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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22화 (122/303)

122화

하여간 연구하는 인간들은 가끔 이런 식이라니까.

“그게 대체 뭔데 그래요?”

“이… 이건 미스릴이다. 제국이 건국하기도 전이 이미 고갈된 미스릴 말이야.”

엥? 미스릴?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내가 알기로 이 소설에는 미스릴이 나오지 않는다.

원래 미스릴이라면 판타지 소설의 단골 소재요, 마법 무기의 필수 재료였지만 이곳에서는 그 자리를 아르마늄이라는 이상한 놈이 대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미스릴이라니. 그게 원래 여기에도 있는 녀석이었나?

“하, 그래. 넌 모르겠구나. 미스릴은 말이야.”

당황스러운 나머지 눈이 커진 로빈의 모습에서 자신이 너무 성급했음을 느낀 히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스릴은 제국 이전 시기에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던 귀한 금속이었는데 이미 오래전 다 고갈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 견고함과 특유의 탄력성, 그리고 탁월한 강도 때문에 무기나 방어구로는 최고였다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자신이 알고 있던 마법 금속 미스릴이랑은 많이 달랐다. 하지만 딱히 끌리지 않는 것이.

“그래서, 미스릴에도 마법을 부여할 수 있어요? 설명을 들어보니 다루기도 엄청 까다로울 거 같은데 제련은 가능하고요?”

“아니, 그건 아니야. 미스릴의 제련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마법도 부여할 수 없지. 미스릴은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금속이라고 하니까.”

너무 완벽해서 마법을 부여할 수 없다니. 지금 시대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마법을 부여하지 못한다는 건 신체 능력 향상이나 그 밖의 마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히센은 미스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대단한 방어구가 된다며 열을 올렸다. 마법을 부여할 순 없지만 마나를 주입하면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며 무기와 방어구로서 최고의 효율을 보인다나?

설명을 들어보니 해골이 마나를 다룰 수 있었으면 통짜 미스릴로 만든 저 플레이트 메일의 이음새조차 쉽게 파괴할 수 없었을 거란다. 튼튼하긴 엄청 튼튼한 놈인가 보다.

“놈들이 해골이라서 다행이었네요. 그나저나 미스릴이 제국 이전의 물건이라면, 저 해골 놈들도 제국 이전의 놈들이란 거잖아요?”

“네, 영주님. 아무래도…….”

옆에서 듣고만 있던 지온이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지온은 미스릴이 존재했던 시기, 그리고 갑옷에 새겨진 문양, 갑옷의 제작 양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갑옷의 제작 시기를 역산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론이.

“아무래도 히라세이 왕국 시절의 양식 같습니다.”

“…그 뭐냐? 무리하게 마수 산맥으로 원정 왔다가 폭삭 망했다는 그곳이요?”

“네. 아무래도.”

“하…….”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갑옷의 양식 자체가 너무 생소했으니 말이다.

풀 플레이트라니, 대체 언제 적 풀 플레이트란 말인가.

마법 공학이 발달하면서 그런 불편한 형식의 갑옷은 이미 모두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이게 제국 이전 시대의 물건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래도 상식 이하의 마수 산맥 때문에 천 년도 더 묵은 조상들과도 몸의 대화를 나눠야 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나라를 망칠 정도의 대규모 원정이었다.

“그 히라세이 왕국? 거기가 무리한 원정으로 나라가 망했다니 엄청난 규모로 원정 왔겠네요? 그래, 대체 얼마나 기어들어 왔는데요?”

“그게……. 병사만 20만에, 마스터가 32명이었답니다. 사서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하, 그래. 그 정도면 나라가 망할 만도 하네.

왕이 완전 미쳤군, 거기도.

여기에 20만을 쑤셔 박았다고?

진짜 제정신인가?

잠깐, 마스터가 32명이라고?

“히센 님, 저 갑옷이요. 엄청 귀한 거라고 했죠? 그럼 마스터쯤은 돼야 입었겠네요? 아니면 최고급 지휘관이나요.”

로빈의 물음에 히센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에도 미스릴은 엄청 귀했지. 아마 그럴 거야. 게다가 저런 식의 풀 플레이트 메일은 더 그럴 거고.”

아무래도 오늘 상대했던 그 미친 해골들은 그 시절의 마스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마스터가 32명이었다는데 우리가 상대한 건 21마리.

그렇다면 11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뼈조차 못 남겼던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저 마스터들이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졌을 거 같진 않다. 만약 흩어졌어도 완전히 다른 곳은 아니었을 거고.

그랬으면 이놈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동시에 등장하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저놈들 속도로 3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놈들이 다른 곳으로 간다?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11마리 정도는 완전히 소멸한 게 분명했다.

“하, 어쩌면 20만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

대략 숫자를 맞춰 봐도 30~40% 정도는 완전히 소멸했을 거 같았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숫자가 적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물량전이다? 마스터들은 미리 다 잡았으니 소수 정예는 더 이상 없다는 뜻이렷다?

“지온, 혹시 히라세이 왕국 전후로 다른 원정은 없었나요?”

한 번 속은 로빈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다. 상대가 워낙 많다 보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 시기에 또 다른 원정이 있어서 내일 다시 미친 해골들이 들이닥친다면 생각보다 피곤해지기 때문이었다.

“네, 히라세이 왕국이 멸망하면서 그 시기에는 제국에 위치한 모든 국가가 혼란기였습니다. 서로 싸우느라 이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럼 그 미친 왕은 대체 뭐 때문에 그런 대규모 원정군을 꾸린 거예요? 무슨 꿀단지라도 묻어놨답니까?”

“그건 아마 미스릴 때문일 거야. 대륙에서 유일하게 미스릴이 남은 곳이 바로 마수 산맥이니까.”

“예?”

히센의 설명을 들어보니 대륙에 미스릴이 고갈되었지만, 마수 산맥 깊숙한 곳에는 미스릴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무리한 원정을 시도한 거라고 한다. 그 미스릴을 이용해 다른 국가와의 정복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겠다는 거였다.

그래도 그렇지, 20만이라니.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 때문에 우리들만 피곤해질 거 같았다.

“대충 알았어요. 그럼 이제 돌아가 보세요. 히센 님은 이걸 가져가서 더 연구해 보셔도 좋아요. 요즘은 정말 구하기 힘든 거라니 뭐라도 남는 게 있겠죠. 웬만하면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도 한번 생각해 보시고요.”

용건을 모두 마친 로빈은 바로 둘을 물리려고 했는데 지온이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이제 영지 다른 곳은 대부분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남아 이곳의 정비를 도울 생각이니… 영주님은 우선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그래요?”

이거… 딱 보니 백랑이구만.

영주 성에 있던 지온이 이곳 사정을 알고 있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이야기해 줬을 텐데 그럴 만한 사람은 백랑뿐이었다.

폴 경은 어제의 사투로 부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고, 남은 사람들은 내가 잠을 못 잤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곳에서 영주 성까지 연락하다니.

이거, 설마 이 양반. 통신구라도 들고 온 건가? 아니, 그게 얼마짜리인데 이 위험한 곳에…….

됐다. 말을 말아야지.

어쨌든,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머리가 묵직하기도 하고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다가 뭔가 멍한 게 꼭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어제의 활약을 보자마자 듀발과 린의 타이틀 창 정도는 바로 확인했을 텐데 그것도 못 한 걸 보면 확실히 심각하긴 한 거 같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지온이 이곳에 남아준다면 자신도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

“좋아요. 그러죠. 그럼 뒤처리는 지온에게 맡길게요.”

“네, 영주님. 그럼.”

“나도 들어가 보마. 미스릴을 연구할 수 있다니. 후후,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거야.”

미스릴의 연구라, 뭔가 나오긴 하려나?

하지만 어차피 더 이상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인데 연구해 봤자 남는 게 있을까? 저걸 구하러 마수 산맥으로 들어갈 건 아니잖아?

에휴, 모르겠다.

당장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우선 좀 쉬어야겠다.

* * *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막사에서 혼자 휴식을 취한 로빈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 뻐근하네.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했나?”

싸우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말을 하면 좀 웃기긴 하지만 온몸이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아무래도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몸이 과하게 긴장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냥 별문제 없이 넘어가긴 했지만, 그 해골 놈이 자신에게 달려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죽을 뻔했지. 에휴.”

몸은 뻐근했지만, 다행히 머리는 좀 맑아졌다.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갈 거 같지만 아직 위기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더 피곤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오후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시간도 별로 없어서 바로 사람들부터 불러들였다. 앞으로의 방어 전략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함이었는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라고 이 상황에서 특별한 대책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냥 막으면 되는 거 아냐?”

앞으로 생각하기 싫은 만큼 많은 언데드가 몰려올 수 있다는 말에도 백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물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영주님,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어차피 밤새도록 싸우다가 아침이 오면 그냥 나자빠지는 거잖아? 이 정도 전력인데 언데드들이 성벽을 넘을 수나 있겠어?”

“흠.”

저 말의 요지는 결국 많은 기사 전력을 이용해 몇 교대로 싸우면 머릿수로 달려드는 느린 놈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차피 아침이 되면 남은 놈들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

결국 놈들이 아무리 많아도 성벽을 오르는 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벽이 뚫릴 리가 없다는 거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갑자기 빠른 놈이라도 나타나면 병사들로는 놈들을 막을 수 없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데.

“역시 문제는 그 빠른 놈인가? 그놈들은…….”

“기사급 전력이 대략 250여 명입니다. 50명 정도만 따로 예비대로 두는 건 어떨는지요. 둘째 날을 생각해 봐도 200여 명 정도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폴도 회의장을 찾아왔다.

어제 다친 기사들의 수가 대략 30여 명. 그중 죽거나 심각한 상처를 입은 기사들을 제외하고 오늘 전장에 설 수 있는 자들은 모두 100여 명 남짓이었다. 그나마 사제들이 열일해 주면서 많이들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백랑이 데려온 모야족 전사들이 150여 명이니 솔직히 이곳을 지키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되겠네. 어르신 말대로 어제 그놈들이랑 싸워도 꿀리지 않는 별동대를 꾸려놓으면 되는 거지. 만약 놈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가장 치열한 새벽 마무리 부분에 손을 보태면 되고.”

“하, 그렇게라도 해야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이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았다. 그냥 밀어붙인다는 상대의 전략이 바뀌지 않는데 괜히 잘 돌아가는 진영을 손볼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별동대를 빼놓으면 다른 돌발 상황에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으리라.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냥 여유 있게 로테이션을 돌려서 놈들을 상대하고 싶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확실히 그게 나았다.

“별동대의 선발은 백랑이 맡아주세요. 지휘도 백랑에게 맡길게요.”

“응. 영주님. 걱정 마.”

아무래도 어제의 싸움을 보니 빠른 놈들을 상대하는 건 모야족이 더 적당한 거 같았다. 별동대를 백랑에게 맡기면 폴은 병사들을 지휘해 관문을 기어오르는 놈들만 상대하면 되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고.

그럼 진영은 우선 그렇게 나눠야겠다.

“지온, 그런데 뼈를 분해하는 그 약품은 얼마나 있는 거예요?”

“지금 계속 만들고 있다는데 물량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뼈들을 쌓아놓고 한두 번 정도 쓰면 다 떨어질 거 같군요.”

역시 그걸 전략 물자로 쓰기는 좀 무리인가?

하긴 그런 걸 무한정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게다가 놈들의 수를 생각하면 그걸 뿌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놈들의 뼈 언덕이 쌓였을 때나 한 번 뿌려 언덕을 무너트리는 용도로나 써야 할 거 같았다. 철구도 괜찮긴 한데 밑에 뭐라도 쌓이는 철구보다야 완전히 없애버리는 저 약품이 더 유용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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