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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12화 (112/303)

112화

어쨌든 그런 놀라운 서비스 덕분인지 교단에 대한 영지민들의 호감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로빈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밤의 문제들이 주민들에게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나 보다.

영지 살림도 많이 피었으니 자연스럽게 기부금도 제법 늘어났을 것이다. 신전 사정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일 거고.

로빈은 영주 성에 위치한 본단에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역시 이젠 영주 성의 명물이 되어버린 대형 여신상 근처에는 기도를 드리는 주민들이 제법 많았다.

“여신님! 이번에는 제발 아들을 점지해 주십시오!”

“옆집 메리가 제 고백을 받아들이게 도와주세요, 여신님!”

“이번에 개발한 신제품이 많이 팔리게 해주십시오!”

“아무쪼록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여신에게 기도하고 있는 주민들.

물론 저게 사랑과 봉사의 여신님이 해줄 수 있는 일인가 싶은 소망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주민들이 심적으로 여신님께 의지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장단점이 분명한 일이라 딱히 뭐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영지민들이 저런 걸로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 영주님이시군요!”

교단이 영지에서 인기 만점이라면 정작 그 교단에서는 오히려 로빈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도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고민하던 자신들을 모조리 데리고 와준데다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꾸준히 지원해 주고 있고, 심지어 근래에는 조건 없이 각 마을에 신전까지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로빈은 모르고 있지만 사제들은 그를 여신의 은혜를 듬뿍 받은 영주, 혹은 여신의 사랑을 세상에 베푸는 영주라고 불렀다.

특히 로빈의 준수한 외모 때문에 더 그런 면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여신이 로빈을 귀히 여기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로빈 또래의 예비 사제들은 훗날 로빈이 원하기만 하면 그 누구에게보다 더 뜨겁고 격렬한 봉사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물론 로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호감이 잔뜩 쌓여있어서 그런지 로빈을 맞이하는 사제의 표정이 아주 밝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영주님? 오신 김에 신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 구경해 보시겠어요?”

“아뇨, 오늘은 줄리에타 대사제님을 뵈러 왔어요. 안에 계시죠?”

“네, 그럼요. 다른 손님이 계시긴 하지만 영주님이 아시는 분들이라서 괜찮을 거예요.”

“응? 누군데요?”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

영주이긴 하지만 따로 친분을 나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대체 누구인지 급궁금해졌다.

“호호, 어머님이신 마리아나 자매님과 세릴 자매님, 그리고 실비아 자매님이세요.”

두 어머님과 실비아라.

대체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지만 저택의 세 여성이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긴 했다. 특히 실비 녀석은 약속이 있다고 사라졌다던데 그 약속이 이것인 모양이다.

“그렇군요. 그럼 우선 안내를 부탁드릴게요.”

“호호. 알겠습니다, 영주님.”

로빈은 묘하게 살랑거리며 걷는 사제를 따라 줄리에타의 개인 기도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특히 저 둔부의 미묘한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도착한 줄리에타의 개인 기도실.

사제는 바로 줄리에타에게 로빈의 등장을 알리려 했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로빈이 손을 흔들며 잠시 제지시켰다.

[호호호. 그래서 그냥 물러났나요?]

[네, 아후. 그게 안 통하더라고요. 거기서 딱밤이 그냥.]

[로빈이 참 부끄럼쟁이라니까.]

[줄리 님, 이런 상황인데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글쎄요. 대충 들어보니 영주님은 소녀보다 성숙한 여성을 좋아하는 타입이신 거 같아요. 그러니 우선 실비아 자매님이 완전히 자라는 게 중요하겠네요. 이제 기껏해야 1~2년 남짓밖에 안 남았잖아요? 다 큰 후에 한 번에 덥석.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한 번에 덥석이라…….]

[네, 중요한 건 역시 조임과 테크닉이겠네요. 꾸준히 교단에 나와 배운다면 한 방에 영주님을 겟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거 분명 그거 맞지? 예전에 저 요망한 것이 섹드립 날린 거.

대체 어디서 그런 요망한 걸 배웠나 했더니.

게다가 조임과 테크닉이라니 이제 열세 살짜리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아무리 성장이 빠른 세계라지만…….

그런데 저 절망스러운 콰트로(스페인어로 4를 의미)는 대체 언제 결성된 거지?

분명 어머니 마리아나와 세릴은 그저 재미있어서 실비를 부추기는 걸 텐데 거기에 줄리에타 대사제까지 가세하다니.

그야말로 혼.파.망의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은근히 사람을 가리는 실비가 저렇게 대사제에게 친근하게 구는 건 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로빈이 혼란에 휩싸여 있는 동안 얼추 대화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후, 어쨌든 줄리에타 대사제님이 그 줄리였다니 정말 놀랐어요. 감격스럽기도 했고요. 그 줄리의 조언을 제가 직접 받을 수 있다니…….]

[호호, 젊은 날의 치기죠. 그때 교단의 사정이 너무 안 좋기도 했고요.]

아, 줄리? 그러고 보니…….

실비아가 공부하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해 애독하는 『줄리의 황홀한 조언』 시리즈.

예전에 같이 영지를 돌아볼 때도 그 책을 보다가 자신에게 몰수당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실비아는 그 시리즈를 꾸준히 애독했고, 자신이 아는 것만 해도 열 권이 넘었다. 대체 시리즈를 몇 권이나 낸 건지.

그런데 그 줄리가 줄리에타 대사제인 모양이다.

애독자와 작가가 저렇게 만났으니 저런 몹쓸 케미를 보이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하. 줄리안, 줄리엣, 줄리아, 줄리아나 이렇게 수많은 줄리가 있는데 하필 줄리에타라니.

저 대사제님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대체 왜 그딴 불온서적(?)을 출간했단 말인가?

말하는 걸 보니 교단의 사정이 안 좋아서 금전적인 이유로 출간한 모양이지만 어떤 이유라도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니지, 교단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게 당연한 건가?

하, 이 교단은 대체 왜 이렇게 혼종이냐?

[치기라니요. 그게 얼마나 저명한 대작인데요. 정말 존경하고 있답니다.]

맙소사, 저 책의 애독자가 실비 말고 또 있었어? 게다가 그게 우리 엄마라고?

정말 점입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책들은 기본적으로 성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내 남자에게 암캐를 선물하는 법」, 「가볍게 즐기는 3P 테크닉」, 「애널 섹스의 정석」, 「죽은 기둥을 강제로 다시 세우는 법」 등 아주 불순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제목들을 확인하고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던지. 특히 저 죽은 기둥을 강제로 다시 세우는 건 남자 입장에서 좀 끔찍한 기분이었다.

얼마나 괴로울까?

후, 아버지. 저 말고 다른 아들, 똘똘이도 무사하신 거 맞죠? 혹시 과도한 업무로…….

이래서 친구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인데 실비도 왠지 글러 먹은 거 같았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갈 무렵 로빈이 고개를 저으며 기도실에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모두 놀라 로빈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리고 로빈을 발견하자마자 실비아가 특히 화색을 띠고 반겨주는데.

“헤~ 영주님, 실비가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게다가 뭔가 조금 오해까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심적으로 그로기 상태인 로빈은 실비아를 진지하게 상대해 줄 마음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끙, 널 찾아온 게 아니라 줄리에타 대사제님을 만나러 온 거야.”

“힝, 매정해.”

매정하긴, 요 녀석아. 그런 불온서적을 애독하고 작가에게 직접 조언까지 구하는 네가 더 매정하다.

“어머, 그랬니?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 로빈, 이따가 보자.”

로빈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마리아나가 둘을 데리고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실비아도 애타게 로빈을 바라보다가 마리아나를 따라 저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평소 같으면 좀 더 어울려주겠지만 지금이야 뭐, 빨리 용건을 해결하고 돌아가서 좀 쉬어야겠다.

“영주님, 오랜만이군요.”

“네, 대사제님. 그렇게 됐네요. 신전은 별일 없죠?”

“그럼요. 다 영주님의 보살핌 덕분이죠. 모든 사제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이러고 있으면 참 정상적인 사람인데.

저렇게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조금 전 실비아에게 당황스러운 조언을 건네고 그런 불온서적(?)을 집필한 사람이라고?

뭔가 갭이 참……. 역시 믿을 건 성향 창뿐인가? 저분이 저래 봬도 음란 성향이 있었지?

“그나저나, 어쩐 일이신지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줄리에타 덕분에 로빈도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뚜렷한 목적을 가진 방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몇 가지 자문을 드리고 싶어서요.”

“오, 그래요? 대체 무슨 일로…….”

자신들이 특별히 영지에 공헌할 기회라고 여긴 것인지 줄리에타가 빛나는 눈으로 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적극적이라 은근히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확실히 교단도 영지가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요…….”

로빈의 설명을 경청하는 줄리에타, 하지만 로빈이 성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조금 난감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도대체 저게 왜 저렇게까지 얼굴을 붉힐 일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서… 성수. 물론 저희 교단도 성수라고 지칭하는 그것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게 좀…….”

“오, 어떤 건데요?”

“그러니까…….”

봉사의 교단이 말하는 성수란 그러니까 여사제들이 교육이나 기도 중에 수음하다 정절에 도달했을 때…….

솔직히 여기까지 듣고 나니 그 뒤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로빈이 알게 된 것은 단 한 가지, 절대 저 성수를 사용할 수 없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저게 왜 성수인지는 둘째 치고라도 저런 게 언데드에게 특별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거 같진 않아서였다. 오히려 기사들에게 타격을 주겠지.

크게 낙담한 듯한 로빈의 모습에 줄리에타는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교단도 회심의 무기가 하나 있긴 했다.

“하지만 저희도 신성력으로 기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답니다.”

“오, 진짜요?”

자신들에게도 일종의 버프(?)가 있다는 줄리에타. 로빈도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저희 사제의 몸에 사정하면 성기를 통해 신성력을 주입할 수 있는데, 지속 시간도 상당하고 그 효과도 탁월하답니다. 아, 물론 여기사님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체력 향상, 공격력 증가, 지구력 상승.

거기다가 정신적인 고양감까지.

그야말로 정말 대단한 버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참……. 아무리 자신이 악덕 영주라도 전장에 사제들을 데려다놓고 저런 식으로 버프를 받는 건 인간적으로 무리였다.

게다가 버프의 지속 시간이 제법 길다고 하는데 그것도 기껏해야 반나절 정도였다. 그 말은 매일매일…….

안 돼, 여긴 글러 먹었어. 이젠 정말 저 겟츄 여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교단을 만든 건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이번 일에는 교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이곳은 그저 민생 안정과 영지민들의 정신적 평안에 기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거 같았다. 난리가 일어나도 이렇게 신전이 떡 버티고 있으면 사람들의 동요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특히 언데드와 관련된 난리라면 신전의 존재가 생각보다 도움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며 안정시켜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고.

신전이 주민들에게 환심을 많이 샀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그래, 내가 너무 날로 먹으려고 했어. 이 교단에 그런 직접적인 도움을 바라면 안 되지.”

아무래도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한 건 자신의 잘못인 거 같았다. 이곳은 전투에 관여하는 그런 신전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교단의 교리답게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 * *

시간이 흘러 여름이 되었다.

그레이츠 영지는 로빈의 지시에 맞춰 방어 준비를 거의 마무리 지었다. 물자를 각 마을에 따로 비치하고 병사와 기사들을 배치, 합숙까지 하며 훈련에 열을 올린 것이다.

심지어 마수들의 방어선이 아닌 다른 마을에서도 둔기 사용법이나 각종 위급 상황의 대처 요령을 교육하고 있어 마치 영지 전체가 전시 체제에 돌입한 듯한 착각까지 주고 있었다.

영지의 주요 인사들은 1년 중 가장 마수의 침입이 적은 여름을 앞두고 저런 훈련을 지시하는 로빈이 의아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지도력(?)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군소리 없이 명을 따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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