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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28화 (128/303)

128화

그렇게 폴을 건져내자 기사들은 신속히 부상당한 특공대를 챙겨들고 관문으로 복귀하는데.

한바탕 마나를 쏟아부어서인지 돌아오는 행보는 그야말로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하. X발, 미치겠네.”

부지기수로 많은 기사가 다치고 몇몇은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만 처절한 구출 작전.

어쨌든 그들은 결국 임무를 완수했다. 특공대를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모조리 구출해 온 것이다.

로빈은 지치고 다친 와중에도 당당히 특공대를 보호해 관문으로 돌아온 기사들을 향해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영주로서 객관적으로 판단한 건가?

친분에 휘둘려 더 많은 기사를 희생한 건 아닌가?

이런 생각들과 특공대가 모두 구출되어 기쁜 마음이 충돌해 머릿속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로빈은 혼란스러운 그 와중에도 최대한 마음을 다잡으며 기사들의 공을 치하했다.

“영지의 수호자들이여! 우리가 해냈다! 놈을 쓰러트렸다!”

“와!!”

하지만 한껏 치솟아 오른 사기와 고양감은 로빈의 고민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전의에 달아오른 기사들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해골들을 상대하기 시작했을 때 로빈은 바로 부상자들이 모여있는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다친 특공대와 기사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도저히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때요? 폴 경은 괜찮은가요?”

때마침 온몸에 눌어붙어버린 갑옷이 제거되고 상처를 살펴보는 중이라 바로 폴을 만나볼 수 있었다.

“허허, 놈은… 잡은 겁니까?”

놈에게 씹힌 채 관절 여기저기가 뒤틀린 폴은 아직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정신력.

하지만 그 와중에 놈을 처치했는지부터 묻고 있다니. 이분도 정말…….

아마 놈의 뱃속에서 꺼내진 후 린에게 업혀 정신없이 후퇴하느라 놈이 어떻게 됐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 후에는 바로 이곳으로 옮겨졌으니 기사들의 함성조차 듣지 못했을 테고.

어쨌든 로빈은 그가 아직 목숨 줄을 부여잡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래,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네, 폴 경. 그놈은 박살 났어요. 우리가 이긴 거예요.”

“그렇습니까? 쿨럭. 그렇군요. 하… 큭큭.”

영지를 지켰다는 사실이 흡족한지 잠시 키득댄 폴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저도 늙었군요. 허허. 그래, 늙었어. 하지만 마지막까지 전장에서 영지를 위해……. 이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양반이 무슨.

같은 나이 대의 할아버지는 지금 새로운 삶을 잘 살고 있구만, 이게 무슨 소리야?

끝까지 영지를 지켜내고 떠나가니 유감은 없다고 유언이라도 남기는 건 아니겠지? 어림없는 소리. 떠날 때는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단순한 세상의 이치를 모르시나?

“대사제님, 어때요? 살릴 수 있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죠?”

“하지만 영주님. 지금 이분은…….”

“그래서요? 불가능해요?”

사제만 믿고 있었는데 줄리에타가 난색을 보이자 로빈의 말투가 절로 뾰족해졌다.

하지만 줄리에타의 설명은 로빈의 조바심만 더 자극했는데.

“이분의 상처는 보통 상처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악에 오염된 상처. 보통의 방법으로는 치료할 수가…….”

“급하잖아요. 그래서 돼요, 안 돼요?”

“그건… 가능합니다.”

“그럼 뭐가 문제예요? 빨리 치료해 주세요. 지금 쇼크로 기절했잖아요?”

로빈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를 읽어낸 줄리에타는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는데.

“저분을 살리려면……. 여신님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일생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저의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대(大)기적이죠. 만약 제가 저분을 살리게 되면 전 더 이상 대사제로 남아있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줄리에타 대사제님께 피해가 가는 거겠죠?”

“그럴 경우도 있고, 아닐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그 결과까지는 확신할 수 없군요.”

아리송한 말이었다.

다만 대사제가 대사제로 남을 수 없다는 건 분명 그녀에게 큰 부담일 것이다.

대기적이라. 그만큼 위험한 일인가? 대체 뭘 희생하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폴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무조건 이기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교단을 걸고 줄리에타 대사제의 희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교단이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무조건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폴 경을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 여신님의 선택을 받은 영주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오늘의 약속을 꼭 기억하시길. 모두 준비하렴. 바로 신전으로 돌아갈 거야.”

줄리에타가 사제 몇, 그리고 폴을 대동한 채 신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로빈은 대경하며 그녀를 말렸다. 이제 쇼크로 기절까지 한 환자를 어딜 데려가겠다는 건지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안심하십시오, 영주님. 대기적을 결심한 이상, 폴 경은 무조건 살 수 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럼.”

하지만 줄리에타는 굳건했다.

무조건 폴을 살릴 수 있다는 줄리에타 말에 로빈도 더는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무사히 깨어날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것.

그게 로빈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 * *

폴을 제외하고 다른 특공대 인원들은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린은 탈진에 실신.

백랑은 깊은 타박상과 출혈, 그리고 기절.

그 밖의 사람들도 대부분 골절이나 타박상, 그리고 출혈 정도로 치료만 받으면 충분히 완쾌할 수 있는 가벼운 부상이었다.

오히려 뒤에 투입한 기사들의 부상이 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살아온 이상 그 기사들도 사제들의 힘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놈의 뱃속에 들어갔던 폴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이다.

로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시 전장을 정리하고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전장의 상황은 거의 변한 게 없었다.

그리고 로빈은 이제 오늘로써 이 지겨운 전투가 마무리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관문부터 마수 산맥 초입까지 쭉 늘어서 밀어붙이는 적들 외에 마수 산맥 뒤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놈들이 이제 다 기어 나온 것이다.

“대략 10만을 좀 넘는 수준인가? 어제 낮에 처리한 게 5만쯤이라니 그쯤 될 거 같은데. 어? 그 늑대 놈은 또 언제 갔어? 하, 다행이다. 끔찍한 놈, 앞으로 영원히 보지 말자.”

놈들의 수를 헤아려보던 로빈은 자신들을 지켜보던 그 끔찍한 괴물이 어느샌가 사라져버렸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폴의 일로 정신이 팔려버려 놈의 존재를 잠시 잊었던 것이다.

어쨌든 놈은 얌전히 사라졌고, 대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절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적들이 일제히 바스러지자 공격을 끝까지 막아낸 영지의 병사들은 환호성과 괴성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바로 뒤로 널브러져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는데.

길고 긴 밤 동안 끝까지 자리를 사수하며 적을 막아냈지만, 체력이 다해 결국 탈진하고 만 것이다.

해가 뜨자마자 출동한 마을의 장정들은 그 병사들을 조심조심 숙소로 날랐다.

그리고 바로 망치를 쥐어 들고 남은 해골을 처리하기 위해 출동, 그 뒤로는 당연히 수많은 영지민이 뒤따르고 있었다.

“하, 이젠 아주 자동이네. 내가 따로 명령할 필요도 없겠어.”

이젠 알아서 해골을 처리하는 주민들의 모습에 로빈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이젠 어쩌냐?”

어쨌든 이번 재앙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거 같았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라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기사들을 남기긴 하겠지만 더 이상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하, 또 뭐예요?”

생각할 새도 없이 또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로빈은 자신에게 달려온 지온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침착한 지온이 저럴 정도면 뭔가 큰일이 일어나긴 한 모양이었다.

“…황태자 전하입니다. 지금 이곳에 황태자 전하가…….”

“엥? 황태자 전하요? 그분이 어떻게 여기까지…….”

때아닌 황태자의 등장에 로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대 이 시기에 이곳에 등장할 수 없는 인물이 나타나버린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황태자가 북부에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재앙 초반에 남부의 큰 무리를 물리치고 바로 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렸으면 진작에 도착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황태자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남부에서 잔 무리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하긴 한가?

“지온, 혹시 황태자 전하가 병력 없이 혼자 오신 건가요?”

“네? 그게, 호위 병력으론 기사 두 분만 동행하고 오셨더군요. 그러고 보니 확실히 빈약하긴 하군요.”

“두 명이요?”

설마 했는데 이 양반, 이거……. 이유는 모르겠지만 워프 게이트까지 타고 온 거네.

왜 그렇게 서둘러서 온 거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 시대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초하이 테크놀로지 워프 게이트.

고대의 유산이기도 한 이 워프 게이트는 설치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 제국 내에 겨우 몇 군데에만 설치되어 있었다.

한 번 사용할 때 제법 큰 마나석 한 개가 통째로 들어가는 바람에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정말 급한 경우에는 제법 요긴하게 사용되곤 하는데, 한 번 구동에 1~3명 정도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만약 황태자가 자신의 행적을 완전히 속이고 있던 게 아니라면 남부에서 이곳까지 그 짧은 시간 안에 올 수 있는 방법은 그 워프 게이트뿐이었다.

남부에 있는 게이트를 타고 황도로 가서 중서부 쪽의 게이트로 다시 이동한 후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리면 대략 3일이면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북부 쪽에도 게이트가 있으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북부에는 유감스럽게도 게이트가 없었다. 황실에서 허가하는 게이트 건설 요건에 적합한 영지가 없어서였는데 만약 있었어도 로빈이라면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돈지랄이지. 나중에는 좀 달라지겠지만 마나석이 한 개에 얼만데 그걸…….”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했다. 황태자에게 이번 북부행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다른 곳보다 마무리가 좀 늦어져서 확인 차 온 건가? 그것도 말이 안 되는데. 그런 거면 홀몸으로 오진 않았겠지. 게다가 며칠 늦지도 않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심지어 영주 성도 아니고 여기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로빈은 귀빈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지온의 보챔에 정신을 번쩍 들어 인사부터 드리기로 했다. 만나면 뭐라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 * *

“전하, 로빈 그레이츠 자작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그레이츠 자작. 수고가 많군.”

성년식 날 황태자를 처음 본 이후 대략 1년 반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황태자에게는 그 시간이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정말 많은 걸 준비하며 알차게 보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황태자의 분위기도 조금은 바뀌었다. 그날 느꼈던 다소 염세적이고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가 조금 흐려지고 거기에 무게감과 자신감이 추가되었는데, 아마 지금까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려서 그런 거 같았다.

“저기 쌓여있는 적의 잔해만 봐도 이곳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할 만하군.”

“아, 예.”

“그래서 전투는 이제 마무리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우선 남은 적은 오늘로 처리 가능해 보이고 여기서 더 추가되지만 않는다면…….”

“그런가?”

그런데 누가 이 양반을 여기로 안내한 거야? 이거 생각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하~ 황태자면 황태자답게 얌전히 회의실이나 집무실에서 기다리셔야지. 굳이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황태자는 로빈이 오기 전부터 이미 관문 위로 올라가 적의 잔해를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도 관문 아래에는 영지민들이 두개골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고, 어제 정리하지 못한 뼈 무더기까지 사방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뼈로 된 괴물이 무너지며 산처럼 쌓인 저 뼈 언덕까지 버젓이 남아있었으니.

황태자가 머리가 있다면 적어도 수만 이상의 언데드가 이곳을 공격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루 이틀 정도만 늦게 왔어도 대충 정리를 완료할 수 있었겠지만 황태자의 방문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 저 모든 잔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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