부숴 버리거나 마나가 깃든 무기로 머리를 가르면 해치울 수 있는데, 검으로 머리를 자르는 것보다 직접 머리를 부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적이 한둘도 아닌데 일일이 마나로 썰어버리기에는 우리 쪽 체력 소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둔기로는 웬만한 언데드의 머리를 근력만으로도 부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거병을 주로 사용하는 영지이긴 하지만 모야족 쪽은 대부분 단병인 도끼를 사용했고 두개골을 파괴하기에는 아무래도 둔기가 가장 적합한 무기였다.

“도끼도 상관은 없으려나? 그래도 준비해 놓는다고 손해날 건 없으니까.”

그리고 북쪽 방벽을 따로 보강한 것도 이번 난리를 위해서였다. 계속 몰아치는 언데드의 잔해가 혹시 방벽 앞에 쌓여 방어에 방해가 될까 걱정돼 방벽의 높이를 더 높인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저번 습격을 좀 더 수월하게 막긴 했지만 주된 목적은 이거였다는 뜻이다.

사실 소설에서도 북쪽이 완벽하게 괴멸되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북쪽을 가장 나중에 지원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던 황태자가 미리 철저히 방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고, 뒤로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쪽으로도 제법 지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아, 우리 형편이 좋은 건 황도도 잘 알고 있으니 그건 아니려나?

아잉, 좋다 말았구만. 하긴 그 돈으로 다른 곳을 잘 방비할 수만 있으면 나쁜 건 아니겠네. 가장 짜증 나는 건 역시 다른 곳의 똥이 이곳까지 넘어오는 거니까.

로빈도 지금은 이 난리를 크게 걱정하고 있진 않았다.

소설 속 그레이츠 영지조차 제법 피해를 보았다지만 괴멸당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이 영지는 분명 소설 속 영지보다 월등히 강한 전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방비를 갖춘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있을 후폭풍을 대비해 식량까지 비축해 놓았으니 어찌 든든하지 않을까?

다만 로빈도 이 어이없는 재앙이 왜 일어났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소설에서 딱히 설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다.

만약 끝까지 읽었으면 대충이라도 알았을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뭐, 이 소설이 원래 이런 식이지. 하루 이틀인가. 미친 큰 그림, 진짜. 대체 이딴 뜬금포가 말이나 되냐고? 무슨 현실이면 몰라도 여긴 소설이잖아?”

로빈이 처음에 이곳에 떨어진 후 계속 짜증이 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소설치고 독자인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다가 설명도 없이 상식 밖의 일들이 자꾸 일어나니 말이다.

물론 봉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게 무슨 이유가 있긴 할 텐데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여기서 적당히 잘 사는 것뿐이었고, 이제는 솔직히 좀 무념무상인 면도 있었다.

* * *

시간을 조금 되돌려 로빈이 마수 핵을 건넨 직후의 황도.

크고 작은 일들로 바쁜 와중에도 북방의 일을 따로 보고 받는 황태자 페리안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였지만 이번 기사들의 북부 방문은 단순히 마수 핵을 얻기 위함은 아니었다. 마수 핵을 탐색하는 것은 부수적인 임무였고, 가장 중요한 건 북부의 방어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서류나 전언, 북방 영주들의 보고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인데, 페리안은 훗날 있을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사실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 있다 보니 사실 마수 핵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어떻지, 그쪽은?”

“기본적으로 항시 마수 산맥의 동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제국 최정예라고 자부하며 훈련과 군기도 매우 엄정했고요. 각 관문의 상태도 대체로 준수했습니다.”

“그래, 역시 그런가. 하긴 항상 그래왔지.”

역시 예상대로 그쪽은 언제나 방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긴 그랬으니 그 난리 중에도 어떻게든 방벽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그냥 계획대로 나가도 괜찮을까?

페리안은 아직 확실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자이트 영지 쪽은 어때? 아무래도 저번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진 못했을 텐데.”

“아직 영지 곳곳에 습격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관문 쪽은 완전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자이트 자작이 받은 지원금을 모두 관문 보강에 쏟아부었다고 하더군요.”

“하, 그래?”

상당한 재산적 피해를 보았음에도 무조건 관문부터라니. 역시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5대 방벽의 영주다웠다. 다만 그래서야 영지 운영이 제대로 될까 걱정스러웠는데.

“자이트 영지에 혼 래빗 사육장이 새로 들어섰습니다. 그레이츠 영지 쪽에서 넘겨준 거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얻은 고기로 올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있다는군요.”

“로빈이……. 흠. 그래, 그레이츠 영지는 어떻지?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한데.”

“거기는……. 뭐, 할 말이 없습니다. 관문의 규모부터가 다른 곳과는 달랐으니까요. 새로 보강한 관문이 기존 관문보다 30% 이상 높고 넓었습니다. 기사들의 수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는데, 수준을 쉽게 가늠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렇군. 그랬어. 그곳은 그렇단 말이지.”

“예?”

보고 중 갑자기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페리안의 모습에 보고하던 기사의 표정에도 자연스레 의아함이 깃들었다.

“아니, 아니다. 그래 특별히 더 보고할 사항은 없나?”

“그러니까, 그레이츠 영지에 거대한 여신상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봉사의 교단 쪽 여신상이라는데, 성물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침착하게 보고를 받던 페리안도 이번에는 제법 놀랐는지 안색이 조금 변했다.

“성물? 그런 게 아직도 남아있는 교단이 있었나? 아니, 그보다 교단이라고? 그곳에 교단이? 게다가 성물이라면 본단이란 소리잖아?”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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