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물론 자신이 예상했던 게 대충 맞아떨어져서 고개를 끄덕인 것에 불과하지만 단순히 짐작하는 것과 직접 확인하는 건 확실한 차이가 있는 법이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 정도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온 보상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저 스페셜 등급의 타이틀 여신의 보은은 정말 허망한 타이틀이었다. 자신에게도 대단한 무언가가 생겼나 기뻐하며 확인했다가 울컥해 신전으로 달려갈 뻔했으니 말이다.
이게 어떤 타이틀이냐 하면, 무려 여신을 섬기는 여성을 상대(?)할 때 대상의 쾌락을 몇 배나…….
솔직히 이 정도면 여신님의 보은인지, 아니면 나보고 은혜를 갚으라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게 대체 왜 스페셜이야?
생각하니까 또 짜증 나네.
어쨌든 그렇게 엉뚱한 보상을 받고 울분을 달래던 게 불과 어제인데, 오늘은 이 신전에서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준 셈이니 달가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번 재앙에서 영지를 위해 교단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교단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무조건 앞장서 두 팔을 걷어붙일 생각이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었다.
“혹시 이쪽 세계에서는 축제 때 이런 행사가 일반적인 게 아닐까? 축제를 가본 적이 있어야 알지. 그래,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영지민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에 말도 안 되는 공연이나 행사를 벌이겠다는 건 아닐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째는 완전 쓰레긴데.”
어느 정도 울분을 식힌 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니 자신이 봉사의 교단을 너무 삐딱하게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기로 했는데.
이상한 사람한테 물어봤자 혼란스럽기만 할 테니 가장 정상인에 가까운 지온과 루이를 청한 것이다. 물론 그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거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하하, 영주님. 잘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사람이 하나 붙어왔다.
모야족 전사들의 상황을 보고하고, 이번 축제 때 모야족이 주관할 행사 때문에 찾아왔다는 백랑.
달갑진 않지만 흘려들으면 된다는 생각에 백랑에게도 마지못해 자료를 내밀었다.
“이걸 좀 보세요. 이번 축제 때 하겠다고 신전 측에서 올린 계획서예요.”
“흠…….”
“확실히 봉사의 교단 사제들이 가무에 능하긴 하죠.”
“정말 춤도 끝장나게 잘 춘다니까.”
“그래요?”
이거 반응이 왜 이리 호의적이야?
하지만 춤을 정말 잘 춘다는 이야기는 조금 의외였다. 이 사제들, 정말 쓸데없이 너무 다재다능한 거 아냐?
“하지만 저 끝부분을 보세요. 춤을 추는 건 좋은데 알몸에 시스루 원피스는 너무하잖아요. 이게 말이나 돼요?”
로빈의 항변에 세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하는데.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알몸보다 더 꼴리겠어. 영지민들이 정말 좋아하겠는걸.”
“그건 그렇군요. 사제님들을 싫어하는 영지민은 아무도 없으니.”
“확실히 좋은 볼거리가 될 거 같습니다.”
“진심이세요?”
이게 나만 불편해? 영지민이 남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도 있는데, 이게 안 불편하다고?
“여자들? 원래 이런 건 여자들이 더 좋아하잖아. 분명 저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걸 배우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신전으로 달려올걸? 아마 그런 목적으로 이런 공연을 계획한 게 아닐까? 일종의 능력 과시와 신도 유치?”
…내가 졌다.
세 남자의 반응에 로빈은 결국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말고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이쪽에서는 이 정도가 모두가 원하고 열광하는 워너비 퍼포먼스인 모양이다.
이건 대체 언제 적응할 수 있는 거냐?
그래, 섹시한 스트립 댄스 정도는 넘어가자. 섹스 댄스가 아닌 게 어디냐.
하지만 첫 번째는 그냥 넘어가도 두 번째는 이해할 수 없을걸.
“좋아요. 그럼 이걸 보세요. 여성 최강자 선발 대회. 이거 괜찮겠어요?”
“응? 이건 또 뭐야?”
“진동 가죽 막대로 서로를 공격해서 상대의 X지에 꼽으면 공격권 획득. 수비자가 3분간 가죽 막대의 진동을 견디며 막대기를 떨어트리지 않으면 공수 교대?”
“가죽 막대의 진동을 견디면서 가지 않고 오래 버티면 이기는 대결 형식의 이벤트군요.”
“조임과 지구력 그리고 참을성까지 확인할 수 있는 대회라니. 확실히 이 정도면 최강자라고 할 만하죠.”
“그런데 특제 가죽 막대의 진동을 3분이나 버틸 수 있어? 첫 공격에 무조건 끝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좀 불공평합니다. 전투 능력이 우수한 여성에게 너무 유리하군요. 누구도 첫 공격을 버티기 힘드니 첫 공격에서 무조건 승부가 난다고 봐도…….”
“확실히 그건 그렇군요.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 첫 번째 공격을 당하면 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여성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수한 전투 능력도 최강자의 조건이긴 하지. 이거 이 대회는 아무래도 모야족 여성이 우승하겠는걸.”
뭐야, 저 미친 티키타카는. 이게 이렇게 진지하게 토론할 만한 문제였어?
아니, 이 사람들아. 쓸데없이 분석하지 말고 어서 반대하라고. 진짜 저건 아니잖아?
“…그래서 이걸 그냥 두고 보자고요?”
“그건 아니지. 이걸 두고 볼 순 없지.”
“그렇군요. 이건 좀…….”
드디어 자신이 기대한 반응이 나오자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화색이 가득한 로빈. 싱그럽게 웃으며 이 계획안을 파기한 후 허가할 수 없다는 제 뜻을 전하려고 했는데.
“우승자에게 로빈 영주님의 첫 오럴 경험권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되지.”
“감히 누구의 자X를 노리는 건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군요. 저건 8년이나 기다린 실비의 것인데 말이죠.”
“그게 실비 양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예약자가 있다는 건 확실히 알아뒀으면 좋겠군.”
“만약 이 상품을 그대로 올리려면 성년이 아닌 여성에게도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건 그렇군. 린이 나가면 다 박살 내고 공개적으로 획득할 수 있겠어.”
“게다가 입안자는 마리아나 그레이츠. 바로 큰마님이시군요.”
그렇다. 로빈이 격분하며 극구 반대하고 있는 이유.
바로 저 경품 때문이었다.
아무리 어머니라도 자신의 소중한 첫 경험(?)을 저렇게 경품으로 내걸 순 없는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절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래. 나도 이건 반대야, 영주님. 영주님의 첫 오럴은 무조건 린이어야 한다고.”
“그럴 리가요. 당연히 실비입니다.”
“실비는 아직 성인도 아니잖아? 이제 린은 겨우 6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성인이 아니라도 오럴은 가능합니다.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건 삽입뿐이니까요.”
백랑과 지온은 또 자기들까지 소모적인 말싸움을 시작했다.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자기들까지 대체 뭐 하는 짓인지.
하지만 루이는 대체 마리아나가 왜 이런 대회를 입안했는지 근본부터 짚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큰마님은 영주님이 고자일까 봐 걱정스러운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 대회를…….”
“아니, 아직 성인도 아닌데 벌써 그런 걸 걱정해요? 게다가 고자라니. 말도 안 되죠. 아침마다 불끈불끈하는데, 내가 고자라니요!”
성장 속도가 빨라서인지 벌써 아침이 곤란할 정도로 자존심을 세우곤 한다. 그러니 자신이 고자일 가능성은 그야말로 제로.
아직 성인도 아닌데 벌써 저러는 건 마리아나가 너무 오버하고 있는 거였다. 실제로 제국법으로도 미성년의 성관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영주님이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오럴 정도도 즐기지 않으시니 그런 게 아닐까요? 법적으로 금지하는 건 삽입 행위뿐인데 건강한 영주님이 아무것도 즐기지 않으시니…….”
“아니, 가능하다고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지, 영주님. 마님의 입장도 이해는 가. 그러니 빨리 영주님이 멀쩡한 남자임을 입증하라고. 난 가능하면 그게 우린 린이면 좋겠는데.”
“영주님, 첫 경험이라면 아무래도 린보다는 실비가 낫습니다. 제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신전에서 많이 배워서 혀 놀림이 정말 대단하거든요.”
이 사람들이 정말.
왜 이야기가 또 이렇게 흘러버린 거야? 내 첫 경험은 내가 알아서 할 건데 주변의 참견이 너무 심하잖아?
게다가 딸의 혀 놀림 수준을 알고 있는 지온은 또 뭔데?
하지만 자신이 영주인 이상 자신의 배우자, 그리고 후계 생산 여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건 나중에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거 같았다.
“하, 됐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어쨌든 이 계획은 거절할 거예요. 다들, 동의하시죠?”
“네, 영주님.”
“응, 영주님.”
“아무래도 이건 넘기는 게 낫겠습니다.”
물론 생각이 같은 건 아니었지만 결국 모두 저 계획안을 파기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이거 하나 거절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 최강자 선발전은 파기, 신전의 합동 댄스 공연은 허가한 가운데 영지민 장기 자랑은 예선을 거쳐 총 20팀만 선발. 축제 당일에는 본선만 실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심사 위원은 신전 대표 한 명, 모야족 대표 한 명, 기사단과 치안대의 대표 한 명, 영지의 원로인 히센, 도리아, 알버스 셋 중 한 명과 영주 직계 중 한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주인 로빈까지 여섯 명으로 결정했다.
예선전이 너무 길어지면 서로 피곤하니 자세한 설명을 첨부한 참가 신청서에서 상당수를 추리기로 했는데 불합리해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참가자가 몰릴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지 수뇌부가 여기에만 매달려 있을 순 없었으니 말이다.
“영주님, 이건 대충 결정되었으니 모인 김에 일을 좀 하시죠? 당장 예산 집행할 것만 해도 몇 가지는 됩니다. 급한 것만요.”
딱 축제에 대한 논의만 마치고 슬쩍 빠지려던 로빈은 지온의 저지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도망치기 힘들 모양이다.
축제까지만 딱 쉬려고 했던 로빈의 원대한 꿈이 한 번에 무너진 순간이었다.
* * *
요 며칠 동안 로빈은 머리를 좀 비우려고 했었다.
비록 재앙 자체는 큰 피해 없이 무사히 넘기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성물의 활약(?)부터 고대 왕국의 전재라든지, 미친 뼈 괴물과 말도 안 되는 마수까지,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향연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나마 잘 안다고 생각했던 황태자의 행동조차 의문투성이니 어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렇듯 로빈이 축제를 열기로 한 건 영주민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주인 이상 축제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고 있을 순 없는 모양이다.
“그래요. 우선 예산부터 봐요.”
“네, 영주님.”
우선 처리할 예산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이트 영지에서 보내온 이번 분기 혼 래빗 관련 물품의 판매 이익이었다.
자이트 영지는 혼 래빗을 가져가며 분기별로 순이익의 15%를 그레이츠 영지 쪽으로 돌리기로 했다.
혼 래빗 육성의 노하우 교육과 주술 숙성 창고 건설, 그레이츠 영지의 물건을 황도로 옮기는 김에 자이트 영지의 것도 함께 옮겨주며 저 정도 비용을 받는 건데, 이쪽 세계에서 저런 비슷한 경우에 지불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그럭저럭 저렴한 편이란다.
원래 10% 정도만 받으려던 걸 자이트 영지 측의 주장대로 결정된 가격이라 로빈도 딱히 할 말은 없었는데 이번 가을에 그 첫 결실이 돌아온 것이다.
“생각보다 많네요. 고기는 그냥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건데 이 정도나 나왔어요?”
“저희가 황도에 파는 걸 생각하면 별로 많은 건 아닌데요. 저희 쪽에서 군부에 독점적으로 보급하다 보니 시중에 도는 물량이 많지 않아 쉽게 팔 수 있었답니다.”
“그렇군요. 자이트 영지도 이번엔 별 피해가 없었죠? 그럼 이 자금은 그대로 황도 쪽으로 돌려 공연단을 섭외하는 비용으로 쓰면 되겠네요.”
“무슨 거창한 공연단을 모실 생각입니까?”
“주노가 그러는데 아무래도 출장이라 돈이 많이 든다네요. 어차피 별로 기대했던 돈도 아닌데 그냥 좋은 데 쓰죠.”
“…알겠습니다.”
바로 한 건이 해결되고 그다음 안건은 5대 방벽 영주들에게 둔기를 팔아 치워 얻은 자금의 사용처였다.
어쨌든 미리 각 영지에 둔기를 뿌려놓은 건 생각보다 의미가 있었다. 크게 좋은 가격을 받은 건 아니지만 재료비 및 그 밖에 사용된 비용에 약간의 마진을 붙여 넘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이익을 볼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라 적자만 보지 않으면 족하다고 여겼는데 그것보다는 좋은 결과를 남긴 셈이었다.
“무슨 큰 이익을 본 건 아니지만 덕분에 그레이츠 영지에 대한 인식이 엄청 좋아졌다더군요. 덩달아서 사랑과 봉사의 여신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고요. 어쨌거나 좋은 일입니다.”
“그렇네요. 으득, 참 좋은 일이죠.”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