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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17화 (117/303)

117화

안타까운 건 마수들이 인간의 뼈를 굳이 손대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들이 즐기는 건 부드러운 살점과 내장이었고 딱딱한 뼈는 굳이 먹지 않았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수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뼈조차 못 남겼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대수림 근처에 다른 영지도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적도 분산될 거고 아무리 많이 나와도 기껏해야 천 이하로 예상한 것이다.

그렇게 남쪽이 정리되면 모야족 전사들도 바로 이쪽으로 투입하게 되어있었다. 만약 모야족 전사들과 예비 전사들까지 이곳에 모여들면 북쪽 관문을 좀 더 여유롭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꼬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줄리에타 대사제님이 사제단을 이끌고 출발하셨습니다.]

줄리에타 대사제라, 굳이 여기까지 오겠다고?

옆에서 파이팅 버프라도 줄 생각인가?

의아하긴 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라 굳이 만류하진 않았다.

“아, 그래요? 뭐,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정들도 좀 보내주시겠어요? 각 마을이 적당히 정리되면 마을에서 따로 장정들을 차출해 주셔야 할 거 같아요.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네요. 낮에 처리해야 할 일도 제법 많은데 병사들은 쉬어야 하고, 이쪽 장정들만으로는 좀 무리일 거 같아서요.”

[네, 영주님. 각 마을에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오늘 낮에 주변을 완전히 정리하고 내일 아침 일찍 그쪽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지온. 부탁해요. 아, 그리고 황도 상황은 어떤가요? 이제 재앙의 실체가 대충 알려졌을 텐데요.”

[그게…….]

전국 각지에서 언데드가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황도는 혼란에 휩싸였다.

대규모 무리가 없을 뿐이지 수십 단위의 언데드들이 마을을 습격하고, 수백의 무리가 모여 영주 성을 공격하는 일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허약한 해골들이라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때아닌 기습에 피해를 본 곳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 피해 보고가 일제히 황도로 향하고 있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계시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얼굴을 붉히던 귀족들의 꼴이 좀 우습게 됐다. 분명 맞는 말을 한 건데 이 상황은 진짜 계시대로 재앙이 일어난 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황태자의 사기 행각을 눈치챌 리는 없으니 그렇게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황도 근처는 근위대가 알아서 잘 막았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황태자 전하께서 미리 힘을 쓰신 모양입니다. 그분도 영주님처럼 신의 계시를 받으신 분이니까요.]

“아, 예. 뭐, 그래요.”

[그리고 황태자 전하는 남쪽으로, 레오니스 공작 각하는 동쪽에서 대규모 무리를 상대하고 계신답니다. 이번 일로 황태자 전하께서 일약 영웅으로 부상하셨습니다. 성벽조차 부실한 남쪽에서 이미 몇 무리의 언데드를 소탕하셨다는군요.]

“신탁까지 받으신 분이니 더 극적이었겠네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황실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테고요. 대충 알 만하네요. 동쪽은 괜찮다던가요?”

[네, 아직까지 별다른 추가 소식은 없다는데 그래서 오히려 다행입니다.]

“그렇네요. 만약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위급 신호를 날렸을 테니까요. 지온, 앞으로도 계속 황도 상황에 집중해 주세요. 황태자 전하께서 언제 남쪽을 떠나는지 알아야 해요.”

[네, 영주님. 그럼 수고하십시오.]

영주 성과의 통신을 끊은 로빈은 바로 남쪽 요새 마을 쪽으로 통신을 돌렸다.

“백랑 님, 그쪽은 어때요? 대체 무슨 문제예요?”

[하, 영주님. 아무래도 좀 이상해.]

백랑의 말에 의하면 어제 모야족 전사들이 처치한 언데드의 수가 수백이 넘는단다. 물론 북쪽 방벽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언데드를 처치했지만, 남쪽에서 첫날부터 그 정도 숫자가 몰려나온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제법 힘 좀 쓰는 놈들이 끼어있더라고. 그 탓에 예비 전사들은 여럿 다쳤어. 전사 놈도 하나가 죽었고.]

수백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데드를 상대로 요새를 끼고 싸운 모야족 전사들이 다친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백랑의 설명을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쪽에 등장한 놈들 중에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이는 놈들이 여럿 끼어있었던 것이다.

알버스가 말하길 죽은 지 얼마 안 된 녀석일수록, 생전에 강한 녀석일수록 더욱 강한 언데드로 변한다고 했었다.

대수림에 용병들이 들어간 것은 불과 몇 년 전. 그 정도 시간이면 기사급 용병들이 제법 강한 언데드가 되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강한 녀석이 교묘하게 느린 녀석들 사이에 끼어있다가 방심한 전사를 기습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본 것이다.

하지만 전사 하나가 죽으면서 모야족 전사들의 경각심을 깨웠다고 한다.

이걸 과연 숭고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되도록이면 아무도 죽지 않고 넘어갔으면 했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다니.

방심해 죽었다는 말에 로빈은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하, 백랑 님.”

[후~ 미안. 이놈들이 너무 느리기도 하고 성벽을 끼고 싸우는 게 우리로선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

게다가 이 인간들이 언데드를 상대로 용감하게 돌진해 싸우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물론 상대의 수가 수백 정도라면 충분히 싸울 만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놈들이 계속 튀어나와 포위라도 당하면 어쩔 생각이란 말인가.

이럴 바에는 그냥 전력을 상당수 이쪽으로 돌려놓는 게 나을 뻔했다. 만약을 대비해 여유 있게 병력을 배치했더니 오히려 말썽이다.

“진짜 또 그러시면 정말 화낼 겁니다. 그쪽은 그나마 여유 있는 상황이니까 단 한 명도 죽어선 안 돼요.”

[그래, 최대한 노력해 볼게. 하지만 이곳도 점점 수가 불어날 거 같아. 대수림 쪽으로 들어가서 살펴봤는데 우리 쪽 숲이 온통 뼈로 뒤덮여 있었어. 모르긴 해도 몇천은 그냥 넘을 거 같던데? 우선 급한 대로 대가리를 찾아 쪼개고 있는데 숲이라서 그게 또 쉽지 않아.]

“하? 몇천이요? 아니, 거기에 왜 그렇게 많아요?”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만약 이 수가 그대로 몰려나오면서 날쌘 놈들까지 섞여있으면 좀 성가실 거 같아.]

아무래도 저쪽이 여유 있을 거라는 예상은 접어둬야 할 거 같았다. 대수림에 들어간 기사급 용병들의 수가 아무리 적어도 수백은 될 테고, 그렇다는 건 재수 없으면 수백이 넘는 날쌘 놈들이 요새를 공격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대체 왜 저렇게 많은 걸까? 진짜 영지에 마가 꼈나?

만약 백랑의 말대로 수천의 언데드가 이쪽으로 몰려나왔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수림에 언데드가 수만이나 있을 거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 어쨌든 무조건 안전하게 막아내세요. 특이한 점을 발견하면 바로 보고하시고요.”

[응, 영주님. 영주님도 조심해. 우리가 가능하면 빠르게 그쪽으로 지원 갈 테니까.]

백랑과의 교신을 끊고 로빈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참 쉽게 가는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밤까지 남쪽 요새 방어를 대부분 마무리 짓고 일부의 병력만 남긴 채 이쪽으로 추가 병력을 보내와야 했다.

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당분간은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았다.

이쪽은 연식이 오래된 놈들뿐이라 앞으로도 거의 느린 녀석들일 가능성이 컸고, 그래서 변수가 많은 남쪽 요새의 병력을 이쪽으로 돌리는 건 아무래도 시기상조였다. 물론 숫자는 거기보다 몇 배는 많았지만 말이다.

“대체 뭐지?”

어쨌든 대수림의 언데드가 다른 영지보다 우리 영지를 선호(?)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놈들에게 무슨 이성이 있어서 제국민보다 모야족에게 특별한 원한이 있는 건 아닐 테고,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 도통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른 영지에는 없는데 우리 영지에만 있는 거? 특별히 그런 게 있던가?

“영주님, 줄리에타 대사제님께서 오셨습니다.”

“아, 예. 들어오라고… 어?”

대사제, 사제, 신전… 게다가 성물.

와, 혹시 진짜 이거냐?

그리고 그때.

영지를 공격하는 대규모 언데드 군단으로부터 사랑과 봉사의 여신의 성물을 보호하세요.

(당신의 아름다운 희생정신에 여신님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보상: ???. ???

페널티: ???

기한: 제국 북부의 모든 언데드 소멸, 성물의 파괴

허, 이놈 봐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이놈이 이렇게 약을 파네?

연계라는 단어가 수상쩍어 살펴봤더니 이 퀘스트가 예전 신전 건설 퀘스트랑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신전을 크게 지으라고 해서 크게 지었더니 성물이 설치되고 그 성물을 따라 언데드가 몰려온다는 개 같은 흐름이었다.

희생정신? 이게 개뿔, 무슨 희생정신이야? 사기당한 거지.

게다가 저놈, 또 은근히 웃긴 놈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명령조로 퀘스트 날려놓고 이번에는 어이없게도 존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어투는 반말에서 존대로 바뀌었지만 속았으니 속은 만큼 대우해 주겠다는 심보로밖에 안 보여 그게 더 짜증 났다.

로빈은 순간 그 성물을 아예 없애버려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없으면 모든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언데드들도 각 영지로 적당히 퍼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려 A+급.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적어도 북부 전반에 영향을 주는 퀘스트인데 저게 실패했을 때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올지 두려워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건 정말 최후의 한 수로 남겨야 할 거 같았다.

“와, 외통수네. 미친.”

그렇게 한숨짓고 있을 때 줄리에타 대사제가 로빈의 막사로 들어왔다. 무언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꿋꿋하고 단호한 표정이었다.

“대사제님, 혹시 성물과 언데드가 연관이 있나요?”

“…아무래도 언데드는 신성력과는 상극이니까요. 그들은 성물에 대하여 끝없는 증오심을 느끼게 됩니다. 당연히 아실 거라고…….”

대체 왜 성물을 지키는 성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렇게 덥석 믿었나 했더니 그게 진짜여서 그런 거였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겟츄 여신님 덕분에 강제로 희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군.

하, 세상에 믿을 년 하나 없다더니. 여신한테 엿을 먹었어?

원래 성물이란, 처음에 줄리에타 대신관이 그랬듯이 특수하게 처리된 봉인 상자에 보관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 봉인을 풀고 버젓이 영지에 자리 잡았으니 언데드가 그걸 못 느낄 리가 없지.

애초에 언데드라는 걸 알자마자 바로 눈치챘어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니, 대체 저런 여신상이 무슨…….”

“예?”

우리 성물님의 효과가 너무 우아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 대체 저기에 왜 언데드가 달라붙어? 지들이 무슨 쿵쾅이야? 우리 영지 여성들이 예뻐진다니까 그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나?

그래, 어쨌든 우리 여신님이 나의 희생에 감사하고 있으시다니, 나도 여신님의 종들을 골수까지 뽑아 먹어야겠다. 성전이니 당연히 이해해 주시겠지.

이게 다~ 여신님을 위한 나의 뜨거운 충성심이다. 충성충성!

“아니에요, 대사제님. 그런데 사제님은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이곳은 완전 전장인데 이곳까지 나오시다니.”

“여신님을 위한 성전인데 저희가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신성력으로 기사님을 보조할 수 있는 사제들을 모조리 데려왔어요. 미력한 힘이지만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흠흠. 그 신성력으로 보조한다는 게 사제님께 질 내 사정하면 여러 가지 이로운 효과를 받을 수 있는, 그거 맞나요?”

“예, 영주님. 물론 한꺼번에 여러분께 그런 효과를 드릴 순 없습니다. 사제들의 신성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그런 효과를 드릴 수 있을 겁니다.”

한 번에 여러 명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다소 껄끄러워 거부했던 그 신성 버프, 이게 신성 버프인지, 성 버프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마다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상황이 급변해 얼마나 많은 언데드가 이쪽으로 몰릴 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모기한테라도 수백 방 물리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고, 저글링도 울트라를 무찌를 수 있으며, 수가 쌓이면 챔피언도 미니언을 못 당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러니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쓸 수 있는 건 다 사용하고.

“사제님이 몇 분이나 되세요?”

“정확히 172명입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사제를 다 데려왔으니까요.”

“허, 그렇게나 많아요?”

각 마을에 파견 나가 있는 사제들의 수가 제법 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버프를 줄 수 있는 사제들이 무려 170여 명이나 된다니. 생각보다 제법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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