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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26화 (126/303)

126화

상대의 무장이 충실하기 때문인지 언덕이 쌓여 올라오는 속도도 월등히 빨랐다. 뼈와 재질 모를 방어구가 뒤엉키며 얼기설기 섞여 덩어리를 이뤘기 때문이다.

“던져! 저 쓰레기를 당장 부숴 버려!!”

그리고 로빈은 언덕이 성벽의 중간쯤까지 올라왔을 때 뼈 용해제를 마구 뿌려댄 후 철구까지 내던졌다.

다른 건 몰라도 징그럽게 쌓였던 뼈들이 녹아내리고 철갑옷들까지 철구에 찌그러져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모습은 정말 통쾌했다. 심지어 거기에 휩쓸린 수많은 해골까지 덩달아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병사들도 그 통쾌한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한 번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처음에는 사기충천했던 병사들도 시간이 지나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해가 떠오르기 직전. 바로 그 시간.

바로 모두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았던 그 시간이 된 것이다.

더 이상 병사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로빈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모두 집중해!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

“악!!”

“놈들을 깨부숴!!”

“살아남은 놈들은 무조건 모야족 미녀들과 맞선! 그리고 당장 내일 미녀 사제들이랑 한 판 뜰 수 있다! 그러니까 살아남아라, 이 새끼들아!”

“맞선!!”

“살아남아라!!”

“시X! 한 판 뜨자!!”

되는대로 막 지껄이는 로빈과 그의 독려가 마음에 드는지 복창하는 병사들.

병사들의 사기는 다시 한 번 끓어올라 모두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사랑스러운 태양이 그 탐스럽고 고운 자태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 됐다! 버텼어!”

로빈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왜냐하면, 오늘만 버티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수월하게 막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로빈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병사들과 기사들을 쉬게 한 로빈은 서둘러 영지민들을 동원했다.

오늘을 위해 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무려 1만 명 남짓. 그들은 놀랍게도 서늘해진 가을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로빈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출동!!”

도대체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대기하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인파가 집에서 쓰는 망치며 부지깽이를 손에 쥐고 마수 산맥으로 달려 들어갔다. 해골을 하나라도 더 찾아 깨부수기 위한 신속한 몸놀림이었다.

저 1만이란 숫자도 나름 고르고 몰라 선발된 인원이었다. 아마 그냥 모이라고 했으면 아주 어린 아이들이나 거동이 쉽지 않은 노인들을 제외한 모든 영지민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영지민의 참여 의사는 열정적이었다.

“부숴라!”

“여기도 있다!”

“좋아!”

갑작스러운 동원령이 불만스러울 만도 한데 영지민들은 열심히 뛰어다녔다. 수가 너무 많아서 저 끔찍한 마수 산맥 깊숙이까지 들어가야 하는 장정들마저 거리낌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영주님이 마수는 없을 거래. 안심하고 들어가자고.”

“그래, 우리가 언제 저기까지 들어가 보겠어?”

그리고 비교적 어리거나 나이가 지긋해 관문 근처로 배치받은 주민들은.

“허허. 성전이여!”

“나도 영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니 은혜를 갚자!”

“영주님을 위해 뛰어라! 한 개라도 더 찾아!”

뼛조각들 사이에서 두개골을 찾아 열심히 부수고 있었다.

너무나도 적극적인 주민들의 모습에 로빈도 적잖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영지지.”

원래 사람 인심이란 게 참 그렇다.

뭔가 하나 해주면 두 개를 바라기 마련이고, 베풀다 보면 해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사람 인심.

자신이 비교적 선정을 베풀긴 했지만 영지민이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자신의 명령대로 밤새 대기하면서도 군말조차 없고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해진 것이다.

물론 저들도 지금 이곳이 격전지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요, 그들 자신이 피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그걸 온전히 실감하고 있을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그것도 지금 이곳에서 직접 보고 나서야 그런 거고 어제 명령을 받았을 때는 그것조차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자신의 명령 하나로 거의 모든 영지민들이 적극적으로 모여든 것이다.

“하,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준단 말이지.”

영지민들의 모습에서 묘한 감동을 받은 로빈은 자신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두개골 열 개당 1골드!! 작업 마치고 돌아갈 때 돈 받아가라!!”

무려 상금을 걸어버린 것이다.

“오! 열 개만 찾자!”

“내일은 외식이다!!”

그리고 로빈의 외침이 널리 알려지며 영지민들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다.

“영주님, 그런데 개수를 어떻게 확인하실 생각입니까?”

“음, 그건 그렇네요. 충동적으로 외친 거라…….”

개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분명 속이는 자들도 나오긴 할 것이다.

하지만 뭐, 그 정도야.

“그런데 지온, 자금은 충분하죠? 요즘 특별히 쓴 것도 없잖아요?”

“…네. 주민들에게 나눠 줄 돈 정도는 있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돈만 쓰게 된 상황이라 지온의 표정이 좀 안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로빈은 못 본 척하며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그 정도로 영지가 궁핍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돈을 받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 영지민들은 두개골을 부수는 동시에 온갖 잡동사니까지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슨 증거라도 있어야 돈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인 거 같았다.

그냥 부르는 대로 다 줄 생각인데 사람들 참, 속고만 살았나.

하지만 덕분에 뒤처리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쌓이는 금속제 무기와 방어구를 보니.

“이거, 이것만 녹여서 팔아도 사람들한테 나눠 주는 돈은 충분하겠는데요. 생각보다 더 많아요.”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이것들은 우선 따로 모아 보관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중 백미는 역시 지휘관용 붉은 갑주였다.

어제 처리한 놈들과 오늘 널브러져 있는 걸 주워 온 것까지 무려 열 벌이나 되었다.

“참 나, 이게 미스릴이라죠? 미스릴 갑주가 이렇게 많은데 미스릴을 더 구하려고 마수 산맥에 들어왔다고요? 사람 욕심 하곤.”

앞으로 이걸 몇 벌이나 더 구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들의 욕심에 헛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다만 두개골을 찾아 부수고 금속제 무기나 방어구를 모으느라 상대적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뼛조각을 처리하는 데에는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아무래도 적들을 완벽하게 다 막은 후에야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적이 너무 많아 지금 당장은 하나라도 더 줄이는 게 중요했으니 말이다.

이제 슬슬 날이 저물고 영지민들은 확인증을 받아들고 희희낙락해서 마을로 돌아갔다. 밤새 쉬고 내일 다시 투입해 두개골을 부수겠다나? 예상보다 더 뜨거운 열의였다.

영지에 대한 충성심과 보상에 대한 욕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 같았다.

오늘 낮에 부순 두개골의 개수는 대략 5만여 개.

투입한 인원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어제 우리가 직접 막은 것보다는 훨씬 많은 수였다.

두개골 찾는 것은 경쟁자가 많아 놈들의 장비만 나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마수 산맥 안쪽에 있는 놈들은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루 이틀만 더 막으면 이 지겨운 전투도 마무리될 거 같았다.

* * *

“이 정도인가요? 하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많죠.”

다시 날이 어두워지기 전.

오늘의 수확(?)을 보고받은 로빈은 그런대로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루 만에 대부분의 적을 처리하면 최고였지만 야생 나무들로 빽빽한 마수 산맥이다 보니 하루 만에 모든 해골을 처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제보다는 더 나을 거라고 자신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기 때문이다.

비록 적이 급격히 많아지거나, 이상한 변수가 끼어들면서 엉망이 되곤 했지만, 그전까지는 항상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병사들과 기사들이지 않은가.

첫 수확(?)으로 적을 대부분 마무리하는 것이 베스트.

그게 아니라도 큰 변수가 없다는 전제하에 기사들과 병사들의 기량으로 찍어 누르고 바로 다음 수확으로 피니시.

이게 로빈의 계획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정말 마지막 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제들에게 버프까지 받고 왔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료를 위한 신성력 정도는 남겨달라고 부탁했지만 말이다.

오늘 적을 무사히 막아내기만 하면 내일은 정말 거의 모든 적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밤이 되고 언제나처럼 전투가 시작되었다.

로빈은 전투의 양상을 살펴보며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오늘, 로빈이 호기롭게 주민들까지 동원해 분명 상당수의 적을 미리 제거한 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활동을 못 한 건 마수 산맥의 특수성 때문인데 마수가 없다는 걸 확인한 이상 거리낄 이유가 없었고, 그 판단의 결과는 일단 성공적인 것이다.

하지만 적을 모두 섬멸한 건 아니라 오늘도 첫날과 비슷한 수의 적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전투의 양상 자체는 어제와 마찬가지라는 건데.

로빈이 이들에게 기대한 건 좀 더 유기적인 연대와 호흡, 그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안정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방패병이 적의 검을 튕겨내자 바로 기사가 달려들어 놈의 목줄을 끊어버린다.

어제의 전투로 무슨 깨달음이 있었는지 기사들이 들고 있는 건 망치가 아니라 검이었다.

그들은 마치 린이 그 빠른 놈을 처리한 것처럼 목젖 부분을 정확하게 타격해 머리를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러면 또 다른 병사가 망치를 들고 있다가 머리를 정확히 부숴 버리는데.

저렇게 로테이션이 하나 늘어나면 적을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비병 없이 모든 병사가 출전했고 많은 수의 방패병이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적을 처리하기보다 방패로 밀어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위험해 보이는 놈만 골라 기사들이 목을 따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바지에 들어와 총력을 기울일 수 있고, 내일이 되면 주민들이 출동해 저들을 모조리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로테이션을 저렇게 조절했단 말이지?”

자신이 영지민을 이끄는 동안 기사들이 새롭게 짠 로테이션에 흡족함을 느낀 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그들을 살펴보았다.

적어도 몇 시간은 더 버텨야 하는 방패병이 과연 끝까지 대열을 유지할 수 있을지, 혹은 다른 변수가 끼어들 여지는 없는지 그런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방패병들의 움직임은 현란하면서도 안정적이었다. 적의 검을 막으면서도 발밑으로 파고드는 적의 손길까지 방패로 내리찍어 자연스럽게 원천 봉쇄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어제보다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로빈이 흡족하면서도 의아함을 느낀 것은 바로 저런 모습 때문이었다.

그래, 실력이 늘었다, 이거지? 좋아! 이대로 가는 거다!

미친 듯이 기어오르는 해골. 그리고 관문 위에서 그것을 저지하는 병사들.

놈들을 처리하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 계속 쌓여가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놈들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정말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싸움이 된 것이다.

로빈은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거친 실랑이가 계속 이어지고 조금만 더 버티면 드디어 놈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무렵.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었다.

“쿵! 쿵!”

“응? 뭐야? 어?”

큰 진동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것.

그것은 그야말로 뼈가 뭉쳐 만들어진 덩어리였다.

“허… 지가 무슨 본 골렘이야? 저런 게 대체 왜 있어?”

체고는 대충 5미터가 넘고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괴물. 그나마 저걸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 본 골렘 정도일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놈이 등장하는 바람에 당황한 로빈에게 특공대 인원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들도 저걸 발견하고 놀라서 뛰어온 것이다.

“하, 저건 뭐…….”

“놈의 덩치나 무게를 생각한다면 저게 관문까지 접근하면 절대 버티지 못할 겁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진동. 놈은 속까지 꽉 찬 놈이 틀림없었다. 불행히도 저놈의 몸체에는 뼈뿐만 아니라 놈들의 무기나 방어구까지 모조리 합쳐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놈이 관문까지 다가와 관문에 직격하면 최악의 경우 관문 자체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잡아요? 딱 봐도 답이 없는데요.”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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