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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16화 (116/303)

116화

“에테 마을 근처 황무지에서 정체불명의 언데드 출현, 총 4기, 치안대가 처리했습니다.”

“우버 마을 해안가를 배회하는 언데드 발견. 종류는 해골입니다. 총 2기, 고깃배를 손질하던 어부 4인이 자체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영주 성 남쪽에서 언데드 출현. 총 7기. 당장 요격한다.”

시작은 각 마을 주변에 등장한 단순한 스켈레톤이었다.

이미 상황을 교육받고 둔기를 필수적으로 지참하라는 명령까지 내린 후라 저런 것들 몇 기 정도로는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저들의 진짜 무기는 바로 규모였기 때문이다.

“남쪽 요새 마을, 대수림 방면에서 다수의 언데드 출현, 수를 헤아릴 수 없음. 요새에서 방어하겠음.”

“북쪽 방벽, 마수 산맥 방향에서 대규모 언데드 출몰. 방벽을 끼고 방어 중!”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언데드 출현 소식이 전해지자 로빈도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영주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영지 기사단은 북쪽 방벽으로 출동한다. 우리의 뒤에 여신님이 버티고 있다! 출진!”

이번만은 누구도 로빈을 말리지 않았다. 위기 시에는 전선으로 나서는 것이 바로 이곳 영주의 가장 신성한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카인이 마수 범람 때 북쪽 방벽으로 출진했던 것처럼 말이다.

“로빈, 꼭 무사해야 한다.”

“영주님, 기다릴게요! 꼭 돌아오세요!”

애써 담담하게 자신을 배웅하는 마리아나는 그렇다 치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울먹이는 실비아의 대사는 참.

그 모습이 뭔가 익숙하다고 느낀 로빈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딱밤을 놓고는 자신의 말에 몸을 실었다.

자신을 기다리는 예쁜 애인(?)과 전장으로 떠나는 엑스트라 1. 딱 봐도 뭔가 불길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럴 때는 참 도움을 안 준다니까.

“쓸데없는 플러그 꼽지 말고 얌전히 있어. 난 안전하니까.”

실비아가 이해 못 할 한마디를 남긴 로빈은 기사단과 함께 바로 북쪽 방벽으로 출발했다.

* * *

로빈과 40인의 기사들이 가도를 타고 북쪽 관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잘 정비해 놓은 가도 덕분에 말을 몰고 가는 데에는 아무런 거슬림도 없었다.

영주의 소양이라 꾸준히 승마를 연습해 왔지만, 아직도 로빈에게 말은 그리 친숙한 동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고삐를 잡고 이 녀석을 제어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나았다. 덕분에 온갖 상념으로 산만한 정신을 어느 정도 가다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데드 발견! 대략 8개체. 바로 처리한다!”

선두에서 로빈과 함께 달리던 폴이 멀리서 다가오는 언데드를 발견하고는 바로 공격 신호를 보냈다.

로빈도 잠시 말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되십니까?”

무거워 보이는 로빈의 표정이 염려되는지 폴이 걱정스레 물어온다.

“걱정이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이게 걱정일까요? 분명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영…….”

“이번에도 분명 잘 막아낼 겁니다. 영지의 기사들은 강하니까요.”

자신감 넘치는 폴의 목소리에 로빈도 조금은 기분이 풀렸다.

그래, 믿어야지. 이 사람들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로빈도 폴과 기사단이 얼마나 열심히 단련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들을 보고 새삼 실감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더욱 아까웠다.

“믿죠. 하지만……. 이번에도 마수 범람 때처럼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번 일이 단순히 마수 몇 마리를 막는 정도는 아닐 테니 분명…….”

“후…….”

“영주님, 저희는 기사입니다. 기사는 무릇 영지를 지키고 영주민을 보호하며, 주군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의 충심을 믿어주십시오.”

하지만 폴의 진심 어린 호소는 오히려 로빈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다.

하, 이 사람아. 내가 그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지.

세상 어딘가에서 수천 명이 나자빠져도 그건 그냥 남의 일이지만, 자신의 영지에서 충성스러운 기사 하나가 죽거나 다칠 때면 그야말로 친한 옆집 형을 잃은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먹먹하고 가슴 아프다는 의미였다.

분명 이번에도 많은 기사가 다치거나 죽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게 그들의 임무다.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세상이다.

아무리 합리화시켜 봐도 이런 건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갖추고 안전한 환경에서 싸우게 하고 싶어 발악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래요. 믿어요, 폴 경. 이번에도 영지를 위해 싸워 주세요.”

“네, 기꺼이.”

그러나 자신은 영주였고, 이 영지의 책임자였다.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감춘 로빈은 담담하게 그리고 더욱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흔들린다면 기사들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대충 정리했군요. 이제 다시 출발하죠.”

“그래요. 가요. 지금도 관문에서는 치열하게 저들을 막고 있을 테니까요.”

로빈의 명령하에 기사들이 다시 출발했다.

이제 정말 관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추를 떨어트려!”

“기…익!”

“모두 머리를 노려! 바로 놈들을 떨어트려라!”

관문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관문 벽에는 이미 수를 헤아리기 힘든 해골들이 달라붙어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고 병사들과 기사들은 거대한 둔기를 들고 올라오는 놈들의 머리를 쳐 떨어트렸다.

제대로 맞은 놈들은 그대로 두개골이 박살 나 온몸이 바스러졌고, 어설프게 맞고 떨어진 놈들은 다시 벽을 기어올랐다.

우선 뼈로 된 놈들이 움직이는 것만 해도 혐오스러운데 관문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어긋난 뼈마디를 맞추고 다시 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은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신의 존재 따위를 믿지 않는 로빈조차 자기도 모르게 신을 찾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른 병사들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그들은 그리 빠르지 않고 반응도 느렸다. 그리고 이지도 없어 무작정 벽을 기어오를 뿐이었다.

이렇듯 적은 분명 약한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위압감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 건장한 병사들은 물론 노련한 영지의 기사들도 종종 움츠린 모습을 보이곤 했다.

저건 아마 인간의 본능적인 혐오감과 공포심일 것이다.

“하, 끼릭거리는 소리도 소름 돋네. 거지 같은 새끼들.”

특히 두개골이 멀쩡한 놈들이 주변의 뼈마디를 주워 맞추고 다시 일어날 때 뼈가 몸에 잘 맞지 않는지 뼈마디 사이에서 끼릭, 하는 마찰음이 들려오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돋아났다.

마치 유리창을 긁으면 들려오는 그 날카로운 소리를 연달아 듣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무리 없이 잘 막아내고 있었다. 우선 높이의 이점 때문에 머리를 들이미는 놈들을 박살 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놈들이 너무 많아 모든 벽면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는데 병사들은 둔기를 휘둘러야 하기에 어느 정도 간격을 둬야 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집중력이 조금만 떨어져도.

“크악!”

저렇게 놈들의 손에 끌려 관문 아래로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바로 다른 병사가 채워야 하는데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누군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는 건 정말 웬만한 간담으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로테이션을 돌아야 하는데 타이밍이 엇나가면 벽 위로 기어 올라온 해골이 옆의 병사를 공격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저 위급한 상황에서 주변까지 완벽히 통제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일을 잠시 휴식하는 기사들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기사들의 체력도 빠르게 소진되어 갔다.

또 철구나 바위들도 문제가 조금 있었다. 무거운 물체를 떨어트리는 건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그걸 떨어트리면 뒤의 놈들이 그걸 밟고 성벽을 더 수월하게 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갖은 실전으로 무장한 영지의 치안대와 기사들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사수하며 성벽을 지켜냈다. 만약 이 성벽조차 없다면 대체 저놈들을 어떻게 막았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날이 밝아온다! 조금만 더 버텨라!”

그렇게 몇 시간을 버텼을까? 하늘 한쪽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분명 해가 떠오르는 것이다.

로빈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간절히 날이 밝아오길 기다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붉은 해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든 병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괴성을 질러댔다.

“살았다! 이 새끼들아! 내가 살았다고!”

“거지 같은 새끼들아, 당장 꺼져버려!”

물론 로빈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사들의 괴성이 서서히 잠잠해질 무렵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고 놈들이 일제히 부서져 내렸다. 태양이 떠있을 동안에는 놈들이 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놈들이 다 사라지자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정말 길고 끔찍한 밤이었다.

가장 먼저 지친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한 로빈은 빠르게 후속 조치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예비대를 동원해 관문 아래 쌓인 뼈와 잔해들을 걷어내고 그 뼈들 사이에서 두개골만 골라 부순 후, 뼈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처리했다.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뼈들이 성벽 아래 남아있으면 그게 다시 놈들의 몸으로 돌아가든지, 그걸 발판으로 삼아 더 쉽게 성벽을 오르기 때문이었다.

“신속히 움직여주세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밤새 마음 졸이며 성벽을 지켜봤던 로빈이 앞장서서 장정들을 이끌었다.

병사들은 다시 밤에 있을 사투를 대비해 쉬어줘야 했고 이번 작업에 투입된 장정들은 근처 에보니 마을의 장정들이었다.

밤새 두려움에 떨던 마을 주민들도 해가 뜨자마자 자발적으로 나와 후속 조치에 힘을 보탰는데 수많은 주민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덕분에 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사망자군요.”

“하. 사망자는……. 우선 화장하도록 해요.”

속속 발견되는 전사자의 시신이 모두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할 시신들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계속 그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다시 일어나 다른 병사들을 공격하게 되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후방이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우선 병사들의 사기도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결국 로빈은 그렇게 결정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전사한 병사 몇의 명복을 빌어준 로빈은 불타는 그들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관문의 막사로 돌아갔다. 병사들이 죽은 건 정말 마음 아프지만 살아있는 영지민과 다른 병사들을 위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다른 마을의 사정은 어때요? 다른 영지는요?”

이번 재앙의 컨트롤 타워는 바로 영주 성.

그곳에서는 각 마을은 물론 황성과 연결된 통신구가 비치되어 있었고, 그것을 지온이 관리하고 있었다.

다만 로빈은 남쪽 요새 마을과 연결된 통신구 하나를 추가로 들고 있었는데 영지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바로 여기와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모든 마을과 직접적으로 연락하면 좋겠지만 이건 전화기라기보다는 1:1 무전기 같은 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에테 마을과 우버 마을 쪽은 이상 없습니다. 몇 차례 소소한 공격이 있었지만, 마을의 장정들이 알아서 처리했다더군요. 지금은 마을 근처를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뼛조각을 찾아보겠다고 합니다. 미리 처리하겠다면서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영지 구석에서 객사한 시체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꼼꼼히 살펴달라고 하세요. 지금 그런 곳까지 신경 쓰기는 쉽지 않아서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남쪽 요새 쪽이…….]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쪽과 연락해 보십시오. 큰 문제는 아닌데 생각보다 수가 너무 많아서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겠습니다.]

“하……. 그래요?”

천 년 역사의 마수 산맥과 달리 대수림에 사람이 출입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 내부에는 시체들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곳에 살았던 모야족조차 장례 시에는 무조건 화장을 고집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길을 잃고 헤매다 죽은 침입자나, 몇 년 전에 상급 마수를 잡겠다고 들어간 용병 정도만 언데드로 변할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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