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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11화 (111/303)

111화

“네, 그레이츠 영지를 본단으로 정했답니다. 슬쩍 가봤는데 많은 영지민들이 여신상에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영지민들 사이에서 교단의 평판도 아주 좋았고요.”

“성물이라……. 하,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나? 나 원 참. 좋아, 보고서는 두고 가게. 그런데 구슬은 얼마나 구할 수 있었지?”

“네 곳의 영지에서 47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생각보다는 많은 양이군. 그 정도면 1개 기사단 정도는 효과를 볼 수 있겠어.”

페리안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사의 보고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레이츠 영지에서 영주가 따로 준비했다며 이걸 가져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응?”

말을 마친 후 바로 작은 상자를 내미는 기사.

페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상자 안에 가득한 구슬을 발견하고는 잠시 말문이 막혔는데.

“이…게 무슨……?”

“로빈 그레이츠 자작이 황태자 전하께 드리는 정성이랍니다. 정말 충성스러운 분 같았습니다.”

“허, 그곳에 이렇게 많은 마수 핵이 있었다고? 그렇다면 대체 왜? 아, 아니군. 그때는 이미 의미가 없었구나. 하…….”

수많은 마수 핵을 보고 기뻐해야 할 페리안의 표정은 오히려 침울해 보였다.

무슨 생각인지 한숨을 깊게 쉰 그는 잠시 마수 핵을 바라보다 다시 상자를 기사에게 건네주며 바로 연구실 쪽에 전달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기사가 군례를 올리고 나가자 다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과 시선이 달라지면 느껴지는 바가 있을 거라더니, 내가 정말 한심하긴 했구나.”

잠시 옛 생각에 잠겨있던 페리안은 다시 눈을 뜨고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부… 동부, 그리고 북부……. 지금은 다들 이 정도란 말이군.”

각 영지의 방어 상태와 시설 상황을 점검한 페리안은 자신만의 계획을 수립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북부 쪽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다 뭔가 떠오른 듯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교단이라……. 그래, 그렇게 하면 그 한심한 놈들도 대충 알아먹겠지.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니. 그리고 저렇게 많은 마수 핵을 구했으니, 일이 훨씬 수월하겠어.”

적어도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 한 가지가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예상외의 수확까지 더해져 좀 더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 * *

해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영지의 대장간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지온조차 각 마을의 식량 사정을 확인하느라 바쁠 때, 로빈은 잠시 시간을 내 알버스를 방문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쪽 영역의 가장 저명한 인사가 영지에 자리를 잡았으니 슬쩍 도움 될 만한 조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알버스와 실비아가 공부하는 그녀의 연구실 앞을 기웃거리던 로빈은 둘의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살짝 연구실 문을 열었다.

“어? 영주님?”

“호, 영주님 아니신가?”

“하하, 안녕하세요? 수업은 다 마치셨죠?”

멋쩍게 웃는 로빈의 모습에 알버스도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수업이랄 게 뭐 있겠나? 그냥 서로 의학에 대하여 토론하는 거지.”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대체 저 어른이 왜 괴짜인지 잘 모르겠다. 실비아가 자신의 말을 곧잘 이해해서 마음이 푸근해진 걸까?

“제가 잠시 여쭈어볼 게 있어서 이렇게 들렀어요. 어르신, 혹시 시간 되시나요?”

“그래, 무슨 일인지 한번 말해보게나. 영주님이 그러고 있으니 대체 무슨 일인지 나도 궁금해지는군.”

“별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흑마법사시니 네크로맨시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죠? 그게 궁금해서요.”

로빈이 네크로맨시라고 말하자 알버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직까지 그건 흑마법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상처 말이다.

하지만 어린 영주가 그걸 알고 저러는 건 아니었으니 애써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글쎄, 대체 이 시대에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나도 조금은 알고 있네.”

네크로맨시는 한때 흑마법사들이 심도 있게 연구하는 학문의 한 갈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사장된 학문이었기에 알버스도 그리 많은 걸 알고 있진 않았다.

“네크로맨시라, 이게 사장된 것도 벌써 200년이 넘는군. 사실 그쪽 학파는 너무 과격했어. 시체를 연구해 영생을 이루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알버스의 설명을 들어보니 기본적으로 생명을 연구하는 흑마법사들이 시체를 해부해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네크로맨시의 시작이었다.

일종의 해부학과 비슷한 학문이라는 건데, 이 네크로맨시 학파의 연구 결과가 지금까지 남아 흑마법사들의 외과 시술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욕심이 과해진 학파는 죽은 자를 살릴 방법을 연구한다는 미명하에 죽은 시체를 언데드로 부활시키거나, 영생을 목표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어떤 영주가 죽은 자신의 부인을 살리려고 영지민을 학살하고 결국 온 영지가 언데드로 뒤덮이게 된 것이다.

“결국 학파 자체가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언데드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은 파기되었지. 그나마 해부학이나 인간의 신체에 대한 자료들이 남아있는 건 이것들이 앞으로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자료였기 때문이었네.”

“그래요? 영지 전체가 언데드라니, 정말 끔찍하네요.”

“그렇지, 정말 끔찍한 일이야.”

“그런데 그 정도로 언데드를 일으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지금은 남은 자료가 없지만, 대충 작은 영지 하나에 언데드를 일으키려면 최소한 상급 마나석이 20개는 든다는 게 학계의 정론이네.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거지.”

죽은 자신의 부인이 그리워 그 정도의 돈을 들였다니, 결과는 끔찍하고 발상은 한심하지만 그래도 그 순정만은 높이 사줄 만했다.

그런데 작은 영지 하나에 그런 마법을 사용할 때 상급 마나석이 20개가 든다는 건 조금 충격이었다.

그럼 재앙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제국 규모로 이런 재앙을 일으키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마나석이 필요할 거며,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설마 이게 진짜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라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답답하긴 했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대응 방안이었다.

“혹시 언데드를 쉽게 상대할 방법은 없을까요? 아무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더 잘 아실 거 같은데요.”

“나라고 많이 알겠나?”

알버스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생각하는 와중에도 신기할 정도로 입은 쉬지 않았다.

“그나저나 언데드라……. 부정한 마나가 과도하게 쌓이면 자연적으로도 언데드가 생성될 수 있다고 하지. 뭐, 정말 드문 일이라지만 말이야.”

“자연적으로 생성되기도 하는군요.”

“그렇지. 신기한 일이지만 말이야. 아, 그래. 언데드를 상대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거지? 가장 좋은 방법은 머리를 부수거나 마나로 완전히 다져놓는 거라더군. 그게 아니면 끊임없이 부활한다고 해.”

“역시 그런가요?”

뭔가 떠올랐는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알버스.

하지만 아무래도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워낙 희한한 게 많은 곳이다 보니 혹시 언데드 제거 물약이나 그런 게 있을까 싶어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거늘.

“하지만 언데드가 대규모로 출몰하게 되면 밤새 버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더군. 언데드는 낮에는 활동할 수 없거든. 그러니까 밤새 버티다가 해가 뜨면 다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그때 재빨리 두개골만 골라 부수면 다시 밤이 되어도 살아나지 않는다는 거야.”

“아, 그래요?”

이건 생각보다 괜찮은 정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면 최대한 버티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해도 괜찮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대낮에 해골이 걸어 다니는 이상한 세계는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소설에는 특별히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었다. 혹시 황태자 형님이 밤새 다 썰어버려서 그랬나?

어쩌면 주인공의 활약에만 초점을 맞춰 그런 세심한 부분들은 다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제법 의미 있는 정보들이 많았다.

생전에 강하면 강할수록, 세상에 남은 미련이 많을수록, 가장 최근에 사망한 시체가 가장 강하다는 이야기부터 살아있는 자에게 강한 증오심을 느껴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공격성을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성을 가진 존재는 거의 없다는 정보에 로빈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언데드라고 다 같은 언데드가 아니다.

좀비, 스켈레톤, 듀라한, 데스 나이트, 리치. 심지어 본 드래곤까지.

로빈이 아는 언데드를 대충 추려봐도 이 정도였다.

그런데 어이없게 데스 나이트 같은 놈이 나타나 난장판을 벌인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성이 없다고 하니 좀비나 스켈레톤 정도가 대부분인 모양이다.

그래, 믿자. 내가 소설에서 본 걸 믿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본 드래곤이나 데스 나이트 같은 놈이 있으면 황태자 형이 그렇게 무쌍할 수 있었겠어?

이제 원작으로 들어왔으니 내가 모르는 미친 이벤트는 거의 없을 거야.

“아. 하지만 가끔 이성은 없지만, 생전의 무예를 본능적으로 펼치는 녀석들은 있다고 하더군. 특히 생전의 마스터인 녀석이 언데드가 된다면 그렇게 된다나? 하하. 하지만 뭐, 그럴 일이 얼마나 있겠나?”

없…겠지?

그래. 없어야지. 왜 마스터가 쓸데없이 저기 들어가서 죽어 나자빠졌겠어?

소설의 설정을 봐도 마스터의 숫자는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암, 없지. 없을 거야.

그리고 혼자 합리화하며 잘 생각해 보니 본능적으로 펼치는 무예 따위, 제대로 훈련한 기사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폴의 지도하에 죽을힘을 다해 훈련하는 그레이츠 영지의 기사들이 아닌가.

“언데드가 신성력하고 상극이라는데 혹시 성수 같은 게 있으면 도움이 될까요?”

“성수라……. 요즘도 그런 게 있던가? 그건 아무래도 신전에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거 같군. 내가 뭐라고 대답해 주긴 어려운 문제라……. 하지만 얼핏 생각해 봐도 효과가 있지 않겠나?”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영지에 교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로 전혀 다른 용도로만 유용했던 교단이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단은 교단이고, 어쨌든 성물까지 보유한 교단이니 성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무래도 이건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네, 알버스 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 그런데 실비는 어디 갔죠?”

“응? 하하. 녀석은 이미 나갔어. 무슨 약속이 있다던가?”

“아, 그래요? 그럼 저도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올게요.”

“그래, 그러시게나.”

한창 대화를 나누는 데 집중하다 보니 실비아가 나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 녀석에게 약속이라. 거의 집에만 있는 녀석이 무슨 약속이 있어 그렇게 서둘러 나갔는지 모르겠다.

뭐, 상관없나?

어쨌든 자신도 신전 쪽으로 가 줄리에타 대사제를 만나봐야 할 거 같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시 실비아를 만날 거라고는 로빈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 *

사랑과 봉사의 여신을 섬기는 교단, 즉 봉사의 교단은 최근 각 마을에 신전을 세우고 여러 가지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특히 마을의 새색시나 부인들, 그리고 처녀들에게 이런저런 상담과 조언을 해주는 걸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교육과 더불어 기도를 통해 여신의 축복까지 내려줬다.

교육을 받는 경우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되고 축복을 받으면 피부가 좋아지는 건 기본이요, 몸의 맵시를 살려준다는데 어쩌면 이 교단은 세상을 잘못 만난 건지도 모르겠다.

교육은 그렇다 치지만 축복은 그야말로 새로운 개념의 성형 수술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 교단이 전생에 자신이 살던 세계에 뿌리내렸으면 그야말로 떼돈을 벌지 않았을까?

게다가 기존의 봉사는 봉사대로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으니, 주민들이 이 교단을 사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좀 어이없긴 한데 권태기에 들어간 커플들이 신전에서 같이 실전 교육을 받고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까지 있단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순간 벙찌기도 했지만 3P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신의 부모들이 떠올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참 오묘한 기분이었지만.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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