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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36화 (136/303)

136화

그러려면 국제적인 중매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얽힌 문제가 한두 개여야지. 게다가 그 공주님은 그때 이미 다른 약혼자가 있었다.

하긴 그만큼 웃겼으니 사례로까지 남았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은 사라진 가문이지만 그 가문은 가주를 잘못 둬서 제법 오랫동안 창피하지 않았을까?

황태자가 원한 건 재무부 귀족들의 감찰 조사권.

이건 소설에서도 나오는 거다. 이걸로 결국 힐데 후작을 실각시켰지.

그리고 레오니스 공작이 원한 건……. 오. 국혼? 이거 대박이네.

황태자와 자신의 딸인 레니아 공녀를 결혼시키겠다는 거였다.

이건 대체 누구 생각이지?

어쨌든 서로가 윈윈인 결혼인데다가 레니아 공녀가 이미 황태자랑 우주 끝까지 같이 간 상황이라 당연한 수순이었으니 레오니스 공작은 사실상 보상을 사양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원작에서는 영지를 지원해 달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지금은 영지에 피해가 없어서 저렇게 판단한 거 같았다. 원래 저 양반이 황제에게 뭔가를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가만있자, 난 보고서에 원하는 걸 아무것도 써내지 않았는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원칙대로 황제가 주고 싶은 걸 주겠지?

뭐, 적당히 돈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다른 건 별로 원하는 것도 없으니.

“일등 공신, 그레이츠 자작령. 로빈 그레이츠는 앞으로 나오라.”

자신의 차례가 되자 로빈은 침착하게 황제 앞으로 나섰다.

“수고했네, 그레이츠 자작. 자네의 영웅적 행보는 내 익히 전해 들었네. 제국을 위해 힘써줘서 고맙군.”

“영광이옵니다, 황제 폐하.”

황제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받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보상을 기다렸다.

물론 특별한 걸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이게 또 은근히 기대된다고 할까?

“로빈 그레이츠 자작의 보상은 승작으로 대신한다. 기록관은 그간 로빈 그레이츠 자작이 세훈 공훈을 읊으라.”

뭐, 인마?

로빈은 순간 꿇은 무릎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갈 뻔했다. 아니, 이게 무슨 린나니 칼춤 추는 소리야?

승작이라니?

하하, 농담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셨으니 이제 귀족들이 들고일어나겠군.

현 제국에서 승작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해지고 있었다.

제국 법제에 따르면 크고 작은 공을 인정받을 때마다 공훈 포인트가 쌓이고 그 공훈 포인트가 일정 이상 올라가면 승작하게 되는데, 이 공훈 포인트란 게 가문에 쌓이는 게 아니라 개인별로 쌓이게 된다. 즉, 한 세대에 온갖 공을 세우지 않으면 승작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시대가 전쟁이 빈번한 시대도 아닌데 그 공훈 포인트를 한 세대에 쌓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고, 결국 승작은 거의 막힌 상황인 것이다.

만약 단 한 번의 전공으로 승작하려면 글쎄, 적어도 적진으로 쳐들어가 총사령관의 목을 치고 상대 왕궁을 점령한 다음 상대 국왕의 항복을 받아내면 가능하려나?

그야말로 계승 작위를 얻거나 승작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신분 상승이 막힌 사회가 된 것이다.

일명 고인물?

반면 단승 작위는 비교적 얻기 쉽게 만들어놔 그 단점을 보완하고 있는 건데.

어쨌든 내가 이번에 세운 공 정도로도 승작은 어림없으니 이 보상이 유효할 리 없었다.

그래, 한번 들어나 보자. 대체 무슨 계산으로 나를 승작시키겠다는 건지.

“제국력 1022년. 마수 범람. 남쪽 대수림 방면 총지휘관으로 참전. 상급 마수 가메라 격살 및 전리품으로 두개골 진상. 각각 100포인트, 총 200포인트.”

엥? 이게 왜 나와?

시작부터 상상도 못 했던 게 튀어나왔다. 한 방 먹은 기분이랄까?

백작으로 승작하는 일명 승작 포인트가 1,000포인트로 알고 있는데 이때부터 200포인트나 먹고 들어갔다고?

상급 마수 진상품인 두개골은 대체 왜 100포인트나 되는 거야? 이거 무슨 농간 아니야?

상급 마수 열 마리 잡으면 승작이란 건데 이건 말도 안 되잖아?

하지만 황실에서 측정한 공적 포인트에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그저 억울함을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그나저나 이게 어떻게 내 공으로 올라갔……. 아, 할아버지구나.

할아버지 성격상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었을 리는 없고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보고서에 올린 모양이다. 내가 그쪽 방면 최고 책임자라는 건 사실이었고, 그쪽에서 가메라가 잡힌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이 고지식한 어른이 굳이 올리지 않아도 되는 내 이름을…….

“제국력 1024년 혼 래빗 가죽 군납. 50포인트.”

이건 또 뭐야? 와. 이 사람들, 진짜.

이건 아니지.

아무리 전공 포인트가 아니라 공훈, 혹은 공적 포인트라도 물건 판 걸 공적으로 치면 이건 강호의 도리가 아니잖아.

로빈은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원래 공납하는 특산물, 혹은 군납하는 군수 물자는 공적으로 인정되었다.

물론 무조건 인정되는 건 아니고 3년 이상 성실하게 물건을 공급하는 경우에만 공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모두가 공적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공적 포인트가 전공 쪽으로만 너무 치우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규정이었는데 군납과 공납이 꿀 빠는 데 최고라는 건 이런 이유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급 마수 칸누라스 토벌 지원. 50포인트.

혼 래빗 생육 공납. 50포인트.

자이트 영지 지원. 100포인트.

재난 중 군수 물자 보급. 100포인트.

일등 공신, 황금 독수리 훈장 획득. 300포인트.

미스릴 갑주 열 벌 진상 150포인트.

이게 이렇게 된다고?

기록관의 보고를 자세히 들어보니 어찌어찌 1,000포인트가 모이긴 했다.

하지만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미스릴 갑주 진상과 훈장 획득은 그야말로 이중 보상이요, 군수 물자 보급은 둔기를 다른 영주들에게 판매한 것에 불과한데 저것들이 버젓이 공적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군수 물자 보급은 누가, 왜 보고한 거지? 설마 다른 영주들이 보고한 건가?

딴에는 은혜를 갚는다고 황실에 보고한 모양인데 저게 저런 식으로 발목을 잡을 줄이야.

황실 기록관이 저렇게 발표했고 심지어 다른 귀족들조차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 결국 로빈의 승작은 확정적이었다.

황망해진 로빈이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봤자 일방적인 특혜인 승작은 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영광…이옵니다, 황제 폐하. 앞으로도 충심으로 황실을 보필하고 제국을 지키겠나이다.”

진짜 이렇게 고위 귀족이 되어버리니 다른 귀족들의 눈초리가 좀 따가웠다. 아무래도 아니꼬움 반 걱정 반,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제국에 존재하는 백작이 총 열한 명. 그중에 황도에서 활동하는 백작이 여섯 명인데. 새로운 백작이 황태자의 총애를 등에 업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저러는 거였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또한 그레이츠 백작을 북부 변경백으로 임명해 마수 산맥 전체의 방어를 책임지게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기습적인 공격이 들어왔다.

변경백? 이건 여기서 이런 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이걸 또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고?

이 세계의 변병백은 전생처럼 지방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는 그런 변경백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 룩센 대제가 하는 말을 적당히 풀이하면 네가 다른 5대 방벽의 영지들을 적당히 다독여서 마수 산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알아서 잘 막아라.

이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위급한 경우 근처 영지의 병력을 동원할 권리는 있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로 간에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누구라도 자신의 병력을 쉽게 내어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권리보다는 의무가 더 강한 직책이라 달가운 자리는 아닌데 이게 로빈이라면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다.

변경백에겐 소소한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자신과 관련된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면 귀족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결국 로빈 입장에서 가장 귀찮은 귀족 회의는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자신이 지게 되는 책임 역시 막중해지는 셈인데.

다행히 이건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반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 거절하게 되면 상황이 좀 이상해진다. 지금 귀족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한 것만 봐도 딱 알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변경백이 된다면 황도에 올 일이 거의 없고, 황태자의 총애와 상관없이 중앙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경계심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도 중앙에서 활동하지 않는 백작들은 대부분 변경백들이었으니, 저들의 생각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저 귀족들도 승작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변경백이 되어 영지에 짱 박힐 거란 이야기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이걸 거절하면……. 하하. 미치겠군.

사실 이 변경백이란 건 황제의 마음대로 그렇게 임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 같은 경우에는 마수 산맥 인접 지역을 총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5대 방벽의 영주들이 인정하고 동의해야 임명할 수 있는 건데.

그 양반들이 핏덩어리인 나를 변경백으로 인정했다고?

대체 왜……. 아, 설마 혼 래빗 동맹 때문이냐?

정말 환장하겠네.

왜 느닷없이 황실에서 나서서 혼 래빗 사육장을 확장하라고 하나 했더니. 이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지만 이제 앞으로 전력 증강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그래서 혼 래빗 가죽의 수요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이쪽 근처 영지에서밖에 키우지 못하는 놈이라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히 주변으로 소개해 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놈들을 잘 관리한다는 전제 조건은 있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혼자 먹어봤자 다 먹지도 못하니 적당히 이익과 인심을 같이 챙기면 똥물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것도 막을 수 있으니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무래도 나 하나가 아닌 모양이다.

이걸 거절해? 말아?

갑작스럽게 승작과 동시에 변경백으로 임명된 상황.

하지만 명령이 내려온 이상 거절하려면 지금뿐이었다.

어이없는 건 이 상황이 무척 작위적이란 거고, 더 웃긴 건 귀족들도 자신과 황실 사이에 사전 조율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빈은 변경백 직위를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하하. 그레이츠 자작, 아니 이제 백작이군. 축하하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제국에 충성해 주게나.”

황제에게 보상을 받고 내려가는데 황태자가 그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표정만 봐도 딱 너의 생각 정도는 간파하고 있다는 듯 능글맞기 그지없었는데.

이 인간이 원래 이런 성격인가? 뭔가 캐릭터가 좀 바뀐 느낌인데?

“네. 전하, 으득,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국에 충성하겠습니다.”

“하하, 그래야지. 아, 이쪽은 초면이지? 내 참모인 크라우 백작 자제. 그리고 젝트라네. 그리고 나의 피앙세 레니아 레오니스 공녀. 인사하게나.”

“반가워요, 그레이츠 백작. 레니아예요.”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레니아 공녀님.”

크라우, 젝트, 그리고 레니아라.

크라우와 레니아는 원래 황태자의 사람이지만 이상한 녀석이 하나 끼어있었다.

젝트라. 저거 원래 지카스 놈의 참모 아니었나?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지?

다소 막 나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황태자를 제법 피곤하게 만들었던 젝트가 지금은 황태자 옆에 있었다.

설마 이번에 거짓으로 신탁을 꾸민 것도 저놈 머리에서 나온 건가?

하긴 크라우가 절대 생각할 수 없는 계략이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런 놈이 있을 줄은 몰랐네. 저놈은 원래 황태자와 같이할 수 없는 놈인데 저놈이 지금 여기 있다는 건…….

젝트는 원래 황태자파 귀족 한 놈에게 절대적인 원한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지카스 밑으로 가 자신의 복수를 이루려고 한 거고.

뭐, 그 귀족 놈 자체가 워낙 막장이라 결국 복수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 자신의 끝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놈이 지금 여기 있다는 건 황태자가 그걸 미리 알고 복수를 이뤄 주겠다는 조건으로 등용했든지 아니면 이놈이 황태자를 속이고 있다는 건데, 지카스까지 없어진 상황에서 후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 양반이 헤드 헌팅을 또 제대로 하셨군.

하지만 젝트를 받았다는 건 황태자가 지금 황태자파의 썩은 부분까지 도려낼 생각인 것이다.

벌써부터 그걸 계획하고 있다라.

그리고 레니아 공녀.

확실히 소설상 손가락 안에 꼽는 레니아 공녀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도도한 고양이상의 화려한 미인이랄까?

우리 집에 있는 강아지 두 녀석과는 역시 종자 자체가 좀 달라 보였다. 미모의 우위가 드러난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는 의미였다.

이런 화려한 미인이 황태자한테는 그렇게 순종적이란 말이지?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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