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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40화 (140/303)

140화

로빈은 자기 말만 하고 번개같이 사라져버린 백랑의 신속함에 혀를 내두르면서 신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다시 살아난 폴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제법 가벼웠다.

신전은 언제나처럼, 아니 솔직히 그 이상으로 방문객이 많았다. 처음 지을 때부터 그 규모를 엄청 확장해 놓은 게 지금 빛을 보고 있는 상황이랄까?

아마 누군가의 말처럼 이번 축제 때 보인 놀라운 공연도 신도들의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거 같았다.

심지어 사제들의 수도… 어? 더 늘었네? 이 인간들은 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가서 포교했던 거야? 설마 다른 나라에까지 다녀온 건가?

그런데 아직도 올 사람이 남았다고?

게다가 지금은 상당수의 사제가 각 마을로 거처를 옮긴 후인데 아직도 저렇게 많은 사제가 본단에 남아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한 교단의 모든 사제가 모인다는 걸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교단이 이번 축제 때 더 열성적으로 참여한 이유에 저런 것도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대충 교단을 둘러보고 바로 줄리에타 대사제의 접견실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접견실에는 줄리에타 대사제가 아니라 묘령의 여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넉넉한 사제복으로도 도저히 가릴 수 없는 폭발적인 볼륨감.

묘한 염기와 색기가 느껴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영주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처음 보는 여성이 자신을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는 바람에 로빈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누구세요?

줄리에타 대사제는 어디 가시고 웬 처음 보는…….

응? 사… 사기닷!!

이름: 줄리에타

성향: 자애. 포용. 음란

타이틀: 성녀(S). 여신님의 첫 번째 종(S). 방중술의 대가(SR)

…이분이 줄리에타 대사제라고?

줄리에타 대사제는 분명 액면가 40대, 실제 연령 40대의 전형적인 흔녀(?)였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그러고 보니 신성력 봉인이 사라졌네?

게다가 성녀? 이건 또 무슨.

“줄리에타 대사제님?”

“호호, 예. 놀라신 모양이군요. 대사제 직을 내려놓긴 했지만 제가 줄리에타입니다. 이제는 그냥 줄리에타라고 불러주세요.”

“아, 예. 그, 뭐…….”

잠시 동안 말문이 막힌 로빈.

기가 막혀서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하긴 대사제씩이나 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성력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의아하긴 했었다. 신성력이 봉인되었다는 타이틀을 보고 무슨 이유에서일까 궁금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봉인 하나 풀었다고 이 정도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강남에서 전신 성형을 받아도 이만큼 극적으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

여신님, 당신은 정말 세상을 잘못 선택하셨어요.

하지만 가장 어이없는 건 대사제에서 성녀로 변했다는 거다.

설마 그게 이런 의미였어? 대사제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성녀로 변한다는 말이었냐고.

이건 대놓고 사기잖아.

난 신성력을 잃든지, 무슨 다른 페널티가 있는 줄 알았지.

이렇게 더 좋아지는 거면서 그걸 그렇게 말하면…….

하, 진짜 그 여신에 그 사제인가?

둘 다 사기 치는 솜씨가 아주 자해 공갈단 저리 가라 할 수준이야.

“사실 저도 놀랐답니다. 이런 변화가 있으리라곤……. 이게 다 여신님의 뜻이겠죠.”

“네, 뭐. 우선 축하드립니다. 아름다워지셨네요.”

“호호. 네. 대사제의 자리에서는 결국 내려왔지만 마음만은 아주 편하답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많았었거든요. 사실 외모도 좀 그렇고요. 저도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그 뒤에 예쁜 애들만 즐비한 교단이다 보니 신성력을 봉인한 채 평범하게 살고 있던 줄리에타가 느꼈을 상대적인 박탈감도 작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그 정도는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겠지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주눅 들고 위축되지 않았을까?

하물며 그런 시간을 수십 년이나 보내며 결국 대사제까지.

그냥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게 그리 가벼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성녀가 되었으면 그냥 대사제로 있어도 되지 않나? 왜 굳이 대사제 직을…….

“대사제는 제 뒤를 이어 이제 루루아가 맡게 될 거예요. 앞으로 신전의 일은 루루아와 논의하세요. 오늘이 영주님과 저의 마지막 교섭인 거죠.”

루루아면 항상 줄리에타를 옆에서 보조하던 사제님이다. 성향이 줄리에타와 비슷한 자애와 포용, 그리고 봉사였던가?

좀 딱딱해 보이는 분이지만 성향 자체는 비슷하니 교단을 지금처럼 잘 이끌어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 마지막 교섭이라니? 대체 무슨 교섭을 하실 생각인지 의아하기만 했다.

“치료에 들어가기 전 영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교단이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들어주신다고요. 전 오늘 그걸 요구할 생각입니다.”

“예? 물론 그랬지만…….”

이 사람 보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료를 하면서 결국 성녀까지 된 사람이 굳이 그걸 요구하겠다고?

이건 너무 상도의가 없는 거 아냐? 강호의 도리는 어디에 팔아먹으셨나?

“하지만 대사… 아니, 줄리에타 님. 분명 그때 대사제님이 큰 희생을 감수하시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조건을 걸었던 거고요. 하지만 지금 보니 희생을 하셨다기에는…….”

로빈이 슬쩍 항변했지만 줄리에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영주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믿기 힘드시겠죠. 하지만 전 분명 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을 여신께 바치고 폴 경을 치료했습니다. 그러니 대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뭘 바치셨나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저도 들을 자격이 있는 거 같은데요.”

로빈이 따지고 들자 슬쩍 눈을 피하며 얼굴을 붉히는 줄리에타.

뭐야, 이 분위기.

“그… 그러니까. 폴 경을 위해 제… 순결을 희생했습니다. 그리고 여신님이 제게 약속한 마지막 기적을 폴 경에게 선물한 거죠. 물론 그 치…료 행위가 워낙 강렬하고 황홀해서 저 역시 한 단계 수준이 올라갔지만, 교단은 이번 일로 큰 손해를 본 셈이죠.”

이어지는 설명을 들어보니 로빈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제이며 차기 교왕 내정자인 줄리에타는 40줄이 넘은 지금까지 순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순결한 몸이 아니라면 교왕이 될 수 없다는 봉사의 교단만의 특별한 규율 때문이란다.

대신 순결한 몸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딱 한 번 기적적인 치료를 선보일 수 있는데, 이번에 줄리에타가 사용한 건 그 대단한 기적이었다.

물론 아직 교세가 약해 교왕까지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교단 입장에서는 이번에 대단한 교왕 후보 하나를 희생한 것이다.

그리고 교단의 특성상 줄리에타만큼 오래 순결을 유지한 교왕 후보는 지금까지 없었다니 왠지 모를 미안함에 고개까지 절로 숙여졌다.

다음 교왕 후보가 열다섯 살이라나? 이제 갓 성인이 되었다니 다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40년 묵은 처녀 파워였단 거지, 그 기적이?

이런 환경에서 40년이나 처녀로 버텨낸 줄리에타 대사제도 정말 대단하긴 하다. 게다가 음란 성향인 주제에 온갖 유혹을 다 이겨내다니.

그런데 결국 교왕 후보에서 제외된 것뿐인데 굳이 대사제 직까지 내려놓을 필요가 있나?

“줄리! 하하. 왜 접견실에 있소? 내 한참 찾았는데 말이오.”

순간 접견실 문이 열리며 폴이 들어왔다. 한쪽 다리를 살짝 절고 있지만 다른 부분은 그런대로 회복되었는지 신색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뭐? 줄리? 줄~리? 주울~리? 설마 이 양반들이…….

“호호. 폴 경, 영주님이 오셨거든요.”

“오, 영주님. 승작 축하드립니다. 하하.”

끙, 왠지 축하는 내가 해야 하는 분위기인데.

폴 경이 상처한 지 얼마나 지났더라? 그렇다는 건 줄리에타가 대사제 직에서 내려온 것도 결국 폴 경 때문인가?

이러면 진짜 빼도 박도 못하네. 줘야지, 교단이 원하는걸.

폴 경의 표정만 봐도 알겠다. 이제 앞으로 줄리에타 대사제가 아니면 못 사는 몸이 되셨구만.

그리고 줄리에타의 설명을 들어보니 로빈의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폴이 줄리에타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린다기보다는 둘 다 서로 죽이 맞아 죽고 못 산다는 것 정도였다.

둘의 화려한 치료 행위에 대하여 부연 설명을 들은 건 덤이었고.

폴 경도 그렇게 안 봤는데 들어보니 제법…….

급피곤함을 느낀 로빈은 설명을 끊고 신전의 요구 사항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야설급으로 적나라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재미있긴 했지만 제법 낯 뜨거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교단의 요청은 성물 옆에 비치할 남근상을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원래 성물 주변에는 성물을 보호하는 남근상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게 없어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제들이 많아요. 사제들 사이에서는 이번 재앙이 격해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남근상이요?”

“네, 남근상은 풍요와 번영, 사랑과 평화를 의미하죠. 그러니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풍요와 번영은 그렇다 치지만 사랑과 평화는 뭔가 오버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바로 승낙하기로 했다. 물론 그걸 재앙과 연결하는 저 놀라운 상상력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 뭐. 남근상 정도는 가볍게 만들어주지. 여신님이 실제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며 오돌토돌하게 제대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아예 가죽 막대처럼 진동 기능까지 추가해 버릴까? 한 번 쓰면 아주 가버리게?

“이번 재앙 때 사용했던 둔기들을 녹여 남근상을 만들 생각인데 그건 괜찮을까요?”

“오, 그럼 더 의미 있는 남근상이 되겠군요. 여신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다. 어쩌면 성물의 효과가 더 강력해질 수도 있고요.”

어차피 쓸 데도 없는 둔기를 녹여 강철 남근상을 만들 생각으로 한번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

역시 남근상은 무조건 단단해야지.

하지만 하나만 만들면 좀 서운하지 않나?

줄리에타의 말을 들어보니 의미 있는 소재로 만든 남근상은 성물의 효과를 증폭시킬 수도 있다니 이건 좀 생각해 봐야겠다.

“그럼, 말씀 나누시지요.”

목적을 달성한 줄리에타는 뒤로 살짝 물러났고 다른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이제 폴 경만 남았는데.

아까 줄리에타가 자신과의 치료 행위를 차진 묘사를 섞어가며 자세히 설명하는 통에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줄리에타가 책도 많이 내서 그런지 묘사가 아주 그냥……. 그 책이 대체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 양반. 지금까지 처녀였는데도 잘도 그런 책을…….

“줄리에타 대사제님이랑 혼례를 치르실 생각이세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영주님. 물론 따로 식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여생을 같이하기로 했고요.”

“좋은 일이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몸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거동도 할 수 없어 괴로웠는데 줄리가 옆에서 보살펴주면서 기운을 얻었고요. 지금은 다리를 살짝 저는데 이것도 금방 회복된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뜨거운 치료 행위가 계속 필요하고요?”

“네, 뭐. 그렇다고 하더군요.”

이제 곧 겨울인데 어쩌나. 기사단장이 계속 이렇게 있으면 곤란한데.

“그래서 말인데, 영주님. 이번 기회에 기사단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폴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금방 회복된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네? 벌써요?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이르긴요. 저도 많이 늙었습니다. 게다가 애병까지 잃고 나니 좀 무상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제 슬슬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줘야죠.”

“흠…….”

하긴 그날 에셋까지 잃고 목숨까지 위험했던 걸 생각하면 폴의 심경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이분도 할아버지의 연배고 사실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다만 워낙 기량이 출중한데다 뒤를 이을 인물이 마땅치 않아 계속 자리를 지킨 것이다.

이제 새장가도 가고 했으니 할아버지나 줄리에타와 함께 여생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폴 경의 뜻이 그렇다면 막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할아버지도 평소에 은근히 그런 말씀을 많이 하곤 하셨거든요.”

“하하, 그런가요? 전대 영주님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저한테도 예전에 도리아 여사님 자랑을 좀 심하게 하셨거든요. 이젠 저도 꿀리지 않으니 맞받아칠 수 있겠군요.”

“그래요. 그럼 다음 기사단장은 누굴 생각하시나요? 역시 제필 경인가요? 아니면 루이 경?”

우선 떠오르는 건 기사단의 에이스 제필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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