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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35화 (135/303)

135화

가족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은 로빈은 앞으로의 일정부터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일정은 칙사부터 만나보고 결정해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황도의 분위기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것부터 묻기 시작했는데.

“주노, 황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게 참, 물론 기쁜 일이긴 한데 영주님께도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오! 그레이츠 자작님이시군요. 듣던 대로 정말 헌앙하십니다. 하하.”

주노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전에 풍채 좋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황도에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황제 폐하의 칙사인 모양이다.

하지만 소문대로라니.

황도에 퍼진 그레이츠 자작의 소문이라고 해봤자 영지를 푸줏간처럼 쓰고 있다는 악평뿐이지 않나? 푸줏간과 헌앙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렇다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이 남자에게 뭐라고 할 순 없는 일이라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흠흠, 이렇게 된 거 황제 폐하의 칙서부터 전달하겠습니다.”

“아, 네.”

이 사람은 또 왜 이리 급해?

황제 폐하의 칙서라고 해봤자 별거 아니었다. 이번 국가적 재난에 훌륭한 모습을 보인 귀족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논공행상이 있을 테니 자신도 참석하라는 내용.

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이 사람이 왜 이리 서두르는 지 알 만했다. 생각보다 일정이 더 촉박했기 때문이다.

하긴 상을 받을 귀족들은 이미 다 황도에 모여있었으니 이런 일을 길게 끌 이유도 없었다.

“일정을 보니 아무래도 바로 출발해야겠군요.”

“하하. 네, 그렇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혹시나 해 미리 인사라도 남기고 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원래 하루 정도는 쉬게 하고 황도로 출발하는 게 예의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촉박하면 그것도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빨리 출발해 주는 게 서로에게 이로운 판단이리라.

배에 오르자 칙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이 양반이 초면에 왜 이러지?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레이츠 자작. 지금껏 성년도 안 지난 귀족이 논공행상에 참여한 건 처음입니다. 게다가 일등 공신이라니요.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군요.”

“예?”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로빈도 일등 공신이라는 말에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형. 진짜 숟가락도 못 얹은 거야? 이게 최선이냐고!

당황하던 로빈은 이어지는 남자의 설명에 이젠 혼미해질 지경이었는데.

“황태자 전하가 자작님의 충성심에 감복했다더군요. 진정한 참 귀족이라고 얼마나 감탄을 하시던지. 이렇게 헌앙하시고 용맹하신데다가 전도유망하시니, 이번 논공행상이 끝나면 황도의 레이디들도 밤잠을 제법 설치겠습니다. 하하.”

이 사람, 이게 지금…….

방금 언급한 세 개 중에 나한테 어울리는 건 하나도 없잖아? 난 그저 호리호리한 미청년(?)일 뿐이라고.

이거 뭔가 좀 싸한 기분이…….

“예. 말씀은 감사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탄하며 칭찬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생각보다 곤욕이었다. 특히 그 칭찬이 자신에게 전혀 달갑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게다가 이 남자랑 거의 일주일 동안 같은 배를 타야 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이 남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말이다.

배 위에 올라 배부르게 칭찬만 먹은 로빈은 자신의 객실로 돌아와 한숨만 내쉬었다.

“일등 공신이라고? 게다가 20만? 이 형이 진짜 미쳤나? 아니, 20만이라고 해도 이해가 안 되잖아? 동부 쪽에서 막은 게 20만도 넘는다며? 대체 무슨 농간을 부린 거야?”

이 일의 내막을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뭔가가 잘못된 것만은 분명했다. 즉, 무슨 음모가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과한 공을 인정받는다고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가장 싫어할 사람은 역시 황태자파겠지. 그런데 이걸 대놓고 밀어붙인 게 황태자야. 황태자와 황태자파라…….”

황태자파라고 무조건 황태자에게 충성하는 건 아니었고, 로빈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훗날 황태자파 사이에서도 배신자가 나오면서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황태자가 날 이용해서 자신의 세력을 정비할 셈인가?

아니, 그럴 거면 굳이 일등 공신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잖아? 아니지. 오히려 그래서 더욱 의심을 사지 않을 거야.

황태자가 어떤 목적으로 자신을 공신으로 만들었다면 분명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 형은 날 애매한 아첨꾼쯤으로 알 텐데. 그럼 가능한 게……. 내가 공신이라고 어깨를 으쓱하고 나대면 나한테 모여드는 놈들까지 다 같이 한 칼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황태자에게 했던 일을 생각하면. 뇌물, 허세, 과장, 아첨, 뇌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참 몹쓸 놈이군. 딱 잘라버리기 좋은 놈이잖아? 역시 황태자 형은 통이 커. 썩은 가지를 잘라내겠다고 최고의 공훈을 나한테 던져버리다니. 생각 이상이군. 역시 이런 게 큰 그림일까?”

아마 여러 사람에게 자신을 치켜세운 것도 나한테 똥파리를 붙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특히 황태자파 중에서 이리저리 간만 보는 종자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대충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좀 더 조심해야겠군. 특히 나한테 접근하는 사람들은 더 조심해야겠어. 괜히 이상한 놈이랑 덩달아 쓸려 나갈 수도 있으니……. 황태자파라고 웃으며 다가오는 놈들은 정말 요주의 인물들이고.”

물론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을 수도 있지만 당장 자신이 조심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생각해 봐야겠다.

* * *

로빈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도착한 황도.

하지만 황도의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북쪽의 그레이츠 영지에서 무려 20만의 적을 막아냈다더군.”

“무려 다섯 살 때부터 전장에 선 방어의 귀재야. 강철의 방패! 용맹한 사자. 북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지?”

“하긴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수의 적을 어떻게 막았겠어?”

“정말 걸물이지.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라던가? 이번 난리 때 북부만 거의 피해가 없었는데 그게 다 그레이츠 자작 덕분이라더군.”

“혼자서 수백의 언데드를 베어버렸다는데 무예도 대단한 모양이야.”

황도에 퍼진 소문을 접한 로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느그(?) 그레이츠 영주는 대체 누구냐? 난 누군지 전혀 모르겠는데.

“사자는 개뿔. 차라리 북부의 토끼라고 불러라. 혼 래빗으로 흥한 영지니까 오히려 그게 더 맞지 않을까?”

로빈은 자신이 이러려고 그렇게 죽을 고생을 했나 싶어 자괴감마저 들었다.

자신이 공을 던지려고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대체 누가 이런 헛소문을… 게다가 자신이 다섯 살 때 처음 전장에 선 것까지 알려진 걸 보면 정말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퍼트린 소문 같았다.

“설마 진짜 황실인가?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서 민심을 수습하겠다고? 황태자가 아니라?”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논공행상의 날이 밝았다.

사실 황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다음 날이었기 때문에 깊게 고민할 틈도 없었다.

만약 자신이 여성이었으면 드레스를 구하지 못해 논공행상 연회에 참석하지도 못했을 만큼 촉박한 일정. 그나마 복장이 간소한 남성이라서 겨우 행사장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저번 황태자의 성년 파티와는 다르게 황도의 중앙 귀족들 위주로 참여한 행사다 보니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 구석에 있다가 논공행상만 마치면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오~ 그레이츠 자작이군. 정말 축하하네. 오늘 논공행상의 주인공인데 왜 여기 이러고 계시나?”

“축하하네, 그레이츠 자작. 내 언젠가 그레이츠 영지가 큰 공을 세울 줄 알았네.”

그나마 아는 사람인 그릭스 리아넨 대공자와 리아넨 공작이 다가오는 바람에 상황이 바뀌었다.

게다가 리아넨 공작은 왜 갑자기 이리 친한 척을…….

아니, 친한 척이라기보다 느낌 자체가 그냥 호의적인데?

아아, 예전의 그 일 때문인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중립파의 거두라는 거지?

확실히 지금 로빈 주(?)에 빨대를 꽂기 가장 편한 사람들은 역시 중립파였다. 그레이츠 영지 자체가 기본적으로 중립파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오늘 떡상할 걸 생각하면 충분히 친분을 과시할 만한 것이다. 나이도 어리니 적당히 이용해 먹기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뭐, 좋을 대로 생각하라지. 난 어차피 중앙 정치와는 거리를 둘 생각이니까.

“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리아넨 공작 각하. 오늘 멋있으시군요, 그릭스 대공자님.”

하지만 립 서비스는 돈이 들진 않으니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풀어지자 중립파 어중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는데.

처음 보는 놈들한테 인사를 건네는 건 제법 피곤한 일이지만, 황태자파나 3황자파가 다가와 시비를 거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

그러고 보니 결국 리아넨 공작이 나를 보호해 준 셈인가?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거군.

다른 계파의 접근도 막고, 인심도 쓰고.

역시 리아넨 공작도 계산이 제법 빠르다. 다른 계파에서 눈치 볼 때 바로 와서 선점이라니. 이건 누구 생각일까?

어쨌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쟁의 가운데로 들어온 거 같아 속이 좀 쓰리긴 하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뜨내기다. 오늘만 지나면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없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중앙으로 출사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나를 강제로 눌러 앉힐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긴, 만약 내가 원한다고 해도 나를 황태자파라고 생각하는 3황자파 귀족들이나, 내가 황태자의 총애를 독차지할까 두려워하는 일부 황태자파 귀족들 때문에라도 불가능하긴 할 것이다.

의외로 내가 이곳에 눌러앉길 바라는 사람들은 중도파 정도일까?

어쨌든 참 미묘했다.

그렇게 한창 둘러싸여 인사를 나누다 보니 논공행상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 괜찮았지? 3황자파나 황태자파 애들이 눈총 줬으면 쓸데없이 피곤했을걸?”

“그렇네요, 그릭스 공자님.”

“이런 건 잊지 말라고. 그럼.”

웃으면서 떠나는 그릭스 공자를 보니 확실히 사전에 준비된 움직임인가 보다. 내가 자신들과 서로 한편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제스처겠지?

물론 난 영지에서 나올 생각이 없으니 헛물만 켜는 셈이지만 이번 도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저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혼 래빗 그것이나 잘 챙겨 보내줘야겠다.

예전에 영지에서 트롤 짓할 때는 저 인간이랑 이 정도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래서 인생 모른다고 하는 모양이다.

논공행상이 시작되고 몇몇 귀족들이 황제에게 상을 받았다. 주로 황태자파 귀족들이었다.

몇몇 지방 귀족들도 이름이 올랐지만 대부분 단순한 상금이었고, 그래서 예전에 우리 영지가 그랬던 것처럼 영지에서 상금이나 지원금을 전달받을 것이다.

그리고 삼등 공신으로 레오니스 공작이, 이등 공신으로 페리안 황태자가 호명되어 룩센 대제에게 훈장을 수여받았다.

역시 훈장은 황금 독수리 훈장인가?

높은 전공을 세웠을 때 수여받는 황금 독수리 훈장을 차지하는 건 생각보다 더 명예로운 일이었는데, 아마 할아버지인 카인이 감격했던 것도 바로 저 훈장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가문의 이름에 같이 남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선조들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분명 내가 첫 훈장 수여자일 것이다.

하, 이게 무슨 고양이 목의 방울이야? 모두에게 좋은 건데 나는 희생하기 싫은?

그런데 왜 하필 내가 달았냐고.

로빈이 투덜거리는 사이에 황태자와 레오니스 공작에게 내려지는 보상이 공개되었다.

이건 원래 전공 보고서를 올릴 때 본인이 원하는 걸 직접 적어서 보내는 거였다. 황제는 전공과 원하는 보상을 비교해 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들어주는 거고.

물론 거절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공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도 있고, 현실적으로 무리인 경우도 제법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가장 황당했던 요청이 누구누구 공주님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 라는 거였지?

로빈도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빵 터졌다. 대체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황녀님도 아니고 다른 나라 공주님이랑 결혼시켜 달라면 뭐, 어쩌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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