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아무리 자신이 누우면 숙면하는 스타일이라지만 대체 어떻게 이불 속까지 몰래 파고드는지도 의문이었지만 항상 잠그고 자는 문은 또 무슨 수로 열었는지 정말 미스터리했다. 무슨 괴도 본능이라도 숨어있는 건지, 원.
“요망한 것아, 어서 일어나!”
로빈은 입지 않은 것만 못한 하늘하늘한 잠옷만 입은 실비아를 발끝으로 쭉 밀어서 침대 밖으로 떨어트렸다.
봉변을 당해 침대 아래도 떨어진 실바아는 언제나처럼 뜨거운 눈으로 로빈을 노려보다가 결국 한마디만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뛰어가는데.
“힝! 영주님은 고자!”
“뭐, 저런…….”
로빈은 자신에게 쫓겨난 후 저주(?)의 말을 남기고 도망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와중에 덩실거리는 엉덩이가 또……. 그리고 저런 황당한 잠옷은 또 어디서 구한 거야?
하여간 안심할 수 없는 요망한 녀석이었다.
실비는 올여름을 기점으로 정말 폭발적으로 자라났다. 그 시작이 알버스에게 의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시점이라 자신에게 잘 맞는 성장 보조제를 개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피어날 정도였다.
어이없는 가정이지만 저 녀석이니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대충 160 정도까지 자린 실비. 아직 미묘한 곳의 볼륨은 좀 부족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테고 지금 상태만 해도 제법 대단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녀 스스로도 그걸 아니까 저렇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거겠지.
“아무래도 저건 막아야겠군. 역시 범인은 어머니겠지?”
집안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으니 아마 저 녀석 뒤에는 분명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 식사 시간에 식탁에 앉아 싱글벙글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나를 마주하게 된 로빈은 자신의 침대에 기어 들어온 실비아에 대한 성토를 퍼부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실비아와 마리아나의 두꺼운 정신 장벽에 피해를 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실제로도 웃으며 “그래? 재미있었겠구나~”, 이런 반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빈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어쨌든 더 이상 실비가 제 침대를 침범하는 건 사양이에요. 적어도 처음은 정실부인과 하고 싶거든요.”
“호~ 정실이라. 하긴 그건 그렇구나. 그게 예의이긴 하지. 게다가 그렇게 힘을 실어줘야 가정이 평안해지는 거고.”
“네, 실비나 린. 모두 정실부인 다음이에요. 어차피 둘 다 정실이 될 수 없는 건 어머니가 더 잘 아시죠?”
“엄마! 엄마라고 부르렴. 왜 자꾸 서운하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니~ 왠지 내가 더 늙어버린 거 같잖아.”
아니, 어머니.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 나름 진지한 분위기잖아요!
“하, 그래요. 엄마, 이해하셨죠?”
“그래. 그건 그렇구나. 그럼 어쩌나… 정실부인이라. 무조건 성인이 된 다음부터 시작하겠다는 거구나.”
“네.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
“좋아. 하지만 둘 다 꼭 네가 책임지는 거다?”
“좋아요. 그건 그렇게 할게요. 우선 정실부터 만들고 나서요.”
로빈이 정실부인 카드로 설득하자 마리아나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로빈이 한발 물러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실비와 린 모두를 거두겠다고 확답한 것도 어느 정도 주효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애매한 태도를 보인 로빈이 어쨌든 결정을 내린 거니까.
“하지만 걱정이구나. 네가 자꾸 위험하게 밖으로 돌려고만 하잖니. 이번에도 죽을 뻔했다지? 듀발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거나 크게 다칠 뻔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아니? 그래서 가정이라도 있으면 네가 더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야.”
아무래도 모든 사건의 발단은 자신이 기사를 구하다가 죽을 뻔한 데서 시작된 모양이다.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으신 거야? 설마 기사단 내에 첩자가? 아, 린이 있구나.
린이라면 당연히 어머니한테 반항하지 못했겠지.
“제가 더 조심할게요. 그리고 저도 그레이츠예요. 이런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밖으로 나다닐 생각도 없다고요.”
“하긴, 그건 그렇구나. 알았어. 로빈도 이제 다 컸으니 참견은 이 정도만 할게. 하지만 성년이 되면 정실부인부터 구하는 거다. 알았지?”
“네. 그럴게요. 그리고 당연히 이번 축제 때 하겠다고 계획 중이신 그 웃긴 시합도 취소시켰어요.”
“어머, 너무 그건 아깝지 않니? 호호.”
“어? 그건 안 되는데…….”
아깝긴요. 당연히 취소해야죠.
그런데 이 녀석이야말로 왜 이렇게 아까워하는 거야? 자기는 어차피 못 나가는 대회 아닌가?
가문의 가풍과 미성년임을 내세워 1년 정도를 벌긴 했다. 그러니 벌써부터 설치지 말고 우선 다 크면 보자고.
“힝~”
로빈과 마리아나의 대타협(?)에 입을 삐죽 내미는 건 실비아뿐이었다. 마리아나를 등에 업고 다 잡았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로빈이 도망가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맥이 빠진 것이다.
왜인지 대회가 취소된 것도 조금 불만인 것 같았고.
저 녀석도 참.
귀염귀염한 강아지상에 적당한 키. 거기다 이곳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찰랑거리는 은발을 자랑하는 실비는 분명 대단한 미인이었다. 거기다 이제 볼륨감까지 점점 추가되면 더 놀라운 아가씨로 변할 것이다.
지금도 엄청 귀여운데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그런 미인이었으니 누구라도 탐낼 만한 그런 여성이리라. 실제로도 레닌이 저 녀석을 엄청나게 탐냈었지.
이 녀석만 그런가?
검은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대검을 휘두르는 린은 이 녀석보다 더했다.
큰 키와 미끈하게 뻗은 두 다리.
모야족 특유의 미친 볼륨감에 운동과 훈련으로 다져진 놀라운 탄력.
저 정도로 훈련에 매진하고 엄청난 근력을 자랑하면서도 그런 아름다운 곡선을 유지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이 세계와 마나의 신비라고나 할까? 거기다 어머니 월아를 꼭 빼닮은 놀라운 미모까지.
그러니 그 녀석이야말로 피지컬 부분의 진정한 끝판왕이었다.
그리고 월아 세 자매가 가졌던 그 명기 타이틀이 만약 유전이라면?
그야말로 진정한 파괴신이 강림하게 되겠지.
어쨌든 외형적인 매력으로 따지면 누가 뭐래도 최소한 전국구급이라는 거다.
이렇게 대단한 두 녀석이지만 나에게는 뭔가 좀 미묘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할까?
너무 어렸을 때부터 계속 같이 지내다 보니 아무리 예뻐도 동생 같아서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고 하는 게 비교적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좀 예쁘다고 여동생을 상대로 성적 망상을 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실비 녀석의 요망한 짓을 보면 확실히 귀엽긴 한데 아직은 겨우 그 정도였고, 린은 껍데기는 정말 놀라운데 하는 짓이 린나니라 좀 깬다고 할까?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이대로 두다가 적당히 둘 다 돌려보낼 생각까지 했었다. 아주 친한 남사친 정도로 남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소꿉친구가 연인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워낙 드물어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데, 이건 뭐. 소꿉친구가 아니라 섹꿉친구가 되려고 설치고 있다.
그리고 조금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이곳의 법제에 따르면 둘 다 정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저 둘을 자신의 부인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자신은 세 명의 부인을 둬야 한다는 것.
사실 둘도 벅찬 건데 무려 셋이라니.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미녀라면 다다익선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렘 가즈아!’를 외치거나.
하지만 좋은 것도 처음뿐이지, 정말 그게 행복할까? 자신에게는 이곳이 소설 같은 곳이 아니라 인생이었고, 실전이었으니 말이다.
가끔 실비와 린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만 해도 난장판인데 거기다 하나가 추가되면 더 큰 야단법석이 벌어질 것이다.
정실부인이 진짜 잘하면 좀 괜찮겠지만 저 둘이 어디 보통 인물인가?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훗날에는 그 뭐냐? 남자들이 끔찍하다고 치를 떠는 그 의무 방어전도 무려 세 번이나 나눠서 치러야 한다.
게다가 이곳은 전생보다 여성의 성욕이 더 강하고 왜곡된 곳이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남자들도 더 강한 거 같긴 했지만 말이다.
“그게 쉬운 일이면 백랑 같은 호색한은 이미 마누라를 셋 이상으로 늘렸겠지. 요즘 아버지도 둘은 슬슬 벅차 보이거든. 하여간 요지경이라니까.”
하지만 자신이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 린과 실비 모두를 거두기로 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까워서였다. 점점 예뻐지고 능력 좋은 두 여자를 그냥 보내주기는 너무 아깝고 배 아팠다.
처음에는 아니었는데 솔직히 이제는 얘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내 걸 빼앗긴 기분이 들 거 같았다. 어쩌면 내가 가지긴 좀 그래도 남 주기는 아깝다는 게 이런 것이리라.
자신이 나쁜 놈인 건 알지만 솔직한 마음이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다분히 정치적인 건데 바로 두 녀석의 아버지인 백랑과 지온 때문이었다.
두 남자가 무조건 자기 딸이 먼저라고 압박 넣는 거, 생각보다 위압감이 대단했다. 벌써 이게 두 번째였으니 저게 농담일 리는 없고, 만약 이대로 자신이 그 둘을 버리는 그림이 나오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영지에서 가장 중추적인 인물 둘이었다. 누구 하나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솔직히 설마 아직까지 자신을 사윗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 사람들이 워낙 확고하니 저 둘을 데리고 있었던 죄로 무조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에휴, 어쨌든 그렇게 결심했으니 이제부턴 진짜 버릇을 잘 들여야 해. 보통 녀석들이 아니니까.”
식사를 마친 로빈은 자신의 다음 목적지인 공방으로 향하며 의지를 다졌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여기에도 문젯거리가 하나 있었지?”
공방으로 향하던 로빈은 자신이 잠시 잊었던, 아니 사실은 일부러 잊으려고 했던 문젯거리 하나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미친 미스릴. 이게 진짜라면 여긴 대체 뭐냐고. 정말 봉구가 이 많은 걸 다 생각했다고? 역사만 해도 천 년이 넘는데?”
역사도 역사지만 역시 유물은 치명적이었다. 너무 잘 짜인 세계라 혹시나 했던 의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나 간다프와 더블도어같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들을 보면 또 봉구 놈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 같기도 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래. 대충 살자, 대충 살아.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등 따시고 배부르기, 그것만 생각하자고. 내가 언제는 뭐, 세계 평화 생각하고 살았나?”
어쨌든 그냥 잘 사는 게 최고라고 애써 생각을 정리하며 작업실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히센과 스미스 외에 린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넌 왜 여기 있어?”
“아, 주인. 내 린지애가 날이 많이 상했어. 지금까지는 그런 일 없었는데 그때 그 덩어리가 생각보다 단단했나 봐.”
“그때? 하긴…….”
그날 린이 휘두른 마지막 일격.
아마 그것 때문에 무기가 제법 상한 모양이다. 하긴 그때 그 일격의 위력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린은 그때 그 일격을 다시 재현하지는 못했다. 무슨 각성 상태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고.
린이 기억하는 건 쓰러진 놈의 뱃속에서 폴을 꺼내왔다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건 좀 아까웠지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저 무기도 린지애냐? 넌 대체 무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거야?
“이 단단한 가메라 뼈가 이렇게 상하다니. 신기한 일이군요. 제법 손이 많이 가겠습니다.”
“어쨌든 꼭 원형 그대로 수리해 주세요. 주인이 처음으로 선물한 거란 말이에요.”
흠흠, 녀석. 거기에 또 그런 의미를…….
자신이 준 걸 아끼는 모습을 보니 은근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히센 님. 어때요, 미스릴은? 뭐가 좀 보이나요?”
“아무래도 쉽지 않겠어. 전설에 따르면 엘프들은 미스릴로 실까지 만들어서 옷을 지었다는데 이렇게 단단한 놈으로 어떻게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엘프요?”
여기에 엘프까지 있었어? 이런 설정은 또 교묘하게 잘 베꼈군.
하지만 저런 단단한 놈으로 실이라니. 엘프가 드워프처럼 대장장이 종족도 아닌데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사실 이 소설에도 이종족이라는 게 잠시 나오긴 한다. 엘프나 드워프는 아니고 어인이라는 묘한 녀석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 대륙, 아니면 다른 대륙에라도 엘프나 드워프, 혹은 수인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알아서 연구해 보세요. 결과물을 보채진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거 연구하신다고 기사들의 갑옷을 손보는 걸 미루시면 안 돼요. 겨울에 또 난리가 날 수 있거든요.”
“그래, 알았다.”
사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거였다.
기사들의 갑옷을 다시 손봐달라는 것. 당장 사용하기 힘든 미스릴보다 기사들이 더욱 소중했으니 말이다.
늘어난 기사들도 있고, 기존의 갑옷 중에 고장 난 것도 있어서 히센의 손이 절실했다. 린처럼 무기가 상한 사람도 있을 테고.
이젠 우리도 제법 잘사니 다른 마법 공학자도 한번 구해봐야 하려나? 히센 혼자 일하기도 벅찬 거 같은데.
이건 좀 생각해 봐야겠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